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무지개는 서울에서 나타난  실제 모습입니다.

 

                                                        희망의

 

 

 

 

 

 

 

 

                              억수같이 퍼 붓는 비가

                              이 땅의 모든 罪와 허물을 다 쓸어내고


                              우뢰같은 천둥이

                              음산한 공기를 뚫고 우르르 꽝꽝하며 울릴 때

 

                              잔뜩 찌 푸렸던 구름은 태양을 가리우고 

                              우리 마음은 더욱 근심으로 가득할 때

 

                              돌연히 하늘로 부터 무지개가 떠 올라 우리에게 희망을 약속한다.

                             "우리가 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화평하라."

 

                              화평이란 말은 무지개를 어원으로 하고 있습니다.

                              무지개는 열과 빛과 공기를 상징하는 빨강,노랑,파랑 색깔이 한데 어울려

                              아름다운 일곱 색깔의 하모니를 이루고

                              커다랗게 활 모양을 만들어 반원을 그려낸 아름다운 반사체입니다.

 

                              화평이란 말은 전쟁의 반대말입니다.

                              그것은 무 질서, 혼란으로부터의 자유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게으름이 아닙니다.

                              화평은 일하는 시간입니다.

 

                              가장 확실한 진보와 가장 풍성한 수확은

                              가장 심오한 화평을 느낄 때에 이루어 질 수 있습니다.

 

                              질서가 잡혀 있는 그 곳에는 생명력이 충만합니다.

                              자연도 그러합니다.

 

                              비가 개인 오후에 보리밭보다 더 평화로운 것이 있을까요?

                              또 고요하고 구름 한점없는 밤 보다 평화로운 안식도 없을 것입니다.

 

                              화평이란 말은 인간의 윤활유와 같이 없어서는 안 될 희망과도 같은 존재입니다.

 

                              화평한 사람,

                              화평한 가정,

                              화평한 나라는

                              언제나 무지개와 같이 아름답고 찬란하게 빛나는 것입니다.

 

 

                              가슴이 따스한 사람 해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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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려(思廬)깊은 생각


 

 

                   블란서의 철학자 파스칼은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라고 표현했습니다.

                   인간은 연약하지만 생각하는 존재이기에 강하다는 것입니다.

 

                   인간에게는 이성과 감성, 영성이 있는데 인간이 변하면서

                   그 영성이 깨짐으로 이성과 감성만으로 오늘을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전통적으로 성질이 급하고 감각적이며 정적인 민족임이 사실입니다.

                   이런 기질이 세계에서 보기드문 경제성장을 가져온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기초가 없는 성장이란 많은 위험과 부작용이 따르기 마련입니다.

                   하루가 멀다않고 보수공사가 시작되고 다리가 무너지며 사람의 생명까지도 위협받고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생각이 부족하여 너무 즉흥적으로 일을 처리하거나

                   음식을 지나치게 짜고 맵고 급하게 먹는 우리의 식생활과도 매우 관련이 깊습니다.
 

                   정치나 경제를 둘러보아도 깊이 생각하면서 풀기보다는

                   먼저 폭로하고 비방하며 밀어부치고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가장 합리적이고 깊이 연구해야 될 학계조차도 깊은 토론보다는

                   인맥이나 학맥을 중심으로 서로 추켜주면서 문제를 풀어나가고 있습니다.
 

                   자기의 소신이 없는 것입니다.

                   생각하는 진보와 진지한 보수가 만남이 활발해질 때 거기에 새로운 문제와 길이 보이는데

 

                   너무 한쪽으로만 치우칠 때 나라의 모습은 쇠퇴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들도 깊이 생각하며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무작정 따라가고만 있습니다.

 

                   분명히 아닌 줄을 알면서도 자기가 좋아하기에 기꺼이 성원을 보내주며 동참하고 있습니다.

                   깊은 생각이 없는 현대인, 세계적인 의미를 걱정하지도 않는 사람들

 

                   그리하여 그 의미가 무엇인지 왜 이러한 고통이 우리에게 찾아왔는지를 모를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정치적인 현실이 몹시도 암담하고 우울한 시기입니다.

 

                   그것은 사람들이 사상도 없고 생각도 없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때 우리는 생각을 신중히 해야할 것입니다.

 

                   지난 날의 역사를 돌이켜보고 생각하며 그 의미가 무엇인지 우리가 무엇을 하였기에

                   오늘의 결과가 주어졌는지를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TV나 신문,언론들을 그대로 다 믿을 것이 아니라 분명한 자기 역사관을 가지고 현실을 비판하고 

                   우리가 지향하는 이상에 가까이 갈 수 있도록 노력도 해야할 것입니다.

 

                   우리가 생각을 좀 더 깊이하면 문제의 원인이 이해가 되고 그 세계가 깨달아지며

                   자기를 향한 깊은 뜻도 알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깊은 생각을 하게 될 때 우리에게 지혜가 생기고 힘이 생기며

                   당당하게 아니요라는 용기도 갖게 될 것입니다.

 

                   인간은 자기의 절제 능력에 따라 그 인격도 달리합니다.

                   절제(節制)란 말은 대나무와 같이 한 뼘씩 나가다가 멈추는 것으로

                   인간에게는 일과 생활등에 적절한 절제가 필요합니다. 

 

                   깨달음이 없으면 늘 얕은 꾀, 헛된 생각들 뿐이고

                   생각이 없는 사람은 연속 실패와 실수일 수밖에 없습니다.

 

                   어쩌면 우리 민족이 이렇게 혼란을 겪는 것도 우리가 미처 파악하지 못한 잘못때문이 아닐까요?

                   이제는 모두가 얕은 생각이나 고집들은 내려놓고 절제하며

                   이성을 갖고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가슴이 따스한 사람 해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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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의 놀이문화

 

 

 

 

 

                     인간의 삶은 놀이에서 시작됩니다.

                     태중의 아이를 "논다"고 표현하며 놀지 않는 아이는 죽은 아이입니다.

 

                     사람이 성장을 하고 열심히 일할 것이 최상의 가치로 떠오르면서

                     우리는 여가나 놀이에 대해서는 대단히 부정적으로 생각해왔습니다.

 

                     여가나 놀이의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고 준비하지 않았습니다.

                     놀이의 철학, 여가의 철학이 우리에게는 없습니다.

