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는 많은 것에는

기쁨과 즐거움도 있지만

가장 깊고 확실한 행복은 역시 평안입니다.

 

평안은 오직 한 길,

곧 행복으로 돌아가는 삼각지에서 사랑과 신뢰가 만날 때에 나옵니다.

우리의 영혼 가장 깊은 곳으로의 평안...

 

우리가 일상을 탈출하여 휴식을 만끽하는 시간은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가 없습니다.

 

누가 어머니의 사랑을 돈으로 다 살 수 있을까요.

아기는 어머니와 함께 있을 때에 가장 행복하고

안도감을 느끼면서 비로소 잠이 듭니다.

 

지난 주간에 나는 답답하고 생각도 정리할 겸 해서 어느 바닷가를 다녀왔습니다.

짐도 없이 가볍게 옷 한 벌 걸치고서 인천행 버스에 올랐습니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두 시간을 가야만 했습니다.

가는 길에 운전하시는 기사가 너무도 고맙고 수고롭고 해서 껌 하나를 건네자

기사님은 껄껄껄하시면서 웃으셨지요.

 

나는 잠시 무언가에 홀린 듯이 창밖만 바라보았고

버스는 어느새 중간 지점에 도착했습니다.

 

마침 한 중년 남자가 버스에 올랐는데 그는 차에 오르자마자 기사에게 무언가를 건네받고서는

머리를 숙여 고맙다며 인사를 하고 차에서 내렸습니다.

 

무엇이 고맙다는 말일까 하고 지켜보니

기사님은 잠시 횡단보도 앞에 차를 세워놓고서는 그 남자에게 말했습니다.

 

"혹시 지갑에 빠진 것은 없는지, " 다시 한번 확인을 시켜주고는

고맙다고, 아무 이상이 없다고, 연신 머리를 조아리는 그 남자의 모습에서

 

나는 순간 무엇에 머리를 강하게 맞은 냥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그리고 내 가슴속에서 환하게 웃음꽃이 피어났습니다.

 

조금 더 지나가서 환승을 하고 그만 나는 잠이 들고 말았습니다.

얼마후에 요란한 발소리에 놀라 깨어보니

 

이번에는 한 중년 여성이 딸과 함께 무언가를 찾지 못해

차에서 내리지를 못하고 있었습니다.

 

시간은 자꾸 가고 손님은 말이 없는데 그녀는 더욱 안절부절못하고 있을 때에

기사님은 괜찮다는 말로 그녀를 안심시켜주며 기다려 주었습니다.

 

내 가슴속에서도 몇 번씩이나 그녀를 도와주고 싶었지만 나는 그렇지도 못했습니다.

"그럴 수도 있지... 아마 착각일 거야" 하면서 애써 마음을 감추고 있을 때에

 

마침내 그녀는 가방속에서 잃어버렸던 교통카드를 찾아내었고

환한 얼굴을 보여주며 기사에게 연신 미안한 인사를 하고

차에서 내리면서 다시 또 한 번 바라보며 황급히 걸어가는 그녀를 보면서

 

미안했다고... 고마웠다고... 운전기사님은 참 좋은 분이시라고...

내 가슴에서 하는 말이 왜 그리도 짠한지 저도 모르게 눈가에서는 눈물이 샘물처럼 고였습니다.

 

누군가는 내게 그렇게 말할지도 모릅니다.

별 것도 아닌 일들을 가지고 웬 호들갑을 떠느냐고...

 

그러나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우리는 사회를 얼마나 알고 있고

서민들의 마음은 또 얼마나 이해를 하고 있을까요

 

어떤 사람들은 어느 언론인처럼 TV를 차지하고 아무런 말을 잘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사랑이 없다면 그 하는 말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어떤 사람들은 정치인들처럼 지식이 풍부합니다.

그러나 그에게서 사랑이 없다면 그 지식과 명예가 다 무엇입니까

 

어떤 사람들은 자선가들처럼 기부를 잘합니다.

그러나 그에게서 사랑이 없다면 그것은 체면상 마지못해 하는 과시일 뿐이고

그에게서 애통하는 마음이 없다면 한 마리의 나비조차도 살릴 수가 없습니다.

 

사랑이란 무엇일까요

모두가 자기만을 위한 세상에서 누군가는 관심과 존중과 이해로 더불어 사는 것이 아닐까요

욕망이 하늘에서 방황하는 별이라면 사랑은 이 땅에서 빛나는 태양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고백하지 못하면 병이 나는 것처럼

언론이 눈을 감고 시인이 아파하는 소리에 귀를 닫는다면 그 사회는 무관심으로 병이 들고 말 것입니다.

 

버스는 마치 무거운 짐을 하나 내려놓은 듯이 신나게 달렸습니다.

길 가에 놓여 있는 가로수, 들판에 핀 꽃들 모두가 나를 보며 열렬하게 환영해 주었습니다.

 

그제야 기사님도 한 고비를 넘긴 듯이 차를 세워두고서 잠시 차에서 내려서며

담배 한 개비를 조금 피우시고는 다시 차를 몰고 다음 목적지를 향해 쏜살같이 달렸습니다.

 

버스가 천천히 인천 국제공항으로 들어설 때는 마치 내가 귀빈이 된냥 어깨가 으쓱해지고

사람들이 모두 다 차에 올랐을 때는 혹시 누가 올세라 잽싸게 빠져나왔습니다.

 

 

쭉쭉 뻗은 도로 하며 바다를 달릴 때에는 내 마음도 놀라서 잠시도 눈을 떼지 못했습니다.

 

 

드디어 내가 탄 버스가 마을로 들어섰다는 소식에

햇살은 벌써부터 마중 나와서 내 옷을 벗기 우고

바다는 나를 위해서 은빛 찬란한 양탄자를 펼쳐놓고 어서 오라고...

어서 와서 편히 쉬었다 가시라고 ,,,

 

 

이번 여행에서 만났었던 기사님...

비록 그때는 바쁜 핑계로 인사 한번 제대로 못 드렸지만

다음번에는 제가 먼저 알아보고 조그만 음료수 하나 사들고 인사를 드릴게요.

 

 

가슴이 따스한 사람 해피

 

 

갈매기도 내가 누구인지를 잘 아나 봐요^^

 

세상에는 갈 곳이 많다지만 나는 바다를 보면 즐겁고 바다에 누우면 참 평온하다.

 

신혼 시절에 아빠와 아이들은 비를 맞으면서 게를 잡고 밀물이 들어올 때 휴게소에서 맛있게 컵라면을 먹었지요^^

 

 

 

 

 

 

 

 

 

 

 

 

 

저 기사님! 껌 못 드시죠... 아니요 저도 좋아해요... 하하하

 

 

 

 

 

 

 

 

 

 

 

 

 

 

 

 

 

 이미지에 나타난 이니셜은 이번 글과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내 영혼의 시계가 울릴 때에

                                  이 글을 오늘도 일터에서 수고하시는 모든 이들에게 바칩니다.

 

 

 

 

 

 

            

             정확하지 못한 시계는 아무 가치가 없습니다.

 

             그 시계가 아무리 아름답고 금이나 보석으로 반짝반짝 빛난다 할 지라도 시간이 맞지 않는다면

             그 시계는 시계로서 아무런 쓸모가 없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사람도 얼마나 가치 있느냐 하는 것은 그의 외모나 돈, 권력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의 성품에 달려 있습니다.

 

             그는 과연 진실합니까? 그는 언행이 일치합니까?

 

             만일에 그렇다고 한다면 그는 시간을 정확히 알려주는 우리의 희망과도 같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희망이 너무 그에게만 의존하고 아무런 일도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더 큰 것을 잃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우리 집 서재에는 지금도 조그만 시계 하나가 놓여져 있습니다.

             아무나 들을 수도 없고 볼 수도 없는 오직 저만이 갖고있는 몇 개의 시계입니다.

 

             비록 세월은 흘러 시계는 낡고 많이 변했지만 그 시계는 하루에 한 번씩 정확하게

             지금도 나를 깨워줍니다.

 

             1990년 초 어느 봄날에 나는 정든 부모님을 떠나서 사랑하는 아내와 자식들 둘을 이끌고

             내가 사역하고 있는 쌍문동으로 이사를 했습니다.

 

             내가 오랜 연단을 끝마치고 꿈꾸던 일을 하기 위해 어느 신문에 난 광고를 보는 순간

             이력서를 꾸미고 들어간 지 단 일 주일 만이었습니다.

 

             나는 교회의 전임자가 되어서 오늘은 교인들을 양육하고 내일은 시내로 나가

             밤 늦도록 교회의 행정일을 돌보아야만 했습니다.

 

             웬만한 사람들도 보기 힘들다는 그 휴대폰을 나는 오른쪽 옆구리에 차고 왼쪽에는 삐삐를 차며

             혹시나 저 사람은 누구일까 하는 오해도 참 많이 받았습니다.

 

             아무리 낯설고 처음보는 사람들도 당당하게 만날 수가 있었습니다.

             그 날도 예전처럼 시내로 나가 교회 행사 준비를 하며 기념품을 사다가 교인들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것은 비록 작고 보잘 것없었지만 너무도 사랑스러운 시계였습니다.

             그런데 뒤 늦게 안 사실이지만 그 중에서는 다른 시계도 함께 섞여 있었습니다.

 

             한 개만이 아니라 여기 저기서 "이 시계가 무엇이냐"는 교인들의 항의가 빗발쳤습니다.

             그것이 몇 개였고 누가 받았는지를 다시 확인한다는 것은 교회로서는 너무 무책임한 처사였습니다.

