법보다 더 엄격하고 범위가 넓은 것이 여론이다.

우리는 이러한 사람들의 의견을 존중하고 그들의 기대에 부응하여 성공하면 만족해 한다.

 

 

 

그러나 여론은 늘 수미일관(首尾一貫)하지 못하고 모순적이며

모든 은밀한 부분까지 파헤치지를 못한다.

 

 

여론은 중요한 것이기는 하지만 진실에는 아무래도 한계가 있다.

실제로는 악한 사람이면서도 겉모습은 예쁜 나비일 수도 있다.

 

 

설득력있는 구변 (口邊), 세련된 스타일, 훌륭한 태도를 가진 사람이

사실은 매우 나쁜 죄를 지으면서도 인기를 누리고 있는 경우가 우리 주위에는 너무도 허다하다.

 

 

 

속은 썪어 있지만

은 화장이나 페인트로 칠하면 사람들은 속을 보지 못한다.

 

그 뿐만이 아니라 곱게 단장을 한 나비중에

예쁜 꽃들에게는 고개를 돌려 버리고 더러운 음식물만 골라서 빨아먹는 나비도 있다.

 

 

 

 

 

 

가슴이 따스한 사람 해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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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의롭고 양심적인 모든 이들에게 경의와 사랑의 마음을 표합니다.

                                             

 

 

            법정에 가면 재판관은 의자에 앉아서

            진행되는 모든 과정을 지켜보며

            들려오는 모든 말들을 진지하게 경청합니다.

            그러고 나서 판결을 선포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 양심은 법정과 매우 닮아 있습니다.

 

            우리의 양심에서 법정은 우리의 일거수일투족(一擧手一投足)을 자세히 캐물으며

            잘한 일에는 미소를 보내고

            못한 일에는 눈살을 찌푸립니다.

 

            비록 사람들 앞에서는 말은 다 할 수 없었지만

            양심 앞에서는 우리가 잘못도 많았고 실수도 참 많았습니다.

 

            철두철미 정직하게 살고도 싶었지만 그렇지도 못했습니다.

            죄의 그림자는 항상 우리를 따라다녔고

            그때마다 양심은 피를 흘리며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양심이란 무엇일까요

            양심(良心)이란 사전에서는 어떤 행위에 대해 옳고 그름이나 선과 악을 구별하는 도덕적인 마음씨라고 하지만

            양심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은 분분(紛紛)하고 의미도 매우 다양합니다.

 

            우리 인간에게는 사물을 보게 하는 두 개의 눈이 있습니다.

            하나의 눈은 육체의 눈이고 다른 하나는 마음의 눈입니다.

 

            육체의 눈은 우리가 가야 할 방향과 해야 할 것을 보게 하고

            마음의 눈은 옳고 그름을 깨달으며 우리가 해야할 것과 해서는 안될 것을 판단하는 양심이라는 눈입니다.

 

            양심의 눈은 마치 우리를 올바른 방향으로 인도하는 말의 고삐와도 같습니다.

            우리가 그 고삐를 잡고 따라갈 때 우리는 안전하게 갈 수가 있을 것입니다.

 

            또한 양심은 우리들의 훌륭한 비서입니다.

            우리들의 비서는 우리의 모든 행동과 말, 생각, 감정 등을 기록하고

            그것이 옳은 것이든지 나쁜 것이든지 다 기록해 둡니다.

 

            또한 양심은 범인을 찾아내는 정보원처럼 우리가 저지른 잘못을 뉘우치게 만들고 반성하게 합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겁도 없이 죄를 짓고 자진 출두하여 자수를 하는 것도 바로 이러한 양심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보다도 중요한 것은 우리의 양심에는 하나의 다른 창(窓)이 있습니다.

            그 창으로 햇빛이 들어오며 그 창에서 세상을 아름답게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더욱 정확하고 아름답게 보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창에 반드시 투명한 유리로 끼워 넣어야 합니다.

            만일 창의 유리가 투명하지 못하고 붉은색이나 푸른색, 노란색이나 녹색으로 끼운다면

            세상은 모두 다 그런 색으로만 보일 것입니다.

            그리고 만일 창을 가리거나 닫아만 놓는다면 방안은 온통 어둠으로 가득 차게 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이러한 원리가 우리의 양심과도 같습니다.