 

                     놀이란 삶이며, 그 자체가 목적입니다.

                     그리고 어른들은 탐욕이고, 어린아이는 가지고 노는 것입니다.

 

                     삶이 즐겁고 보람을 가질 때에 사람은 행복을 느낄 수가 있으며

                     놀이를 통해서 피로가 해소되고 기분이 전환될 수도 있습니다.

 

                     세상은 마치 놀이하는 광장과도 같습니다.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서 이념을 넘고 지역을 넘어서 놀이를 하는 것입니다.

 

                     누구나 이곳에 나오면 즐겁고 행복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함께 웃고 울고 이야기하면서 성숙해지는 것입니다.

 

                     놀이란 사람들이 어릴 때로 돌아가 욕심을 버리고 천진난만하게 놀이를 하는 것입니다.

                     놀이를 한다고 해서 돈이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일해야 할 시간에 그 만큼 손해가 나는 일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놀이야말로 자기의 건강에는 반드시 필요한 요소입니다.

 

                     놀이란 서로가 사랑할 때만이 가능한 일입니다.

                     일은 미운 사람과는 할 수가 있어도 놀이는 함께 할 수가 없습니다.

 

                     직업은  하나의 놀이입니다.

                     놀이가 흥미를 잃게 되면 쉽게 놀이를 포기하고 증을 내는 것처럼 

                     직업또한 흥미를 잃어버릴 때 사람은 불편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암세포란 자기의 조절 능력을 잃어버린 세포입니다.

                     세포가 쉬지 못할 때 파괴될 수밖에 없는 것처럼

 

                     사람이 쉬지않고 일을 할 때에 자신과 이웃들의 건강까지도 해칠 수가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불건전한 놀이로 해서 가정이 무너지고 사람이 몰락하기도 합니다.

 

                     근본적으로 그 욕망을 다스리지 못한 채

                     인간이 아무리 여가를 즐기고 놀이를 한다고 해도 만족할 수가 없습니다.

                     이러한 인간의 탐욕으로 인해서 우리의 놀이문화가 많이 변질되고 말았습니다.

 

                     우리 주변을 한번 둘러 보십시요.

                     낮에는 오락실을 전전하고 밤이면 유흥가나 환락가를 찾아

                     그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강도나 살인같은 범죄가 횡행하고 있습니다.

 

                     직장이 생존경쟁의 수단이 된 지 오래이고 즐거워야 할 오락 시간에 싸움이 수반되어 있으며

                     정치나 사회에도 이기는 자만이 살아남는 사회가 되어 버렸습니다.

 

 

                     훌륭한 차 일수록 그에 맞는 성능과 안전이 필요하듯

                     아름다운 삶을 위해서는 모두가 지켜야할 신호등이 필요합니다.

 

                     혹시나 주변에서 무절제하고 투명하지 못하며 부정직한 사람들과 어울리지는 않았습니까?

                     가정생활에 흥미를 잃게하는 놀이는 아니었습니까?

 

                     놀이로 인해서 단란한 가정이 무너지고 생활은 엉망이 되어가며

                     온갖 거짓과 분에 넘치는 소비는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사람이 여가를 즐기고 놀이를 하는 것은 재충전을 위한 것입니다.

                     이제까지 있었던 지난 일들을 정리하고 돌아보는 소중한 시간입니다.

 

                     재충전(再充電)은 결코 외부에서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보약을 아무리 복용하고 술로써 푼다고 할지라도 채워지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우리의 삶 가운데 즐겁고 보람으로 가득찰 때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수 있는 것입니다.

  

 

 

                     가슴이 따스한 사람 해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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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순절(四旬節)의 의미

       

       

       

       

       

                  영국에서 만든 <유다의 얼굴>이라는 유명한 드라마가 있습니다.

                  그 내용은 누가 가룟 유다의 역할을 맡을 것인가 하고 모델을 찾는 전 과정을 표현한 것입니다.

       

                  한 영화 제작자가 적임자를 찾아 열심히 다녔지만 찾지는 못했습니다.

                  그리고는 드라마의 끝 부분에 와서는 모든 배우들이 나와서 청중들을 향해 이렇게 소리쳤습니다.

       

                   "당신도 가룟 유다가 될 수있습니다"

       

                  이 드라마는 비록 각본이지만 누구라도 가룟 유다로 전락할 수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말해주는 내용입니다.

                  

                  겨울철의 나무는 마치 죽은 것처럼 보이지만 봄이 되면 새싹이 돋아나고 죽음의 정적에서 깨어납니다.


                  흔히들 기독교를 가리켜서 부활의 종교라고 말합니다.

                  또한 기독교에서는 부활절을 앞둔 40일을 사순절이라고도 합니다.

                  사순절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준비하기 위해 회개하는 절기인데

                  독일어로 표현하면 "금식 ( Fasten)과 시기 ( zeit )"가 합쳐진 "금욕과 절제의 기간"입니다.


                  교회들은 이 기간이 되면 사순절로 보내면서 "특별 새벽기도회를 갖고 오락을 금하며

                  참회와 경건으로 말씀 묵상을 하고 기도하는 것은 기독교만이 갖고있는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그러나 기독교적 문화 측면에서 볼 때 아직도 갈 길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한 종교에 있어서 예식과 절기 문화는 자기의 자리를 확인하게 하였고

                  흐트러졌던 자세와 잘못들을 반성하게 하며 나아가 신앙 생활에 더욱 정진할 수 있도록 만들어 줍니다.

       

                  유대인들은 지금도 유월절과 같은 절기가 되면 명절처럼 지내면서

                  자기 민족이 애굽에서의 탈출함을 되새기며 누룩없는 빵과 쓴 나물을 먹으며 하나님께 기도를 합니다.

       

                  그들은 해마다 봄이 오면 이 절기를 지키기 위해

                  성지 순례에 모여든 수 많은 인파들로 장엄하기가 그지 없습니다.

       

                  여기에 비하면 한국 교회의 사순절은 너무나도 단순합니다.

                  특별히 교회가 강조하는 것도 없고 삶에서도 예수의 고난에 동참하려는 모습들은 찾을 수 없습니다.

