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처럼 목자처럼

 

 

 

 

              을미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한 해를 보내고 또 다른 새해를 맞는다고 하지만 나이를 한 살 더 먹는 것이요

              그것은 결국 죽음에 더 가까이 다가간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육체는 비록 시간을 따라 낡아지고 쇠하여 가며 어쩔 수없는 고난과 아픔을 겪지만

              우리는 영원을 추구하는 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시간 속에서는 기쁨이 생겼다가도 사라지고 평화롭다가도 불안이 예고없이 다가옵니다.

              그러나 영원 속에서는 낡아지는 법이 없습니다.

 

              우리가 영원을 추구하며 살아갈 때 우리는 어떠한 고난과 아픔에도 참을 수있고

              세상이 주는 근심과 불안들도 얼마든지 극복해 나갈 수 있습니다.

 

              우리가 "새해에 복 많이 받으세요" 라고 인사하는 의미는

              바로 이러한 영원의 복을 풍성하게 받으라는 뜻입니다.           

 

              특히 을미년 새해에는 진실과 성실과 화합을 다짐하는 "청양의 해" 이기에

              우리에게는 각자 남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매일 매일을 새로운 자세와 각오로 임한다면

              우리의 가정과 나라에는 놀라운 희망으로 가득할 것입니다.

 

              당신은 따사로운 오후에 넓고 푸르고 마음도 상쾌한 초장에 나가

              양들이 무리를 지어 한가롭게 풀을 뜯으며 놀고 있는 장면을 보았습니까?

 

              거기에는 어떤 걱정이나 위험도 없고 오직 평화와 사랑만이 있을 뿐입니다.

 

              세상은 인간들을 만물의 영장이라고는 하지만 사실 인간은 양(羊)과도 같은 것입니다.

              우리가 양을 볼 때 평화와 목자가 생각나고 목자는 곧 지도자로도 설명할 수 있습니다.

 

              양은 본래가 아둔한 동물입니다.

              양은 백 미터 이상 떨어진 전방들을 바로 볼 수가 없습니다.

 

              어리석게도 양은 스스로 먹이를 구할 수도 없고 적을 물리칠만한 강한 힘도 없습니다.

              그리하여 양은 반드시 목자가 필요하고 목자 없이는 살아갈 수도 없습니다.

 

              인간도 마찬가지로 내일 일을 알지 못하고 혼자서는 세상을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너무도 이기적이어서 자신만 생각할 뿐 이웃에게 관심이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맹수가 양들을 물어 죽여도

              그냥 못 본 척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으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목자들은 마음이 진실합니다. 

              그가 먹여주는 꼴은 언제나 독초가 없습니다.

              목이 마르면 마시우게 하고 배가 고프면 배부르게 합니다.

 

              그리하여 양들에게 위험이 닥쳐오면

              목자는 피하지 아니하고 제일 먼저 달려가 양들을 구출합니다.

 

              지난 2004년에 우리 사회는 당동벌이(當同伐異)라는 사자성어가 있었습니다.

              이 말은 같은 무리와는 당을 만들고 다른 무리에게는 공격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일까요?

              요즘 우리 정치인들이 하는 꼴을 보면 어쩌면 그렇게도 닮았습니까.

 

              국민들이 저들에게 모아준 표는

              오직 나라와 국민들을 위해서 최선을 다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정치인들은 하라는 일들은 하지 못하고서

              또 다시 자신들의 밥 그릇 챙기기에만 여념이 없습니다.

 

              우리 사회가 이렇게 마음에 맞는 사람끼리만 어울리고

              생각이 다른 사람들과는 배척한다면 이 보다 더 편협되고 이기적인 사회는 없을 것입니다.

 

              새해의 마음 가짐은 언제나 다름이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같은 것을 추구하는 구동존이(求同存異)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비록 자기 마음에 맞는 것이 하나 없어도 다른 것이 있음을 존중하고

              함께 지혜를 모아갈 때 거기에 평화가 있고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 수 있는 것입니다.

 

                                                     목자와 양의 자세한 이야기는 http://blog.daum.net/91386/16752488

 

              가슴이 따스한 사람 해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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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은 연못

 

 

 

 

 

                   인간의 마음은 하나의 작은 연못과도 같습니다.

 

                   거기에는 어떠한 장애물도 있지 않고

                   잔잔한 물 위에는 오직 평화와 기쁨만이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그 마음 속에 더러운 것이 한번 들어오면

                   곧 평화는 깨어지고 기쁨은 사라지고 맙니다.

 

                   그렇다면 양심이란 무엇일까요?

 

                   인간의 양심은 연못 속의 물이 얼어 있는 마음이 아닐까요?.

                   연못가의 얼음이 형성되기가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만일 누군가가 막대기로 연못가의 물을 계속 휘 저으면

                   어떠한 추운 날씨에서도 연못이 어는 것을 방지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얼음막이 형성되도록 그냥 방치해 두면

                   연못가의 물은 표면부터 얼기 시작하여 마침내는 온 연못가가 빙판이 되고 말 것입니다.

 

                   결국에는 그 빙판은 매우 견고해져서

                   그 위로 사람들이 아무리 지나쳐도 끄떡도 하지 않을 것입니다.