 

             나는 꼼짝없이 교회 행사를 망친 주범이 되고 만 것입니다.

             그리하여 나는 할 수없이 다시 시내로 나가 그 기념품가게를 찾아 사장님에게 물었더니

             그 분은 다행히도 내게 용서부터 구했습니다.

 

             그 시계는 나 보다 더 한참 뒤에 누군가가 의뢰한 시계인데 때마침 그 날따라  주문량이 많아져서

             혼동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내게 몇번이고 용서를 구하면서 마음까지 보태서 그 기념시계를 200개나 더 주셨습니다.

 

             그 순간 나는 고마움보다는 먼저 미안함과 부끄러움에 그만 얼굴이 화끈거려졌습니다.

             내게도 좀더 확인하지 못한 잘못들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분도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일터로 나와 한 개의 물건이라도 더 팔기 위해

             밤이 맞도록 고생하시는 것을 생각하면 나는 그 분의 정직함에 그만 고개가 숙여졌습니다.

 

             덕분에 내가 좀더 많은 시계를 챙겼지만 무엇보다도 확실히 챙긴 것은 그 분에 대한 높은 신뢰였습니다.

             그것이 인연이 되어 지금도 나는 교회 행사가 있을 때면 종종 그 분과도 의논을 한답니다.

 

             교회가 예산이 없으면 좀 어떻습니까?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하면 되고 서로가 믿고 이해를 해 주면서

             그 분은 차라리 내게는 엘리야를 도와준 까마귀떼와도 같은 존재였습니다.

 

             아무리 급하고 어려운 일들도, 책을 만들 때에도, 다이어리를 만들 때에도, 앨범을 제작할 때도

             무슨 상패나 기념품이 필요할 때도 내게는 모든 것이 그 자리에서 해결되었습니다.

 

             혹시라도 내가 그곳 주위를 서성이고 있을 때면 그 분이 먼저 나를 알아보시고는

           " 식사는 하셨냐고... 오늘은 또 무슨 일이 없으냐고..."

 

             이러한 관계에서는 어느 목회자가 그 사업장을 애용하지 않겠으며 기도를 하지 않겠습니까?

             경조사에도 빠짐없이 등장하고 남들에게도 소개를 해 주지 않겠습니까?

 

 

 

             누군가는 내게 이렇게 말할는지도 모릅니다.

             목회자가 설교만 잘하면 되지 무슨 그런 일까지 다 하느냐고...

 

             그러나 내 생각은 조금 다릅니다. 교회 일처럼 중요하고 예산을 쓰는 것은 투명해야 합니다.

             국가 일도 사업이 막중하고 국민들의 세금이 투입된 것은 더욱 더 투명해야 합니다.

 

             지금도 거리에서는 우리가 알든지 모르든지 아니꼽고 더러워도 일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환경 미화원에서 부터 가정 돌보미까지 직업도 다양합니다.

 

             그렇다고 그들이 모은 돈이 보잘 것 없다고 결코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어쩌면 그들의 돈은 자리에 앉아 편하게 돈을 모으는 그들보다도 목숨같을 지 모릅니다.

 

             농부가 부지런히 나가 농사를 지어도 하늘에서 비를 내려주지 않는다면

             그 농부의 수고는 모두가 허사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모든 소유가 다른 곳에서 보내준 선물임을 생각할 때 그것을 절제없이

             아무렇게나 써 버려서는 안될 것입니다.

 

             오늘도 많은 교회들이 건축이나 전도에는 정열을 쏟는 반면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고민하고

             실행하는 교회는 별로 없습니다.

             예수가 세상을 떠나기 전 마지막 남긴 " 내 양을 먹이라 "는 말씀처럼 실천하는 교회는 많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양들은 지금도 죽어가고 있는데 어떤 목회자들은 고급 호텔이나 고급 음식점에 모여서

             모임을 갖습니다.

 

             여기에 하나님이 기뻐 하실리가 없습니다.

             사람을 기쁘게 해야 할까요? 하나님을 기쁘게 해야 할까요?

 

             국가도 마찬가지입니다.

             매번 정권이 바뀔 때마다 느끼는 것은 정치인들이 나랏 예산을 너무 무분별하게 써 버리는 것입니다.

 

             국민들도 정부가 예산이 부족해도 큰 행사를 치루지 아니하면 무능하다고 말을 합니다.

             현재 우리 나라의 외환 보유액은 3,629억 달러로 세계 7위 수준입니다.

 

             그것도 대부분이 유동성이 심한 유가 증권이거나 해외로 갚아야 할 빚입니다.

             청년들의 취업난은 최악이고 국민들의 생활도 어렵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도 우리 국가 원수는 세계의 정상들과 만찬을 열지 못해 안달이고

             기업들은 기업들 나름대로 로비를 하지 못해 불만입니다.

 

             누가 외교을 하지 말라고 했습니까?

             그러나 자신만을 위한 외교, 내용이 빠져버린 외교는 결국 소비밖에는 남지 않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종종 우리가 아무리 계획과 전략을 세운다 하더라도 전혀 예기치 못한 사건이나

             약점으로 인해서 불행을 당할 때도 있습니다.

 

             지금이 어떤 세상입니까?

             정치인들이 선거에서 법정비용만을 가지고 당선되었다고 해도 그것을 믿는 국민은 아무도 없습니다.

 

             어떤 배의 선체가 아주 훌륭하고 잘 갖추어져 있어도 배를 조종하는 선장이 부주의 한다면

             그 배는 좌초되고 말 것입니다.

 

             만일 나라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이 뇌물을 받고 청탁을 들어 주고만다면

             그 나라는 부정으로 병들고 말 것입니다.

 

             만일 모든 사람이 이기적인 행사를 삼가하며 일용할 양식으로 만족할 줄 안다면

             오늘날의 빈부격차는 상당히 해소될 것입니다.

 

             한편 우리의 부모들은 인생의 풍파들을 많이 겪었던 세대입니다.

             우리의 아버지들은 우리에게 필요한 등록금을 위해서 몇 번씩이나 양심앞에서 울었는 지 모릅니다.

 

             우리의 어머니들은 우리에게 필요한 먹을 것을 위해서 여러 차례 거짓말을 했을 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 때의 옳지 못했던 자신의 부끄러움을 생각하며 오늘도 괴로워하고 있을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누가 우리의 부모에게 불의한 사람이라고 손가락질을 하겠습니까?

             그럴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우리들은 부모에게 더 감사를 해야 합니다.

 

             우리가 노력하고 떳떳하게 모은 그것으로 우리 부모를 공경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그 분들이 모든 죄책감에서 벗어나 남은 여생을 편히 사실 수 있도록 도와 드려야 합니다.

 

             불의하게 모은 재산이나 권력은 반드시 무너지게 되어있습니다.

             정직하게 살기 위해서는 반드시 댓가를 치러야만 합니다.

 

             오늘도 우리 영혼의 시계는 쉬지 않고 우리에게 묻고 있습니다.

           " 당신은 얼마나 정직하게 살아왔습니까? "

 

 

 

 

             가슴이 따스한 사람 해피

 

 

 

 

 

 

              한강에서 바라본 아름다운 세상

 

 

 

 

                       며칠 전에는 서울 근교의 한강 길을 한참이나 걸었습니다.

                       강 가와 들판에는 온통 초목들이 하얗게 덮혀 있었고

                       먹이를 찾는 물새들은 물 위에서 유영하며 한가롭게 노닐고 있었습니다.

                       참 아름다운 풍경이었습니다.

 

                       조금 더 길을 걸어 가다가 한 젊은이를 만났습니다.

                       그 젊은이는 어깨에 배낭을 둘렀었고 그는 내게로 와 길을 물었습니다.

 

                       그 젊은이는 답답한 도심보다는 속이 뻥하고 뚫릴 것같은 한강이 좋다고 했습니다.

                       내게 지도를 꺼내 보이며 자신이 가야할 방향을 확인하고서 황급히 돌아서는 그의 모습에서

                       나는 그 젊은이가 매우 아름다워 보였습니다.

 

                       마침 어디에서 날아왔는지 참새 떼가 내 앞으로 와서는 공중제비를 펼치고

                       갈대 숲에 모여서 재잘 거리며 나를 즐겁게 해 주었습니다.

 

 

                       그 순간 나는 우리가 꿈꾸고 있는 나라를 한번 생각해 보았습니다.

                       과연 우리가 상상하는 나라는 어떤 나라일까...

 

                       분명히 이 보다는 아름답고 춥지도 않을 것입니다.

                       아름다운 세상을 생각할 때마다 다시 한번 우리 사회를 돌아 봅니다.

 

                       요즘 언론을 보면 매일 같이 사람을 죽이고 비난하고

                       성폭행을 했다는 기사들로 가득합니다.

 

                       거기에다가 남북간의 대치로 인한 소모적인 종북 논란은

                       우리들의 이성을 마비시켰고 급기야는 한 정당까지도 가차없이 해산시키고 말았습니다.

 

                       이 얼마나 한심스러운 일입니까?

                       통진당의 사태는 어쩌면 우리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정치적인 일인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어쩌면 먹고사는 문제가 더 중요하지

                       노동자들이 살겠다고 아우성치는 소리에는 별 관심이 없는지도 모릅니다.

 

                       차라리 이번 기회에 통진당같은 세력들이

                       우리 사회에서 영원히 사라졌으면 하고 생각했는지도 모릅니다.

                       무서운 이기주의, 냉혹한 사회가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 사회가 언제부터 이렇게 무서운 사회가 되었는지...