                  다만 한 가지 교계 안에서 벌어지는 갈등과 교권 쟁탈전은 그칠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교회의 권위는 이미 땅에 떨어졌고

                  종교의 높은 도덕성이나 위상은 실추되어 말할 수 없을 만큼 참담한 현실을 목도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타개하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사순절의 의미를 회복해야만 합니다.

       

                  우리 한국 교회는 200년이라는 짧은 역사 속에 너무나도 악마가 할퀴고 간 깊은 상처들이 지금도 남아 있습니다.

       

                  일제 때에는 혹독한 박해 아래서 그 신앙의 정조를 굽혔는가 하면

                  해방후에는 북한의 종교 지도자들이 대거 넘어 오는 까닭에 교계가 분열하는 큰 오점을 남겼고

                  급변하는 시대에 적응하여 변화시키지 못한 무기력하고 나약한 교회들로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 한국교회의 분열원인은 이슈란에서 비공개 )

       

                  진실로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전에는 구원받기 위해서라고 하던 것이 요즘은 모두가 축복을 받기 위해서라고 바뀌어지지는 않았습니까?

       

                  많은 교인들이 지금도 축복을 받기 위해서 교회에 나가며

                  십일조를 내는 까닭도 더 많은 축복을 받기 위한 투자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도박꾼들이 빚을 내서 도박하는 모습처럼 예수믿는 사람들도 빚을 내서라도 교회에 헌금하면

                  하나님이 몇 배로 갚아 주실 것이라고 가르치는 교회들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자기의 본분을 다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과 같은 교회를

                  완전히 돈 놓고 돈 먹는 도박판으로 전락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신앙이 아직도 하나님께 복을 받느냐 못 받느냐 하고 있다면

                  그것은 우리 신앙이 아직도 초보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다고 해도 틀림이 없을 것입니다.

       

                  지난 2003년 3월 30일 당시 이 날은 미국이 이라크를 공격한 날입니다.

                  수 많은 전투기들이 퍼 붓는 폭탄으로 이라크의 밤 하늘은 불바다가 되고 말았습니다.

       

                  견고하던 건물들이 힘 없이 쓰러졌는가 하면 죄 없는 아이들이 처참하게 희생되었고

                  인간의 잔인함은 어디까지인지 상상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이 기간이 기독교에서 말하는 사순절이었다는 사실은 잘 모르고 있습니다.

       

                  미국의 국회 의사당에는 지금도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다”는 글귀가 적혀 있습니다.

                  그들이 사용하는 달러에도  ‘ In God We Trust ’ " 우리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 라는 고백도 있습니다.


                  과연 그들이 믿고 있는 하나님은 누구일까요?

       

                  예수께서는 장차 자기에게 닥쳐 올 죽음을 직감하며 피하지 아니하고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 동산으로 올라가 그들을 위해 기도 했습니다.

       

                  그리고는 자기를 잡으러 오는 사람들과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 검을 도로 집어 넣으라.  검을 쓰는 자는 검으로 망한다 "

       

                  세상에 군사 무기처럼 낭비성이 강하고 한심스러운 물건이 또 있을까요.

       

                  정부와 여당은 지금부터라도 복지예산이 너무 없다고만 하지말고

                  방산 비리들처럼 귀가 얇아 뻥 튀기고 빼돌려도 아무도 모르는 예산부터 점검해야 할 것입니다.

                                                                     
                  어쩌면 신앙의 적은 우리의 내부안에 있는 지도 모릅니다.

                  오죽하면 이제는 사람들도 목사들의 얘기라면 콩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잘 믿어 주지를 않습니다.

       

                  차라리 언론들이나 불신자들은 몰라서 그렇다손 치더라도

                  알만한 교인이나 교회 지도자들의 죄는 복음에 심각한 장애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들은 마치 가룟 유다처럼 예수를 이용하여 교계를 분열시키거나 사회에 큰 물의를 일으켜서

                  복음을 가로막고 불신자나 초신자들에게 시험에 들게 하고 있습니다.

              
                  지도자가 자신은 실천도 못하면서 남에게만 하라고 하면 설득력이 없습니다.

       

                  예수는 먼저 원수들을 사랑하셨습니다. 
                  그리고는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며 너희도 이와 같이 하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는 말하기를 참 목자는 양 아흔 아홉을 들에 두고 길 잃은 한 마리 양을 찾는 것이라고 비유 했습니다.

                  하나의 생명을 위해 전체가 희생되는 그것이 구원이라고 말했습니다.

       

                  작은 하나의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단체, 사회, 국가에게 구원이 임한다는 뜻입니다.

                  네 이웃을 사랑하라,

                  원수들을 사랑하라,

                  누가 네 오른뺨을 때리거든 왼뺨도 돌려대라고 하신 그 말씀은 차라리 예수님의 유언이었습니다.


                  그런데 세상에 어떤 복음이 저들은 종북 좌파이니 멀리하고 정쟁을 한단 말입니까?

                  참된 종교는 선한 일을 하기 전에 악한 일을 하지 말라고 가르칩니다.(마3:8,눅3:8)


       

                  좀 부끄러운 말이지만 지금 한국 교회는 집단은 있어도 개인이 없는 사랑이 결핍된 교회로 가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여!

                 

                  신라 시대에 그렇게도 많이 활약했던 불교들이 지금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고려 시대의 사찰들도 지금은 잘 보이지가 않습니다.

                  조선 시대에는 골짜기마다 서원들로 빼곡했고 고을 마다에는 향교들도 많았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예수의 교훈과 그의 삶을 추구하는 자들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살펴보아도 예수께는 성장신화가 없습니다.

                  오직 십자가만이 예수가 걸어가신 길이고 자기의 목숨까지도 다 바쳐 인류를 구원하신 사랑의 정신이었습니다.

       

       

       

                  가슴이 따스한 사람 해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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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음을 자유롭게
           

                                                   공기가 혼탁하고 오염된 세계속에 사는
                                          우리들의 제일 큰 관심은 건강입니다.

                                          시간과 돈을 투자하여 건강을 유지할 수만 있다면
                                          기꺼이 시간과 돈을 아끼지 않습니다.

                                          건강을 지키려고 모든 사람들이 노력을 하는데도
                                          왜 갈수록 건강은 악화되는 것일까요?

                                          환경의 오염을 들 수가 있을 것입니다. 
                                          복잡다단한 사회 속에서  스트레스가 그 원인이 될 수가 있을 것입니다.
       
