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이 기억해야 할 한 가지

 

 

 

 

우리가 경배하는 신의 성품은

신이 악하면 그의 경배자들도 악한 것이며

신이 순수하면 그의 경배자들도 순수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정치인의 마음도

정치인이 악하면 그를 따르는 사람들도 악한 것이며

정치인이 순수하면 그를 따르는 사람들도 순수할 것이다.

 

그러나 정치에 대한 집념은 그의 마음을 그냥 순수하게 내버려 두지 않는다.

권력에 대한 집념은 그로 하여금 어떠한 부정한 일도 서슴지 않게 만든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나쁜 정치인데도 "그것은 나쁩니다"라고 만류하지 못하고

현실을 외면한 채 모든 것이 그저 잘 되어가고 있다고 자신에게 설득시킨다.

 

만약 정치 속에서 의(義)의 꽃이 피어나고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만 있다면

한 나라의 모든 것이 잘 될 것이다.

 

그렇지를 못하고 팔은 안으로 굽는 식이나 의가 핍박받는 정치라면

나라의 모든 일이 부패해지기 쉬운 법이다.

 

원인에는 반드시 결과가 뒤따른다.

모든 길은 언제나 길이 있고

모든 씨앗은 각각 알맞은 추수 기간이 있다.

 

편이(便易)와 공정(公正)

불의와 정의

당신은 길을 선택하라

그러면 그 길의 끝부분에 이르게 될 것이다.

 

만약 당신이 씨를 뿌린다면

당신이 뿌린 그것과 같은 종류의 열매들을 거두게 될 것이니

이는 하나의 원리이다.

 

부정과 부패

바람과 돌풍

생명과 영혼

복종과 축복

불복종과 멸망

이것들은 이렇게 짝을 지어 다닌다.

 

이 원리는 자연적인 문제나 물리 과학 분야에서는 어느 정도 인정받고 있지만

우리의 마음속에서는 대부분이 무시되고 있다.

 

이 세상은 창조된 이래 지금까지

선이 아닌 악으로 행동하고

원칙에 어긋난 행동을 하면서도 잘 되기를 바라고

가라지의 씨앗을 뿌리면서도 추수를 기다리는 가을날과도 같다.

 

 

 

가슴이 따스한 사람 해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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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구름처럼

 

 

 

인생은 마치 그 모든 날들이 머리 위로 아름다운 흰 구름이 뭉게 뭉게 피어 있고

푸른 하늘이 드 넓게 펼쳐져 있는 여름날과도 같다.

 

수면에 햇빛비치고 수중기가 발생하여 구름이 일게 되는 자연의 현상처럼

우리의 인생에도 시련과 고난, 고통이 있는 것은 그럴만한 원인들이 있다.

 

구름이 아침에 일어나 집을 나서면

온 도시들의 머리에는 금빛 모자를 쓰고

강들마다에는 은빛으로 수 놓으며

이슬들은 풀잎사이에서 휴식을 취하고

밤중에 기다리다 지친 허약한 사람들은 생기를 회복한다.

 

태양이 낮의 일을 마치고 집으로 들어갈 때면

구름이 기다렸다 팔을 벌리고 수고 했노라며 고이 감싸 준다.

 

우리들의 눈에는 구름들이 하늘을 따라 천천히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러나 대부분의 구름들은 고속열차보다도 빠르고 폭풍이나 빛보다도 빠르게 진행한다.

 

세상에서 아무리 좋은 물감이 있다해도 이 보다 더 아름답고 신비로운 그림이 또 있을까

저 유명한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이나 화실 속의 "성모 마리아상"도 이 보다는 못할 것이다.

 

인생이 항상 밝고 활기에 차 있다면 그 구름들의 존재는 부조화와 괴리감만을 줄 뿐이다.

구름이 언제까지나 양떼처럼 하얗게만 는 것이 아니다.

 

구름은 때때로 검고 흐리며 잔뜩 찌푸린 상으로 나타나 햇빛을 차단하고 어둡게 만들어 버린다.

마음이 약한 사람들은 그 모습을 보면서 무섭다고 그만 겁을 집어 먹는다.

 

구름이 어두운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구름이 하늘을 가리워서 빛이 구름을 통과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구름이 하늘에 가득차면 비가 내려서 뜨거웠던 대지를 시원하게 적셔 주며

모든 식물과 나무, 생명들은 물을 마시고 너무 기뻐 춤을 춘다.

 

우리의 인생들도 이와같이 힘들고 고통스럽지가 않다면

우리는 결코 이땅에서 아름다운 노래를 부를 수가 없다.

 

아무도 없는 한밤 중에 당신은 목 놓아 울며 노래를 불러 보았는가

 

모두가 떠난 한 밤 중에 

저만이 홀로 남아

어느 지하실 연탄창에  몸을 내려놓고

스치로폼 깔고 바싹엎드려

그 냄새 달콤히 마시면서

 

괴로운 사연 차마 말로는 다 할 수없어

구슬픈 눈물 하염없이 흘리면서 불렀었던 그 시절들...

 

노래는 기쁠 때 보다는 슬플 때에 그 호소력이 강하다.

외로울 때 마음이 힘들 때, 죽음 앞에서 부르는 그 노래는 우리에게 한 없는 위로와 용기를 준다.

 

지금도 우리의 주변에는 많은 구름들이 몰려 있다.

우리의 경제와 사회, 정치와 종교에도 우리를 힘들게 하는 많은 문제들이 있다.

 

특히나 북한과 일본, 미국과 중국과의 관계는 자꾸만 꼬여 가는 현실에서

우리는 너무도 짜증날 수 밖에 없다.

 

이러한 분위기는 금방이라도 소나기를 퍼 붓는 어두움과 같이

사람들은 모두가 안절부절 못하고서 어서 속히 이 어두움이 지나가기만을 바라고 있다.

 

구름이 포화상태가 되면 그 구름은 더 이상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고 비로 변한다.

우리도 이와 같이 고통을 겪고 있으면서도 인내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아마도 벌써 죽고 없었을 것이다.

 

우리는 비록 구름이 어디에서 왔다가 어디로 흘러 가는지 알 수없지만

그 구름이 하는 것은 느낄 수가 있다.

 

구름이 한점 없는 하늘에

바다에서 작은 구름이 일어나

나뭇가지 사이에서 바람 소리가 들려오고

햇빛은 구름 속으로 꼭꼭 숨어 버릴 때

하늘은 캄캄해서 마침내 큰 비가 쏟아지는 것이다.

 

구름이 하늘에서 비를 만들고 빗방울은 무지개를 그려서 우리에게 기쁨을 주듯이

우리에게 예기치 않은 고난이 다가올 때 지혜롭게 그 고난을 통과하다 보면

거기에는 우리가 알지 못했던 깊은 뜻이 숨어 있다.

 

나는 너의 영원한 친구요 구름이니

너는 나의 인생의 무엇이냐

 

사람이 고난도 없이 살아가고 아무 걱정도 없이 지낸다면 무엇하리

고난은 잠깐이요 기쁨은 영원하리라

 

 

 

가슴이 따스한 사람 해피

 

 

 

휴대폰으로 본 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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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의롭고 양심적인 모든 이들에게 경의와 사랑의 마음을 표합니다.

                                             

 

 

            법정에 가면 재판관은 의자에 앉아서

            진행되는 모든 과정을 지켜보며

            들려오는 모든 말들을 진지하게 경청합니다.