 

                   인간의 양심도 이와 같은 것입니다.

 

                   점차로 얇은 막이 형성되기 시작하여 결국은 단단해 지고 무감각해 지면

                   그 일이 평화인지 불화인지, 정의인지, 불의인지를 제대로 알 수 없고

                   어떤 착한 행실로도 진정한 희망을 찾을 길이 없습니다.

 

                   혹시 우리 사회가 지금 양심이 너무 굳어져서

                   무엇이 중요하고 필요한 지를 모르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우리 사회의 현실을 돌아볼 때 우리는 너무도 쉽게 생각하고

                   너무도 빠르게 결정을 내려 버립니다.

 

                   우리가 조금 잘 살게 되었다고 생각 할때는 우리의 생활을 한껏 부풀렸다가

                   경제 위기가 닥쳐오자 우리는 또 다시 망할 것처럼 죽는 시늉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들도 조그마한 문제에도 감정이 폭발하여 우울해 지는가 하면

                   별 것 아닌 일에도 기분이 좋아져서 싱글벙글 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뭐 양심이 밥 먹여 주느냐고 정의에는 관심도 없습니다.

                   그러나 비록 양심이 밥을 떠 먹여 줄 수는 없겠지만 죽어가는 나라를 구해 줄 수는 있지 않습니까.

 

                   우리 가정에 먹을 것이 떨어져 낙심하게 될 때에

                   아궁이에 던져 넣은 고구마를 꺼내 먹던 긴 겨울이라도 좋고

 

                   오늘처럼 눈이라도 내리는 날에는 모두가 밖으로 나와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면

                   그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진정한 행복이 아니겠습니까?

 

                   지금은 우리가 한탄하고 원망하며 불평할 때가 아니라 사랑의 불을 지펴야 할 때입니다.

                   굳어져 가는 우리 양심을 살려내어 희망의 불 길이 타오르도록 모두가 관심을 가져야 할 때입니다.

 

                   그리할 때 우리를 위협하던 추위는 물러가고

                   이 땅에 아름다운 꽃이 만발하는 희망의 새 봄이 찾아오고 말 것입니다.

 

 

 

 

                   가슴이 따스한 사람 해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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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정한 구제(救濟)

 

 

 

 

 

 

                유대인의 경전에 의하면  남을 구제하는 방법에는 여덞가지 정도가 있다고 합니다.

 

                첫 째는 주기 싫어서 망설이고 있다가 할 수없이 주고는 후회하는 경우이고

                둘 째는 주기는 주되 아주 조금 주는 경우이며

                셋 째는 받는 사람이 만족스러울 만큼 주되 그 대신 넌지시 어떤 부탁을 하는 경우

                넷 째는 어떤 부탁도 없이 후히 주나 여러 사람이 다 보는 데서 상대방이 창피해 하고

                           어쩔 줄을 모르게 하는 경우입니다.

 

                다섯째는 그가 그 앞을 지나갈 때 다른 사람은 알지 못하게 돈을 받아갈 수 있도록

                             배려해 주는 구제이고

                여섯째는 구호물품을 사람들에게 주면서 받는 편에서는 알지 못하도록

                             그들의 집에다 몰래 가져다 주는 것이며

                일곱째는 주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이 피차 알지 못하도록 공동의 모금함에 넣으면서

                             은밀히 도움을 주는 경우입니다.

 

                마지막으로는 그가 더 가난해 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 그의 채권자들의 요구를 대신 들어주고

                             그가 그의 잃어버린 유산(遺産)을 되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며

                             그가 새 직장을 구하거나 새 일자리를 찾아서

                             다시는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지 않고서도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구제입니다.

 

                지금도 우리의 주위에는 사랑과 정의가 넘치는 자선과 치료와 봉사의 발길이 많이 있지만

                그것은 나름대로의 가치가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과 정의가 없는 선(善)이란 결코 선(善)일 수가 없습니다.
                가식적일 뿐, 모두가 선인 것처럼 보여질 뿐입니다.

 

                진정한 구제란 자기도 잘 보이지 않는 영원한 그 나라에 투자하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어떠한 까다로운 조항이나 이유도 없고 용도도 묻지 않으며

                자기가 얼마만큼 투자했다고 소문내고 자랑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렇지만 거기에는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한번도 경험하지 못하고

                받아 본 적도 없는 영원한 기쁨과 축복의 희망들이 차곡차곡 쌓여져 있습니다.

 

 

 

                가슴이 따스한 사람 해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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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희망이 있습니까?

 

 

 

 

 

                 인간의 본성 가운데 가장 강하고 살아 움직이게 하는 힘이 희망입니다.

                 그리스의 대표적 서사시인 헤시 오도스는 그의 작품에서 이야기 한 가지를 들려주었습니다.

 

                 프로 메테우스가 천계의 불을 훔쳐 사람에게 주었을 때 인류를 벌하기 위해 제우스는

                 다른 신에게 명하여 매력과 아름다움으로써 사람에게 불행을 주는 여자를 만들게 하였습니다.

 

                 다른 신은 여자를 아름답게 만들었고 또 다른 신은 여자에게 용기와 교활한 지혜를 주었으며

                 신들은 그것을 판도라 라고 이름지었습니다.