                                          인간의 과다한 욕심이 그 원인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것들을 제거 할 수만 있다면 건강은 상당히 좋아질 것입니다.

                                          그러나 건강은 단순하게
                                          몸만을 잘 관리한다고 되는 일이 아닙니다.

                                          몸이나 마음을 건강하게 하는 일과
                                          깊은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아시는지요?

                                          몸의 건강은 마음이 모든 매임에서 풀려나
                                          자유로와 질 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몸과 마음은 하나입니다. 
                                          몸이 마음을 살펴주고 마음이 몸을 돌보아주는 것입니다.

                                          생명의 건강은 바로 그 중심을 이루는
                                          마음에 의해서 좌우됩니다.

                                          우리들이 받는 스트레스는 사실상 외부로부터 오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안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끊임없이 재물과 지위와 명예를 얻다 보면
                                          자연 스트레스를 받지 않을 수 없고 

                                          그 스트레스는 바로 그의 마음을 짓누르게 하며
                                          숨막히게 만드는 중요한 문제가 되고맙니다.

                                          생명의 중심인 마음이 억압되고 시들어 가고 있는데
                                          어떻게 몸이 건강 할 수가 있겠습니까?

                                          마음이 모든 억압에서 풀려나 자유롭기 전에는
                                          마음은 보장될 수 없고 건강한 삶이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모든 격분을 가라앉히고 분노를 버리십시요.  
                                          성급해하지 마십시요.

                                          이것이 바로 그 마음을 얽어매는 독소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질투와 증오와 분노와 걱정으로 그 마음을 얽어 매면서 

                                          스스로 건강을 헤치고 자기의 삶을 병들게 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모든 근심과 걱정, 분노와 증오를 털어 버려야 할 때입니다. 

                                          모든 욕심을 버리고 마음을 홀가분하게 비우십시요 .

                                          마음이 자유롭게 되면 몸이 살아나게 되고
                                          몸이 살아나면 몸도 마음도 날아갈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때서야 우리는 자유롭게 아름다운 세상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가슴이 따스한 사람 해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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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난을 아름답게

       

       

       

       

       

       

       

                      추운 겨울이 지나가고 따스한 봄이 오

                      자연은 어디선가 꽃샘추위를 몰고 오고 사람들은 꽃샘추위에 몹시도 당황을 합니다.

       

                      고난은 누구나 다 당하기를 싫어하는 것이지만

                      그러나 고난에는 우리의 잠자던 영혼을 깨우는 힘이 있습니다.

       

                      얼마 전 서울의 한 강연장에서 일어난 리퍼트 美 대사의 피습사건을 보면서

                      60년 전 한국 전쟁의 상처가 이렇게도 크게 남아 있을 줄 미쳐 생각지 못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언론에 동조하며

                      어떤 이들은 김기종씨를 테러분자라고 비난하고 

                      어떤 이들은 美 대사를 향해 춤을 추며 영웅으로 모셨습니다.

       

                      그러나 이 보다도 안타까운 사실 하나는 우리 사회에 무슨 일만 터지면

                      항상 반복되는 종북 논란과 국가 보안법은 무엇인지

                      우리를 더욱 위협하는 무서운 존재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 동안에 우리는 단 한 번도 이 민족이 당한 고난의 의미를 깊이 생각하지 않은 체

                      안보만을 높여 왔고 민족 분단을 정권 유지의 유리한 방패막이로 사용하여 왔을 뿐입니다.

       

                      우리는 너무나 큰 전쟁을 겪었으면서도 거기서 얻은 교훈이 기껏해서 안보뿐이라면

                      우리는 그 전쟁이 주는 많은 교훈을 상실하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래 전에 <25시>의 작가 게오르규 씨가 한국을 방문했을 때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 인생 항로의 괴롭고 어려운 시련을 이겨낸 사람에게는 누구나가 모자를 멋고 인사를 드리게 됩니다.

                      지구상에서 한국 민족처럼 괴로움을 당한 민족이 없어 나는 존경하는 마음으로 인사하고 싶습니다 "

       

                      그는 그의 작품 <25시>에서 " 빛은 동방에서 온다 "고 말하며 그 동방이 바로 한국이라고 말했습니다.

                      그것은 한국인이 무척 괴로운 시련을 겪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정말 그가 말한 대로 괴로운 시련을 겪은 민족임에는 틀림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고난 속에서 그가 말하고 있는 어떤 빛을 찾았는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고난은 당한 것만으로는 값진 것도 아니며 그 고난의 의미를 깨달을 때

                      그래서 어떤 빛이 나올 그 고난은 더욱 값진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세계사에서 이스라엘 만큼이나 수난을 많이 겪은 나라가 또 있을까요?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를 보면 강대한 나라들 틈바구니에 끼어 끊임없이 침략을 받고

                      이리저리 쫒기는 고난의 역사였습니다.

       

                      이러한 고난을 보며 예언자들은 한결같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내산에서 맺은 하나님과의 계약을

                      성실하게 지키지 않았기 때문에 오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고난의 일차적인 의미를 죄에 대한 형벌로 이해 하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언자들은 끊임없이 그 민족에게 회개를 촉구하였습니다.

       

                      유대인들은 지금도 매일 통곡의 벽앞에 나가 죄를 고백하고

                      그들의 성전이 복구되어 경배하는 날이 오기만을 기도하고 있습니다.

       

                      통곡의 벽앞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날은 티사 밥(Tishe B`ab)으로 그들이 우는 날로 가장 슬픈 날입니다.

                      그 모습이 어찌나 애처로운지 가던 사람도 돌아설 지경입니다.

       

                      만약에 인과응보(因果應報)사상이 죄를 지은 사람에게는 응당한 고난이 온다는 것이 맞다면

                      고난은 하나의 형벌로 이해 되어져야 할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민족이 당하고 있는 고난도 어쩌면 우리가 저지른 죄에 대한 하늘의 경고는 아닐까요?

                      정권욕에 사로 잡혀 국민들을 돌보지 아니한 정치가들의 죄와 이 시대에 의미를 부여하지 못하고

                      역사를 해석하여 비젼을 제시하지 못한 창백한 지성인들의 무기력함에 대한 진노인 줄도 모릅니다.