            그러고 나서 판결을 선포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 양심은 법정과 매우 닮아 있습니다.

 

            우리의 양심에서 법정은 우리의 일거수일투족(一擧手一投足)을 자세히 캐물으며

            잘한 일에는 미소를 보내고

            못한 일에는 눈살을 찌푸립니다.

 

            비록 사람들 앞에서는 말은 다 할 수 없었지만

            양심 앞에서는 우리가 잘못도 많았고 실수도 참 많았습니다.

 

            철두철미 정직하게 살고도 싶었지만 그렇지도 못했습니다.

            죄의 그림자는 항상 우리를 따라다녔고

            그때마다 양심은 피를 흘리며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양심이란 무엇일까요

            양심(良心)이란 사전에서는 어떤 행위에 대해 옳고 그름이나 선과 악을 구별하는 도덕적인 마음씨라고 하지만

            양심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은 분분(紛紛)하고 의미도 매우 다양합니다.

 

            우리 인간에게는 사물을 보게 하는 두 개의 눈이 있습니다.

            하나의 눈은 육체의 눈이고 다른 하나는 마음의 눈입니다.

 

            육체의 눈은 우리가 가야 할 방향과 해야 할 것을 보게 하고

            마음의 눈은 옳고 그름을 깨달으며 우리가 해야할 것과 해서는 안될 것을 판단하는 양심이라는 눈입니다.

 

            양심의 눈은 마치 우리를 올바른 방향으로 인도하는 말의 고삐와도 같습니다.

            우리가 그 고삐를 잡고 따라갈 때 우리는 안전하게 갈 수가 있을 것입니다.

 

            또한 양심은 우리들의 훌륭한 비서입니다.

            우리들의 비서는 우리의 모든 행동과 말, 생각, 감정 등을 기록하고

            그것이 옳은 것이든지 나쁜 것이든지 다 기록해 둡니다.

 

            또한 양심은 범인을 찾아내는 정보원처럼 우리가 저지른 잘못을 뉘우치게 만들고 반성하게 합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겁도 없이 죄를 짓고 자진 출두하여 자수를 하는 것도 바로 이러한 양심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보다도 중요한 것은 우리의 양심에는 하나의 다른 창(窓)이 있습니다.

            그 창으로 햇빛이 들어오며 그 창에서 세상을 아름답게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더욱 정확하고 아름답게 보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창에 반드시 투명한 유리로 끼워 넣어야 합니다.

            만일 창의 유리가 투명하지 못하고 붉은색이나 푸른색, 노란색이나 녹색으로 끼운다면

            세상은 모두 다 그런 색으로만 보일 것입니다.

            그리고 만일 창을 가리거나 닫아만 놓는다면 방안은 온통 어둠으로 가득 차게 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이러한 원리가 우리의 양심과도 같습니다.

            만일 우리가 세상을 더욱 아름답게 보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밝은 햇빛이 방 안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셔터를 걷어 올리고 창문은 깨끗하게 닦아야 할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친구나 이웃에게 잘못하여 고통으로 울고 있다면

            그를 찾아가 정중하게 사과하고 용서를 빌어야 할 것입니다.

 

            양심 안에서 세상을 바라볼 때 우리 사회는 지금도 싸움이 한창입니다.

            자동차는 많아지고 살기는 좋아졌다고 말하는데 우리의 답답함은 더욱 더 증가되고 있습니다.

 

            거기에다가 정치적인 상황은 우리를 더욱 숨막히게 하고 있습니다.

            밑도 끝도 없는 정치적인 싸움에 언론들은 싸움을 말리기는 커녕 싸움을 부추기며

            가짜 뉴스를 만들기도 하고 애매한 국민들은 피해만 보고 있습니다.

 

            특히나 이 모든 사건들에 기독교인들이 관계되어 있다는 것에 더욱더 배신감을 느낍니다.

            교회가 진실한 신앙고백없이 마구 세우고 마구 받아들인 결과 교회는 하나님의 섭리보다는 인간의 의지를

            하나님의 공의보다는 정치적인 성취를 중요시한 잘못에 우리는 분노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더욱이 이들을 지도 권징해야 할 교계 지도자들은 개독이라는 오명을 쓰고서도 자성하지 못하고

            오히려 그것이 핍박인냥 그 죄악에 참여한 꼴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것이 지난 날 군사독재 밑에서 민족상을 받고 충성 맹세를 한 약속이었다면 교회는 속히 그 곳에서 나와

            그들과 결별하고 예수께서 가신 그 길로 들어가 이웃들과 함께하며 가르치고 치료하여

            아름답고 정의로운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야 할 것입니다.

 

            양심은 오늘도 법정앞에 우리를 세워 놓고 항상 묻고 있습니다.

 

            당신은 어떻게 살아오셨습니까?

     

 

                                       

 

            가슴이 따스한 사람 해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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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아침 산책길에서

이미 개나리 꽃은 떨어지고 이제 막 나온 잎사귀에서

무언가 꿈틀거리고 있는 한 장면을 보았습니다.

 

드 모습이 너무나 신기하여 가까이 다가가서 살펴보니

그것은 분명히 털이 검게 달린 작은 벌레들이었습니다.

 

어떻게 해야할까

사실을 알려야할까

 

그러나 모두가 관심이 없고 냉담한 반응뿐이었습니다.

 

몇 일이 지나서 다시 그 곳에 가보니

나무는 앙상하게 뼈다귀만 남긴 채 말라가고 있었습니다.

 

 

 

 

 

 

 

 

 

 

 

 

 

 

 

어쩌면 이와 같은 삶이 우리의 모습은 아닐까요.

우리는 대개 작은 잘못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합니다.

 

우리는 종종 자신에게 반문하기를

"조그마한 실수인데 뭐...하면서

그 정도를 가지고 무엇이 문제가 되느냐"고 넘겨 버립니다.

 

그러나 그 작은 잘못은 우리의 양심에는 크게 가책이 안될 수도 있지만

결국 우리를 불행하게 만들고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우리에 대한 나쁜 인상을 심어 줄 수도 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작은 잘못이 큰 잘못보다도 위험한지 모릅니다.

큰 잘못은 남의 눈에 띄기가 쉽고 작은 구멍을 빠져나갈 수도 없지만

 

작은 잘못은 우리의 약점을 파고 들어가서 기밀처럼 잘도 빠져나가고

이제 막 영글어가는 우리의 열매들을 갉아먹고 우리의 영혼을 파멸시킬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마음의 정원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가 어떻게 해야 좀더 평화롭고

우리가 어떻게 해야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 수있을까요

 

 

 

 

우리는 아무리 작은 부정이나 작은 막말,

작은 거짓말이라도 조심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것이 비록 쉽게 분노하고 용서하지 않는 마음일 지라도

결코 용납되어서는 안됩니다.

 

우리의 사회에서 우리는 어떤 소년이 술에 취해 

도적질하고 욕하고 거짓말하고 살인까지 했다는 소리는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요

작은 호랑이도 호랑이 이고 작은 뱀도 뱀입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만일 주의하지 않는다면

그들이 먼저 우리를쓰러뜨리고 죽이고 말 것입니다.

 

 

가슴이 따스한 사람 해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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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땅에 평화는 올 것인가?

