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이 떠 오르면 폰 하나 손에 들고 전국 어디라도 떠나지요.

 

우리는 마치 갓 피어난 꽃들이

아름다움과 향기를 뽐듯이 해를 쫒아 다니며

새들처럼 구름이 걷히고 나면 부푼 마음에 콧 노래를 부른다.

 

햇빛이 우리에게 미소를짓고 우리를 안아 줄 때면

벌과 나비도 질투하며 춤을 추고

 

 

멀리 있는 것 같으면서도 가까이서

숨어 있는 것 같으면서도 살며시 나타나고

 

 

위엄이 있는 것 같으면서도 다정하고

꽃을 피울 때는 온유하고 부드럽게

광대하면서도 관대하다.

 

우리가 화단에 꽃을 심어 놓으면

이상하게도 그 옆에는 그와 비슷한 잡초가 자라난다.

 

우리는 하나의 이름은 꽃이라고 부르고

하나의 이름은 잡초라고 말하지만

햇빛은 모두에게 차별하지 않는다.

 

햇빛은 엄마인가 보다.

내가 놀 때 어머니는 밥먹으라고 소리치고

내가 보고 싶어 달려가면 다 내어 주신다.

 

 

가슴이 따스한 사람 해피

 

 

 

 

행주산성에서 ... 저 멀리 하늘공원이 보이네요^^

 

학창 시절 수업이 끝나면 기차표를 끊고서 달려가던 곳,    지금은 논과 밭이 바뀌어서 한강이 되었습니다. 

 

개량종 뜰보리예요. 부천 푸른 수목원에서...

 

 

 

 

양수리 두물 머리예요^^ 그런데 사람들은 사진만 찍고 그냥 돌아가네요^^

 

꽃 길을 따라 콧 노래를 부르며 한참이나 걸었습니다^^

 

구름이 너무 좋아서 잠시 쉬었어요^^

 

 

 

친구는 만들기 나름이지요^^ 늦게서야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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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의롭고 양심적인 모든 이들에게 경의와 사랑의 마음을 표합니다.

                                             

 

 

            법정에 가면 재판관은 의자에 앉아서

            진행되는 모든 과정을 지켜보며

            들려오는 모든 말들을 진지하게 경청합니다.

            그러고 나서 판결을 선포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 양심은 법정과 매우 닮아 있습니다.

 

            우리의 양심에서 법정은 우리의 일거수일투족(一擧手一投足)을 자세히 캐물으며

            잘한 일에는 미소를 보내고

            못한 일에는 눈살을 찌푸립니다.

 

            비록 사람들 앞에서는 말은 다 할 수 없었지만

            양심 앞에서는 우리가 잘못도 많았고 실수도 참 많았습니다.

 

            철두철미 정직하게 살고도 싶었지만 그렇지도 못했습니다.

            죄의 그림자는 항상 우리를 따라다녔고

            그때마다 양심은 피를 흘리며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양심이란 무엇일까요

            양심(良心)이란 사전에서는 어떤 행위에 대해 옳고 그름이나 선과 악을 구별하는 도덕적인 마음씨라고 하지만

            양심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은 분분(紛紛)하고 의미도 매우 다양합니다.

 

            우리 인간에게는 사물을 보게 하는 두 개의 눈이 있습니다.

            하나의 눈은 육체의 눈이고 다른 하나는 마음의 눈입니다.

 

            육체의 눈은 우리가 가야 할 방향과 해야 할 것을 보게 하고

            마음의 눈은 옳고 그름을 깨달으며 우리가 해야할 것과 해서는 안될 것을 판단하는 양심이라는 눈입니다.

 

            양심의 눈은 마치 우리를 올바른 방향으로 인도하는 말의 고삐와도 같습니다.

            우리가 그 고삐를 잡고 따라갈 때 우리는 안전하게 갈 수가 있을 것입니다.

 

            또한 양심은 우리들의 훌륭한 비서입니다.

            우리들의 비서는 우리의 모든 행동과 말, 생각, 감정 등을 기록하고

            그것이 옳은 것이든지 나쁜 것이든지 다 기록해 둡니다.

 

            또한 양심은 범인을 찾아내는 정보원처럼 우리가 저지른 잘못을 뉘우치게 만들고 반성하게 합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겁도 없이 죄를 짓고 자진 출두하여 자수를 하는 것도 바로 이러한 양심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보다도 중요한 것은 우리의 양심에는 하나의 다른 창(窓)이 있습니다.

            그 창으로 햇빛이 들어오며 그 창에서 세상을 아름답게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더욱 정확하고 아름답게 보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창에 반드시 투명한 유리로 끼워 넣어야 합니다.

            만일 창의 유리가 투명하지 못하고 붉은색이나 푸른색, 노란색이나 녹색으로 끼운다면

            세상은 모두 다 그런 색으로만 보일 것입니다.