       

                      이 민족앞에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선포하지 아니하고

                      분열만을 거듭해 온 교회의 잘못에 대한 대가(代價)인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이제까지 자기가 잘못했다고 시인하는 정치가들을 보지 못했으며

                      모든 일의 책임을 통감하고 물러나는 지도자들을 보지 못했습니다.

                      결국 우리의 양심이 둔화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고난의 일차적인 의미가 죄에 대한 댓가라면

                      왜 죄 없는 사람들까지 애매하게 고난을 당해야만 하는가 라는 의문이 생깁니다.

       

                      이런 의문은 옛날에만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세계 역사 속에서 끊임없이 반복되어져 온 사실입니다.

       

                      히틀러의 나치 정권 밑에서 아무 죄없이 학살당하고 수 많은 유대인들이 부르짖었으며

                      미국의 흑인 노예들이 채찍 밑에서 신음하며 울부 짖어 왔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유신시대와 군사정권 밑에서 무고한 사람들이 박해를 받고 자유를 부르짖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이산가족 상봉을 지켜 보면서 느낀 것은 고난 당한 것은 애매한 민중들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어린 학생들은 또 무슨 죄가 있어서 사랑하는 부모님께 마지막 작별인사도 못드린 체

                      지옥같은 그 세월호에서 구슬픈 눈물 하염없이 흘리면서 꽃잎처럼 떨어져야만 했을까요?

       

                      여기에는 분명히 고난보다는 더 깊은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보다 더 깊은 고난의 의미가 무엇일까를 찾으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러다가 알게 된 것이 모든 육체와 정신이 무너져 버린 곳에서 진정 영혼이 빛을 발한다는 사실을

                      깨달아 알게 된 것입니다.

       

                      위대한 영혼은 고난을 통해서 빛나는 법입니다.

                      고통이 결여된 인생은 천박하고 그 예술은 사람의 심금을 울리는 깊이와 영감을 가질 수 없습니다.

                      이것은 개인이나 한 민족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일찌기 인도의 시성 타골도 한국을 가리켜 " 아시아의 황금 시대에 빛나던 등불 "로 보고

                      그 등불이 다시 한번 켜지는 날 동방의 밝은 빛이 될 것이라고 소개한 바 있습니다.

       

                      중국의 석학 임어당(林語은 한국에 왔을 때 거문고 소리를 들어보며

                    " 우는 소리와 절규하는 소리가 같이 난다 "면서

                      감각으로는 우는 소리가 들리고 영감으로는 절규하는 소리로 들린다"고 하였습니다.

       

                      오랜 고통의 누적에서 우러나는 절규이며

                      그것은 앞으로 국제시대에 소중하게 평가될 한국의 희망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이 약소민족인 우리가 겪고 있는 고난은 결코 우리만의 고난일 수가 없습니다.

                      우리 민족의 통곡은 전 세계가 당해야 하는 아픔을 대신하고 있는 고난임이 틀림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 고난을 통해서 일어선 우리 민족의 빛이 온 세계를 비추는 희망의 빛이 될 수있습니다.

       

                      우리는 폭력으로 이루어진 사회를 정당한 것이라고 받아 들여서는 안됩니다.

                      아무리 그럴 듯한 명분이 있다 하더라도 우리 안의 어떠한 폭력이나

                      대륙간 탄도 미사일 사드 도입같은 무기는 단호하게 막아야 할 것입니다.

       

                      미국이 무기를 개발하는 명분은 세계 평화를 위한다고 하지만 그들이 내다 파는 무기가

                      오늘날 세계 도처에서 전쟁을 야기시키고 있다는 사실을 볼 때 평화를 위한 무기란 논리적으로나 가능하지

                      실제적으로는 인명을 살상하는 무서운 무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악을 막는다는 명분으로 또 다른 폭력을 사용한다는 것은 우리는 결코 용납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봄이 오는 길목에서 꽃샘추위가 우리에게 들려주는 소식은

                      꽁꽁 얼어붙게 하던 겨울은 이제 가고 만물을 소생하게 하는 봄이 왔다는 기쁜 소식입니다.

       

                      앙상한 나뭇가지가 영광스러운 부활 승리를 위해 꽃샘추위를 이겨내고

                      美 대사의 피습사건으로 인하여 한미동맹이 더욱 더 강화된 것처럼

                      우리가 겪고 있는 이 고난을 헛되게 하지 말고 거기서 참된 의미를 찾아내며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가슴이 따스한 사람 해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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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등한 세상을 꿈꾸며
                                                                 (세상을 좀 더 넓게 바라보면 희망이 보입니다.)




                               세계 인권 선언과 미국 독립 선언문을 보면
                          모든 인간은 날 때 부터 자유스러우며 존엄과 권리에 있어 평등하다고 말했습니다.

                          모든 인간은 평등하며
      누구나 창조자로 부터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받았다고 선언하며
                          여기에는 생명과 자유와 행복의 추구등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인권(人權)에는 개인의 자유와 행복의 추구, 언론과 양심의 자유가 보장되어야만 하지만
       
                          오늘날의 세계는 급격한 경제화의 물결 속에 과중한 노동과 불합리한 착취와 

                          고질적인 고용인들의 횡포가 인권을 더욱 침해하고 있습니다.

                          사회가 아무리 평등과 화합을 주장해도 여러가지 조건에 의해서 우리는 평등하지가 못합니다.

                          가진 자가 있는가 하면 가난한 자가 있고
                          배운 자가 있는가 하면 배우지 못한 자가 있습니다.

                          태어날 때 부터 온갖 혜택을 누려가며 자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처음 부터 어려움 가운데
      고난을 받으며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도 있기 마련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해서 우리 인간은 모두가 평등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엄밀하게 말해서 인간
      의 피나 성품들은 서양인이나 동양인이나 모두다 똑같습니다.
                          인간의 문화가 발달하고 생활환경이 아무리 바뀌어도 인간의 성품들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습니다.


                          인종의 구별없이
      생활 환경에 차이없이 성품들
      은 보편적인 것입니다.
                          그 동안 우리는 재산이나 권력, 지식,혹은 피부색에 의해서
      사람을 차별하여 왔습니다.

       

                          실업자가 늘어나고 다문화 가정과 외국인이 넘쳐나도

                          학벌이나 권력, 민족이나 외모등을 앞 세우고 그들을 차별해 온 것만은 사실입니다.