                       생각하면 할수록 온 몸이 소름으로 두렵기까지 합니다.

 

                       요즈음 사람들이 자신의 신념을 관철하기 위해 분신이나 자살을 하는 것을 보면

                       우리는 사상과 이념의 포로가 된다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를 알게 됩니다.

 

                       권력을 잡은 사람들의 얼굴이 포악한 괴물로 보이고 북한 사람의 얼굴이 마귀같이 보이는데

                       어떻게 그 사회가 발전할 수 있으며 어떻게 그 나라가 통일이 될 수 있을까요?

 

                       어쩌면 그것은 순전히 그 내부적인 사태

                       외부적인 작용에 의해서 붕괴될 날만을 기다리고 있는 우리의 무관심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저들은 전부 나쁘고 우리만 옳다고 확신하고 있는 우리 사회를 향하여

                       어느 한 양심가가 네 생각이 틀렸으며

                       저들도 우리와 같은 한 가족이요 우리의 이웃이라고 말한다면

 

 

                       과연 우리는 과연 얼마나 순복(順服)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지금 가인의 후예처럼 자꾸만 멸망의 길을 향해 달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끝까지 실망하지 않는 것은

                       그 젊은이와 같이 자신의 자리에서 묵묵히 최선을 다하며

                       정의롭고 아름다운 사람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우리 사회에서 그들만이라도 많이 나타나서 힘을 보태 준다면

                       우리 사회는 한층 더 밝아지고 아름다운 세상이 될 것입니다.

 

 

 

                       가슴이 따스한 사람 해피

 

 

 

 

 

 

       

                                                                       어느 겨울날 대성리 모처에서 제자들과 즐거운 M.T

 

                    복음과 현실 사이에서

 

 

 

           지난 겨울날, 연말은 다가오고 날씨도 춥던 한 밤중에 어느 신사가 찾아왔습니다.

 

         시간은 어느덧 자정이 다 되었는데 그는 고급 양복을 차려입고

         술에 몹시 취한 듯 비틀 비틀 거리면서 교회안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는 마침 아무도 없는 교회 강단아래에서 엎드려 있는 나를 보고는 연신 헛기침을 하면서

         어서 속히 나의 기도가 끝나기만을 바라는 눈치였습니다.

 

         하는 수없이 기도를 잠시 중단하고 신사에게로 다가가 난로를 틀어주며 "어떻게 오셨지요?"하고 묻자

         그 신사는 내게 자신의 신분증을 보여주며 집에 갈 여비가 없다면서 이만원만 빌려달라고

         사정했습니다.

 

         예전에도 한 취객이 찾아와 자신의 아내를 찾는다며 한바탕 소란을 떨어놓고 그의 못난 부분까지도 다 드러내며

         모든 것을 토로하기에 나는 그저 묵묵히 그의 얘기를 들어주며 겨우 달래서 보내드렸던 적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도 또 다른 취객을 만나고 보니 결국은 서재안으로 들어가 돈을 들고 나왔습니다.

         그리고 하얀 봉투 앞면에는 "하시는 일 위에 평안과 축복이" 하면서 진심으로 그의 앞길을 축복해 주었습니다.

 

         비록 내게는 스쳐 지나가는 한 나그네일지라도 조금은 그의 건강과 가정이 염려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몇 일이 지나자 그 신사는 또 다시 나를 찾아와 넉살좋게도 돈을 빌려 달라고 통사정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한 번도 아니고 두 번 세 번 그의 이런 행동은 연말까지 계속되었습니다.

         얼마나 이유도 잘 갖다 부치는지 "이번이 마지막 입니다"하면서도 돌아서고 나면 그 때뿐이었습니다.

 

         새해가 되어 외출을 하고 밤에 돌아와 보니 나의 기도하는 강단위에는 한 통의 하얀 봉투속에

         갓 나온 70여만원이 들어 있었고 내 마음을 울려주는 몇 자의 인사말도 담겨 있었습니다.

 

        "목사님! 교회들도 많이 있는 것 같은데 모두가 열쇠로 단단히 잠겨져 있고

         목사님처럼 고민을 얘기할만한 사람도 없더군요, 진심으로 고마웠습니다." 라는 감사의 편지였습니다.

 

         그 동안 내가 밤마다 잠을 자지 못하고 십자가만을 바라보며 나라와 민족을 생각하면 한숨뿐이고

         아름다운 세상과 나의 월세를 위해서 졸음과 싸우면서 내 속은 새까맣게 타들어가는 순간이었습니다.

 

         세월은 벌써 10여년도 지났지만 그 신사의 얼굴, 표정들은 지금도 내 기억속에 분명히 남아있습니다.

 

         우리의 태도에는 마땅한 부드러움이 있어야 합니다.

         진정으로 친절한 행동은 기쁨과 감동을 불러 일으킵니다.

 

         어떤 사람이 구걸하는 사람에게 동전 한 닢을 던져주며 온갖 생색을 다 낸다면

         그 사람을 구원하기 보다는 그에게 상처를 입히는 행동입니다.

 

         어떤 선물이든지 사랑으로 가득찬 마음으로 베풀지 않는것은 그 선물은 그 가치를 발휘하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는 아무 생각없이 무관심하게 지나치지만 세상에는 비참한 상황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만일에 부모나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무심코 주는 용돈이나 세뱃돈도 정성껏 봉투에 담아

         가장 예쁘고 부드러운 말로 사랑하는 ○○에게 하면서 진심으로 그의 꿈과 소망에 대해 축복을 담아준다면

         그 돈이 그렇게 아무 의미없이 헛되게 쓰여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만일에 어떤 사람이 병적으로 민감하다고 할 때 비록 그것이 그 사람에게만 국한된 문제일지라도

         그들이 필요없는 고통을 더 당하지 않도록 우리는 좀더 신경을 써야 할 것입니다.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속에 포함된 모든 진리를 전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복음의 일부분만을 말하기 쉽습니다.

 

         만일에 어떤 사람이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사실만을 강조한다면 그는 복음의 전부를 전한다고

         얘기할 수가 없습니다. 단 하나의 진리라도 빠트린다면 복음을 전파한다고 말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어떤 교파들은 의도적으로 몇몇 교리들을 정해놓고 자신들의 신앙원칙으로 삼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들은 감히 이 원칙을 넘어서는 사람은 정통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어떤 정치인들의 논리처럼 두 견해 사이에서 왔다 갔다하며 자신들의 필요에 따라 말을 바꾸고

         누구와도 손을 잡고 자신에게 필요가 없을 때면 가차없이 이단이니 종북이니 하는 사람들을

         나는 단호히 거부합니다.

 

         과연 그들이 정통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자신들의 잘못이 드러나고 세력을 더욱 강화하기 위해서라면 어느 정치인들의 불의처럼

         쪽지 한장만으로도 여 야의 싸움으로 몰고가 본질을 흐려놓고 마는 그들과 무엇이 다르다고 하겠습니까?

 

         복음을 전파하는 것은 모든 부류의 사람들을 공평하게 취급하는 것입니다.

         교인들에게만 설교한다든지 죄인들에게만 설교한다든지 하는 것은 복음의 전체를 설교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접촉하는 대상은 아주 넓고 다양합니다. 우리는 능력과 확신이 넘치는 사람을 상대할 수도 있습니다.

         또 믿음이 여리고 약한 교인이나 이제 막 회심한 사람을 상대할 수도 있습니다.

 

         또 두 견해 사이에서 갈등하는 사람이나 도덕적인 사람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타락한 자나 버림받은 자가 있을 수도 있고 이 모두에게 복음을 전해야만 할 것입니다.

 

         우리가 필요로 하는 사역자는 어떤 능력이 많거나 말을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복음을 전하는 사람입니다.

         또 우리가 필요로 하는 교회들은 교인들이 많거나 유명한 교회들이 아니라 복음대로 믿는 사람입니다.

 

         사역자나 교회들이 하는 일이 무엇입니까? 이들은 복음을 위하여 세워졌습니다.

         그것은 공식적인 사역뿐만이 아니라 모든 크리스챤들에게 해당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각자에게 주어진 책임은 본질적으로 다른 것이 아니라 정도에서 차이가 날 뿐입니다.

         모든 믿는 사람은 그 분을 위해서 일하도록 서로 연결되어 있고 모든 것은 그 분께서 책임져 주실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마음을 열고 복음을 전하지 않고서는 크리스챤이라고 부를 자격이 없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크리스챤들은 생명의 말씀을 들었음으로 그것들을 전해야만 합니다.

 

                "너희가 거져 받았으니 너희도 거져 주어라"

 

 

         가슴이 따스한 사람 해피

 

 

 

 

                        <사진은 글과는 아무 관계없습니다.>              * 그림 자료는 iPC119님  http://blog.daum.net/ipc119

 

 

 

 

                어느 지하철 역 계단에서

 

 

 

 

                아침 햇살이 눈부시게 빛나는 아침, 서울의 어느 지하철 역 계단에서

                사람들은 약속시간을 많이 놓친 듯 계단 밑을 부리나케 내려가고 있었다.

 

                그 계단 위를 한 소년이 귀에는 이어폰을 꽂고 양손에는 스마트 폰을 들고서

                열심히 들여다 보며 올라가고 있었다.

 

                그 소년이 계단을 거의 다 올라왔을 무렵,

                한 어른이 맞은 편에서 손목을 자꾸만 쳐다 보며 계단을 내려오고 있었다.