 

 

 

 

 

           요즈음 우리가 사는 주변에는 봄 날처럼 따스하고 인정있는 일은 보기 어렵고

 

           잔인하고 무서운 일들이 종종 일어나는 모습들을 볼 수있습니다.

 

 

           사람들의 마음도 점점 무감각해져서 메말라가고 있습니다.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는 복수의 원칙이 점점 더 인간의 마음속에 뿌리내리고 있습니다.

 

 

 

           이러한 적개심(敵愾心)을 일깨우는 것들이 돈을 위해서라면 사람의 목숨등은 파리처럼 여기고

           정치적인 목적을 위해서라면 역사적인 사법정의들도 부인하고

           5.18의 망언도 서슴치않는 사건들이 날마다 사회를 어지럽게 장식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건들은 암암리에 인간의 마음속에 복수심과 잔인함을 심어주고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남북한은 불행히도 한국 전쟁을 겪었기에 매일같이 안보의식을 강화하지않으면 안되었고

 

           계속되는 저들의 도발앞에 무서운 적개심과 보복을 다짐하고 있습니다.

 

           그 뿐만이 아니라 세계도처에서 일어나는 문제들역시 전쟁과 보복으로 일관된 적개심에 뿌리를 두고있습니다.

 

 

 

           이러한 역사 속에서 인간은 자연히 거기에 물들지 않을 수없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평화를 외쳐도 외치는 자신이 감정을 앞세우고 있는데 과연 이 땅에 평화는 까요?

 

 

 

 

                                                                                                                             임진각에서

 

 

 

 

 

           인간은 누구나 불안과 공포를 체험하며 이 땅에 평화가 오기만을 희망합니다.

 

 

           우리가 평화라고 말할 때 평화는 단순히 평화롭고 고요한 상태만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개인과 집단간의 화목과 친교의 상태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평화란 정치, 군사, 종교를 초월한 가정과 기업과 사회와,학교등 모든 것의 이상입니다.

 

 

           그러나 평화는 언제나 악의 도전으로 평화를 유지하기란 어렵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전략적인 측면에서만 문제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막강한 군대와 무기, 경제적인 성장에서 평화가 유지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땅에서 인권이 무시되정의가 사라지고 만다면 그 평화는 오래가지를 못합니다.

 

 

 

           전쟁에서의 승패는 군사적인 숫자나 우위에 있지 아니하고 경제력또한 평화와는 전혀 다릅니다.

 

           사람들의 마음이 일치되지 못하고 갈등이 지속될 때 그 경쟁은 패망하기도 쉽습니다.

 

 

           진정한 평화란 모든 사람과 관계가 유지되며 모든 근심과 불안이 제거될 때만이 가능합니다.

 

 

 

           우리가 평화, 평화통일을 날마다 주창하고 있지만 말로만 외쳐대는 그들에게 진정한 평화는 올까요?

 

           평화를 이루기 위해 끊임없는 갈등과 전쟁까지 불사하고 만다면 이는 진정한 평화가 아닙니다.

 

 

           우리 속담에 "미운 놈 떡 하나 더 주라"는 말이 있습니다.

 

           미운 놈에게 떡 하나를 더 주어서라도 원수를 친구로 만든다는 우리 선조들의 슬기입니다.

 

 

           평화의 지속을 위해 모든 사람들이 가져야 할 덕목가운데 하나가 화해입니다.

 

           화해란 적대 관계를 청산하고 우정의 관계를 지속하자는 변화를 의미합니다.

 

 

 

           남을 비난하기에 앞서 먼저 자신의 허물을 살펴보고

           단절된 관계를 새롭게 정립하는 것만이 진정한 평화를 기대할 수있습니다.

 

           안보의식만을 가지고 상대방을 비난하고 저주하는데만 시간을 보낼 것이 아니라
           어떻게 분열의 역사를 지양하고 화해를 이루어 갈 수 있을까를 연구해야 할 때입니다.

           과거에 가졌던 모든 적개심을 내려놓고

           새로운 평화의 시대를 향하여 모두가 힘있게 나서야 할 때입니다.

 

 

 

           가슴이 따스한 사람 해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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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YTN 영상 참조

 

 

              5.18 민주화 운동이 남긴 교훈

 

 

 

 

 

 

 

           신록의 계절 5월은 언제 보아도 새싹처럼 보드랍고 어머니의 가슴처럼 포근합니다.

           아름다운 공원에 햇빛이라도 비치면 풀 숲에 숨어 있던 도마뱀도 나와 숨바꼭질을 하자고 유혹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5월에는 어린이 날과 어버이 날이 있는 가정의 달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군사 정권이 짓 밟고 간 피 맺힌 달이기도 합니다.

 

           한국 역사는 군사 쿠데타로 이루어진 역사요,

           군사 정권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우리의 소중한 생명들을 짓 밟고 가 버렸습니다.

 

           오늘날의 인명 경시 풍조는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대한민국이 독립된 지 수십 주년이 지났지만 우리 사회는 아직도

           정치적인 억압과 경제적인 불균등으로 인해서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지식은 높아지고 경제적인 풍요도 많이 향상 되었지만

           불의한 뿌리들은 여전히 남아서 번성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러한 불의를 바라보며 탄식과 원망섞인 목소리로

           어서 속히 좋은 날이 오기만을 바라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기대와는 달리 역사가 우리에게 보여준 것은

           좀 고통스럽고 힘이 들더라도 참고 기다리라는 것입니다.

 

           매년 5월 21일은 우리 절기로 소만(小滿)이라고 합니다.

           이 날이 오면 모든 농촌에서는 본격적인 모내기가 시작됩니다.

 

           농사를 짓는 일은 옛부터  때를 놓치면 수확을 제대로 할 수 없습니다.

           농민들은 미리미리 준비하였다가 씨를 뿌릴 때가 되면 때를 놓치지 않고 씨를 뿌립니다.

 

           그것이 자라면 모를 내고 김매기를 하면서 추수 때를 기다립니다.

           아무리 급해도 추수 때가 되기 전에는 한톨도 미리 거둘 수는 없습니다.

           아무리 서둘러도 추수 때가 되기 까지는 기다릴 수밖에 없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의 삶도 농사와도 같은 것입니다.

           인간의 삶은 어쩌면 서두르는 것이 아니고 때를 맞추는데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때를 분별하지 못하고 나중에 가서 서두르게 됩니다.

 

           평소에 준비가 없는 사람은 갑자기 어려움에 직면할 때 무엇부터 해야할 지를 당황하게 됩니다.

           그러나 평소부터 준비를 꾸준히 해 온 사람은 침착하게 그 문제를 대처해 나갈 수 있습니다.

 

           인간의 욕심은 적극성을 주고 미래 지향적이라며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지나친 욕심이 문제입니다.

 

           욕심은 죄를 낳고 죄는 결국 탐욕으로 이어져 필경은 패가 망신하도록 되어져 있습니다.

           세상에는 지나친 탐욕으로 인해서 비참하게 된 이들이 너무도 많이 있습니다.

 

           바로 우리의 유신 시대가 그러했고 군사 쿠데타가 그러했습니다.

           그들은 항상 나라안에서 시위가 있을 때마다 저들은 모두 빨갱이라고 치부했고

           저들이 데모를 하면 북한이 기습해 올 지도 모른다며 국민들에게 불안감을 주었더랬습니다.