 

                 프로 메테우스에게는 동생이 하나 있었는데 판도라는 그의 아내가 되었습니다.

                 그 때 판도라는 하늘에서 하나의 상자를 가지고 나왔는데 그것을 열었더니

                 상자에서 세상의 온갖 죄악과 재앙이 튀어 나와 온 누리에 퍼졌고

                 그 속에는 희망이라고 하는 하나의 씨앗만이 남아 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인간에게 있어서 참된 가치는 그것을 어떻게 추구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잘못된 꿈과 희망은 우리들의 마음을 멍들게 할뿐 아니라

                 현실성 없는 환상은 다만  잠시후에 사라지는 신기루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때때로 거짓된 희망은 하늘을 찬란하고 빛나게도 하지만

                 곧 깊은 어둠만을 남기며 사라지는 유성(流星)과도 같은 것입니다.

 

                 그러한 희망은 잠시동안 우리의 눈을 즐겁게 하지만

                 곧 시들어 버리고 가을날에 떨어지고 는 나뭇잎과도 같습니다.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희망을 잃어버리고 비굴하게 사느니 차라리 고난을 당하면서 당당하게 살아가십시오.

 

                 롱펠로우는 희망을 잃어버린 사람을 서편으로 지고 있는 태양에 비유했으며

                 솔로몬의 지혜는 그것을 가리켜서 자기 영혼을 포기하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올바른 희망, 확실한 근거있는 희망만이 우리가 믿고 나갈 수있는 힘입니다.

 

                 그것은 우리들의 하늘빛나게 하고 땅을 아름답게 하는 것이며

                 우리들의 인생에 음악처럼 세상을 더욱 살기좋게 만드는 것입다.

 

 

 

                 가슴이 따스한 사람 해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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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답고 행복한 사람

 

 


 

                             아침이면 눈부신 바다 위로 떠 올랐다 저녁이면 황혼빛 저편으로 사라지는

                             해의 일출과 일몰을 보았는가?


                             은은한 빛을 밝히면서 하늘 위를 떠 다니는 달의 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암흑같이 어두운 밤 하늘을 수 놓으며 반짝이는 별 무리의 행동은 또 어떠한가?

 

                             형형색색(形形色色)과 자태를 자랑하며 들판에 피어 있는 꽃들은

                             차라리 아름다운 여인이 내게로 갓 시집온 신부의 모습과도 같다.

 

                             우리는 우리에게 기쁨을 주고 우리를 유익하게 하는 모든 것들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한다.

                   

                             그것은 마치 화가가 훌륭한 작품을 그리고

                             조각가가 대리석을 쪼아 위대한 조각품을 만들어

 

                             우리가 계속 감상하고 싶은 욕망처럼 우리가 그들에게 감사하는 것과 같다.

                             우리가 아름다운 것을 볼 때 그것은 우리를 더욱 기쁘게 하며 우리에게 행복을 준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세상을 살아갈 때도 최선을 다해 남을 위하여 살아가고

                             정의를 위해 기꺼이 자기 자신을 희생하는 사람은 너무도 행복한 사람이다.

 

 

 

                             가슴이 따스한 사람 해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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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 열매를 내놓아라

 

 

 

 

 

 

        사람이 진수성찬을 먹는다고 건강해지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건강을 더 해칠 수도 있는 것처럼,

        우리가 이 땅에서 살아갈 때 고난받지 않으면 오히려 선한 열매보다는 쓰디 쓴 열매들이 나오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건강하게 살고자 하는 사람들은 무엇을 취하고 무엇을 먹느냐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고난을 달게 받으며 살아가느냐 아니면 이 땅의 안락함을 취하느냐에 따라서

        전혀 다른 열매들이 맺힐 수 있음을 기억하십시오.

 

        오늘 우리는 자기 자신을 한 번 돌아보십시오.

        우리가 먹는 양식이 어떤 모습으로 변화되어 나오는가?

 

        내 속에 들어간 밥이 변화되어 사랑으로 나타나고 있는가?

        내가 마신 물이 변화되어 정의로 나타나고 있는가?

        내가 고난을 마다하지 않고 기꺼이 경험하며 영광의 꽃으로 피어나고 있는가?

 

        우리 자신을 돌아보고 우리는 좀더 겸손하게 섬기는 자리에서 우리의 일용할 양식으로 삼아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그것은 변화되어 정의로운 선이 되고, 사랑으로 나타나며,

        참된 기쁨과 만족으로 내 생활 속에서 아름다운 열매를 맺게 될 것입니다.

 

        오늘날 한국교회가 부끄러움을 당하는 이유가 무엇인 줄아십니까?

        한국교회가 사랑을 베풀지 못하며, 봉사하지 않으며 자기 자랑만하기 때문에

        이 사회가 교회를 외면하고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 사회는 한국교회를 향하여 사랑을 요구하고 있는데 그들에게 나누어줄 사랑의 열매가 없고

        정의와 진리를 요구하고 있는데 한국교회는 말씀에 올바로 서지 못하므로

        그 요구에 응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한국교회 교인들은 열심히 무얼 먹기는 많이 먹는데

        내어놓은 것은 개교회주의, 기복신앙, 미성숙한 보수신앙 들입니다.