 

                그리고 무심하게 그 소년곁을 지나치다가 그만 그 소년의 팔꿈치를 밀치게 되어

                그 손에 있던 스마트 폰이 땅바닥에 떨어지고 말았다.

 

                그 순간 소년의 얼굴은 붉어졌고 그의 눈은 무섭게 어른을 쏘아보고 있었다.

                그는 이어폰을 땅바닥에 내 던지며 자신의 팔꿈치를 밀친 어른에게 항의라도 하려는 듯

                몹시도 흥분되어 있었다.

 

                그러나 본의 아니게 손해를 입히고 만 그 어른은 온유한 표정으로 소년에게 다가와서는

               "정말 미안해, 내가 다 고쳐 줄께...

                그리고 너도 알겠지만 내가 일부러 그런 것이 아니란다."

 

                그러자 몹시 화가 나 있던 소년의 얼굴에서 그 분노가 사라졌다.

                곧 부드러운 말 한마디가 화해할 수 없었던 두 사람이 화해하고 분노가 사라졌던 것이다.

 

                그리고 소년도 말을 했다.

               "아니예요 아저씨, 저도 아저씨를 미처 보지 못한 걸요..."

 

                그리하여 그 두 사람은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차분하게 떨어진 물건들을 주우며

                가벼운 마음으로 서로의 가던 길을 걸어 갔다.

 

                세상의 모든 싸움도 이와 같다.

                크고 작은 많은 싸움과 다툼들은 시기적절한 이해와 해명으로 얼마든지 피할 수 있고

                우리는 모두가 얼마든지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 갈 수 있는 것이다.

 

 

 

                가슴이 따스한 사람 해피

 

 

 

            From 포장지기님

         가슴이 따스한 사람 해피의 블로그 릴레이 20 20 

 

 

 

며칠 전 나는 포장지기님으로 부터 긴급하다는 댓글을 받고 그 곳으로 달려간 순간 한참이나 고민을 해야 했다.

내 자신은 그렇게 바통을 이어 받을 만큼 아름다운 삶을 살아오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것이 무슨 이유로 시작 되었고 어디로 가고 있는지 나는 그 결과가 몹시도 궁금해졌다.

그리고 뒤늦은 시간이지만 용기를 갖고 질의에 승락하기로 했다.

 

리고 많고 많은 블로그 중에 우선 나를 지명해 준 이 시대의 애처가, 가정 지킴이 포장지기님과

내가 마지막까지 결단하는 일에 용기를 갖게 해 준 여러 블친들께 진심으로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싶다.

 

아울러 이 자리를 빌어 무례인 줄은 알지만 평소 내가 지켜보고 포용력과 관용이 있으면서

따스한 인격도 갖추신 꼬장닷컴님 해울님 스텔라님께 나의 작은 관심이라 여기며 바통을 받아 주셨으면 좋겠다.

 

 

어려운 정치나 복잡한 연예들도 속 시원히 꼬집어 주시는 꼬장닷컴님 http://blog.daum.net/soojin0012/

호수가에 뜨는 달처럼 세상을 아름답게 비쳐 주시는 해울님 http://blog.daum.net/kbcemail

초록빛을 따라 들로 산으로 감동을 담아 주시는 스텔라님 blog.daum.net/kja5939

 

 

 

 1. 블로그 닉네임

 

     엄밀히 말한다면 91386이다. 가슴이 따스한 사람 해피라고 불러주면 나는 더 없이 기쁘다.

     91386은 구원과 삼팔륙이 결합된 나의 사명과 신분을 나타낸다.

     구원은 구출을 의미하고 삼팔륙은 내 자신이 바로 그 세대의 주역이기 때문이다.

 

     가슴이 따스한 사람 해피는 그저 돈이나 몇 푼주고 동정 등으로 해결하는 단순한 따뜻함이 아니다.

     그러한 따뜻함은 일시적이고 얼마가지도 못하며 또 다시 식고 만다.

     진정한 따스함은 어머니의 품 속같고 봄 날같은 포근함을 뜻한다.

     그것은 가식이나 꾸밈보다는 진실한 관심으로 모든 두려움을 없애버리는 것이다.

 

 2. 생년월일과 태어난 곳

 

     60년대 초반이고 대한민국에서 태어났다.

     나는 먼저 학연이나 지연등을 따져서 저희끼리만 살려고 하는 그런 사람들이나 지역이 싫다.

     현재 우리는 아무리 명문대를 나왔어도 그것에 밀려 살아 남을 수 없는 시대에 살고 있다.

 

 3. 사는 곳, 노는 곳, 일하는 곳

 

     대한민국 서울에서 살면서 전국 어디라도 찾아 다닌다.

 

 4. 현재 하고 있는 일

 

     사역과 강연을 하며 칼럼기고, 해외 선교지 관리, NGO활동을 하고 있다.  

     틈틈히 분교들을 찾아 다니며 알바도 하고 있다.

 

 

 

 5. 블로그를 시작하게 된 계기와 경력

 

     지난 2008년, 정권이 교체되고 그 동안 내게 힘이 되던 인터넷 포털 사이트들의 홈피 기능도 사라지자

     나도 처음에 인터넷을 가입한 다음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나는 처음부터 블로그를 하게 된 것은 아니었다.

 

     오랫 동안 사역을 하다보니 내게는 세상 소식이 너무도 궁금했고 아고라는 그런 내게 좋은 벗이 되주었다.

     스스로 맨토역할을 자임하며 글을 올려주고 나는 정말 아고라에서 열심히 활동을 했다.

 

     그러나 내가 본 아고라는 한번 글을 쓰면 몇 초도 지나지 않아 달려드는 수 많은 하이에나들을 보면서

     나는 정말 세상이 무섭다는 생각이 들 때가 한 두번이 아니었다.

 

     종교는 종교대로, 정치는 정치대로 편을 나뉘어서 각각 알바꾼 모사꾼 아첨꾼들이 가세하여

     함부로 예수를 팔아먹고 정책을 홍보하며 팽팽한 기싸움을 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나는 어느 가을날 나무가 소리없이 낙엽을 떨구듯이 아고라를 떠나 블로그로 이사를 온 것이다.

 

     처음에는 나도 어느 분처럼 블로그에 글만 올려 놓으면 저절로 많은 사람들이 찾아 오는 줄로만 알았다.

     1년이 가고 2년이 가도 찾아오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어느 분의 말씀처럼 다른 블로그에도 찾아가 어떤 날은 300명, 어떤 날은 500명씩

     무작정 댓글을 달아주었지만 돌아오는 것은 여전히 냉담한 반응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오직 내 관심은 좀 더 넓은 세상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에게 힘이 되고 싶을 뿐

     어떠한 보상이나 승부욕으로 블로그를 하는 것은 아니다.

 

 6. 내 블로그의 특징

 

     내 블로그는 사회나 정치, 문화, 종교등 모든 것을 초월하여 삶에 희망과 용기를 주는 것이 첫째 목적이다.

     동시에 민족의 문제와 함께 그들을 끌어안고 아파하며 해결하려고 하는 블로그다.

 

     나는 우리 사회에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약자들의 보호는 찬성하지만 어떠한 부정이나 불의에는 반대한다.

     그리고 인간은 무엇보다도 존귀하며 자연은 파괴보다는 아끼고 보호해야 내일의 희망이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 동안에 배운 인문학, 철학, 신학적 지식으로 나름대로 피스 메이커의 역할로서 최선을 다할 뿐이다.

 

 7. 나는 누구인가?

 

     무엇 하나라도 내 세울 것 없는 평범한 사역자, 무명자...

     지금은 내가 아무 것도 해줄 것이 없지만 그저 미안하고 고맙고 사랑하는 아내와 두 아들과 함께 살고 있다.

 

 8. 장점과 단점

 

     점 하나까지도 놓치지 않는 섬세한 관찰력과 거절은 잘 못한다.

 

 9. 좋아하는 것

 

     아이들과 자연이다. 그 것들을 보고 있으면 내 마음도 괜시리 즐거워 진다.

 

10. 취미와 특기

 

     누군가 그런 말을 했다. 재주가 많으면 평생 고생만 하고 산다고...

     나는 지금도 남들에게 팔방미인이라는 소리를 자주 듣는다.

 

     꾸미기와 만들기라면 무엇이든지 자신이 있고

     일러스트레이션, 레크레이션, 행정기획등은 평소 내가 활동을 할 때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

 

11. 나의 보물

 

     내가 처음 고등학교 때 만난 그 분이다.

 

     돈과 재물은 볼링공과도 같아서 하나가 넘어지면 다른 것들도 모두 넘어진다.

     그러나 내가 만난 그분은 나를 한번도 실망 시킨적 없고 세상에 하나밖에 없다.

 

12. 나의 이상형

 

     갈수록 매력있는 사람이다.

     참조 http://blog.daum.net/91386/13532643

 

13. 내 매력은

 

     외유내강(外柔內剛)형이다.

 

     내가 처음 아내와 만났을 때 아내는 나의 노련미에 반했다고 했고

     어떤 이는 나의 꼼꼼함을 보고서 동역자로 삼았으며

     어떤 이는 내가 남을 먼저 생각한다고 입버릇처럼 칭찬하고

     어떤 이들은 나의 손재주를 보면서 다시 보았다고 했으며

     어떤 학생들은 행사 때가 되면 내 이름이 가장 생각난다고 했다.

 

14. 내게 10억이 생긴다면

 

     먼저 그 돈이 어떻게 해서 내 수중으로 들어왔는지 확인해 보고 그 후에 생각할 것이다.

     너무 한꺼번에 생긴 돈은 대개가 물거품처럼 사라진다.