 

           광주에서 5.18이 일어난 지도 어느 덧 35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아직도 우리 사회안에는 광주 학살에 대한 진상이 완전하게 매듭된 것은 아닙니다.

 

           김영삼 대통령이 5.18특별법을 제정하며 자세히 조사하고 역사의 정통성을 확보하라고 말했지만

           그 날의 당사자는 지금도 반발 성명을 내놓으며 상호 이전 투구식 싸움만 계속될 뿐입니다.

 

           또한 지금도 사회 구석 구석에 남아있는 구세력들은 과거의 권위적인 자세를 반성하지 못하고서

           5.18특별법을 폐지 시키기 위해서 기를 쓰고 있습니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을 보면 거기에는 분명히 어떤 정치적인 목적이 숨어있습니다.

 

          돌이켜 보면 우리 사회에 나타난 모든 정치와 경제, 문화, 교육, 언론, 종교에 이르기까지

          성장 배경에는 하나같이 80년대 민주화의 봄을 짓밟고 간 신군부와의 밀접한 관계를 들 수 있습니다.

 

          그 동안 군사 정부는 온갖 변칙과 편법으로 우리의 상식을 심각하게 훼손하고 말았습니다.

 

          자기나 가족들의 생계를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가치관이 무너졌으며

          권력은 선출되는 것이 아니라 빼앗거나 돈으로 사야 한다는 사실...

 

          우리 사회를 통채로 병들게 한 총체적인 부정 부패와 권력 유착...

          힘 없는 서민들은 쉽게 넘어 질 수밖에 없는 허술한 환경 구조...

 

          정의로운 자들은 모욕을 당하고 양심있는 사람들은 바보 취급을 당하기가 쉽게 되어져 있습니다.

          그 뿐만이 아니라 이 세상은 우리가 이해할 수도 없는 모순된 현실들로 가득합니다.

 

          왜 악한 자들은 흥하고 선한 자들은 계속 실패만 하는지...

          왜 총명한 아이들은 꽃을 채 피우기도 전에 잘라져 나가야 하며

          왜 가족들은 가장이 필요할 때 그는 더 이상 이 세상에 없습니까?

 

          이러한 의문들은 인생의 여정에 널려 있는 엄청난 수수께끼들이며 이해하기도 힘든 문제들입니다.

          그리하여 많은 사람들이 고민 끝에 자신도 정의의 길을 버리고 불의의 길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겉으로 보기에는 아름답고 화려하게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실상을 살펴 보면 거기에는 온갖 불의로 가득한 복마전(殿)과도 같습니다.

          그 곳에는 강자들은 빼앗고 약자들은 빼앗기는 전쟁터와도 같은 곳입니다.

 

          실상이 이러한 데 어떻게 거기에 평안이 있고 우리의 미래가 있겠습니까?

          모두가 허상이요 신기루일 뿐입니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문제가 무엇인 줄 아십니까?

         그것은 남북이 진정으로 하나가 되지 못한 것입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정치에서 아예 고개를 돌려버린 일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사람들은 가만히 풀밭에 앉아 한가롭게 풀을 씹고 있는 동물처럼

       " 또 정치 이야기야, 세상에 그렇게도 할 일이 없느냐 "고 반문할 정도입니다.

 

         그러나 이대로는 안됩니다.

         어떠한 돌파구,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는 것은 모두의 바램이요 공감대입니다.

 

         누가 보아도 잘못한 정치인들이 개선장군처럼 등장해도 잘한 일이라고 박수를 보내주고

         의원들이 뇌물을 받고 나랏 예산이 줄줄이 새어 나가무관심한 사람들에게는 이야기가 될 턱이 없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차라리 아무 부담도 없고 자신들이 좋아하는 산이나 맛집, 예쁜 꽃 구경등으로

         기분을 달래면서 하루를 보내는 것이 더 나을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날이면 날마다 오르는 물가, 이제는 어린 꼬맹이들 조차도 다 알아버린 집값 문제,

         세상의 어두운 면, 정치의 비리와 부정 부패는 왜 생겼으며 어떻게 처리되고 있는 지

         우리는 더욱 더 관심을 가져야만 합니다.

 

         공허한 감정적인 주장보다는 나름대로의 논리나 이유로서 분명하게 자기 생각을 말하며

         비록 그 생각이 다수와 다르다고 할 지라도 얼마든지 대화를 통해서 실마리를 찾을 수도 있습니다.

 

         남의 일처럼 생각하지 말고 언젠가는 나도 저렇게 당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정치의식입니다.

 

         80년 봄 광주에서 일어난 불행한 사건들은 우리에게 있어서 너무도 큰 비극이었습니다.

         그 원인이 어디에서 나왔든지 중요한 것은 그 비극의 의미입니다.

 

         광주 시민의 명예를 회복하고 적절한 보상을 행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거기에 나타난 인간의 잔혹함과 불의와 야만성을 규탄하

         우리 속에 있는 이러한 모든 요소들을 청산하는 일입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고난을 당할 수록 증오심은 점점 더 깊어지게 마련입니다.

         우리는 아직도 일본에 대하여 깊은 증오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36년간의 나라 잃었던 그 아픔과 함께 한국 전쟁을 도발한 북한에 대한 적개심까지 겹쳐서

         우리의 가슴에는 증오심으로 퍼렇게 멍이 들어 있습니다.

 

         거기에다가 광주 학살같은 사건의 역사를 되풀이 하면서 그 증오심은 점점 더 높아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증오심과 적개심은 문제해결에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하고 오히려 장애만 될 뿐입니다.

 

         증오와 분노가 우리 속에 자리 잡고 있는 한 이 땅에 평화는 깃들일 수가 없습니다.

         상대방을 용서하고 관용을 베푸는 것은 자신뿐만이 아니라 서로에게도 새로운 활력소가 되어

         고난을 극복하는 원동력이 될 수가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 나라가 통일 되는 길은 하루 속히 우리가 가진 증오심을 버리고

         북한을 용서하고 도와주는 일입니다.

         광주의 피 맺힌 한을 푸는 길도 증오심을 버리고 상대방을 용서하며 서로가 화해하는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결코 실망하지 않는 것은 모든 사람이 다 불의를 행하는 것 같지만

         실상은 보다 많은 사람들이 의롭게 살기를 힘쓰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 역사의 주류는 아직도 민주주의에 있고 정의를 사랑하는 이들도 우리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소수를 제외하고는 여전히 건전하고 양심있는 국민들이 우리 사회를 지키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이며 기쁜일인지 모릅니다.

 

         오늘 비록 우리에게 고난과 어둠의 역사가 있고 불의가 놓여 있다고 할찌라도

         우리는 참고 견디며 부지런히 열매를 맺으면서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가슴이 따스한 사람 해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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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은 불의와 싸워야 할 때

 

 

 

 

 

 

 

             밤이 지나면 아침이 밝아오고 고난이 가면 기쁨이 찾아 오듯이

             다가 오는 5월은 얼마나 맑고 밝고 푸르른 지 벌써부터 5월이 기다려지고

             4월은 우리에게는 너무나도 가혹한 한 달이었습니다.

