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해졌습니까?

 

 

         "건강한 육체에 건전한 정신이 깃든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체육 교관이나 운동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서 흔히 쓰여지는 말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원칙이 꼭 들어맞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가 정답일 수가 있습니다.

 

          일생을 살아가는 동안 인간은 누구나 약하여질 때가 있습니다.

          육체적으로 병들거나 노쇠해질 때, 경제적으로 어렵거나 궁핍해질 때 실패하거나 해어질 때

          사람은 누구나가 약해질 때가 있게 마련입니다.

 

          병들거나 가난한 것, 무지하거나 실패한다는 것 그것이 좋은 것일 수는 없습니다.

          이러한 것들은 모두 사람을 불행하게 만드는 원인이 됩니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모두 여기에서 벗어나고자 옛부터 무병장수(無炳長壽)를 꿈꾸며

          오늘을 살아왔습니다.

 

          인간들은 가난에서 벗어나고자 돈을 벌려고 하고

          무지(無知)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끊임없이 배우려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돈을 많이 벌었어도 지식을 많이 가졌어도

          사람들의 불행과 고통은 떠나지 않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행복해지기 위하여 경제를 발전시키고 과학을 발전시키고 의학을 발전시켜 왔지만

          결과적으로는 오히려 병은 더 많아지고 살기는 점점 더 어려워지고

          환경은 더 오염되어 가고있습니다.

          이러한 시대를 살면서 인간은 쉽게 포기하거나 좌절해서는 안됩니다.

 

          과거 우리의 삶은 전쟁으로 인하여 상처받고 좌절했으며

          닥쳐온 경제와 육신의 아픔으로 우리는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었습니다.

 

          시련 앞에서 우리는 말할 수없이 낙심하고 좌절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견디다 못하여 끝내 자살을 하고 말았습니다.


          인간에게 있어서 이러한 시련은 진정 두려움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미래에 대한 자신의 희망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고난의 날에는 자기의 삶을 깊이 성찰해 보는 날입니다.

          감정에 사로잡히지 말고 냉철하게 자신을 조사해 보는 날입니다.

 

          불행이 닥칠 때 사람들은 당황하여 온갖 몸부림을 떨며 발버둥을 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대개는 더 깊은 골짜기로 떨어지게 마련입니다.

 

          약할 때는 바로 강하여 질 때입니다.

          인간의 약함을 통하여 새로운 눈을 뜨고 약함을 통하여 새로운 각성을 하는 것입니다.

          약함이 있으므로 감사를 알고 고통이 있으므로 겸손을 배우게 됩니다.

 

          힘들고 약해 질 때면 더욱 더 희망의 노래를 부르십시요.

          날마다 자기를 훈련하고 희망의 그날을 위해 용기를 가지십시요.

 

          때때로 기적의 역사는 약할 그 때에 찾아오는 것입니다.

          자신의 약함을 통해서 새로운 문이 열리고 변화시켜 나가는 것입니다 .

          장애를 딛고 일어선 수 많은 역사속의 주인공처럼 자신을 변화시켜 강해지는 것입니다.


          당신이여! 약해졌습니까?

          보아도 제대로 보지 못하고 들어도 제대로 듣지 못하는 그런 사람들을 보면서

          오히려 기쁜 마음으로 자기의 약한 것들을 사랑하며 성공하던 사람들처럼

          이제는 강해지려거든 스스로 약해지고  인내하고 겸손하십시요.



          자신이 가졌다고 생각되는 그 순간부터 인간은 약해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분별력은 없어지고  점점 더 사라져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졌던 지위와 지식과 재산은 모두 내려놓고 스스로 약해질 때

          전에는 알지 못하던 새로운 사실들을 깨닫게 되면서

          비로서 아름다운 세상을 살 수있는 것입니다.