 

15. 가장 기억에 남은 여행

 

     제주도의 신혼여행과 설악산의 수학여행이다.

 

     다른 곳도 많지만 나는 무엇보다도 제주도의 아름다운 모습에 반해서

     지금도 여름이면 가끔씩 학생들을 이끌고 제주도의 봉사를 다녀온다.

 

16. 현재 가장 하고 싶은 것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전국을 돌아 다니며 정보를 알고 싶다.

 

17. 어머니와 배우자가 물에 빠진다면

 

     아마도 두 사람이 물 속으로 들어가 희희낙낙하며 재미있게 놀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어머니를 이제 다시는 볼 수가 없다.

 

18. 죽기 전에 바라는 내 모습

 

     내일의 이뤄야 할 내 목표는 눈물도 시련도 없는 그 것

     먼 훗날 나의 것 모두 다 없어지고 그 여정도 마치는 날

     어느 낯선 곳 하늘아래 그 역사가는 말해줄 것이다.

 

     당신은 내가 본 진정한 승리자였다고

 

19. 1년 뒤 내 블로그는

 

     현재 일도 장담할 수 없는 사람이 무슨 수로 1년 뒤의 블로그를 알 수 있을까?

     무책임한 블로그는 더 이상 되고 싶지 않다.

 

     그것은 내가 오히려 다음사에게 묻고 싶은 질문이다.

 

     다음사는 지금이라도 푸른 초장을 배경으로 잔잔한 시냇물이 흐르게하고

     목마른 사슴이 갈급하여 언제나 찾아올 수 있도록 징검다리가 되어 주었으면 한다.

 

20. 나의 블로그 이웃이 된다면

 

     한번 인연은 평생 인연이라는 나의 신조로 만남을 더욱 소중히 하고

     언제일 지는 나도 잘 모르겠지만 어느 날 그들에게도 반드시 기쁨이 올 것이다.

 

 

 

     가슴이 따스한 사람 해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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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영혼의 사역(使役)

 

 

 

 

             사람은 젊었을 때나 일에 한창 몰두해 있을 때는 영혼의 소리를 잘 듣지 못한다.

           자기가 세상 일에 떠 밀려서 영혼의 소리를 무시하고 침묵시켜 버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언젠가는 그가 일을 떠났거나 병상에 누웠을 때 그 소리는 더욱 또렷하게 들려올 것이다.

 

           내가 처음 사역을 하던 때는 모든 것이 낯설고 세상 물정도 잘 모르던 때였다.

           마치도 한 젊은이가 산 속에서 나와 수양생활을 끝마치고 하산을 하는 심정처럼

           나도 정든 교회를 나와서 두렵고 낯설기만 한 세상에서 홀로서기를 시도했다.

 

           그 길은 결코 내능력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보이지 않는 힘이 작용했다.

 

          "기도는 기적을 일으킨다."  "기도는 만사를 변화시킨다."는 그 약속만을 믿고

           나는 주류들이 지배하는 세계 속에서 당당히 홀로 섰다.

 

           그들과 합류하며 일을 하고 가르치면서 때로는 변화시키기 위하여 부단히 힘을 썼다.

           그러나 주류세력들의 세계는 너무도 단단하여 그들은 아무에게나 문을 열어 주지 않았다.

 

           자기들과 깊은 연관을 맺고 있는 혈연, 학연, 지연등은 너무도 견고하여

           아무나 낄 수도 나설 수도 있는 성질이 아니었다.

 

           그러한 세계 속에서 외부인이 함께 하며 일을 한다는 것은 보통의 힘만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럴 때마다 내게 필요했던 것은 언제나 기도뿐이었다.

 

           지난 날 나는 어머니의 건강과 나의 장래문제를 위해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밤 낮을 지하실에 홀로 남아서 간절히 기도를 드리면서 솔로몬의 지혜를 얻기위해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어떤 교인은 나를 측은히 바라보며 내게 다달이 5.000원씩을 놓고 가셨다.

           새벽이 찾아오면 주위를 정리하고 아침에는 병아리떼들이 몰려와 배고픈 줄도 몰랐다.

 

           낮이면 주로 책을 읽고 밤이 되면 약수터에 올라가 목욕 제배를 하며 밤이 맞도록 기도를 했다.

           가진 돈 5.000원은 쪼개고 또 쪼개어서 날마다 200원씩을 소원 예물로 바쳤다.

 

           그러한 기도가 있어서인 지 내게는 언제나 행운(?)이 뒤따랐다.

           어머니의 생명은 기적적으로 15년이나 연장을 받으셨고 무에서 유를 창조해 내는 많은 기적들도 체험했다.

 

           그 중에서도 나의 가장 큰 축복은 무작정 찾아간 어느 교회에서 천사같은 아내를 만나게 된 사실이다.

           세상에 어느 여자가 볼품도 없고 가진 것도 없는 나에게 시집올 수 있을까?

 

           또 사람들은 나의 어떤 모습이 좋았길래 내게 종종 기도제목을 부탁했을까?

           명절이 다가오면 그 사람들은 나를 잊지 않고 인사를 하고 다녀갔다.

 

           어느 청년은 병원을 개업하여 내게도 스켈링을 해주었고 .

           어느 학생은 입으로 키타를 튕기더니 결국은 가수가 되어 있었다.

 

           어떻게 그 많은 사연들을 일일이 다 고백할 수 있을까?

           지금도 아내를 바라보고 있으면 나는 늘 아내에게 죄인이고 고맙고 미안하고 사랑한다는 말뿐이다.

 

           그 옛날 남편의 사례비가 15만원이었을 때 아내는 그 돈으로 이것 떼고 저것 떼고 또 떼면서

           그 나머지로 살림을 잘도 꾸려나갔다.

 

           아내가 처음 만삭 중이었을 때는 나는 차라리 반성부터 하게 된다.

           아내가 핏자를 그렇게도 먹고 싶어 하는데도 나는 핏자를 대신하여 겨우 피자빵만 사주었을 뿐이다.

 

           그러한 가운데서도 나의 고민은 언제나 사역들뿐이었었다.

 

           때때로 내 마음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릴 때면 나는 주저없이 그곳으로 달려갔다.

           어떤 때는 북한강의 어느 산위로 올라가서 하늘과 마주하며 힘껏 소리를 외칠 때도 많았다.

 

           그 곳에서 쉬면서 몇 날이고 자연과 속삭이며 바람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으면

           어느새 내 앞에서는 하늘이 허락해준 반가운 사람들도 와 있었다.

 

           그들이 누구이며 무엇을 하고 있는 지는 내게 별로 중요하지가 않았다.

           시간이 지나가고 서로가 어울리다 보면 그것은 차츰씩 알게 된다.

 

           중소 기업의 사장, 국회의원, 박사들, 교수들, 여러 목사들도 간혹 눈에 띄었다.

           그들의 몸은 지쳤으며 이미 망신창이가 되어 있었다.

 

           책을 펴놓고 서로의 고민도 풀어 놓고 이야기꽃 희망의 꽃을 피우고 있으면

           신기하게도 한 가지씩은 꼭 해결되고 마는 꿈같은 이야기들...

 

 

 

 

           실제로 지난 2001년 겨울, 우리나라에서 월드컵이 시작되기 몇 개월 전에 이러한 일도 벌어졌다.

           나는 그 날도 교회 강단에 올라 아쉬움을 뒤로한 채 마지막 고별 설교를 한 적이 있었다.

 

           그 날 따라 많은 교인들이 나와서 마치 나를 환송이라도 하는 듯 나의 마지막 고별 설교에 경청해 주었다.

           그 중에서는 정치계의 거목이며 3김씨였던 한 분을 오랫동안 모셔 왔었던 어느 지인도 함께 했다.

 

           나는 그 자리에서 우리 나라의 월드컵 성적이 아무도 예상할 수도 없는 4강도 가능할 것이라고 알렸다.

           16강에만 들어도 감지덕지 할 상황인데도 우리나라가 16강을 넘어서 4강이라니 도대체 이 무슨 망발인가

 

           도시마다 붉은 물결과 의지들이 넘실거리고

           한번 신바람이 나면 우리 민족은 어떠한 일도 해낼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한 셈이었다.

 

           나에게도 그 동안 보이지가 않았던 여러 사람들로부터 전화가 빗발쳤다.

           나의 부친께서 어느 날 갑자기 세상을 떠나시지만 았았더라도...

 

           나는 임오년 따사로운 봄 내음과 함께 가족들을 이끌고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고 하시는 어느 영혼의 소리에 이끌려서 그 교회를 나왔다.

 

           아름다운 세상이란 어떤 화려하거나 거창하게 꾸며진 나라만은 아니다.

           그 나라는 참 좋은 나라요, 희망을 잃어버린 한 사람, 한 사람이라도 일으켜 세우는 데 있다.

 

           우리는 흔히 개체를 소중히 여길 때 전체를 무시하기가 쉽고 전체를 따를 때 개체를 소홀하기가 쉽다.

           사역이란 바로 이러한 폭넓은 사랑을 오늘에 실현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사역을 하다보면 종종 사역이 얼마나 어려운 지를 실감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렇게 전체를 상대로 하여 희망을 선포하고 동시에 한 사람, 한 사람의 고민과 아픔들을

           감싸주어야 하는 것이 사역인데 여기에 인간적인 한계를 느끼지 않을 수가 없다.