                          이제는 우리의 지난 날을 돌아보고 모든 조건들을 내려 놓으며

                          사람을 평등하게 바라보아야 할 것입니다.

                          인간은 누구하나 자랑할 것이 없는 이 땅의 주체들입니다.

       


                          인간이 평등할 때만이 진정한 자유와 행복의 의미를 알 수있고
                          인간의 자유와 행복들은 오직 사랑의 조건만이 필요할 뿐입니다.

                          과거에는 거들떠 보지도 않던 사람, 멸시하던 사람,
      천히 여기던 사람들이 
                          나와 평등한 자리로 인식될 때 거기에서 사랑은 시작 되는 것입니다.

                          인간의 평등 사상은 바로 내가 낮아지는 데서 부터 생겨납니다.

                          모든 사람들이 내 눈앞에 평등하게 보일 때까지 낮추고 또 낮추어서
                          위선과 가식과 자랑들은 모두 벗어 버리며
                          새로운 마음으로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가슴이 따스한 사람 해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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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월이 주는 희망 이야기

       

       

       

       

       

       

                       어느날 아침 한 사람이 교회안으로 들어왔습니다.

                       깊은 슬픔이 그 사람의 가슴 속에 가득 찼습니다.

       

                       묵묵히 의자에 앉아 있을 때에 한 마리의 작은 새가 열려진 창문으로 들어왔습니다.

                       그 새는 사람을 보는 순간 너무도 놀라 천정(天井)을 향해서 날아갔습니다.

       

                       그러나 천정에 나있는 창문들은 모두가 닫혀있었고

                       가련한 이 새는 이 창문에서 저 창문으로 날아다니며 계속 날개를 퍼덕거렸습니다.

       

                       그때에 이 사람은 생각했습니다.

                      "저렇게 어리석은 새도 있구나...조금만 더 아래로 내려오면 열려 있는 창문이 보일텐데..."

       

                       마침내 그 작은 새는 너무나 지쳐버려 그만 바닥에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잠시 뒤에 이 새는 열려진 창문을 보게되었고 날개를 다시 펴고 저 멀리 날아갔습니다.

       

                       우리 인간들 또한 자신의 고집대로만 살려고 하는 한 마리의 작은 새와도 같습니다.

                       인간의 삶이 한 번 높아지면 올라갈 줄만 알지 스스로 내려가기란 어려운 것입니다.

       

                       그리하여 스스로 내려갈 수 있도록 하늘은 인간에게 고난이라는 겨울을 보내어

                       겸손의 자리, 낮은 자리에 머물고 섰도록 이끌어가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인간은 비로서 자신의 약함을 알고 높은 사람은 낮아지고

                       낮은 사람은 높아지도록 더욱 더 훈련받아 새로운 변화와 겸손을 깨달아 아는 것입니다.

       

                       우리가 희망을 이야기 할 때 그것은 삶의 의욕을 높여주고 절망의 중병들을 이겨내며

                       접었던 자신의 날개들을 다시 펴고 힘차게 날아오르는 힘입니다.

       

                       추운 겨울이 오면 운동 선수가 더욱 더 땀을 흘리는 것처럼 우리의 희망이란 겨울을 무사히

                       보낸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누가 겨울을 어떻게 보냈느냐에 따라서 그 빛도 달라질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 경험도 없는 사람들은 한 번 의지를 잃고 나면 무모하게 살아갈 때가 많이 있습니다.

                       때로는 술과 도박에 빠져서 마음을 달래기도 하고

       

                       어떤 때는 남에게 피해를 주기도 하며

                       어떤 때는 온갖 수단과 방법으로 불법적인 일들을 도모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꽃이 없는 앙상한 나뭇가지가 찬 바람을 맞으며 떨고 서 있는 것처럼
                       겨울 추위는 지금도 우리를 움추리게 하지만
      봄은 이미 성큼 우리에게 다가왔습니다.

       

                       봄이 열리는 3월을 영어로는 March 라고 하는데 이 말은 시끄럽다, 움직인다 는 뜻이 있습니다.

       

                       그리하여 3월이 돌아오면 모든 산과 계곡에는 긴 겨울잠에서 힘을 얻은 새로운 생명들이 나와

                       힘차게 활동을 시작합니다.

                       그들 뿐만이 아니라 인생들도 서로의 사랑을 다짐하고 새 출발을 시작합니다.

       

                       3월의 들판에는 벌써부터 재잘거리는 새들의 노랫소리가 정겹고

                      어둡고 무거웠던 땅에서는 새순들의 기지개로 움틀거리기 시작합니다.

       

                      밀턴(Milten)은 봄이 되면 자신에게 항상 새롭고 젊은 시상(詩想)들이 떠 올랐다고 말합니다.

                      그는 대체로 겨울철에는 시를 쓸 수 없었지만 봄만 되면 시상을 포착하고는 하였습니다.

       

                      그는 봄의 신선함과 희망을 포착하고 주위를 둘러보고서는

                      겨울의 무덤으로부터 힘차게 솟아나는 생명의 약동들을 관찰하였으며

                      새로운 생명과 아름다움 속에서 기쁨도 맛보았습니다.

       

                      봄이 오면 차갑게 얼어붙었던 땅에서 아주 작고도 연약한 사랑스러운 생명체들이 움터 나옵니다.

                      땅에서 솟아나오는 앙증맞은 새싹들을 보십시오

       

                      그것들은 꽃과 같이 향기롭고 사랑스러울 만큼 아름답기까지 합니다.

                      그것들을 뽑아서 한 번 만져보십시오

       

                      세상에서 이 보다 더 부드럽고 신비로운 생명체가 또 있을까요.

                      자연의 아름다움은 우리의 눈을 즐겁게 할 뿐만 아니라 우리의 귀도 즐겁게 해줍니다.

       

                      새들의 기쁨 속에서 아름다운 화음을 창공에 쏟아 놓습니다.

                      만약 새들이 노래하지 않는다면 그 새들은 얼마 못가 죽고 말 것입니다.

       

                      새들은 노래하지 않을 수가 없어서 노래를 하며 기쁨을 표출하고 사는데

                      어찌하여 사람들은 새들처럼 기쁘게 살지는 못할까요?

       

                      세상에서는 이미 창문을 열어 놓고 어서 오라고 손짓하고 있는데

                      왜 사람들은 초상집의 표정처럼 눈물만 짓고 살까요?