          가슴이 따스한 사람 해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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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혼식을 마친 후



               어느 농촌에서 결혼식이 있었던 날

               결혼식이 끝나자 하객들은 피로잔치에 몰려와 즐겁게 축제를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축제가 얼마 지나지 않아 남은 음식들이 떨어지자

               여기 저기서 사람들이 음식이 떨어졌다고 불평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하객들에게 있어서 음식이란 곧 축제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음식이 떨어졌다는 말은 이제 더 이상 축제를 할 수 없다는 것을 뜻합니다.


               내용이 빠져버린 축제, 그것은 의미가 퇴색해 버린 축제입니다.

               이것은 비단 어느 한 농촌만의 실상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무기력하고 형식화되어 있는 사람 희망을 주는 대신에 오히려 무거운 짐만 되고

               부담만 가중되는 책임은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우리의 실상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생명력을 잃어버리고 형식만을 지닌 채 내용없이 살아갈 때에

               그것은 다른 사람들에게도 외면을 당하고 말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는 사람,

               국가와 사회는 더 이상 사람들에게 아무런 희망도 줄 수가 없습니다.


               음식이 떨어졌다는 말은 곧 오늘날 세계에서 들려오는 외침이기도 합니다.

               그 동안 우리가 흥청되며 써왔던 모든 자원들이 고갈되는 것을 보면서

               사람들은 모두 음식이 떨어졌다고 불평을 하는 것입니다.


               맑은 공기를 공급해주던 삼림들이 마구 잘려져 나가고 자동차를 비롯하여 사람들이 쏟아내는 오염에 의해

               지금 우리 나라는 물과 지하자원들이 고갈 되어가고 있습니다. 


               점차 바닥이 드러나고 있는 모든 상황앞에서 사람들이 자연을 보호하고 자원을 아끼자며

               아무리 구호를 외쳐대고 실천해 보지만 이미 돌이킬 수없는 불행은 걷잡을 수 없습니다.


               개발과 발전이라는 명분으로 우리는 정신없이 앞만 달려왔고

               그 결과 우리는 필요이상으로 너무 많이 개발하였고 이 지구의 생명을 고갈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모두가 너무 먹어서 살이 쪘고 비만 상태에서 앞 뒤를 분간하지 못한 채

               이제는 다이어트를 하겠다고 흥청대며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어쩌면 오늘날의 우리 상황은 지구적 상황의 축소판인지도 모릅니다.

               지난 수 십년 동안 우리는 경제성장을 통하여 가난을 벗어나게 되자 자기가 벼락부자나 된 것처럼

               마구 쓰고 마구 버린 결과 이제는 돌이킬 수없는 벼랑끝으로 몰리게 된 것입니다.


               거기에다가 남북간의 대치로 인한 소모적인 논쟁은 우리의 자원고갈을 더욱 부추기며

               북한이나 남한 모두 음식이 떨어져 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는 우리의 삶의 방식을 바꾸어야 할 때입니다.

               이 땅의 삶은 결국 소모적이고 유한하며 소멸될 수 밖에 없는 세상입니다.


               이러한 때 우리는 계속하여 흥청되지 말고

               자기의 형편을 바로 보고 자기의 생각을 바꾸어야 할 때입니다.


               그리하여 이제는 더 이상의 삶을 최소화하여 모두가 골고루 나누어 먹고 자족하며

               더불어 다함께 사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가슴이 따스한 사람 해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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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구야!

                      마음이 답답하고 우울할 때는

                      

                      가끔씩은

                      하늘 위에 떠 있는 구름을 한 번 쳐다

 

                      그게 바로 너의 얼굴이고 표정이야

                      너도 나처럼...

 

 


                                                          사람은 얼굴로서 말한다


 


                             사람의 나이 40이 되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 말은 곧 그 사람의 얼굴로 보아
                       그 사람의 과거의 삶을 짐작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첨부이미지


                       실제로 사람의 얼굴이란 그의 신체가운데에
                       가장 표현력이 있고 자신의 인품과 됨됨이가
                       가장 민감하게 나타나는 부분입니다.