        변화의 기능이 마비되었거나 잘못되어 있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한국교회는 이제라도 겸손히 예수의 본을 따라 낮아지고 겸손해지며

        고난을 피하지 아니하고 달게 받는 교회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아름다운 열매, 사랑의 열매를 맺힐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그동안 어떤 열매를 내놓았다고 생각하십니까? 

        우리에게서 어떤 열매가 맺어졌습니까?

        물론 이것은 나중에 역사에서 올바르게 평가되어져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자신을 돌아볼 때 그래도 자타가 인정하는 그 어떤 열매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신비의 연금술사이신 하나님만 바라보며 모든 마을마다 지역마다 아름다운 열매가 맺어질 수있도록

        사랑의 꽃들이 활짝 피어나야 하겠습니다.

 

        사람들이 이 꽃들을 바라보면서 기쁨을 누리며,

        저들 속에서도 소망의 꽃이 피어날 수있도록 희망을 주어야 하겠습니다.

 

        이제 모든 산마다 붉게 물든 단풍잎들을 보면서

        우리 인생도 더욱 곱게 물들어 가면서 아름다운 열매로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야 하겠습니다.

 

 

 

        가슴이 따스한 사람 해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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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 사회 정의를 위하여

 

 

 

 

 

 

                한 나라의 흥망성쇠는 그 사회 구성원들의 도덕 수준에 달려있다고 보아도 틀리지 않을 것입니다.

 

                의로운 자가 관직에 올라 있으면 훌륭한 법이 제정되고 정치가 공정하게 이루어집니다.

                덕은 장려되는 반면에 악은 적절한 규제와 처벌로 사라지게될 것입니다.

 

                만일에 옳고 그름을 판결하는 법정에서 부당한 판결이 내려진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할까요?

                그것은 재판부가 편견을 갖고 있거나 배심원이 부패했거나 증인이 거짓 진술을 하였기 때문입니다.

 

                만일에 정의와 불의가 싸우고 있는 현장에서 악한 자의 입이 관여하게 된다면 결과는 어떻게 될까요?

                그들에 의해 정의는 파괴되고 사회는 가장 불안한 나락으로 떨어지고 말 것입니다.

 

                정직한 자는 어느 장소에 있든지 자신 뿐만 아니라 이웃의 번영을 위해서도

                마음 속에 정의를 간직하고 그가 처한 장소에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그러나 공평과 정의가 없는 사람은 끝없는 투쟁과 싸움을 일으키며 분쟁과 원한의 씨만 될 뿐입니다.

 

                공공생활에서 악한 자의 입은 언제나 공공의 선을 파괴합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아름다운 사회를 만들기 원한다면 먼저 정직한 자의 숫자를 많이 늘리고

                악한 자의 숫자는 더욱 줄이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우리 사회의 정의를 위해 그것에 반대되는 것은 이떠한 것이라도 모조리 없애도록 힘써야 합니다.

                그리할 때 거기에 아름다운 세상이 이루어 지는 것입니다.

 

 

 

 

                가슴이 따스한 사람 해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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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꿈은 이루어진다.

 

 

 

 

 

 

          지난 시절, 나는 어려움이 닥칠 때마다 두 손을 불끈 쥐며 가슴 속에는 매일

        " 내일 일은 난 몰라요 "라는 찬송을 간절히 부르던 때가 있었습니다.

 

          하늘도 이런 나의 간절함에 감동하였는지 나는 그렇게 어려운 문제들을 잘도 헤쳐나갔습니다.

 

          꿈은 내게 있어 언제나 희망입니다.

          꿈은 놀라운 힘을 가져다 줍니다.

          꿈이 있으면 누구라도 죽음에서 살아나고 젊은이들이 더 먼 곳을 내다보며 나라는 더욱 부강해집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동안 꿈을 잊은 채 살았습니다.

          군사정권에 항거하느라 날마다 피곤하였고 자고 일어나면 터지는 정치인들의 싸움에 항상 짜증이 났습니다.

 

          사람들은 아무 것도 모른 채 저들을 따라 나섰다가 애매한 옥살이를 하던 이도 많았습니다.

          그러다가 우리나라 안에서 월드컵 축구대회가 개최되자 우라들은 꿈을 찾게 되었습니다.

 

          히딩크 감독이 이끄는 대한민국 축구 대표선수가 일을 저지르면서 서울의 시청앞 광장이나 도시마다

          붉은 물결이 넘실거리기 시작하였습니다.

 

          수 백만의 인파가 붉은 옷으로 갈아입고 광장으로 몰려나와 목청껏 대~한민국을 외쳤습니다.

          그 동안에 억눌려 왔던 온갖 서러움들을 토해내며 외치고 또 외쳤습니다.

 

          한 번 달구어진 축구 열기는 식을 줄도 모르고 16강을 넘어서 이제는 전 세계로 " 꿈은 이루어진다"고 널리 알렸습니다.

          축구 선수들도 이에 보답이라도 하듯이 승승장구하여 마침내 4강에 올랐습니다.