 

             최근 잇달아 터진 불미스러운 일들을 보면 우선 경남 지사가 무상급식을 전면 중단하였고

             방산 비리가 불거지기 시작하더니 성완종 자살 사건, 정치인들의 뇌물사건과 진실 은폐,

             그리고 이완구 국무총리가 사임하는 등 충격적인 사건들 속에서

             우리는 부도덕한 권력의 한 단면을 보고 진정 이 나라의 장래를 걱정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특히 이 모든 사건들에 기독교인들이 연루되어 있다는 사실에 우리는 더욱 슬픔을 참을 수가 없습니다.

             교회는 진실한 신앙 고백없이 마구 받고 마구 세운 신자들로 대형교회를 이루고 있는 상황에서

             교회들의 과오는 무엇인지 지적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섭리보다는 인간의 의지를, 하나님의 공의보다는 인간의 성취를 중요시한 잘못에 빠져

             이 사회를 향한 예언자적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고 오히려 그 죄악에 함께 동참한 꼴이 되고 말았습니다.

 

             우리의 몸에 병균이 침투하면 한 곳만 아픈 것이 아니라 몸 전체가 열이 나면서 앓게 되는 것처럼

             우리는 지금 우리 몸에 스며든 병균 때문에 열이 나면서 몸살을 앓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몸살을 앓기는 해도 죽을 상황에 이른 것은 아닙니다.

             불의에 항거하는 모든 사람들이 힘을 모아 불의를 몰아낼 때

             비로소 이 사회는 다시 정상적인 상태로 돌아가게 될 것입니다.

             그 때까지 우리는 이러한 불의에 맞서 싸우지 않으면 안될 것입니다.

 

             우리 나라에는 교회들도 참 많이 있고 언론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하는 일이 무엇이냐고 추궁할 때 그들은 무엇이라고 대답할까요?

 

             불의가 마구 날 뛸 때 구경만 하고 있었다고 대답할까요?

             차라리 현실을 외면하고 잊어버릴 수 있도록 사람들을 딴 곳으로 데려갔다고 대답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들은 이 환각의 늪에서 빠져 나와 눈을 똑바로 뜨고 현실을 직시해야 할 것입니다.

             피하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이 모든 불의와 거짓들은 우리의 책임입니다.

 

             우리가 막아야 할 독소입니다. 죽을 힘을 다해 이 불의와 싸워야 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 나라를 파멸에서 건져내야 할 것입니다.

 

 

 

          

          

 

 

 

            

             지금은 위기의 때입니다.

             위기의 때는 언제 어느 때에 불의가 침입해 올런지는 아무도 알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잠시라도 방심하면 불의는 우리를 기습할 수도 있습니다.

 

             사실 우리가 이 사회속에서 여러 모양으로 날 뛰는 불의를 감시하며 그들과 싸운다는 것은

             모두를 피곤하게 만드는 일입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그런 일에 신경쓰기 보다는 차라리 안락하고 즐거운 일에 더 관심을 갖고

             싶어하는 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시끄러운 소리보다는 좀더 조용하게 살고 싶어합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날마다 하는 사람들의 시위에 짜증을 내고

             시민 단체들이 정부를 향해 아무리 비난과 성명을 발표해도 자신들의 일만 아니라면 적당히 눈을 감고

             거부감을 보이지는 지도 모릅니다.

 

             이 모두가 군사 정권에서 부터 시작된 일이기에 사람들은 이제는 신물이 날 정도로

             지긋 지긋한 일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마치 겨울 등반에서 조난을 당하여 그만 쉬고 싶다며 잠을 자는 것과도 같습니다.

             오늘의 상황에서 우리가 잠을 자고 있으면 그것은 곧 파멸을 뜻하는 것입니다.

 

             드디어 4.29 재보선이 내일로 다가왔습니다.

             누구를 선택하든지 신중히 하십시오. 그리고 반드시 투표를 하십시오.

 

             성경에 보면 " 하나님은 정의를 사랑하며 불의의 강탈을 미워한다"(사61:8)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불의가 사라진 후에야 이 땅에는 진정한 평화가 오고 그 때에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며

             모두가 양심의 가책없이 살 수가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항상 깨어 있으면 불의가 이 땅에 다시는 발을 못 붙이고 영원히 사라지고 말 것입니다.

             그 때에 우리들은 비로소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 수가 있을 것입니다.

 

 

 

 

             가슴이 따스한 사람 해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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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YTN 영상 참조

 

                당신의 애국은 무엇입니까?

 

 

 

 

 

             우리는 모두 같은 하늘, 같은 나라에서 살면서

             같은 말을 쓰면서 살아갑니다.

 

             그리하여 우리 조국이 우리에게 더욱 친근하게 느껴지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입니다.

             우리 조국은 다른 어느 나라가 줄 수없는 소중한 기억들을 우리에게 주기 때문입니다.

 

             과거에는 국방이니 안보니 할 때에 그것은 군인들이 맡은 임무라고 하였으나

             오늘날의 나라 문제는 그들만의 일이 아니라 국민 전체의 일로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애국심이란 말은 그래서 생겨난 말입니다.

             애국심(愛國心)이란 자신의 나라에 대한 사랑을 말합니다.

 

             그런데 근래에 들어와서 애국심은 다른 나라를 배척한다는 의미로 변질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그와 같은 애국심의 저변에는 다른 나라에 대한 증오가 깔려 있습니다.

 

             자기 나라, 자기 민족이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들은 누구나가 같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이기적인 마음의 총 결집체가 애국이라는 구호로 나타납니다.

 

             다른 나라, 다른 민족은 안중에 없이 어떻든지 자기 나라, 자기 민족이 잘 되는 것으로 만족합니다.

             그리하여 모든 나라, 모든 민족이 애국을 부르 짖으면 부르 짖을 수록 나라와 민족 사이의 갈등은

             더욱 커지게 마련입니다.

 

             때때로 사람들은 신앙심과 애국심이 서로 공존할 수 있는 지를 물어 봅니다.

             만일 당신이 진실한 그리스도인이라면 모든 인류를 사랑해야 할 것입니다.

 

             인종적 차별이나 증오는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고 가르치시는 그분께도 큰 죄가 됩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 어느 누구보다도 가장 진실한 애국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예수는 진정한 애국자였습니다.

             예수께서는 갈릴리의 언덕과 게네사렛 호숫가를 거닐면서

             로마의 일곱 언덕과 티베르 강의 금빛 물결보다도 더욱 친근하게 느끼셨을 것입니다.

 

             당신이 그토록 사랑하던 예루살렘이 멸망하게 되었을 때는 눈물까지 다 흘리셨습니다.

             그러나 그의 마음을 가장 아프게 만든 것은 예루살렘의 멸망 그 자체보다도 백성들의 죄였습니다.

 

             그런가 하면 우리의 기억 속에 지금도 남아 있는 고 이수현(26)이라는 청년이 있습니다.

             그는 지난 2001년 1월 26일에 개인주의가 팽배한 일본에서 술에 취해 선로에 떨어진 일본인을 구하려다

             전동차에 치여 자신은 그만 숨지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그에 대해서 잘 모르지만 일본 사회는 크게 감동을 받았고

             아직도 그의 이름을 기억하는 일본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벌써 10년도 훨씬 넘었지만 일본 도쿄 신오쿠보 에서는 해마다 1월 26일이면 추모 행사를 갖고

             그의 고귀한 희생을 기리면서 일본인들도 배워야 할 소중한 기회로 삼는다고 합니다.