            만일 우리가 세상을 더욱 아름답게 보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밝은 햇빛이 방 안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셔터를 걷어 올리고 창문은 깨끗하게 닦아야 할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친구나 이웃에게 잘못하여 고통으로 울고 있다면

            그를 찾아가 정중하게 사과하고 용서를 빌어야 할 것입니다.

 

            양심 안에서 세상을 바라볼 때 우리 사회는 지금도 싸움이 한창입니다.

            자동차는 많아지고 살기는 좋아졌다고 말하는데 우리의 답답함은 더욱 더 증가되고 있습니다.

 

            거기에다가 정치적인 상황은 우리를 더욱 숨막히게 하고 있습니다.

            밑도 끝도 없는 정치적인 싸움에 언론들은 싸움을 말리기는 커녕 싸움을 부추기며

            가짜 뉴스를 만들기도 하고 애매한 국민들은 피해만 보고 있습니다.

 

            특히나 이 모든 사건들에 기독교인들이 관계되어 있다는 것에 더욱더 배신감을 느낍니다.

            교회가 진실한 신앙고백없이 마구 세우고 마구 받아들인 결과 교회는 하나님의 섭리보다는 인간의 의지를

            하나님의 공의보다는 정치적인 성취를 중요시한 잘못에 우리는 분노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더욱이 이들을 지도 권징해야 할 교계 지도자들은 개독이라는 오명을 쓰고서도 자성하지 못하고

            오히려 그것이 핍박인냥 그 죄악에 참여한 꼴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것이 지난 날 군사독재 밑에서 민족상을 받고 충성 맹세를 한 약속이었다면 교회는 속히 그 곳에서 나와

            그들과 결별하고 예수께서 가신 그 길로 들어가 이웃들과 함께하며 가르치고 치료하여

            아름답고 정의로운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야 할 것입니다.

 

            양심은 오늘도 법정앞에 우리를 세워 놓고 항상 묻고 있습니다.

 

            당신은 어떻게 살아오셨습니까?

     

 

                                       

 

            가슴이 따스한 사람 해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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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산 봉수대에서 바라본 인왕산









어린 시절에 뛰어 놀던 본부를 찾아서...         때 마침 한 마리의 새가 날아왔다.        낡은 휴대폰으로 찰칵



어느 새 나의 발목앞까지 접근...                      넌 누구냐!                      내가 무섭지도 않은가 보다...












 

























겨울도 지나고 비도 그쳤고

지면에는 꽃이 피고 새의 노래할 때에


당신은 넓은 들로 나가서

식물들이 어떻게 자라는가 한번 관찰해 보라


시냇가의 수양버들

들판에 핀 수선화

바위에 낀 이끼나 고사리들...


이들은 마치 따스한 봄날처럼

말할 수없는 열정으로 아름답게 자라고 있다.


수양버들은 위에서 더러운 물이 천천히 흐르는 시냇가에

푸른 잎사귀를 영광의 깃털처럼 달고

그 모습이 차마 너무나도 부끄러워

가지들을 쭉 내린채로 온 몸을 감싸고 있다.


들판의 꽃은 하늘에서 보내 주신

단비를 받아 마시며 무척 좋아하는 듯이

모든 가지들을 하늘로 벌리면서 힘차게 자라난다.


만일에 즐거운 콧 노래를 부르며 흘러가는 시냇물이

중간에서 흙탕물과 섞이면 어떻게 될까


가냘픈 수선화가 꽃샘 추위에

차갑게 떨고 있으면 어떻게 될까


마찬가지로 우리 앞에 미묘하고도 매력적인 유혹이 찾아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


이끼나 고사리같은 양치류도

바위나 벽에 붙어 살면서도

거칠고 사나운 부분들을 부드럽게 해 주고

희망을 전해주고 있는데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너희도 이와 같이 하라.



가슴이 따스한 사람 해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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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힘들게 정상에 오른 순간

               내 맘 속에서 투투 노래가 나오지 멉니까...

               멀리서 널 보았을 때 다른 길로 갈까 생각했는데...(맞나?)

                                                                                                            사순절 날 연희동 안산 기슭에서

 

                                                          

 

 

 

 

 

 

술과 마약등은 원래가 지혜롭고 간교한 뱀과도 같아서

한번 물리면 전신을 마비시키고

귀중한 우리들의 지갑과 명성과 목숨까지도 잃게 만듭니다.