 

         16강에만 들어도 감지덕지할 우리였는데 내친김에 4강까지 올랐으니

          그 꿈은 전혀 실현 불가능한 것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이러한 기적같은 꿈은 또 다시 2014년 인천 아시안 경기대회에서도 일어났습니다.

          대한민국 대표선수들이 축구와 농구결승전에서 극적인 명승부를 펼치며 금메달을 이루어낸 것입니다.

 

          기량이나 전적면에서도 상대는 결코 만만한 팀이 아니었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한국인의 끈기와 정신력앞에

          북한과 이란 선수들은 굴복을 하고 마침내 우리는 금메달을 달성한 것입니다.

 

          때때로 우리는 자기의 꿈이 더디고 늦추어 질 때 실현 불가능한 것같이 보일 때 실망하거나 체념하기가 쉽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꿈의 실현을 기다리지 아니하고 실현을 위해서 힘쓰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아름다운 꿈은 우리의 예상과는 달리 반드시 정확한 때에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오늘 비록 폭력과 불의가 이 사회를 지배해도 정의롭고 아름다운 세상은 반드시 오고야 말 것입니다.

 

          아름다운 세상은 언제나 적극적인 사람에 의하여 성취되는 법입니다.

          환상을 가진 자라야 할 것입니다.

          아름다운 역사는 언제나 이런 사람들에 의하여 이루어져 왔습니다.

          어떠한 난관에도 굴하지 아니하고 꿈을 향하여 전진해 나가는 사람만이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 수 있습니다.

 

          우리가 청소년들을 볼 때마다 그들의 활력 속에서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것처럼 우리는 우리의 희망인 청소년들에 대해서

          보다 관심을 기울이며 그들만이 가지고 있는 이상과 꿈을 우리도 배워야 할 것입니다.

 

          무한한 가능성과 꿈을 가지고 뻗어 가는 우리의 청소년들...

          그러나 너무도 제약이 많은 현실의 벽 앞에서 우리의 창소년들은 갈등하며 고민하고 싸우고 있습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관심을 갖고 이들의 좌절없는 삶을 위해 길을 마련해야 할 것입니다.

          동시에 타성화되고 이상을 잃어버리고 현실에 얽매어 살아가는 우리는 청소년들이 가진 이상과 꿈을 되찾고

          저들이 가진 패기와 진취성을 되살려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어른들은 자신들의 욕망으로 저들의 꿈과 미래를 어둡게 만들어 놓고 저들이 아무 걱정없이 살아가도록

          도와주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해마다 등록금은 자꾸 오르는데 국가는 뒷짐만 지며 저들에게 돈을 꾸어주고 이자는 꼬박꼬박 챙기며

          돈벌이를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청년들이 군복무를 다 마치면 일자리가 보장이 될까요?...

 

       < 갈매기의 꿈 >이란 책에 보면 조나단이라는 갈매기는 다른 갈매기들이 오직 먹이를 구하기 위해 날아다니는데 비해

          그는 오직 나는 것 자체에만 관심을 가졌습니다.

 

          그의 간절한 꿈은 어떻게 하면 더 빨리, 더 멀리, 더 높이 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었습니다.

          그는 혼자서 맹렬히 비행연습을 했습니다.

          비행능력과 기술이 늘어가는 것이 그에게는 큰 기쁨이었습니다.

          위험도 따랐지만 그러나 그 속도는 힘이었고 기쁨이었으며 순수한 아름다움이었습니다.

 

          그 갈매기는 마침내 자기와 같은 생각을 가진 무리들을 만나서 그들에게서 완벽한 비행술을 배웠습니다.

          그 후에 다시 돌아와서는 자기처럼 나는 것만을 좋아하다가 그 무리에게서 쫒겨난 어린 갈매기를 만나

          그에게 비행술을 가르친다는 내용입니다.

 

          그렇습니다. 지금 우리가 도전해야 할 것은 얼마나 많이 갖고 높은 자리에 오르느냐가 아닙니다.

          영혼의 비상(飛翔)입니다.

 

          우리가 살아가야 할 세상은 전쟁처럼 치열하고 무한히 넓고 풍성한 세계입니다.

          그 곳으로 나아가기 위해 우리는 영혼의 날개를 펴고 더욱 연습을 해야 할 것입니다.

 

          영혼의 비상날개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해보자"는 자신감입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갈매기처럼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지 말고

          어떻게 하면 보다 깊은 세계로 나아가며 어떻게 해야 우리가 그것을 이룰 것인지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희망이란 앞 일에 대한 기대를 뜻하는 말인데 사람이 열심히 사는 것도 다 그와 같은 기대가 있기 때문입니다.

          부모가 열심히 일을 하고 학생들은 부지런히 공부하며 운동선수들은 체력을 연마하고

          사업가는 사업에 최선을 다하는 것도 그 곳에 자신의 꿈을 위한 기대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우리의 목숨이 음식보다 중요하고 우리의 몸이 의복보다 중요하다는 사실만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우리 앞에는 무한히 넓은 세계가 있습니다.

          거기에는 우리가 전혀 알 수도 없고 보지도 못했던 엄청난 보화가 숨어있습니다.