            그리고 만일 창을 가리거나 닫아만 놓는다면 방안은 온통 어둠으로 가득 차게 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이러한 원리가 우리의 양심과도 같습니다.

            만일 우리가 세상을 더욱 아름답게 보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밝은 햇빛이 방 안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셔터를 걷어 올리고 창문은 깨끗하게 닦아야 할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친구나 이웃에게 잘못하여 고통으로 울고 있다면

            그를 찾아가 정중하게 사과하고 용서를 빌어야 할 것입니다.

 

            양심 안에서 세상을 바라볼 때 우리 사회는 지금도 싸움이 한창입니다.

            자동차는 많아지고 살기는 좋아졌다고 말하는데 우리의 답답함은 더욱 더 증가되고 있습니다.

 

            거기에다가 정치적인 상황은 우리를 더욱 숨막히게 하고 있습니다.

            밑도 끝도 없는 정치적인 싸움에 언론들은 싸움을 말리기는 커녕 싸움을 부추기며

            가짜 뉴스를 만들기도 하고 애매한 국민들은 피해만 보고 있습니다.

 

            특히나 이 모든 사건들에 기독교인들이 관계되어 있다는 것에 더욱더 배신감을 느낍니다.

            교회가 진실한 신앙고백없이 마구 세우고 마구 받아들인 결과 교회는 하나님의 섭리보다는 인간의 의지를

            하나님의 공의보다는 정치적인 성취를 중요시한 잘못에 우리는 분노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더욱이 이들을 지도 권징해야 할 교계 지도자들은 개독이라는 오명을 쓰고서도 자성하지 못하고

            오히려 그것이 핍박인냥 그 죄악에 참여한 꼴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것이 지난 날 군사독재 밑에서 민족상을 받고 충성 맹세를 한 약속이었다면 교회는 속히 그 곳에서 나와

            그들과 결별하고 예수께서 가신 그 길로 들어가 이웃들과 함께하며 가르치고 치료하여

            아름답고 정의로운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야 할 것입니다.

 

            양심은 오늘도 법정앞에 우리를 세워 놓고 항상 묻고 있습니다.

 

            당신은 어떻게 살아오셨습니까?

     

 

                                       

 

            가슴이 따스한 사람 해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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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게 개인 하늘 위로 반짝거리는 천사의 날개처럼

산 과 계곡을 지나가는 사람은 나무와 돌틈사이로 끝없이 흘러가는 시냇물을 볼 수있다.

 

은빛 여울로 출렁이며 계곡사이를 요리조리로 빠져나가는 시냇물을 보고 있노라면

마음에는 어느 새 평안이 찾아온다.

 

하루 종일 냇가에 앉아 그 바닥에 깔려있는 모래나 이끼들을 보라

 

시냇물의 음성은 언제들어도 맑고 생기가 넘친다.

또 우리는 시냇물이 어디서 흘러 나오는지 궁금할 때가 있다.

 

지난 겨울 하얀 눈이 산 위에서 이끼들을 품어주고

비와 구름은 이끼에게 물과 수분을 충분히 공급하고

이끼들은 물과 수분을 흡수해서 양을 더욱 늘려가며 시내를 이루는 것이다.

 

만일에 시냇가의 모래나 이끼들이 없어진다면 세상은 어떻게 될까

또 시냇물은 급류를 이루어서 모래와 자갈, 넓은 들을 휩쓸어 가고

잘 경작된 우리의 논밭들은어떻게 될까.

 

숲 속 나라의 품안에서 시냇물은 언제나 신비하게만 느껴진다.

일찌기 고대 사람들은 이 곳을 신들이 가끔 찾아와서 신탁(神託)하는 장소였다.

 

그들은 땅 속 깊은 곳 어딘가로부터 솟아오르는 용소(龍沼)를 보면서

신의 음성을 가장 잘 표현하는 것으로 믿었다.

 

세상에서 시냇물보다 자유롭고 시원한 것이 또 있을까

 

 

거기서는 새의 날개도 축이고

다람쥐, 멧돼지도 물을 마시러 찾아오며

도시의 나그네도 갈증을 풀고 간다.

 

이 물은 위로부터 흘러 내려오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곳을 기다렸던가

 

지나가는 나그네여!

 

너는 잠시 허리를 굽히어라

그리고 위를 가만히 바라보라

 

우리가 잠시 위를  바라보며 살 때

이 물은 우리의 갈증을 풀어주고

원기(元氣)를 회복시켜주고

우리의 고달팠던 마음도 깨끗이 씻어준다.

 

내 영혼의 시냇가에서

용서도 위로부터 시작되고

위로도 위로부터 시작되고

평화도 위로부터 시작되고

희망도 위로부터 시작된다.

 

시름도 잊고 근심도 잊고

걱정만 하면 무엇을 할까..

 

오늘도 나는 작은 희망을 안고 달려가는

영혼시냇물이다.

 

 

가슴이 따스한 사람 해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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