 

             이와 같이 다른 나라에 가서 한국인의 정신을 보여준 것은 우리의 욘사마나 소녀시대도 아니었습니다.

             우리의 삼성이나 현대나 대기업은 더더구나 아닙니다. 일찌기 인류애를 품었던 한국의 청년이었습니다.

 

             당신은 군대 안에서 군인들이 모두 똑같은 보조로 행진곡에 발 맞추며 같은 임무를 띠고

             행진하는 광경을 보았습니까?

 

             군인들이 함께 어울려 어깨총을 하고서 힘차게 무대 앞을 지나가고 있으면

             우리의 가슴에도 저절로 전율이 다 느껴질 정도입니다.

 

             군인은 명령에 살고 명령에 죽는 것이 바로 군대입니다.

             사회는 자기가 힘들면 그만 두면 되지만

             군대는 아무리 참기 힘들고 괴로워도 꾹 참고 해야만 하는 것이 군인입니다.

 

             그들은 모두가 한결같이 애국심으로 불타고 있습니다.

             그러나 애국심이라는 것은 사실 만져 볼 수도 없고 보이지도 않습니다.

 

             그리하여 국가는 군대 안에 기(旗)를 세워 놓고 군인들에게 애국심을 심어 주며 훈련시키고 있습니다.

             군인들은 그 깃발을 바라보며 국가에 대한 의무감과 책임감을 느끼는 것입니다.

             만일에 그 깃발을 향해 경의를 나타내지 않는다면 국가에 대한 모독 행위로 간주될 수도 있습니다.

 

             또한 법관이 입는 법의(法衣)도 이와 비숫한 목적을 갖고 있습니다.

             그 법의는 법관에게 부여된 눈에 보이지 않는 권위를 나타내기도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에서 잊지 말아야 할 중요한 사실 한 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진정한 애국심은 어떤 억지나 강제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만일에 군인이나 법관이 잘못된 가치관을 갖고 있다면 큰 혼란이 일어나고 말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사람이 잘못된 신앙을 갖게 되면 그 신앙이 주는 구원의 의미만이 아니라

             여러가지 영적인 의미들이 미신적인 것으로 전락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성경을 항상 가지고 다닙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도무지 성경을 읽지도 않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는 성경을 항상 가지고 다니면서 하나님이 자기를 지켜 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신앙이 아니라 성경에 대한 미신입니다.

 

             또 어떤 사람은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구하기 보다는 자기가 원하는 바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기도를 수단화 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 역시도 그릇된 신앙인들과 별 차이가 없습니다.

             내용이 빠져버린 애국심, 신앙심들은 모두가 헛된 미신과도 같은 것입니다.

 

             잘못된 애국주의는 이 사회를 질식시키고 정치와 문화에도 큰 해가 됩니다.

             지난 몇 십년 동안 우리는 남과 북으로 나누어서 이념 대결로 얼마나 비참했는지 모릅니다.

 

             연평도에는 포탄이 떨어졌는가 하면 남북 대화는 모두 다 중단되었으며

             급기야는 통진당이 해체되는 재판까지도 우리는 목격하였습니다.

 

             또한 이러한 애국심은 군사들의 합창이나 방산 비리같은 것을 자꾸 만들어 낼 수는 있을 지 모르지만

             위대한 작가는 만들어 내지 못합니다.

 

             독일 제국이 군국 주의에 빠졌을 때 그 나라는 위대한 작가를 단 한 명도 배출하지 못했습니다.

             가장 숭고한 문학의 본질은 온 세계를 하나로 여기고 온 세계인들을 한 가족처럼 여기는 세계주의인데

             우리의 문학은 호전적인 정신을 너무 지나치게 찬양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러한 나라에 무슨 위대한 작가가 나올 것이며 노벨문학상이 나오겠습니까?

             사회가 아무리 시끄럽고 불의가 만연해도 원망하는 소리만 들려올 뿐

             지성인들의 목소리는 하나도 들려오지도 않습니다.

 

              " 북한을 찬양하는 놈들은 모조리 잡아다가 구속시켜야 해...

                너희같은 종북 주의자들 때문에 이 나라가 요 모양 요 꼴이지..."

 

              " 저거 바보 아냐? 미친 거 아냐? 자기는 죽으면서 도와 주긴 왜 도와줘...

                일본 사람이 우리에게 어떻게 했는데..."

 

            그러나 방법들이 서로 다를뿐이지 어느 사전에 종북 주의자가 따로 있으며

            어느 법에 자기만이 옳다고 하는 말이 어디있습니까?

 

            그렇다면 이와 마찬가지로 저들 또한 아니꼽고 더럽고 매스껍고 치사하고 유치한

            아더매치유 같은 행동에는 과연 문제가 없을까요? 그것은 그것이고 이것은 이것입니다. 

 

            우리 속담에 " 도둑이 매 들고 나선다, 방귀 뀐 놈이 되레 성낸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들은 모두가 파렴치한 행동을 보면서 꾸짖는 속담입니다.

 

            아름다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부정을 고발하고 파헤치는 사람들에게 오히려 협박하는 나라...

            소중한 자식들을 애국하라고 군대에 보냈더니 성폭행이나 당하고 구타를 당해서 죽어서 돌아오는 군대...

 

            전 국민이 보는 인사 청문회에서 자신들의 권력욕을 위해서 공공연히 지역감정을 부추기는 정치인들...

            세월호의 참사 속에서 추모 집회를 향해 물대포를 쏘면서 거침없이 캡사이신을 뿌리는 나라...

 

            당신의 애국은 무엇입니까?

            당신의 애국은 무엇이기에 저리도 같은 국민들끼리 싸우며 무슨 희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일까요?

 

            요즘은 해외 여행을 다녀오는 사람들이 부쩍 많아졌습니다.

            어느 나라, 어느 곳을 가든지 한국인들을 만날 수 있고 비행기가 가는 곳이라면 어떤 오지에서도

            한국인들을 볼 수있습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오늘날 전 세계의 관광지에서 무 질서와 탈법을 야기하는 관광객들은

            거의가 한국인들입니다.

 

            어느 책에서 본 이야기입니다.

            어떤 사람이 뉴질랜드의 버스비가 굉장히 비싸다가 생각했는데 어느 날 한 장면을 목격한 뒤로부터는

            오히려 버스비가 싸다가 생각되었다는 것입니다.

 

            어느 날 그가 탄 버스가 정류장에 섰습니다.

            뉴질랜드는 버스의 도착 시간과 출발 시간이 다 정해져 있습니다.

 

            그런데 출발 시간이 되었는데도 그 버스가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기사가 잊어버렸나"해서 기사를 바라보니 그는 유리창 너머로 무언가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유심히 살펴보니 저 멀리서 한 노인이 저벅저벅 걸어오고 있었습니다.

            버스 기사는 그 노인이 자신의 버스를 타러 온다는 것을 알았던 것입니다.

 

            버스 기사는 노인이 버스를 타고 나서도 좌석에 안전하게 앉았는지 확인한 후에서야 출발했습니다.

            이 광경을 모두 보고 난 그 사람은 버스비를 충분히 낼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그가 늙었을 때도 자신 또한 똑같은 대우를 받을 것을 확인했기 때문입니다.

 

            애국자는 자기 나라만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나라도 사랑할 줄 알아야 하며 그 나라 사람들의 문화나 복지에도 존중해야 합니다.