          바로 우리들을 위하여 준비된 보석같은 꿈입니다.

 

          비록 지나온 삶이 실수가 있고 눈물과 고통도 많았지만 끝까지 좌절하지 말고 앞을 내다보면서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한다면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가슴이 따스한 사람 해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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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악을 선으로 바꾸라

 

 

 

 

유대인의 탈무드에 보면 선과 악이 세상에 동시에 존재하고 있음을 우화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지구를 뒤덮은 대 홍수 때 온갖 동물이 노아의 방주(方舟)로 다가왔습니다.

이 때 선도 급히 달려왔습니다. 그런데 노아는 선을 태워 주기를 거절했습니다.

"나는 쌍을 지어 오지 않는 자는 태워 줄 수가 없다"

그래서 선은 숲 속으로 들어가 제 쌍이 될 상대를 찾아왔습니다. 그 상대가 바로 악이었습니다.

그 이후로 선이 있는 곳에 악이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세계 모든 나라들은 선과 악의 본질적인 차이를 느끼고 인정합니다.

더욱이 모든 국가는 범죄자들에게 벌을 가하는 법을 가지고 있습니다.

 

선과 악의 차이를 부인하는 국가는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어떤 사람이든지 악을 선이라 하고 선을 악이라 한다면 그리고 미덕과 악덕을 부정한다면

흑암과 광명을 혼동하는 사람이 자신의 명확한 시각을 부인할 수 밖에 없는 것처럼

그의 이성과 판단력을 우리는 한 번쯤 의심을 해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자가 결국에는 죄에 대하여 정당한 징벌을 받게 된다고 해서 자신의 길을 인도해 주는 빛을 보지 못하고

벼랑에 떨어지는 사람처럼 그는 남들의 동정을 받을 가치조차 없을 것입니다.

 

모든 길에는 다 방향이 있습니다.

어딘지는 잘 모르지만 종착지를 향해서 길이 쭉 뻗어 있습니다.

모든 길들은 그 방향이 서로 다르며 한 길을 따라가면 갈수록 다른 길과는 점점 멀어지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도 모든 현재는 미래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모든 행동, 모든 생각이 미래를 구성하는 요인이 됩니다.

 

우리는 살아가는 동안에 자신의 모든 행동에 책임을 져야 합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지, 우리의 길이 우리를 어디로 인도하고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바른 길이 아니라면 빨리 되돌아 가고

불명예와 치욕과 파멸을 만나지 않으려거든 악의 길에는 첫발도 들여 놓지를 마십시오.

그러한 길은 반드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통과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예로부터 미국이라는 나라는 흑인 노예들을 부리던 나라입니다.

링컨 대통령에 의해서 흑인들이 해방을 얻기는 했지만 인종차별은 여전히 남아 있어서 과거에는 백인들이 흑인들과 함께

농구를 하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오늘날의 미국 농구 스타들은 거의가 흑인이지만 그것은 1950년대 후 부터입니다.

요즈음도 여전히 인종차별이 있긴 하지만 적어도 드러내 놓고 인종 차별적인 언행을 할 수는 없게 되었습니다.

만약에 그랬다가는 법의 무서운 제재를 받아야만 합니다.

 

오늘날처럼 미국 사회가 이렇게 크게 변화된 주요 원인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한 사람의 신념에 찬 지도자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가 바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마틴 루터 킹 목사였습니다.

 

1964년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기도 했던 마틴 루터 킹 목사는 30대의 흑인으로 흑인 민권 운동에 앞장섰던 사람입니다.

그가 미국의 몽고메리시의 한 흑인 침례교회 목사로 부임해 갔을 때 그 도시에서 발생한

버스 승차 차별 철폐 운동에 지도자로 나서게 되었습니다.

 

이 운동은 흑백인 차별 대우가 없어질 때까지 그 도시의 모든 흑인들이 버스 승차를 거부하는 운동이었습니다.

이 운동은 일 년 동안 계속되었습니다. 그는 그 동안 백인들로부터 수 없는 협박전화와 압력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한 번은 그의 집에 백인이 던진 폭탄이 폭발하고 말았습니다.

흥분한 흑인 군중들이 제각기 흉기를 들고 이곳으로 모여들었습니다. 경찰들도 수습할 수 없을 만큼 많은 군중이었습니다.

이들은 극도로 흥분하여 조금만 건드리면 폭발할 것같은 위급한 상황이었습니다.

이 때에 킹 목사가 분연히 나타나 말했습니다.

" 여러분들 중에 흉기를 가지신 분이 계시면 그것이 원래 있던 곳에 가만히 갖다 두십시오.

우리는 보복적인 폭력으로써는 도저히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고 우리는 폭력을 비폭력으로 맞아들여야 합니다.

칼을 쓰는 자는 칼로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는 또 "우리는 백인 형제들이 우리에게 어떤 짓을 하든지 그들을 사랑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예수가 말한 것처럼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며

너희를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우리는 이것을 기준삼아 살지 않으면 안됩니다.

 

우리는 증오를 사랑으로 맞아야만 합니다.

자, 여러분 이 찬란히 빛나는 확증을 가지고 이제는 모두들 집으로 돌아가 주십시오"

 

킹 목사의 말이 끝나자 군중들은 큰 소리로 "아멘"이라고 응답했습니다.