 

           그리하여 때로는 많은 사람들이 큰 기대를 하고 나왔다가 실망하고 돌아가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세상은 비록 그들을 실망시키게 할 지는 모르지만 우리는 그들을 끝까지 포기하지 아니하고

           실망시켜서도 안될 것이다.

 

           인간의 호흡에는 숨을 쉬는 것과 공기를 마시는 것이 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영혼에도 호흡이 필요하다.

 

           마음이 자기 집안에 앉아 자기 마음대로 조절하는 기관이라면

           영혼은 예민한 감각으로 그 선입견들을 몰아내고 깨우치게 하는 능력이라고 할 수 있다.

 

           내 영혼의 사역에서 제대로 활동하기 위해서는 자기만에 4개의 방이 필요하다.

           곧 골방과 글방, 심방과 처방이다.

 

           골방은 자기 사역에 저지르기 쉬운 잘못이나 도움이 필요할 때는 즉시로 엎드려서 기도하는 공간이고

           글방은 자기 사역에 허전하거나 채워야만 할 때 언제라도 충전을 해야만 하는 공간이며

           심방은 자기 사역에 관심있거나 소중한 사람들을 만나야 할 때 급하게 달려가는 공간이고

           처방은 자기 사역에 아프거나 쓰러져 있는 사람들을 보면 피하지 아니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공간이다.

 

           이들 중에 그 어느 것 하나라도 없어지면 영혼사역에 큰 차질이 빚어지고

           이러한 방들이 모두 갖춰질 때 영혼 사역은 하늘을 나는 새와 같이 세상을 향해 마음껏 날아 다닐 수있다.

 

           우리의 영혼은 때때로 신(神)의 대리자 역할을 한다.

           마음 속에서 무언가 말하고 있는 것은 외부에서 누군가 소리치는 메아리와도 같은 것이다.

 

           분주한 낮 시간의 소음이 그치고 모두가 휴식하는 정적만이 주위를 감쌀 때면 시계는 드디어 우리에게

           말을 한다. 그리고 늦은 밤 잠못 이루고 고민하는 나의 서제까지 시계소리는 들려 온다.

 

           그것은 마치 현재의 삶에 갈등을 겪고 있는 사람처럼 안락한 집과 사랑스런 아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뭔가 채워지지 아니하는 생의 허전함을 달랠 길이 없어서  

           내 영혼 깊은 곳에서 울려 퍼지는 영혼의 메아리인 것이다.

 

 

           가슴이 따스한 사람 해피

 

 

 

 

 

 

 

 

                   재능을 가치있게

 

 

 

 

          

           나의 유년 시절, 조금은 부끄럽고 창피스런 일이지만

           내게는 오직 노는 것, 장난이 더 즐거웠던 시절이 있었다.

           공부와 철이 뭔지도 모르던 시절에

           내가 세상에서 처음으로 수학과 한글을 배우게 된 것은 초등학교 4학년 무렵이었다.

 

           연희동 산 5번지 시절, 작은 아버지는 나와 동생, 두 형제를 붙들고서

           다 큰 녀석들이 아직도 글씨도 쓸 줄 모르고 시계도 볼 줄 모른다면서

           아랫 마을에 있는 작은 아버지 댁으로 끌고 가셨다.

 

           캄캄한 밤에 우리는 한참을 내려가서 지금은 대림아파트로 변했지만 어느 집안으로 들어갔다.

           방 안에서는 노트와 시계, 자 한개가 놓여 있었고 거기에서 우리는 꼼짝없이 공부를 해야만 했다.

 

          추상같은 작은 아버지는 대나무 자 한개와 노트를 주시면서

          앞으로 너희들은 글씨를 쓸 때마다 자를 대고 또박 또박 쓰라고 하시고는 시계 공부도 가르치셨다.

 

          한가지를 이해하기까지 이마와 등뒤에서는 식은 땀이 계속 흘러내렸고

          다음날도 또 다음날도 작은 아버지는 같은 글씨를 반복시키시며 그렇게 우리들은 글씨를 배웠다.

 

          나의 초등학교 성적은 반에서 늘 꼴찌였다.

          어쩌다가 내가 한번 맞추기라도 할라치면 선생님은 너무 이상하다는 듯이 그냥 넘어갔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지루한 산수 시간보다도 운동장에 나가 뛰 노는 시간이 더욱 더 좋았다.

 

          그러다가 내가 중학생이 되자 모든 것들이 바뀌게 되었다.

          선생님의 얼굴도 매일같이 자주 바뀌었고 나의 행동도 그만큼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공부를 하는 한 시간은 마치도 어른들의 세계처럼 너무도 지루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교과서나 노트에다 낙서를 하며 싸인도 만들고 초상화도 그리면서 시간을 떼웠다.

 

          차라리 머리라도 나빴으면...

          나는 매일 국어책에 나오는 시나 한문의 고사성어들은 다른 시간을 이용하여 모조리 외워버렸다.

          그것은 나의 지루함을 달래주는 심심풀이였고 써먹는 재미라도 있었다.

 

          그러던 중에 어느 날 내게 놀라운 변화가 찾아왔다.

          그것은 나도 모르는 사이 내 필체가 마치 책을 복사라도 한듯이 교과서를 그대로 따라하고 있었다.

 

          그것은 내가 2학년이 되자 점점 더 확실해져서 이젠 그 누구도 따라오지 못할 만큼 재능이 되었다.

          가끔은 교무실로 불려나가 선생님의 업무를 대신 도와 드리면서 나의 공부하는 자세도 크게 달라졌다.

 

          내가 고등학생이 되자 그것은 내게 커다란 자신감이 되었고

          선생님들은 또 어떻게 아셨는지 내게 종종 칠판 글씨를 부탁하셨다.

 

          심지어는 훗날 내가 최고 학부과정에서 모두가 컴퓨터로 리포트를 작성할 때에도

          나는 어려운 집안사정으로 필체로만 대신하여 제출 할 때도 많았다.

          다행스럽게도 교수들은 내게 좀 더 후한 점수를 메기셨고 아마도 그런 정성이 너무도 가상했으리라.

 

          군에 들어 가서도 나의 임무는 부대 안의 글씨와 행정과 훈련 궤도를 도맡아 그렸다.

          그러한 덕분인지 나는 참 유독히 행운(?)도 뒤따랐다.

          남들에게는 지독하다는 화생방의 훈련과 극기훈련도 잘도 피해 나갔다.

 

          별명은 할렐루야 아저씨로 통했다.

          까무잡잡한 얼굴과 덥수룩한 수염은 마치 내가 성경 속에 나오는 예수로만 보였나 보다.

          내가 본격적으로 정장을 차려입고 강연을 다니게 된 것도 다 그러한 인연 때문이리라...

 

          막상 나의 제대 날이 가까와 오자 나에게는 사회로의 적응시간이 너무도 절실했다.

          좀 더 부드럽고 따스해지며 모든 사람들과도 어울릴 수 있는 나만의 시간이 필요했다.

 

          우연히 알게 된 어느 지인의 도움으로 나는 향목에 가입하게 되었다.

          거기에서 나는 여러 목사님들과 신부님, 스님, 수녀님들까지 한꺼번에 만나볼 수가 있었다.

          때로는 땅굴 견학과 전방시찰, 임진각에도 함께 오르며 우리는 자주 친목을 도모했다.

 

          가끔은 부대장의 증정마크가 새겨진 책을 받아들고 과연 내가 가는 길이 이 길인가 궁금할 때도 많았다.

          원치도 않는 길에 학비를 마련해야 할 때는 너무도 힘겨웠다.

 

          그런 때에 나는 한 자루의 칼과 자 하나, 형형색깔의 썬팅지를 사다가 신문 광고지에 싣고

          어떤 날은 유치원, 어떤 날은 음식점, 어떤 날은 학원에서 보내면서 인테리어를 해 주었다.

          그들은 내게 고마움의 답례로 품삯보다도 더 좋은 훗날에 언제든지 찾아오라며 호의까지 베풀어 주셨다.

 

          때로는 중소업체의 병원 게시판을, 때로는 문화예술의 광고간판까지...

          정성스럽게 육교 난간에 걸어놓고 그 아래로 슬그머니 지나가는 나를 바라볼 때면

          또 한번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내가 가는 길이 이 것인가 하는 자문을 할 때도 많았다.

 

          지금도 간혹 예산이 부족할 때면 그 때를 떠 올리며 종종 많은 유혹을 받기도 한다.

          어느 날은 서울 시내의 모 대형광고 업체로 부터 간절한 손을 내 밀었지만

          아내와 미처 상의를 해 보기도 전에 난 그 자리에서 웃음으로 답했다.

 

          생각해 보면 우리의 재능들은 귀하게 쓰여질 때가 많다.

          자기의 재능이 언제, 어디에서, 어떻게, 누구를 위해 쓰이느냐에 따라서 그 가치는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어느 방면에서 뛰어난 재능들을 가지고 있다.

          어떤 사람은 신체적인 힘이 매우 뛰어나고, 어떤 사람은 정신적인 힘이 매우 뛰어나며

          어떤 사람은 행동하는 일에 알맞고, 어떤 사람은 계획하는 일에 알맞으며

          어떤 사람은 나라를 통치하는 데에 적격이고, 어떤 사람은 자기 일이나 사업에 더 적합하다.

 

          이러한 다양성이 모여서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고

          그 속에서 우리는 지위와 직분을 나누어 함께 살 수 있도록 계획되었다.

 

          만일 우리가 적은 재능을 갖고 있다면 그것은 그 능력에 알맞는 지위가 생길 것이고

          그 자리에서 자신이 누릴 수 있는 가장 보람된 기쁨과 행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내게 있어 재능은 단순한 밥벌이용이나 흥정거리 대상이 아니다.