                       특히나 표정은 상대방에게 호감을 줄 수 있는
                       커다란 영향을 미치기도 합니다 

                                                        첨부이미지

                       사람의 만남 가운데서 얼굴은 대단히 중요한 요소입니다.

                       우리가 모든 사람들에게 자신의 얼굴을 보여주며
                       대화를 함께 나누고 서로가 어울리게 될 때에

                       그들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비로서 자신을 알게 됩니다.



                                                        첨부이미지


                       무 표정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표정이 있다는 것은 그 사람이 살아있다는 증거입니다.


 

 

                          무심코 내 뱉는 대화 가운데에 그의 인격이 스며 있으며
                       좋은 표정은 상대방에게 부드러운 사람, 진실한 사람이라는 인상을 주기도 하며

                       가볍고 아름다운 미소는
                       개방적이고 아름다운 친근감을 주기도 합니다.



                                                                     첨부이미지


                             상대방을 억지로 좋아하며 미소를 짓기란 참으로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나 상대방에 대하여 진심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며
                       우호적인 마음으로 접근할 때에 자신의 관대함과 인격이 드러나며.

                       상대방을 천사같은 얼굴로 바라보고 그 표정이 자기의 얼굴에 나타날 때에

                       쌓였던 의심과 불안은 사라지고 비로서 아름다운 대화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가슴이 따스한 사람 해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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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늘의 천사들아

 

 

 

 

 

 

                       싱그러운 오월의 하늘아래 

                       어린이들은 우리의 가정과 사회에 기쁨을 주는 하늘의 천사들입니다.    

   
                       해맑은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울릴 때면 

                       아무리 슬펐던 자리에도 웃음이 피어오르고  

    
                       그들의 영롱한 눈빛에는
한 없이 맑고 투명한 그림들이 있어 

                       마음에 평안이 찾아옵니다.
                                                                 
                       어린 아이들의 마음 속에 어른들의 모습을 
잠시 새겨 두었다가 

                       아이들이 자라면서 천진난만을 잃어 가는 것은 인간의 마음 속에 욕망이 가득찼기 때문입니다.

       

                       어린이들의 맑고 깨끗하며 투명한 삶의 모습에서    
                       자신의 고향이 있고
거기에 자신의 삶의 모습이 서려있습니다.  

 

                       우리의 삶이 낡아지고 진부해졌으며 새로운 것이 없는데
                       어린이들을 만나며 그들을 안을 때 
우리 안에 새로운 생명의 약동을 느끼며 

                       잠시 거기서 생활의 향수를 맡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른들의 욕심은 그 아이들을 안으면서 금방 드러나 
                       어른들의 간사함이 어린이들의 순진함을 내몰고 있는 것입니다.
                                                                                                                                                              
                       저들이 살아갈 터전을 짓밟았고 저들의 생명인 생태계를 파괴하였으며
                       저들의 미래마져 형편없이 바꾸어 놓은 것입니다.

                       밖으로 나가 천진난만하게 뛰어 놀아야 할 아이들에게 
                       과외를 시키느랴 학원을 보내느랴 정신 없이 몰아치면서 
                       그 아이를  재능 있는 아이로 만들기위해 온갖 눈물겨운 정성을 쏟아 붓는 것입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러한 교육들이 모두 재능이나 기술을 개발하고 지식을 쌓는데만 혈안일뿐
                       그 아이가 지닌  순진함과 맑고 깨끗한 정직한 마음의 교육은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결국 어른들이 비용을 들여 어린이들을 열심히 가르치지만 
                       결국은 그 모든 것이 어린아이들을 타락시키고 
                       욕망과 이기심으로 가득한
어린아이들로 양산시키게 된 것입니다. 