폭력을 폭력으로 맞섰더라면 몽고메리의 흑인 민권 운동은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폭력을 비폭력으로 대함으로 마침내 그는 찬란한 승이를 이룩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의 일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1963년 8월 28일 워싱턴 근교 링컨 기념관에서 가진 <워싱턴 대행진 출발 기념식>에서

"나에게 꿈이 있습니다" (I have a dream 아이 해버 드림)이라는 유명한 설교를 했습니다.

 

그 중요한 내용은 이렇습니다.

" 바로 백년 전에 우리가 서 있는 이 상징적 그림자의 주인공인 한 위대한 미국인은 노예해방 선포문에 서명을 했었습니다.

그러나 1백년이 지난 오늘날 흑인들의 생활은 슬프게도 아직도 인종격리라는 쇠고랑과 인종차별이라는 쇠사슬에 묶여 있습니다.

 

오늘날 미국의 검은 피부색 시민들에 관한한 미국이 약속어음을 부도냈음이 명백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거듭거듭 물리적 폭력에 영혼의 힘으로 맞서 싸우는 숭고한 고지위로 올라서야 합니다.

 

친구들이여, 이 순간의 어려움과 고뇌에서 불구하고 나는 아직도 나에게 꿈이 있다는 것을 오늘 여러분들에게 말하고자 합니다.

이 꿈은 미국의 꿈에 깊이 뿌리를 내린 꿈입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어느 날 이 나라가 일어나 '우리는 모든 인간이 평등하게 창조되었다는 진리를 자명한 것으로 믿는다' 라는

국자적 신조의 진정한 뜻을 실천하는 날이 오고야 말 것이라는...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어느 날 불의와 억압의 열기로 뒤끓고 있는 사막의 주 미시시피 주 조차도

자유와 정의의 오아시스로 바뀔 날이 올 것이라는...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나의 어린 자식 넷이 그들의 피부색깔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들의 인격여부에 따라 판단을 받는 나라에서

살게 될 날이 올 것이라는...

 

오늘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어느 날 모든 골짜기들이 높이 솟아오르고 모든 언덕과 산들이 낮아지며 거친 곳들이 들판이 되고

구부러진 땅들이 곧아지며 주의 영광이 드러나 모든 육신들이 주의 영광을 함께 보게 될 날이 오고야 말 것이라는...

 

이것이 우리의 희망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남부로 가지고 돌아갈 신념입니다.

이 신념으로 우리는 절망의 산으로부터 희망의 돌을 깎아낼 수가 있을 것입니다.

 

이 신념으로 우리는 우리나라의 시끄러운 불협화음을 형제애라는 아름다운 교향악으로 바꿀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신념을 가지고 언젠가는 우리가 자유로워진다고 믿으면서 우리는 함께 일하고 함께 기도하고 함께 투쟁하며

감옥에도 같이 갈 수 있고 자유를 위해 함께 일어설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킹 목사의 꿈은 현실로 실현되었습니다.

그는 비록 흉탄에 쓰러졌지만 신념에 찬 그의 메세지는 지금도 미국인들의 가슴에 영원히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수 없이 많은 백인들과 흑인들의 삶속에 살아있는 지도자처럼 희망이 되어 줄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대한민국은 어떻습니까? 과연 국민들이 믿고 따를 수있는 지도자는 있습니까?

지난 수 십년 동안 대한민국은 기술개발과 경제발전이라는 끝도 없는 세계를 향해서 그토록 박차를 가했음에도

우리의 경제는 총체적인 난국에 빠져있습니다.

 

하루가 멀다하고 물가는 자꾸만 치솟아 오르며 정부조차도 마땅한 대안책이 없는 듯

집값만 자꾸 저울질 하면서 서민들의 투기만 부채질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날마다 먹고 마시고 즐기고 있는 것이 거의가 은행빚이거나 해외에서 빌려온 부채라고 생각할 때

정신병자가 아니라면 우리 대한민국이 선진국이라고 장담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실업자들은 날로 늘어만 가고 노인들은 자신들도 백수라고 부르며 거리로 나오는데

정부는 기업이 살아나야 일자리가 늘어난다며 해괴망칙한 논리만을 늘어놓고 있습니다.

 

거기에다가 염치도 모르는 정치인들은 하루가 멀다않고 매일같이 권력싸움에만 몰두하고

가뜩이나 어려운 서민들의 삶을 힘들게 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나타난 세월호의 유가족들이 슬픔을 견뎌내지 못하고 끝내는 거리를 나와서 정부에 대항하는 것도

못 마땅한 법과 처리에 불만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 동안 세월호의 특별법이 수사권을 놓고서 정치인들이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다가 얼마나 여론의 눈이 무섭고

국회등원이 필요했으면 이제와 이해 당사자인 유가족들을 제쳐두고 세월호 특별법을 전격 타결 하였을까요?

 

과연 누가 어떻게 세월호를 조사하며 성역없이 진상규명이 제대로 이루어 질 수 있을까요?