          그것은 내게 세상 어떤 것보다도 귀하고 주고 또 주어도 아깝지 않은

          나의 소중한 사람들께만 드릴 수 있는 나의 소박한 희망이다.

 

 

          가슴이 따스한 사람 해피

 

 

 

    

 

           내가 본 한국 대표의 쇼트트랙

 

 

 

 

 

 

 

먼저 나는 한국 쇼트트랙의 대표에 대해 그가 어떤 선수인지, 그가 어느 소속이든지,

어떠한 감정도 없다는 사실을 미리 밝혀두는 바이다.

 

내가 처음 쇼트트랙을 알게 된 것은 90년 초 중랑구에 있는 어느 모교회로 재임했을 때이다.

그 동안에 나는 연희동에서 미아리로 매일 왕복을 오고가며 왕성하게 사역을 하고 있을 때였다.

 

우연히 아는 지인이 찾아와 어느 분이 나의 도움을 절실하게 필요하다는 안타까운 내용을 듣게 되었다.

무엇이 그리도 급한 일일까? 하고 궁금하면서 찾아가보니

세상에 이런일이...내가 그토록 평소에도 만나보길 원했었고 존경하던 스승님을 그곳에서 뵐 줄이야...

 

평소에도 나의 지론은 언제나 준비된 자에게는 때가 되면 반드시 기회가 온다는 것이 나의 신념이다.

자세한 이야기를 물어 볼 새도 없이 그 분은 먼저 내게 도와달라며 적극적으로 손을 내밀었고

내 마음도 어느 새 눈 녹는 듯이 그 분의 손을 잡고 있었다.

 

그 동안 내게 많은 배려를 베풀어준 미아리 교인들과 교회앞에는 얼마나 미안하고 죄송스러웠던지

나의 사역지도 그렇게 갑작스럽게 중랑구로 옮겨지게 되었다.

 

그 분은 일찌기 법과대학을 마치고 군 법무장교와 시장들을 역임하고 뒤늦게 종교계에 뛰어드신 몇 안되는 분이었다.

인격적으로나 행정적으로도 매우 훌륭하지만 업무를 추진하는 면에서는 한 치의 오차도 없었다.

 

나의 사역이 한창 바쁠 무렵 많은 사람들도 알게 되었다.

그 가운데는 지금은 고인이 되었지만 전 빙상 국가 대표이며 서울시 체육회에서 수고하시는 한 분을 알게 되었다.

그 분은 종종 물가로 나가 낚시를 즐기시며 내게 많은 물고기도 가져다 주셨다.

 

그 분의 자녀 중에는 2남1녀가 있었는데 그 중의 한 자녀가 지금의 한국대표 쇼트트랙의 산실이 되는 셈이다.

그는 훗날 한체대를 나와 국가 대표가 되었으며 국가 대표의 코치로서 다년간 뛰어난 활약을 보이기도 했다.

 

매 주일 오후가 되면 우리는 가까운 운동장으로 나가 족구나 축구를 즐겼으며

기도원 어귀에서의 놀이는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그가 태릉과 목동을 오고가며 대표 시합을 가질 때면 우리는 단 걸음에 달려가 그의 이름을 외치면서

그를 응원하였고 거기에는 나는 한국 쇼트트랙의 간판인 모든 스타들을 미리 만나볼 수가 있었다.

 

한가지 여담이지만 김기훈 선수는 단국대를 나와 자신의 손목에 늘 묵주를 달며 열심히 얼음판을 휘저었고

이준호 선수는 독실한 크리스천으로 천부적인 재능이 있었지만 늘 김기훈 선수의 그늘에 가려 빛을 보지 못했다.

박세우 선수는 나의 신앙에 제자였으며 그의 부모가 경영하시는 사업장들 방문하여 복을 기원하기도 했다.

전이경 선수의 부모는 연희동 모근처에서 음식점을 경영하여 나의 가족들은 자주 그곳에서 모임을 갖기도 했다.

 

한 번은 이러한 일도 있었다.

그 날도 국가 대표의 선발 대회가 있었던 날 우리도 태릉 아이스 링크장을 찾아 열심히 응원하고 있었다.

바깥 날씨는 짬통같이 몹시도 무더웠지만 태릉만큼은 겨울처럼 몹시도 추웠다.

 

경기 시작전부터 차가 등장하여 열심히 빙판을 고르고 있었고 이윽고 등장하는 선수들의 파란 운동복과 빵모자는

하도 우스워서 나는 그만 폭소를 자아내기도 하였다.

 

대회가 시작되자 모든 선수들이 조를 이루어 트랙을 도는 모습들은 그야말로 예술이었다.

쓰러질 듯 쓰러지지 않고 다시 몸을 일으키며 자유롭게 달리고 있는 선수들의 모습은 거의 환상적이었다.

관중석에서도 그에 보답이라도 하듯이 우리는 박수와 탄성으로 열심히 그들을 격려해 주었다.

 

그러나 매 경기가 진행될 때마다 선수들의 몸 싸움은 매우 불안해 보였고 코치진 간의 신경전들은 더욱 격렬했다.

조금이라도 자신의 소속팀이 불리하다 치면 어김없이 게임이 중단되는가 하면 고함이 오고가며

심판진들은 어떻게 해야 할지를 전전 긍긍하고 있었다.

그럴 때마다 코치진들은 관중들만 모르고 있는 그들만의 방식으로 등수를 바꾸기도 하였다.

 

한국인만이 있는 갖은 고집과 부정에 대한 댓가였다.

경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무언가 가슴에 남아있는 씁쓸한 기분이 드는 것은 비단 나뿐 이었을까?

모든 경기가 다 그렇듯이 그것이 비단 한체대측과 비한체대측만의 문제일까?

대한 빙상 연맹에 누가 앉았으며 누구와 함께 일을 하느냐에 따라서 그 대회의 성격도 얼마든지 달라지는 것이다.

 

삶이란 어쩌면 꿈을 찾는 여행이라고 할 수있다.

꿈이 사람에게 얼마나 있느냐에 따라서 그의 인생이 바뀌며 그의 행복도 얼마든지 달라질 수가 있다.

그의 꿈이 간절하면 할수록 언젠가는 그 꿈이 이루어 질 것이고 그 꿈이 사라지는 날 그의 삶도 끝장이 나고 만다.

 

왜 사람들이 이 나라에서 자유롭게 살지 못하고 다른 나라로 이민을 가며 자살을 시도하는가?

그것은 이 나라에서는 더 이상 희망이 없기 때문이다.

 

학교가 아이들에게 꿈을 심어주는 기관이라면 종교는 꿈을 안내해 주는 기관이고

국가는 국민들이 꿈을 키워갈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도와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모든 기관이 이러한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할 때 그 기관은 우리 사회에 존재할 아무런 필요가 없다.

사람이 공정하게 꿈을 펼치지 못하고 각종 파벌싸움이나 어떠한 목적으로 악용되고 만다면

제2, 제3의 안현수 선수는 또 나올 것이다.

 

우리는 지난 날의 이들을 분명히 기억하고 있다.

야구천재로 유명했던 조성민 선수는 비록 가정문제로 최진실과 이혼을 하고 그녀가 세상을 떠나게 되자 사람들은

그의 가정에 개입하여 그의 자식을 떼어 놓았으며 세인들의 무관심으로 그는 쓸쓸히 세상을 떠나가고 말았다.

그 뿐만이 아니라 여자배구의 간판인 김연경 선수는 아직도 국민들의 눈치만을 살피며 도움을 호소하고 있다.

 

너무도 염치가 없는 국가와 언론들...

2006년 당시 안현수 선수가 토리노에서 3관왕에 오르자 국가와 언론들은 침이 마르도록 그를 띄워 주더니

그가 무릅 부상과 파벌 싸움으로 다음 대회가 무산되고 급기야는 러시아로 전격 귀화를 하자 국가와 언론들은

그에 대하여 냉정하게 돌아서고 말았다.

 

그의 숨겨진 고통들은 애써 감추면서 지도자 몇 사람의 교체만으로 문제를 덮어버렸다.

그리고는 그를 배신자라는 낙인을 찍어놓고 가만히 지켜보고 있다가

막상 그가 이번의 소치 동계 올림픽에서 또 다시 선전을 하자 어느 새 빅토르안은 사라지고

그의 이름을 안현수로 잽싸게 바꿔 부르면서 염치없이 그가 자랑스러운 한국인임을  다시 내세우고 있다.

 

당신이여! 꿈을 절대로 포기하지 말라! 그것은 당신의 희망도 포기하는 삶이요

희망을 버리지 말라! 그것은 당신의 인생도 이미 죽어버린 것이다. 

 

 

가슴이 따스한 사람 해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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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머니를 떠나 보내며...

 

 

 

 

      어머니! 당신으로 인해서 우리들은 너무도 행복했습니다.

      온화하시고 정이 많으면서도 사랑이 깊어 우리는 늘 어머니께 메달려 투정을 부렸었지요.

      연희동에서 연희동으로 자꾸 맴 돌면서 우리는 단 한번도 어머니의 깊은 뜻을 헤아려 보지 못했습니다.

 

      어머니와 우리 가족들만이 아는 비밀들...

      쌀이 떨어져 남은 밥은 물말아 먹고 기름이 잔뜩 묻은 튀김은 골라 먹느라 우리는 조금도 배고픈 줄을 몰랐습니다.