 

            자신의 나라에서도 한 번도 불의와 싸워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

            어떻게 남의 나라와 남의 민족을 존중할 수 있을까요?

 

            흔히 가정을 국가의 축소판이라고도 말합니다.

            국가는 가정의 화목과 행복을 위해서 도와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국가가 붕괴하는 이유는 가정들이 허약하기 때문이고

            국가가 발전하는 것은 국민들이 가정에 충실한데서 오는 것입니다.

 

            그들은 보좌에 앉아있는 대통령에서 부터 말단에 있는 부하에 이르기까지

            가정에 대한 의무를 충실히 다해왔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가정에서 부터 시작됩니다.

            그러나 가정에서 끝나고 마는 사랑은 진정한 사랑이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애국자는 조국을 옹호하기 위해서 노력을 아끼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만일 자신의 조국이 위태롭게 된다면 조국을 위하여 어떤 희생도 감수할 것입니다.

 

            그러나 진정한 애국자들은 결코 다른 나라의 증오나 미움을 유발시키는 행동은 하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바라고 있는 것은 모든 나라가 서로 사랑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가짜 애국자들은 지금도 자기 나라가 다른 나라의 문제에 대해 어떻게 관여 하든지

            절대로 비판해서는 안된다고 말합니다.

 

            또한 자기 조국에 대한 잘못을 지적하는 것 만큼이나 힘들고 어려운 때도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 그와 같이 어렵고 막중한 일을 맡고 있는 사람들은 과연 몇이나 될까요?

 

            어떤 의미에서 우리는 무슨 사명이 없었다면 이 땅에 태어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는 무엇보다도 이 나라의 문화를 사랑하고 민족을 사랑하고 자신에게 주어진 의무를 다해야 합니다.

 

            이 나라의 법과 질서를 존중하고 작은 교통 신호라 할 지라도 철저하게 지켜야 할 것입니다.

            불의와 당당하게 맞설 수있는 정의로운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어떤 경우라도 우리의 사랑이 너무 한 곳에만 바라보아서는 안됩니다.

 

            백범 김구 선생은 " 할 일을 찾는 백성은 흥하고 원망을 찾는 백성은 망한다"고 했습니다.

            그는 감옥에서도 창을 닦고 정부 종합 청사 뜰의 잔디를 깎으면 지금 죽어도 한이 없겠다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우리 조국이 위기가 오면 유대인들의 심정처럼 세계 어느 곳에 있든지

            일제히 조국으로 달려와 남녀노소 할 것없이 나라를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행동이 너무 지나쳐서 전쟁을 유발시켜서는 안될 것입니다.

            우리들은 우리 나라의 무역이나 경제보다도 정의로운 나라가 되기를 희망하

            우리 민족이 도덕이나 지적으로도 고양(高揚)되어

            어디에 가서든지 전혀 부끄럽지 않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가슴이 따스한 사람 해피

 

          

 

 

 

                                                            아! 그 이름 삼각산

 

 

 

 

 

 

 

                  지금도 서울 연희동에서 홍제동 방향으로 문화촌을 지나서 세검정을 통과하고 나면

                  저 멀리로 북악 터널이 나오고 그 위로는 경관도 매우 빼어난 북한산이 보입니다.

 

                  예로부터 북한산은 백운대를 가운데로 북쪽에는 인수봉, 남쪽에는 만경대가 자리하여

                  내게는 삼각산이라는 말이 더 잘 어울립니다.

 

                  내가 신학생이던 시절, 그 때는 입장료도 없었고

                  내가 고민이 있을 때마다 종종 올라가 기도를 하던 삼각산...

 

                  지금은 목회자가 다 된 김신조 목사는 그 옛날 북한의 암살 지령을 받고 청와대를 습격하기 위해

                  이 산을 오르려다 경찰의 불심 검문을 받고 투항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그의 간증에서 " 왜 그렇게 이 산에는 개구리들이 많이 있느냐?"고 궁금하기도 했더랍니다.

                  그도 그럴 것이 교회에 다니는 사람치고 삼각산을 모르고서는

                  기도한다는 명함조차도 아예 꺼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매주 화요일, 하루 해가 끝나고 밤이 오면 우리는 동료들과 아무리 피곤하고 과제가 많이 밀렸어도

                  랜턴을 들고 어김없이 이 산에 모였더랬습니다.

 

                  나는 기도 모임의 회장을 맡고 남학생들은 여학생들을 힘있게 끌어 주며 랜턴의 불을 밝히고

                  한 줄로 길게 늘어 서서 정상까지 올라가는 모습은 너무도 아름다왔습니다.

 

                  형제봉은 능력봉이라고 해서 정상까지 올라서면 서울시가 한 눈에 다 내려다 보이고

                  어떤 날은 저 멀리 인천까지도 내려다 보입니다.

 

                  멀리서 불어오는 강한 바람에 우리의 지친 몸은 저 멀리 날려 버리고

                  우리는 어느 새 한 마리의 새가 되어 희망의 노래를 불렀습니다.

 

                  어떤 이들은 머리 위에 김장용 비닐봉투를 덮어쓰고

                  어떤 이들은 바위틈으로 숨어서 밤새도록 기도를 했습니다.

 

                  오소롯이 피어나는 그리움, 주님께 바쳐지는 영가

                  휘날리는 입김 속에 저 마다의 절규가 터졌습니다.

 

                  주여! 주여! 주여!

                  부르면 부를 수록 그것은 솟아나고 어둠의 그림자도 저 멀리 사라집니다.

 

                  따끈한 커피라도 있었으면...

                  그러나 그것은 마음뿐이었고 우리는 흐르는 물줄기에 목을 적셔야만 했습니다.

 

                  서서히 동이 터 오면 우리들도 하나 둘씩 산 아래로 내려가서

                  예능인 교회에서 쉬었다가 첫 차에 올라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아! 내가 아내와 함께 기도를 하며 힘을 얻던 삼각산...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이 산을 찾아 마음껏 공기를 들이 마시고 행복을 얻어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사람들은 무슨 고민이 많아 그렇게도 괴로워 하며

                  그렇게도 허무하게 목숨을 끊는단 말입니까?

 

                  삼각산은 오늘도 말 없이 우리를 내려다 보며 이렇게 꾸짖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인간의 생명(生命)은 살아가라는 하늘의 명령이고 자살의 반대는 살자라고 말입니다.

                            

 

                                                                                                                              이 그림은 메일 속의 YTN 사진입니다.

  

    사람은 누구나가 죽음이 다가오면 진실해 지기 마련입니다.

    좀 더 솔직해 지고 모든 주변을 정리하며 세상에 대한 미련도 갖지 않습니다.

 

    지난 4월 9일 3시 32분쯤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북한산 형제봉 매표소 부근에서 숨진채 발견되었습니다.

    이번 그의 자살이 큰 충격을 주는것은 그가 단지 유명해서가 아니라

    자원외교 비리 의혹으로 검찰수사를 받다가 강한 의혹만 남긴 채 스스로 목숨을 끊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인터뷰를 통해 검찰의 무리한 수사에 따라 억울함을 토로하며

   "자기 하나가 희생됨으로 다른 사람이 더 희생되지 않도록 하려고 한다"면서

    맑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언론에게 보도해 줄 것을 간곡히 당부했습니다.

 

    이번 그의 자살을 두고 자기신변의 두려움이나 고통에 따른 괴로움의 표출이라고 할 수있습니다.