       

                      봄철에 새들을 짝지워주는 봄의 전령사는 우리들에게도 좋은 배우자를 짝지워 주고

                      꿩에게 아름다운 깃털로 옷 입혀 주는 그 마음은 우리들에게도 좋은 새 옷으로 입혀 줄 것입니다.

       

                      삶의 문제로 고민을 하고 있는 그대여!

       

                      손가락으로 영혼의 거문고를 힘차게 뜯어라

                      마음 구석 구석에서 아름다운 화음이 울려 퍼지게 하라

       

                      어둠 속에서 그만 엎드려 있지 말고 자리를 박차고 나와

                      당신의 아름다운 노랫소리를 더욱 드높여라.

       

       

       

                      가슴이 따스한 사람 해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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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희망을 기다리는 사람에게

       

       

       

       

       

                   이 이야기는 성경 속에 나타난 베데스다 못가에 한 병자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희망이란 무엇이며 희망은 어떻게 오는 것인지 제대로 엿볼 수가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 "예루살렘에 있는 양문 곁에 히브리 말로 베데스다라 하는 못이 있는데

                                     거기 행각 다섯이 있고" 라는 말이 있습니다.(요한복음 5장 2절)

       

                   베데스다 연못은 최근에 와서야 발견되었고 그 길이가 44m, 깊이는 9m 입니다.

                   또 각 연못에는 9m 높이의 문이 5개씩 있습니다.

       

                   자세한 이야기들은 교회의 신자라면 누구나가 잘 알고 있는 내용입니다.

       

                   베데스다 연못은 마치 인생 역전을 꿈꾸는 사람처럼 천사가 가끔 내려와 물을 움직여 놓고 가는데

                   그때 제일 먼저 못에 들어간 병자는 어떤 병에 걸렸든지 낫는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많은 병자들은 그 못에 들어가기 위하여 행각에 누워서 연못의 물이 동하기만을 기다렸습니다.

                   실제로 물이 동할 때 들어가면 병이 낫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처럼 기적을 바라며 거기에 모여 들었습니다.

                   그 사람들 중에는 38년 된 병자 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의 병이 어떤 것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가 38년 동안 병에 시달려 왔었다는 것은 그가 평생을 병 가운데 있었음을 말해 줍니다.

       

                   남들은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고 아기도 낳고 활동하는 시기에 그는 병 때문에 고통을 받으며

                   허송세월을 보냈습니다.

       

                   그는 아마도 38년 동안 온갖 치료는 다 받아 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효과가 없었고 이제는 기적만을 바라며 이 연못을 찾아 왔을 것입니다.

       

                   긴 병에 효자 없다는 말대로 가족들도 이 오랜 병자에 대해 포기하고 돌보지 않았는 지도 모릅니다.

                   물이 동할 때 그를 물에 넣어주는 사람조차도 없는 것으로 보아 친구나 가족들도 다 떠나고

                   자기 혼자만 남았을 지도 모릅니다.

       

                   그에게는 모든 희망이 다 끊어지고 오직 물이 동하기만을 기다리는 절박한 순간이었을 것입니다.

                   우리가 여기에서 주목할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포기하지 않고 희망을 기다렸다는 사실입니다.

       

                   실제로 연못가에는 자신보다도 동작이 빠른 사람들도 많고 어쩌다 물이 동한다고 하더라도

                   이 병자가 물에 들어가 나을 수 있는 확률이란 거의 없는 것일 지도 모릅니다.

                   그런데도 그는 포기하지 않고 거기에 눌러 앉아 희망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이 병자들처럼 베데스다 못가에 나와 어디로 부터 왔는 지는 모르지만

                   막연하게나마 희망을 가지고 기다리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어서 빨리 자신의 문제들이 해결되어 자유하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 민족은 참으로 견디기 힘든 상황에서도 잘 참고 기다려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당쟁으로 지샌 조선조 오백년 동안 우리 민족은 많은 고통 속에서 새날을 기다려 왔습니다.

       

                   때로는 동학혁명과 같이 몸부림 치면서 항거하기도 하였지만 묵묵히 그 고난을 견디면서

                   새날을 기다려 왔습니다.

       

                  오늘날 같이 정국이 어수선하고 불안한 때는 더욱 더 그 날이 그리워지기는 마찬가지 입니다.

                  아무리 뉴스를 들어 보아도 어렵게 얻은 민주주의는 죽은 것만 같고 불의만이 살아서

                  온 나라를 장악하며  날 뛰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우리는 지금 베데스다 못가에 물이 동한 줄 알고 모두가 뛰어 들어가 보았지만 실상은 물이 동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또 다시 실망을 하면서도 그 못을 떠나지 못하고 기다리는 병자들처럼 정말 물이 동할 날만을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쉽게 이 기다림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입니다.

                  비록 몇 백 번의 실망이 우리를 엄습한다 할지라도 결코 자유에 대한 희망, 남북 평화통일에 대한 기대,

                  아름다운 세상에 대한 희망을 포기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이 시대가 아무리 우리에게 실망을 안겨 주어도 우리의 희망을 더욱 확고하게 가져야 할 것입니다.

       

                  냉전시대가 끝나고 세계 역사의 흔들림은 많은 변화를 가져 온 것이 사실입니다.

                  독일이 통일 된 것이나 미국이 쿠바와 손을 잡은 것이나 어제의 원수가 오늘의 친구로 변해

                  손을 잡고 경제와 문화, 심지어는 군사까지도 교류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냉전시대가 끝난 지금 세계는 더 많은 병자들이 도움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 나라의 상황도 정권이 바뀌면서 한 바탕 물이 요동칠 것처럼 보였지만 막상 해결된 것은 별로 없고

                  그 못의 병자들처럼 문제들만이 계속 쌓이고 있습니다.

       

                  결국 우리가 기다려야 할 것은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주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고통 중에서 낙심하지 아니하고 정의를 추구하며 평화를 기다릴 때 희망은 오는 것입니다.

       

                  지금 정부는 우리 나라가 FTA를 추진하면 당장이라도 돈벼락에 맞을 것처럼 국민들을 유도하고 있지만

                  FTA가 성사된다고 해서 우리의 물건만이 그대로 그 나라에 진열되는 것은 아닙니다.