 

그것은 처음부터 천사처럼 신비롭게

부드러운 몸매와 매혹적인 눈빛으로 사람들을 유혹하면서

 

한 손으로는 우리들의 눈을 가리우고

다른 한 손으로는 우리들의 입 안에 독을 넣어줍니다.

 

 

또한 마음이 교활하고 나쁜 사람은

눈 속에 박힌 가시와도 같이 가시는 사람에게 상처를 입힐 수도 있지만

눈 속에 박힌 가시는 그가 어느 곳에 있든 지 끝까지 괴롭힙니다.

 

 

단순히 트집을 잡기 위한 비판이나 의문은 아무런 유익을 주지 못합니다.

 

이와 같은 비판은 우리 자신에게도 쓸데 없이 시간만

낭비하여 다른 사람에게는 고통을 주는 일입니다.

 

 

마찬가지로 정의나 진실을 표방하는 여론의 흐름도

알고보면 거짓 진술에 의존하고

 

거짓 추측과 미리 내려진 각본에 따라 진실을 감싸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매일같이 드나드는 상점에서도

진실이 공공연히 위장되고 왜곡되어 있으며

 

어떤 것은 차라리 불가피한 것으로도 인정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부정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공공연히 드러내 놓는 뻔뻔한 부정이고

다른 하나는 교묘하게 위장되고 포장된 놀라운 비밀입니다.

 

 

그러나 이 보다도 더 나쁜 것은 편견으로

다른 사람의 질투나 시기, 복수심으로 영합하는 사람입니다.

 

 

이들은 마치 사법부나 거미와 같이

 

다른 사람의 약점을 찾아내어 그들을 조롱하고

자기들의 이익을 챙깁니다.

 

 

우리 사회의 어느 계층, 어느 부류를 막론하고

 

부정이 없는 곳이 없고 나쁜 부정들도 많습니다.

 

 

 

옳고 그름을 판결하는 재판석에서 판결이 부당하게

내려질 때 그것은 재판관이 편견을 갖고 있거나

배심원들이 부패 했다거나

 

증인들이 거짓 진술을 한 예입니다.

 

 

 

만일에 불의한 입이 관여하고 불의한 자가 동조한다면

우리의 사법부는 어떻게 될까요.

                                              

                                                

가슴이 따스한 사람 해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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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난을 아름답게

 

 

 

 

 

 

 

                추운 겨울이 지나가고 따스한 봄이 오

                자연은 어디선가 꽃샘추위를 몰고 오고 사람들은 꽃샘추위에 몹시도 당황을 합니다.

 

                고난은 누구나 다 당하기를 싫어하는 것이지만

                그러나 고난에는 우리의 잠자던 영혼을 깨우는 힘이 있습니다.

 

                얼마 전 서울의 한 강연장에서 일어난 리퍼트 美 대사의 피습사건을 보면서

                60년 전 한국 전쟁의 상처가 이렇게도 크게 남아 있을 줄 미쳐 생각지 못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언론에 동조하며

                어떤 이들은 김기종씨를 테러분자라고 비난하고 

                어떤 이들은 美 대사를 향해 춤을 추며 영웅으로 모셨습니다.

 

                그러나 이 보다도 안타까운 사실 하나는 우리 사회에 무슨 일만 터지면

                항상 반복되는 종북 논란과 국가 보안법은 무엇인지

                우리를 더욱 위협하는 무서운 존재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 동안에 우리는 단 한 번도 이 민족이 당한 고난의 의미를 깊이 생각하지 않은 체

                안보만을 높여 왔고 민족 분단을 정권 유지의 유리한 방패막이로 사용하여 왔을 뿐입니다.

 

                우리는 너무나 큰 전쟁을 겪었으면서도 거기서 얻은 교훈이 기껏해서 안보뿐이라면

                우리는 그 전쟁이 주는 많은 교훈을 상실하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래 전에 <25시>의 작가 게오르규 씨가 한국을 방문했을 때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 인생 항로의 괴롭고 어려운 시련을 이겨낸 사람에게는 누구나가 모자를 멋고 인사를 드리게 됩니다.

                지구상에서 한국 민족처럼 괴로움을 당한 민족이 없어 나는 존경하는 마음으로 인사하고 싶습니다 "

 

                그는 그의 작품 <25시>에서 " 빛은 동방에서 온다 "고 말하며 그 동방이 바로 한국이라고 말했습니다.