    그렇다면 죽음만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줄 수있을까요?

 

    죽음은 단지 자신과의 마침이지 자신을 둘러싼 기대열망에 자살만이 능사인가라는 가치판단이 따릅니다.

    죽음에 맞서 그 죽음을 선택하는 것은 어쩌면 용기있는 행동일 것같지만

 

    그러나 죽음보다 살아갈 일이 더욱 더 무섭고 두려워질 때

    어떻게든지 살아서 대처해 가는 것이 더욱 더 용기있는 행동일지도 모릅니다.

 

    강 가옆에 사는 사람이 어찌 물의 귀중함을 알겠습니까?

    그러나 사막을 여행하는 사람들에게 물이란 사막의 오하시스요, 한 줄기 생명수입니다.

 

    얼마나 견디기 힘들었으면...하며 동정을 보내기도 하고 그래도 자살만은 안된다고 말해 보지만

    이미 작정을 하고 목숨을 끊어버린 사람에게 그 말이 다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왜 자살이 어리석은 것일까요?

    열심히 살지못한 순간의 어리석음 때문입니다.

 

    열심히 사십시요.

    그것도 인간의 아름다운 사명(使命)입니다.

 

 

 

   가슴이 따스한 사람 해피

 

 

 

 

 

 

 

                                                                                                                                              <고창의 청보리밭 축제에서>

 

                                            여론! 얼마나 믿으십니까?

 

 

 

 

 

 

 

             봄 내음이 물씬 풍겨나는 오후에  

             당신은 넓은 들로 나가평화롭게 자라고 있는 보리밭을 보았습니까?

 

             그 모습은 마치 우리의 어린 시절에 어머니의 품 속같이 넓고 포근하며

             그 줄기는 곧고 속은 비었는데 아담한 키가 어쩌면 그렇게도 사랑스러운지

             마음을 잠시 내려놓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보리밭을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나의 어릴 적 할아버지께서

             내가 시골에 놀러가면 마당 한 가운데에 보리를 따다가 구워서는 내게도 주셨더랬습니다.

 

             그 맛이 어찌나 달콤하고 구수하던지 얼굴이 새카맣게 변한 줄도 모르고 잘도 먹었더랬습니다.

             지금도 아련히 추억으로만 남아 있는 나의 포근한 보리밭,

 

             보리밭은 과연 무엇입니까?

             진리는 항상 그 안에 감추어져 있고 거짓은 보이는 쭉정이와도 같습니다.

 

             우리는 진리를 알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만 합니다.

             우리는 어떠한 추측이나 부분적인 사실만으로 그것이 진리인냥 과장해서는 안됩니다.

             겉 모습이 화려하면 할 수록 생생한 표현력도 구경꾼들의 환심을 유도하는데 쓰여서는 안됩니다.

 

             오늘날처럼 온갖 거짓과 불신이 판치는 세상에서 진리와 진실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 법입니다.

 

             진실이란 사실에의 일치 즉 사실을 실제있는 그대로 보이는 것을 말합니다.

             세상의 모든 사물과 법칙에는 우리가 진리라고 부르는 어떤 실재(實在)가 있습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사고가 이 실재에 일치될 때 우리는 곧 진리를 이해한 것이며

             우리 자신이 실재에 일치될 때 우리는 진실하다는 말을 듣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의 사고가 이 실재에 일치하지 않을 때 우리는 사고에 있어서 오류(誤謬)를 범한 것이고

             그 오류로 인하여 우리는 많은 피해를 입게 됩니다.

 

             이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나라와 그 사회의 여론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사회의 전체적인 여론은 그 사회를 구성하는 개인이집단에 대한 여론이 어떻게 형성되느냐에 따라서 

             크게 영향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개인이나 집단에 대한 오류는 사회의 전체적인 여론에도 크게 영향을 받고

             그 개인이나 집단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양심과 판단을 흐리게 하여 모든 국민들에게까지

             영향을 받는 것입니다.

 

             여론(輿論)이란 결코 진실을 밝혀주는 기준이 될 수 없습니다.

             즉 여론은 그 성격상 대부분이 수미일관(首尾一貫)하지 못하고 모순적이며 결정을 내리는 데 있어서도

             신중하지 못합니다.

 

             또한 여론은 너무 충동적이어서 바람에 요동치는 보리밭과 같이 모든 머리가 한 쪽으로 쏠려 있다가도

             일단 다른 방향으로 바람이 불면 이내 그 모든 머리들도 다른 방향으로 마음을 바꾸어 버립다.

             이처럼 여론은 종종 성급하고 심지어는 왜곡되어 있으며 때로는 연인들의 사랑처럼 변심도 냉정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론은 우리에게 너무나도 친숙한 법정입니다.

             우리 사회는 지금 여론이라는 법정에서 사람을 세워 놓고 마구 심판을 하고 우리에게도 처벌을 내립니다.

 

             또한 여론의 법정은 그 재판권이 누구에게나 널려있어서 언제 어디서나 그 소리가 그치는 법이 없습니다.

             여론의 법정이 가지고 있는 이러한 성격 때문에 그 법정에서의 심판은

             그 나라와 사회 나아가 우리의 삶까지도 크게 영향을 미치기도 하는 것입니다.

 

             여론의 법정에서 특히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중상모략입니다.

             중상모략(中傷謀略)은 남에게 해를 주기 위해 명예를 더럽히고 고의적으로 하는 거짓말을 포함합니다.

 

             그러나 고의적인 거짓말이 아니더라도 모든 형태의 계획적인 거짓 해명과 남의 환심을 사려는 행위,

             이유없이 내 뱉는 막말이나 비난, 말해야 할 때 말하지 않는 침묵등도 중상모략이라고 할 수있습니다.

 

             또한 이와는 다르게 나쁜 소문을 퍼뜨리는 일 역시 중상모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소문이 그에게 불명예를 야기시키게 된다면 비록 그 소문이 사실일 지라도

             퍼뜨려서는 안됩니다.

 

             여론은 건전할 때도 있지만 때로는 그 수준이 너무도 저급할 때가 많습니다.

             여론을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그 모습이나 절차들은 너무나도 중요합니다.

 

             여론에 응답해 준 사람들이 지극히 소수라면 과연 그것을 여론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세상에 어떤 나라가은 인구 가운데에 0.1%도 채 못 되는 것들을 가지고 여론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차라리 자기만이 알고 있다거나 자기의 뜻대로 몰아가는 비밀같은 것이라고 밖에는 볼 수가 없습니다.

 

             여론은 우리에게 너무나 불완전하고 잘못된 행동을 요구할 수도 있습니다.

             또한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힘 있는 세력들이 모여 여론을 조작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여론의 법정과는 달리 우리의 법정에서는 우리에게 항상 진실만을 말하라고 이야기합니다.

 

             우리가 진실하지 않은데 어떻게 우리의 증거가 진실할 수 있을까요?

             우리가 진실한데 누가 우리의 증거를 믿어주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진실에 대해 얼버무려서도 안되고 마음 속에 감추어서도 안되며 과장해서도 안됩니다.

             또한 선의의 거짓말이나 진실을 위한 어떠한 거짓말도 해서는 안됩니다.

 

             오직 우리는 용기있게 참여하고 진실만을 말하며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가슴이 따스한 사람 해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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