      어느 때는 날마다 깡통으로 신문지를 긁으며 뻥튀기로 바꾸어 먹고 그때 우리는 처음으로 칼라TV를 마련했지요.

 

      아버지가 드디어 먼 곳에서 돌아오실 때에는 우리 가족은 날아갈 듯이 너무도 행복했습니다.

      어머니가 고생한 사연들을 우리들은 너무도 많이 알고 있습니다.

 

      어머니!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시기 전날,

      우리들은 병원측과 싸우면서 한바탕 실랑이를 벌이기도 했습니다.
      그 동안에 어머니가 병원에서 얼마나 많은 수술과 치료를 받았던지 추가되는 비용만 자꾸만 쌓여갈 뿐이었습니다.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우리들은 우리들대로 얼마나 아프시고 힘이 들었을까요.

 

      그래서 우리들도 더 이상 그대로는 두고볼 수만은 없어 한사코 병원측과 싸우며 어머니를 집으로 모셔다가

      편하게 보내드리고만 싶었습니다. 이제는 병원측의 그 누구도 우리들의 고집을 꺾을 수가 없었답니다.

 

      드디어 경찰차를 앞세우고 어머니를 병원차에 실어서 집에 와 보니 집안의 분위기는 말이 아니었습니다.

      어머니가 계시지도 않는 그 집안이 어찌 그렇게 행복할 수가 있을까요.

 

      어머니가 퇴원하셨을 때 누군가는 새 옷으로 입혀드리고 있었는데 어머니는 왜 그렇게 눈만 감고 계셨는지요.

      우리들은 그것이 자식들이 밉고 서운함도 크셔서 일부러 그러시는 줄로만 알았답니다.

 

      밤이 되자 어머니는 그 동안에 얼마나 많은 고통을 참아오셨는지 입안에서는 자꾸만 노란 물이 흘러나왔고 

      새벽이 되어서야 겨우 멈출 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어머니는 잠시 눈을 뜨셨다가 주위를 쭉 둘러 보시고는 평안한 마음으로 하늘나라로 가셨지요.

 

      어머니! 그때 우리는 얼마나 한없이 울었던지  

      남들이야 어떻든지 어머니께 못해드린 그 일만 생각나서 더 크게 울었답니다.

      아버지도 옆방에서 그 소리를 듣고 달려나와 어머니를 보시고는 한없이 자책을 하셨지요.

      그 날 우리들은 아버지가 그렇게도 눈물이 많으셨던가 처음으로 알았습니다.

 

      어머니의 입관을 막 시작하려는데 당신의 주검을 바라보니 차마 눈 뜨고는 볼 수가 없었답니다.

      그 몸은 차라리 병원용 실험 도구였지 어머니의 모습이라고는 찾아 볼 수없었습니다.

 

      머리에서는 커다랗게 구멍이 여러군데 있었고 코에서는 노랗고 진한 약물이 쉬임없이 나왔습니다.

      얼마나 아프셨고 또 얼마나 참기가 힘이 드셨을까요...

 

      어머니!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어머니를 맡았던 그 의사는 잘못이 드러나자 의정부의 다른 병원으로 신속하게

      자리를 옳겼다고 합니다.

 

      아마도 만일을 대비하여 미리 피신부터 하고본 것이지요.

      그것도 모르면서 우리들은 너무도 순진해서 꼬박 꼬박 병원측의 지시대로 순종을 잘했습니다.

 

      병원을 찾아 당당하게 머리를 깎고 C.T찍고 M.R.A찍고 3차례의 모든 수술과정까지 검사를 받으셨던 어머니가

      결국에는 3개월만에  고생만 하시다가 가셨습니다.

      병원에서 나오는 날 우리들은 너무도 분통해서 병원측에 한번 따졌더니

      병원에서는 하는 수없이 겨우 특진비만 빼주었지요.

 

      어머니! 어머니의 장례식은 부득이 당신께서 사시던 작은 아파트에서 단촐하게 맞았습니다.

      경로당에서는 대형천막과 넓은 돗자리까지 많이 챙겨 주었구요...

 

      졸지에 상주가 되어버린 나는 지금도 어머니의 그 죽음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습니다.

      모두다 어떻게 아셨는지 안면도 없던 사람들이 쉬지 않고 찾아와 너무도 혼이났습니다.

 

      그 가운데는 여러 목사들과 국회의원,구청장,힘있는 사람들도 많이 왔습니다.

      나의 친구들도 왔지만 우리들은 그저 눈으로만 바라볼 뿐 마음속으로는 이미 모든 것들을 이해했습니다.

 

      그러고 보면 어머니께서는 복도 참 많으셨고 가시면서도 끝까지

      우리에게 희망을 던져주고 가신 무척 따스한 분이셨습니다.

 

      어머니! 우리들은 거지나 불쌍한 사람도 아니건만 사람들은 왜 자꾸 우리들을 이상한 눈빛으로 쳐다보는지

      난 그들이 너무도 미웠습니다.

 

      그 날에도 잠시 복도에 나가 쉬고 있을 때 어느 국회의원과 보좌관이 찾아와 복도의 한 중앙에 서서 말하기를

         "우리는 부조를 얼마나 해야 하나. 십만원만 할까?"  "아니요, 그냥 적당히 3만원만 하시죠?"

 

      아마도 그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마음은 안중에도 없는가 봅니다. 

      부조보다는 마음이 마음보다는 관심이 관심보다는 사랑을 주는 사람이 왜 그렇게 없을까요?

      부디 내가 사는 동안에는 변함없이 사랑을 많이 베풀 수있게 하늘에서도 꼭 도와주세요.

 

      어머니의 장지는 강원도 철원에 있는 목련공원으로 정했습니다. 철원에 사는 남동생이 고생을 많이 하였지요.

      장지로 떠나는 날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왔던지 나는 맨 앞에서 검은 승용차를 탔고

      다른 사람들은 버스를 타고 검은 띠를 두르며 꼬리를 길게 늘어놓고서 나를 따라왔지요.

 

      가는 길에 우리는 동생 집에 머물며 며칠 전에 어머니와 함께 대추나무를 털면서 포식을 하던 그때를 떠올렸습니다.

      포장길을 따라 우리들은 어머니와 함께 직탕폭포까지 걸으며 소라도 잡고 사진도 많이 찍었습니다.

 

      어머니! 문득 그 동안에 우리를 위해 힘을 써준 많은 사람들의 얼굴이 떠 오릅니다.

      자신의 일도 아니건만 저들은 우리를 위해 기꺼이 휴가를 내어 따라온 사람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언제쯤 잊혀 질까요. 그들의 고마운 마음들을...

      아버지께서도 흡족하신듯 시종일관 친구분들께 허세를 부리기 시작했습니다.

 

      학창시절 나는 어머니와 용돈문제로 참 많이도 싸웠지요.

      그리고 내가 어엿이 자라 결혼을 하게 되었을 때 어머니는 잘했노라며 어머니의 고민도 사라지셨지요.

 

      어머니는 나보다는 아내편을 더욱 들어주시며 아들의 흉 보는 것을 유일한 낙으로만 삼으셨답니다.

      할머니의 둘째 손주는 할머니의 심각성도 모른채 날마다 한강의 놀이배를 태워 달라고 떼도 참 많이 썼습니다.

      내가 병원을 찾아갈 때마다 어머니는 더 이상 굶고 다니지 말라면서 침대밑에서 돈을 몰래 꺼내 주시고는 하셨지요.

 

      당신의 사그라진 육신으로 버티는 그 숭고함,

      숨쉬기조차 몹시 힘들어 하면서도 앙상한 손으로 자식들의 건강을 염려하여 주시는 회한의 모습들을

      제가 어찌다 잊을까요.

      떠나는 사람들은 모두 다 쉽게 잊겠지만 보내는 우리들은 결코 잊을 수가 없습니다.

 

      어머니! 우리가 장지에 도착하여 높은 곳에서 아래를 바라보니 장지가 어찌 그리 아름다운 지요.

      사방이 나무와 숲으로 병풍처럼 둘러있고 아늑하고 편안한시설들이 나는 좋았습니다.

 

      빼곡한 비석들은 하나같이 질서정연하게 구역에 따라 장식하였고

      빨강 노랑 분홍 보라꽃으로 묘지를 더욱 더 아름답게 수 놓았습니다.

 

      어머니를 잠시 이곳에 묻어두고 산에서 내려오는데 어느 큰 바위 위에 새겨진 이름모를 시한편이 있었습니다.

     "나도 너희들처럼 살아있을 때에는 많은 꿈들이 있었노라"

 

      그 순간 나도 모르게 두 눈가에서는 자꾸 울음이 흘러나와 두주먹을 불끈 쥐었습니다.

      인생의 종말은 결코 우연이 오는 것이 아니라고 말입니다.

 

      인생의 종말때문에 인생의 인위적인 명예와 출세가 다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위대한 사람들의 무덤도 말이 없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인생의 모든 것은 흙입니다.

      그런데 무덤의 흙은 우리들에게 아무 것도, 아무 말도 말하지 않고 조용하네요.

      다만 한가지 이 흙은 당신의 조상이고 이 흙은 당신의 부모이며

      이 흙은 당신들을 위해 먼저 간 수많은 영령들의 희생이며 농민들의 것이라고 들려옵니다.

 

      산 자가 공유하지 못하고 아픔과 고통과 괴로움이 없는 그곳, 편히 쉬십시요...

      그리고 세월이 지나 우리들도 얼른 자라서 그곳으로 갈터이니 그 때 우리 다시만나요.

 

 

      가슴이 따스한 사람 해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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