                그것은 한국인이 무척 괴로운 시련을 겪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정말 그가 말한 대로 괴로운 시련을 겪은 민족임에는 틀림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고난 속에서 그가 말하고 있는 어떤 빛을 찾았는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고난은 당한 것만으로는 값진 것도 아니며 그 고난의 의미를 깨달을 때

                그래서 어떤 빛이 나올 그 고난은 더욱 값진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세계사에서 이스라엘 만큼이나 수난을 많이 겪은 나라가 또 있을까요?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를 보면 강대한 나라들 틈바구니에 끼어 끊임없이 침략을 받고

                이리저리 쫒기는 고난의 역사였습니다.

 

                이러한 고난을 보며 예언자들은 한결같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내산에서 맺은 하나님과의 계약을

                성실하게 지키지 않았기 때문에 오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고난의 일차적인 의미를 죄에 대한 형벌로 이해 하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언자들은 끊임없이 그 민족에게 회개를 촉구하였습니다.

 

                유대인들은 지금도 매일 통곡의 벽앞에 나가 죄를 고백하고

                그들의 성전이 복구되어 경배하는 날이 오기만을 기도하고 있습니다.

 

                통곡의 벽앞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날은 티사 밥(Tishe B`ab)으로 그들이 우는 날로 가장 슬픈 날입니다.

                그 모습이 어찌나 애처로운지 가던 사람도 돌아설 지경입니다.

 

                만약에 인과응보(因果應報)사상이 죄를 지은 사람에게는 응당한 고난이 온다는 것이 맞다면

                고난은 하나의 형벌로 이해 되어져야 할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민족이 당하고 있는 고난도 어쩌면 우리가 저지른 죄에 대한 하늘의 경고는 아닐까요?

                정권욕에 사로 잡혀 국민들을 돌보지 아니한 정치가들의 죄와 이 시대에 의미를 부여하지 못하고

                역사를 해석하여 비젼을 제시하지 못한 창백한 지성인들의 무기력함에 대한 진노인 줄도 모릅니다.

 

                이 민족앞에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선포하지 아니하고

                분열만을 거듭해 온 교회의 잘못에 대한 대가(代價)인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이제까지 자기가 잘못했다고 시인하는 정치가들을 보지 못했으며

                모든 일의 책임을 통감하고 물러나는 지도자들을 보지 못했습니다.

                결국 우리의 양심이 둔화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고난의 일차적인 의미가 죄에 대한 댓가라면

                왜 죄 없는 사람들까지 애매하게 고난을 당해야만 하는가 라는 의문이 생깁니다.

 

                이런 의문은 옛날에만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세계 역사 속에서 끊임없이 반복되어져 온 사실입니다.

 

                히틀러의 나치 정권 밑에서 아무 죄없이 학살당하고 수 많은 유대인들이 부르짖었으며

                미국의 흑인 노예들이 채찍 밑에서 신음하며 울부 짖어 왔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유신시대와 군사정권 밑에서 무고한 사람들이 박해를 받고 자유를 부르짖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이산가족 상봉을 지켜 보면서 느낀 것은 고난 당한 것은 애매한 민중들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어린 학생들은 또 무슨 죄가 있어서 사랑하는 부모님께 마지막 작별인사도 못드린 체

                지옥같은 그 세월호에서 구슬픈 눈물 하염없이 흘리면서 꽃잎처럼 떨어져야만 했을까요?

 

                여기에는 분명히 고난보다는 더 깊은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보다 더 깊은 고난의 의미가 무엇일까를 찾으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러다가 알게 된 것이 모든 육체와 정신이 무너져 버린 곳에서 진정 영혼이 빛을 발한다는 사실을

                깨달아 알게 된 것입니다.

 

                위대한 영혼은 고난을 통해서 빛나는 법입니다.

                고통이 결여된 인생은 천박하고 그 예술은 사람의 심금을 울리는 깊이와 영감을 가질 수 없습니다.

                이것은 개인이나 한 민족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일찌기 인도의 시성 타골도 한국을 가리켜 " 아시아의 황금 시대에 빛나던 등불 "로 보고

                그 등불이 다시 한번 켜지는 날 동방의 밝은 빛이 될 것이라고 소개한 바 있습니다.

 

                중국의 석학 임어당(林語은 한국에 왔을 때 거문고 소리를 들어보며

              " 우는 소리와 절규하는 소리가 같이 난다 "면서

                감각으로는 우는 소리가 들리고 영감으로는 절규하는 소리로 들린다"고 하였습니다.