                       이 땅의 음울한 풍토 속으로  오랜 세월의 풍상 속으로 
                       낡고 진부한 이야기 속으로  복잡다단한 역사 속으로 당당하게 들어왔던 아이들이 


                       어른들의 삐뚤어진 그릇된 교육관 때문에 
                       그 빛나던 얼굴의 모습에는 이 세상의 음울한 풍토에 젖어버리고

                       낡고 진부한 이야기에 익숙해지며 복잡다단한 역사 속에 휘말려 
                       젊었을 때는 기를 쓰고 욕망을 불태우며 

                       늙어서는 피곤에 지쳐 쓰러지면서도
                       죽음을 피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느라  추한모습으로 변해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의 삶이 끝나는 날 아름답고 해 맑던 아기의 모습은 사라지고
                       추하고 보잘 것 없는 한 죽음만이 눕혀 질 뿐입니다.   

                       인간은 결국 아기가 태어나면 그를 행복에서 고통으로 끌어내리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은 어떻게 하면 조기 교육을 통하여 공부를 가르치며 재능을 키워줄까를 걱정하지 말고
                       어떻게 하여야 저들의 삶이 바르고 정직하며 아름답게 키울 것인가를 생각할 때입니다. 


                       아이들을 가르치기 전에 먼저 그들이 무엇을 가지고 있는지를 살펴서 
                       어른들부터 먼저 그것을 실천하며 따르는 모범된 가정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부모의 욕심과 부모의 뜻을 따라 부모가 이루지 못한 꿈을 위하여 
                       아이들을 자기의 소유로 만들지 말고 이제는 바른 교육을 위하여  최선을 다해야 할 때입니다.

                       우리의 가정에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떠나지 않고
                       아이들의 천진난만함이 되살아 날 때 아름다운 세상은 이루어 지는 것입니다.


                       가슴이 따스한 사람 해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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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농심(濃心)의 마음

 

 

 

           농심(農心)이란 말이 있습니다.

 

           라면회사의 이름으로 TV나 가게에서 보던 농심이란 말이 지금은 병들고 왜곡된 현대인들에게

           그것은 농부의 마음, 농사하는 마음으로도 설명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현대인의 마음을 대표하는 것이 기심(機心)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을 보면 기계의 발달에 따라 조급함이 생겨나고 고속만을 추구한 지 오래되었습니다.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기심은 늘어가고  농사에도 기심으로 시작한지 오래입니다.

 

           과거 우리나라는 70년대부터 경제성장을 서둘러 왔습니다.

           그 결과 모든 것이 빠르게 성장하여 보기 좋게 외형적인 모습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서둘러 이룩한 경제성장은 그 바탕이 허술하여 많은 모순과 문제를 내포하기 마련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처한 경제적인 어려움은 어떠한 우연이나 어느 날 갑자기 생겨난 일이 아닙니다.

           이미 오래전부터 불거져서 예견되어 내려온 사실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의 때에서야 그 거대하게 쌓아올려졌던 기심 같은 마음들이 무너지면서

              우리의 사고방식도 점차로 깨달으며 좌절하고 있는 것입니다.

 

              농심이란 말은 지혜로운 자의 마음을 말합니다.

           정한 때에 씨를 뿌리고 추수 때가 될 때까지 기다리는 것입니다.

 

           서두르는 사람은 정작 때를 놓치기가 쉬운 법입니다.

           씨를 뿌릴 때가 되면 씨 뿌리고 그것이 자라면 모를 내고 물을 충분히 대 주고 부지런히 가꾼다면

           추수 때에 거둘 것이 많을 것입니다.

 

           서두르지 않는 것은 결코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방치해 두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때를 기다리고 준비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때를 분별하지 못하고 나중에 가서 서두르게 됩니다.

           서두르는 사람은 결국 그때를 놓친 사람들입니다.

 

           평소에 준비하지 않았던 사람들은 어느 날 갑자기 어려움이 올 때에 크게 당황하여 서두르게 마련입니다.

           농심을 갖는다는 것은 생명의 가치를 알고 모든 것이 자연에게서 왔음을 깨달으며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지금은 모두가 농사가 어려워 농사를 포기하고 농촌을 떠나야 하는 안타까운 농심들을 바라보면서

           이제는 무엇이든 욕망과 속도를 조절하고 농심을 회복해야 할 때입니다.