                  더 많은 과제와 문제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제 중국과 여러 나라와도 FTA가 추진되고 농촌을 비롯한 우리 사회가 더 큰 위기에 몰렸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우리는 끈질기게 원칙을 지켜야 할 것입니다.

               

                  아무리 거센 물결이 요동친다 하더라도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지켜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우리가 역사의 심판대 앞에서도 당당하게 될 것입니다.

       

                  38년 동안 병에 시달리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낫기를 기다리던 병자에게

                  어느 날 갑자기 예수가 찾아 왔습니다.

       

                  예수는 왜 그 많은 병자들 가운데서 그를 택했는 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것은 상징적인 의미요,

                  병들어 있는 이스라엘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지금 성경의 관심사는 그 연못가에 있는 모든 병자보다도

                  병이 가장 오래 된 이 사람을 고쳐 주었다는 사실에 촛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이 병자는 자신이 바라던 대로 물이 동하지는 않았지만 그 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 되었습니다.

                  오랜 병에서 자유함을 얻고 일어나 걷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이 그토록 기다리고 기다리던 메시야가 오셨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우리가 기대하는 것은 어떤 요행수(數)나 불완전한 것들이 아닙니다.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있는 근본적인 변화입니다.

       

                  오늘날 우리 상황에서는 무엇보다도 정치권력을 통한 악의 불의가 극대화되고 있습니다.

                  정통성과 도덕성을 상실한 권력은 온갖 거짓과 불의를 자행하고 그것을 교묘하게 은폐하며

                  힘으로 그 거짓을 정당화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런 풍조가 정치에만 국한된다면 문제는 비교적 간단합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모든 사회 구석 구석에 파급되어 이 사회가 정의를 외면하고 도덕성을 잃어가고 있는 것이 문제입니다.

                  정치가 부패하면 사회 전반이 영향을 받는 것입니다.

       

                  거짓과 불의로 뭉쳐진 정치는 우리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고 있는데 우리가 그것을 보고 방관만

                  한다면 이 땅에는 무슨 희망이 있을까요?

       

                  우리가 이 거대한 물결에 대항하여 진리를 파수하고 정의를 추구하며 평화를 위해 노력할 때

                  거기에 우리의 희망이 오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자고 나면 싸우고 문제가 많은 세상 속에 살고 있습니다. 그것은 모두가 정치하는 사람들이

                  국민들 위에 군림하여 오직 한 사람에게만 충성을 바치려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우리가 실망치 아니하는 것은 아직도 우리 구석 구석에는 이름없이 빛도 없이 선뜻 나서서

                  희망을 주고 있는 손길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제 이 겨울에 낙담하여 실망하지 말고 실의에 빠진 사람들에게 희망을 외쳐야 할 것입니다.

                  지쳐버린 농민들과 실의에 빠진 사람들에게 용기를 불어 넣어야 할 것입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낙심하지 말고 희망을 기다리면

                  추운 겨울은 물러가고 만물이 소생하는 봄은 오고야 말 것입니다.

       

       

       

                  가슴이 따스한 사람 해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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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겨울의 아름다운 사랑

       

       

       

       

       

                             혹독한 겨울 추위는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계절입니다.

       

                             겨울에는 줄기와 가지끝에 있던 수액이 나무 뿌리로 모여 나무에게 휴식할 시간을 주고

                             대지 위에 쌓인 눈은 잡초와 식물들을 보호하여 아늑하고 따뜻하게 감싸줍니다.

       

                             살을 에는 듯한 서리는 수 많은 해충들을 박살내고 더러운 병균들을 몰아내며

                             지치고 탈진한 생물들에게 새로운 활력을 불어 넣어줍니다.

       

                             겨울은 우리에게 유익할 뿐 아니라 매우 아름다운 계절이기도 합니다.

       

                             하얀 눈으로 덮여 있는 대지와 얼어붙은 나무들,

                             유리창에 서리가 그려내는 환상적인 그림들을 보십시오!

       

                             어떤 것이 이보다 아름답고 신비로울 수 있을까요?

                             하챦은 돌맹이 하나까지도 보호하는 자연의 신비가 그저 사랑스럽기만 합니다.

       

                             또한 아름다운 새들은 어디선가 연락을 받고 좀더 따스한 남쪽나라로 찾아가고

                             남아있는 동물들은 자신의 깃털만으로도 추운 겨울을 얼마든지 보낼 수 있습니다.

       

                             하물며 우리같은 인생이겠습니까?

                             자연에만 겨울이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일생에도 겨울이 있습니다.

       

                             유년기는 일생에 봄과 같고 청년기는 여름철이며 장년기는 가을에 해당됩니다.

                             그러다가 인생의 수확기가 끝나고 나면 혈관 속의 피는 점점 식어가고

                             머리에는 흰 눈처럼 쌓이게 되면서 겨울이 시작됩니다.

       

                             그때 우리는 가지들이 줄기에 매달려 따스한 봄날이 오기만을 기다리는 것처럼

                             우리도 희망을 기다리면서 시련을 이겨내야 할 것입니다.

       

                             비록 노년기엔 머리에 서릿 발이 날리고 이마엔 깊은 주름이 패이지만 마음 속까지는 아닙니다.

                             연륜은 우리에게 인생의 어떤 시기보다도 아름답고 평정(平定)을 가져다 줍니다.

       

                             세상에는 많은 교육들이 있다지만

                             아이들이 노인들 곁에서 자라게 하는 교육보다 더 좋은 교육도 없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존경하며 따를 수있는 노인은

                             사랑스러운 보살핌과 겸손함과 존경심으로 어른들을 공경하게 하고

       

                             만약에 아이들이 없으면 노인들도 그만큼 피곤하고 고독하게 되면서

                             황폐하고 쓸쓸한 생이 되고 말 것입니다.

       

                             아! 떨리는 두 손으로 움켜 쥘 수도 없는 돈을 벌려고 애쓰는 모습이여!

                             쭈글쭈글한 몸뚱이로 어울리지도 않는 옷을 걸치고서 무덤가로 향하는 슬픈 영혼이여!

       

                             당신의 그 자애로운 손길이 없었다면

                             우리들의 행복과 아름다운 세상도 결코 오지 못했노라.

       

       

       

                             가슴이 따스한 사람 해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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