 

                오랜 고통의 누적에서 우러나는 절규이며

                그것은 앞으로 국제시대에 소중하게 평가될 한국의 희망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이 약소민족인 우리가 겪고 있는 고난은 결코 우리만의 고난일 수가 없습니다.

                우리 민족의 통곡은 전 세계가 당해야 하는 아픔을 대신하고 있는 고난임이 틀림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 고난을 통해서 일어선 우리 민족의 빛이 온 세계를 비추는 희망의 빛이 될 수있습니다.

 

                우리는 폭력으로 이루어진 사회를 정당한 것이라고 받아 들여서는 안됩니다.

                아무리 그럴 듯한 명분이 있다 하더라도 우리 안의 어떠한 폭력이나

                대륙간 탄도 미사일 사드 도입같은 무기는 단호하게 막아야 할 것입니다.

 

                미국이 무기를 개발하는 명분은 세계 평화를 위한다고 하지만 그들이 내다 파는 무기가

                오늘날 세계 도처에서 전쟁을 야기시키고 있다는 사실을 볼 때 평화를 위한 무기란 논리적으로나 가능하지

                실제적으로는 인명을 살상하는 무서운 무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악을 막는다는 명분으로 또 다른 폭력을 사용한다는 것은 우리는 결코 용납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봄이 오는 길목에서 꽃샘추위가 우리에게 들려주는 소식은

                꽁꽁 얼어붙게 하던 겨울은 이제 가고 만물을 소생하게 하는 봄이 왔다는 기쁜 소식입니다.

 

                앙상한 나뭇가지가 영광스러운 부활 승리를 위해 꽃샘추위를 이겨내고

                美 대사의 피습사건으로 인하여 한미동맹이 더욱 더 강화된 것처럼

                우리가 겪고 있는 이 고난을 헛되게 하지 말고 거기서 참된 의미를 찾아내며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가슴이 따스한 사람 해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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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조 미디어 다음 >

            리퍼트 美 대사 피습 사건을 보며

 

 

 

 

 

                      오늘 아침에 종문화회관에서 열린 행사 도중

                      리퍼트 美 대사를 향한 피습 사건이 있었다는 TV뉴스 속보를 접하면서

                      한 국민으로서 이유야 어찌됐든 심히 가슴 아프고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그러나 한 개인의 돌출적인 행동을 놓고서 정확한 범행동기나 목적도 모르면서

                      테러조직이니 종북이니 운운하면서 너무 지나치게 오버하는

                      우리의 정치인들과 보수 언론들 그리고 보수 논객들은

                      이 사건을 더 이상 확대해석하여 정치적으로 이용삼지 않았으면 한다.

 

                      특히나 언론들은 확인되지도 않은 내용들을 어떠한 추측이나 신상털기로

                      무책임하게 시청자들을 자극시키지 말라.

 

                      우리의 허술한 경호 문제나 안전대책, 이성문제,

                      더 나아가 우리의 분단된 남북 대치 상황들을 탓해야지

                      누구말을 믿는 것인지 그렇게 뉴스를 무책임하게 마구 흘려 보내는 것이 아니다.

                      ( 채널A, TV조선, YTN 아침 9시뉴스를 시청하면서...)

 

                      미국은 여전히 우리의 가장 가까운 우방국이기도 하지만

                      피의자 입장에서 볼 때 다분히 불만섞인 애국일 수도 있고.

 

                      우리 역시도 생각하기는 피의자를 바라볼 때 짐승처럼 여기면서 

                      그를 땅바닥에 눕힌 채로 구두발로 그의 목을 제압하는 모습은

                      누가 보아도 우리 국민의 얼굴에 또 한번 상처를 남기는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그의 피해가 경미하여

                      강북 삼성병원에서 신촌 세브란스병원으로 옮긴 것은

                      다른 사정보다는 단순하게 신촌 세브란스 병원이 미국 선교사가 설립한 병원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면서도 우리 정부나 언론들이나 주한 미군들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이번 美 대사의 피습 사건으로 인하여 한미 양국이 크게 놀라고 더욱 협력하는 것 만큼이나

 

                      우리 국민이 주한 미군을 포함한 어느 누군가에 의해 범죄를 당할 때도

                      그 만큼 빠르고도 심각하게 벌떼같이 나서서 해결해 주기를 바란다.

 

 

 

 

                      가슴이 따스한 사람 해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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