 

           빠른 것일수록 최고이며 좋은 방법일 것 같지만농심만큼은 절제하고 기다리며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면서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가슴이 따스한 사람 해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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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의 신진대사(新陳代謝)

 

 

 

 

 

 

                       이 땅에 사는 모든 인간과 생물에는 배설기관(排泄器管)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배설이 제대로 되어야 신체가 원활히 이루어 질 수 있습니다.

                       배설이 되지 않을 때 생명은 커다란 위기에 봉착하게 됩니다.

                       먹은 것이 있으면 반드시 나가는 것도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원칙은 비단 신체구조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돈을 쓰지않고 모으기만 한다면 세상은 마비(麻痺)가 되고 말 것입니다.

 

                       아무리 침묵(沈默)이 금이라고 하지만 사람은 듣고 본 것을 말하지 못한다면 병이 듭니다.

                       시민들을 사찰(査察)하고 언론을 통제(統制)하는 사회는 이미 병든 사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정신 생활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소모(消耗)하지 않고 쌓아만 두는 생활은 정신적으로 문제가 됩니다.

 

                       사람이 사랑받지 못하면 정신적으로 병이 들지만

                       사람이 사랑하지 못하는 것은 정신적으로 더 큰 병이 듭니다.

 

                       운동을 해야 새 힘이 솟아나는 것처럼

                       사람은 있으면 써야 하고 없으면 채워야 하는 것이 삶의 법칙입니다.

 

                       영양(營養)과 배설이 조화를 이룰 때 사람은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날 한국 사회가 경제가 성장하고 능력이 많으면서도 보이지 않는 것은

                       어쩌면 너무 많이 먹어서 소화불량에 걸렸거나 체한 것은 아닙니까?

 

                       그 동안 한국교회는 모으기만 하였지 나누기는 하지 않았습니다.

                       개 교회에만 쓰였을 뿐 사회에는 인색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옥합을 깨고 향유를 부은 마리아처럼

                       교회도 자신을 깨고 사회와 봉사를 위해 헌신해야 할 것입니다.

 

                       자기만을 위한 기도에서 남을 위한 기도로 바꾸어 가고

                       자기만을 위한 예산에서 이웃을 위한 예산으로 바꾸어야 할 것입니다.

 

                       가진 바 능력대로 모두 나서서 활동하고 소모해 버리십시요.

                       그래야 또 다른 새로운 능력들을 공급받을 수가 있습니다.

 

                       우리 민족은 두려움없이 자기를 아낌없이 내 던진 희생의 역사였습니다.

 

                       우리는 통일이나 민주화, 경제나 복지가

                       정치적인 문제로 자기와는 무관하게 외면할 수는 없습니다.

 

                       모두가 이념과 사상을 뛰어넘어 함께 참여할 때 아름다운 세상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가슴이 따스한 사람 해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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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은  지난 4월 20일 오전 장애인의 날 서울 보신각 앞에서           ⓒ뉴시스


                  
                                                   누가 장애인입니까?

                                                      



                              우리는 때때로 길을 갈때나 차를 탈 때

                              우리의 자유스러운 몸이 얼마나 사람들의 마음을 메마르게 하고

                              무의미하게 만드는지 모를 때가 있습니다.
 
                              눈이 있어도 제대로 볼 수가 없고
                              귀가 있어도 제대로 듣지도 못하며
                              입이 있어도 제대로 말을 못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오늘날 장애인들에 대한 편견과 배려가 많이 부족하여
                              오히려 장애인들은 저주받은 자로 간주되어 사람들에게 따돌림과 동정의 대상만 될 뿐 
                              인간으로서의 대우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러한 사회적인 편견과 멸시앞에서 한 인간으로 산다는 것은 
                              너무도 감당하기 힘든 가혹한 형벌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리하여 장애인들은 오늘도 차라리 인간이기를 포기하고
                              그 모든 사회적 굴레를 숙명으로 받아드리면서
                              오로지 자기 연명을 위해 전념을 다하고 있는 지도 모릅니다. 

                              때로는 구걸하는 앉은뱅이가 되어 구걸하는 생활에 익숙해지고
                              때로는 그 숙명적 굴레를 뒤집어 쓴 채 하루하루를 힘겹게 버티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이러한 장애인들의 현실은 바로 숙명론으로 요약되고
                              이것은 장애인들로 하여금
현실에 안주하고 적응하게 만드는 놀라운 힘을 가져다 주었고
                              현실은 누구도 바꿀 수 없는 숙명적인 것으로 믿도록 만들어 놓았습니다.

                              과학자들은 이러한 현실을 진리로 받아드리면서 
                              이 진리를 벗어나는 것은 비 현실적인 망상이라고 치부해 버리기도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시대를 살면서 현실에 적응하는 것이 가장 현명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동안 민주화의 실현을 포기하고 체념하며 살아왔던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모두가 장애인이 되어버렸습니다. 
                              정부가 가져다 주는
채 몇푼도 되지 않을 경제적인 도움에 만족하면서 

                              자기의 자유와 주체성을 던져버리고 
                              비열하고 비겁한 소시민의 삶을 살아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시대에 지도자들은 그 시대를 지배하는 악마성을 보면서 
                              그것을 경계하고 그 굴레를 벗어나도록 이끌었어야 했는데 

                              오히려 경제성장을 자랑하며 돈에 눈이 먼 사람들을 끌어다가 

                              그들을 찬양하고 경제성장에 매진하도록 독려하였던 것입니다. 

                              우리는 이 무서운 굴레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못하고 
                              완전히 포로가 되어버린 불쌍한 장애인들입니다.

                              우리는 지금 모두가 무거운 이념과 체제아래 
                              제대로 숨 한번 쉬지 못하는 답답한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는 모두가 그 굴레를 벗어 내려놓아야 할 때입니다.
                              이제는 열린 마음과 열린 생각으로 이 민족의 미래를 걱정해야 할 때입니다.
 
                              오늘날 모든 사람들이 추구하는 것은 오로지 돈입니다.

                              그리하여 그것만 있다면 그 굴레가 아무리 무겁고 힘이 들더라도


                              인간의 존엄성 따위들은 조금 짓밟히더라도 개의치 않고 견뎌나가는 것입니다. 
                              장애인들은 더 이상 그 자리에 머물러 몇 푼의 동전이나 구걸하는 가련한 사람이 아닙니다.

 

                                    다시는 이 땅의 굴레아래 스스로를 가두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그러면 그럴 수록 더욱 더 힘을 내어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가슴이 따스한 사람 해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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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높은 산에 오르라

 

 

 

 

                                산을 오르는 자 만이 그 산의 신비로움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삶 자체도 산을 오르는 심정처럼

                                정상에 오르기 위하여 몸 부림 치면서 살아갑니다.

 

                                높은 산에 올라가 보셨습니까?.

                           

                                산을 오를 때의 그 두려움과 겸손함을...
                                산을 오르면서 느끼는 그 신비함과 자유스러움을...

 

                                산을 올랐을 때의 그 광활함과 행복을 만끽하기 위하여  
                                높은 산을 오르라는 것입니다. 

                                              

                                도시에서는 인간만이 눈에 띄이고 그들의 업적만을 자랑하지만

                                산은 우리에게 무엇이 아름다운지 제대로 보여 줍니다.

 

                                이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곳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산입니다. 

                                산은 그 뿌리와 몸을 지구의 가장 심장부분에 박고

                                그 머리는 하늘 꼭대기까지 닿아 경이로움이 있습니다.

   

                                산 위에 올라서면 가장 먼저 새들이 즐겁게 노래하고

                                꽃들은 만발하여 환영해주며

                                시원한 바람소리는 지치고 곤한 우리들에게 새 힘을 불어넣어 줍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경제발전을 지향하면서 그 산을 깎아 도로와 도시를 만들어 놓고

                                그 곳에다 화려한 건물을 세워놓았지만

                                우리는 지금 하루 아침에 다 무너져 내리는 절망등을 체험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그것에 만족하지 않고 그 산을 갈아다가 골프 장을 만들기도 하며

                                아파트 숲을 이루어서 주위에다 아스팔트 길로 포장해 놓았습니다. 

                                골짜기에서는 끊임없이 폐수가 흘러나오고 도시에서 뿜어져 나오는 매연으로 
                                산은 더 이상 자연의 아름다움을 간직할 수 없게 되어 버렸습니다.

 

                                높은 산에 오르라는 것은 실제로 높은 산에 오르라는 말은 아닙니다.

                                자유를 잃고 깊은 시름에 빠진 사람들에게 이제는 자유의 소중함을 잊지말라는 것입니다.

                                꿈과 이상을 잃고 살던 사람들에게 이제는 꿈과 이상을 좇아 살아가라는 말입니다.

 

                                평지가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평범한 세계라면

                                높은 산은 비범한 사람들이 도전하는 신비의 세계입니다.

 

                                평지가 많은 사람들로 모여사는 현실의 세계라면

                                높은 산은 소수의 사람만이 찾게되는 영역입니다.

 

                                높은 산에 올라가 보십시요.

 

                                평지의 얽매인 삶에서 박차고 나와
                                현실적이고 타산적인 삶에서
자유를 찾으라는 것입니다.

                                굴종적이고 비굴한 그 삶에서 나와

                                당당하게 가슴을 펴고 높은 산을 찾으라는 것입니다.

                                이기적이고 옹졸한 그 삶에서 나와
                                좀 더 크게 생각하고 좀 더 넓게 생각하며 그 산의 자유로움을 맛보라는 것입니다.

 

                                평지의 삶에서는 갈등이 있고 고민이 있고 원망이 있고

                                그래서 싸울 수 밖에 없지만 높은 산에 오르고 나면
                                그 갈등도
고민도 원망도 싸움도 곧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평지의 삶으로만 길들여져 있습니까?
                                모든 잡다한 생각들은 털어 버리고
그 세계만을 바라보며 용기를 가지십시요.

 

                                높은 산을 정복해 보셨습니까?                                             

                                평지의 어리석었던 그 습관은 벗어버리고
                                좀 더 용기있게 좀 더 최선을 다해 높은 산을 정복해 보십시요.

 

                                그 곳에 깃들여진 신비를 호흡하십시요.
                                그 곳으로 불어오는 자연의 숨소리도 들어보십시요.

                                              

                                높은 산에 올라가십시요.

                                거기에서 잃어버린 자신의 모습을 되찾아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 가십시요.



                                가슴이 따스한 사람 해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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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은 YTN 영상입니다.

               길 잃어 버린 우리의 정체성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길 잃어버린 고아와도 같습니다.

 

 

                                이 땅에 태어나 자기의 길을 출발하였는데

                                막상 어디로 가야할 지 어떻게 살아야 할 지를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어렸을 때는 무조건 부모님의 가르침과 보호 속에서

                                부모가 인도하는 데로 따랐지만

 

                                어느 덧 성장하여 학교에 들어 가면서 부터 의식이 생기고

                                인생이 무엇인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좀 더 깊은 학문 연구를 통해 인생을 배울 것도 같지만 현실은 그러하지도 못합니다.

                                돈이 되지 않는 학문, 전문 교육의 인기는 사라지고

 

                                오직 돈이 되는 학문만이 인기가 있어서

                                대체로 기능 인간으로서의 역할로 살아갑니다.

 

                                이러한 사람들이 인생이 무엇이며 왜 살아야 하는지를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인간의 문제를 깊이 연구하여도 알 수가 없는 일인데

                                오직 과학 기술만을 익힌 인간은 그 곳에 파묻혀 자신의 삶만 낭비할 뿐입니다.

 

                                우리는 지금 길을 잃고 있는 것입니다.

                                동서남북을 분간 할 수 없는 캄캄한 밤 중에 완전히 길을 잃고 헤메고 있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주관(主觀)과 신념도 갖지 못한 채

                                이리 저리 눈치만을 살피면서 방황을 하고 있습니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무엇을 위하여 할 것인지를 경제발전이라는 밑도 끝도 없는 경쟁의 논리때문에

 

                                우리는 도덕성을 상실하였고 가정도 버렸으며

                                사회도 자연도 모두 파괴하고 말았습니다.

 

                                그럴듯한 재주나 지혜도 없으면서 마치 달관한 사람들처럼

                                우리는 너무 자신을 과시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조용히 현실을 직시하며 정신을 차려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가는 인생 길에는 수 많은 위험과 악의 함정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모든 것을 적당히 알고 제 멋대로 다니다가는

                                틀림없이 위험에 빠지거나 악의 구렁속으로 빠져들고 말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마음의 눈을 떠서 잘못된 것은 속히 가려주고

                                자신을 지배하던 선입견이나 편견을 모두 벗어버리고

                                진실된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아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이 세상은 살 맛이 나는 세상,

                                아름다운 세상이 속히 올 수 있도록 모두가 최선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가슴이 따스한 사람 해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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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월은 생명의 계절

 

 

 

 

 

 

 

                4월은 생명이 약동하는 계절입니다.

                4월이 오면 모든 가지마다에는 수액이 차 오르고

                

                새 생명들은 눈을 뜨고 나와 새들도 화답하며

                멀리서 부터 오는 봄 소식에 내 마음도 눈 부셔 현기증이 다 날 정도입니다.

 

                하얀 목련꽃은 벌써 입을 쩍하며 벌려 있고

                개나리와 벚꽃, 철쭉꽃은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면서 상춘객들을 유혹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4월의 계절에는 즐거움과 기쁨만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4월에는 슬픔과 어두움도 찾아 옵니다.

 

                당신은 산 꼭대기에 올라가 산 아래의 광경을 보셨습니까?.

                거기에는 평화로운 마을과 들판, 저 멀리에는 바닷가도 보입니다.

 

                새들은 공중에서 즐겁게 놀이하며 소들은 들판에서 한가롭게 보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행복한 표정으로 일터에 나갑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 어두운 그림자가 다가옵니다.

                마음의 노래 소리는 아직 채 끝나지 않았는데

 

                공중의 날아 다니던 곤충들은 새들의 먹이가 되고

                새들은 먹이를 찾는 맹금류(猛禽類)를 피해 도망 다니고 있습니다.

 

                꽃은 활짝 피었으나 점점 시들어 가고

                소와 양들은 끌려가서 지금도 어디에 있는지 말이 없습니다.

 

 

 

 

                                                                                                                      메일 속의 YTN 영상입니다.

 

 

               그런가 하면 4월의 봄 바다는 아직도 차갑기만 합니다.

               지난 4월 16일 안산 단원고의 어린 꽃봉오리들이 제주도로 수학 여행을 가는 도중

 

               그만 세월호에 붙잡혀서 차가우면 차갑고 무서우면 무섭다고 도망가지를 못하고서

               차가운 바닷속으로 한 잎씩 한 잎씩 산화(散花)하였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황금만능주의(黃金萬能主義)가 좋다고들 하지만

               우리에게 있어 돈 보다 더 좋은 가정임을 5월은 어떻게 노래해야 할까요?

 

               그럼에도 우리는 아무리 죽음이 다가온다 해도 슬퍼할 수만은 없습니다.

               이러한 슬픔은 우리의 삶 속에서 모든 것을 빼앗아가 버리기 때문입니다.

 

               슬픔이 우리에게서 모든 용기를 빼앗아 가지 않았다면 아직 우리는 희망이 남아 있습니다.

               사랑에는 불가능한 것도 가능케 하는 그 어떤 힘이 있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어떠한 상황에 처했든지 그 곳에서 아름다운 향기를 나타낼 수 있도록

               서로 사랑하고 즐겁게 살면서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가슴이 따스한 사람 해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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