대통령도 성명을 통해 이번 세월호의 최종책임은 자신에게 있다고 고백한 바 그 책임을 어떻게 질 것이며

청와대는 과연 그것을 바라보며 어떻게 대응할까요?

 

아마도  십중팔구 금년 안으로는 모든 것이 해결되기는 어렵고 내년에도 힘들며 적당히 어느 선에서 타협하며

세월호의 문제는 사라지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될 때 야당 정치인들은 이번에도 역시 무능하다는 평을 들으며 힘에 굴복한 나머지 

세월호의 중요한 사건을 놓쳐버린 그 의무와 책임을 지게될 것입니다.

 

경제도 중요합니다, 기술 개발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되지 않습니다.

이 사회 속에, 가정 속에, 국민들의 삶 속에 꺾여버린 신념을 다시 일으켜야 할 것입니다.

 

신념이 남아 있는 한 사랑하는 사람이 죽어도 불행한 사고를 만나도, 병에 걸렸어도

우리는 반드시 그 고난을 이겨내고 다시금 일어설 수 있을 것입니다.

 

킹 목사처럼 우리에게도 평화로운 통일을 할 수 있다는 간절한 꿈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지금처럼 우리의 평화통일 문제가 너무 한 쪽으로만 쏠려있는 상황에서는 평화통일 추진문제는  불가능할 것입니다.

모든 정당을 초월하여 범민족같은 시민단체가 주체되어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입니다.

 

우리의 긍정적인 삶은 어느 경박한 삶 속에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오랜 고난의 역사를 통해서 얻어진 결과입니다.

그리하여 현재의 삶이 아무리 힘들고 고통스러울 지라도 부정과 손을 잡지 말고 더욱 더 정의롭게 살아야 할 것입니다.

 

악은 체면이 없습니다. 목적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마구 날뜁니다.

폭력과 사기와 거짓, 부당한 압력과 착취, 그리고 권모술수를 가리지 않고 마구 휘두르지만

선은 언제나 의를 추구하는 것입니다.

정의의 길을 가야 하기에 악과 선이 맞붙으면 언제나 선이 손해를 보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두들겨 맞고 상처를 받으며 고난을 받을수록 더욱 빛나는 것은 선이요,

때리면 때릴 수록 힘이 빠지고 나빠지는 것은 악입니다.

 

악의 역사를 선으로 바꾸는 것,

이것이 우리가 바라고 있는 진정한 아름다운 세상만들기입니다.

 

 

가슴이 따스한 사람 해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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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움과 갈등을 뛰어 넘어

 

 

 

 

               오래 전 현대 그룹의 명예회장이었던 고 정주영 회장이 평화로움과 풍요를 상징하는 소떼를 이끌고

               분단과 대립의 상징인 판문점을 통해서 북한을 방문하였습니다.

 

               그의 소떼 방북은 단순한 일회성 행사라기 보다는 남북사이에 드리워져 있던 갈등과 반목,

               긴장을 누그러 뜨리는 상징적 사건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이런 회장의 행동을 보면서 우리가 저들에게 잘못한 것이 없는데 무엇때문에 저들에게

               선물을 주어가면서까지 화해의 물꼬를 트느냐고 항의를 할 것입니다.

 

               논리적으로 말할 때 그것은 북쪽에서 오히려 소떼를 이끌고 남쪽으로 내려와 화해의 진상품으로 바치면서

               전쟁을 일으켜 수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잃게 한 그 사죄를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상황은 그런 것을 기대하기는 어렵고 그렇다고 마냥 이대로 내버려 두면서

               서로 미워할 수만은 없는 일입니다.


               마치도 한 가정의 심정처럼 미움과 갈등은 결국 우리의 삶을 멍들게 하며

               물질과 그 어떤 것으로도 보상할 수 없는 많은 손실을 우리에게 안겨 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속히 이것을 털어 버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지금도 우리의 남북 사이에는 많은 이산가족들이 살고 있습니다.

               해마다 명절이 오면 우리는 이산가족들을 보면서 이들이 서로 상봉을 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우리의 정치인들은 이들을 정치적으로 이용만 할 뿐 이들에게는 아직도 진정성있는 상봉은 오지 않았습니다.

 

               만일에 이산가족 상봉이 그들에게 너무도 중요하고 절실했다면

               이처럼 무관심하고 북한만 비난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속담에 미운 놈 떡 하나 더 주라는 말이 있습니다.

               떡 하나를 더 주어서라도 서로 가진 미움을 털어 버릴 수만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은 없을 것입니다.

 

               사랑은 적극적으로 어떤 행동을 하기 이전에 먼저 우리 속에 있는 시기와 교만과 무례함과

               이기심을 버리는 것부터 시작해야함을 가르쳐 주는 교훈입니다.


               성내지 아니하고 원한을 품지 않는 것이 바로 사랑임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린 아기가 부모의 사랑 안에서 자랄 때는 건강하게 자랄 수 있지만

               아이가 고아가 되어서는 그 인격 형성에 많은 장애가 있음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생명의 본질은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언제부터인지 우리의 마음 깊은 곳에는 미움과 시기와 이기심과 분노가 우리의 마음을 덮어 버렸습니다.

               지금 우리 속에는 그 옛날 일어났던 전쟁때문에 미움이 깊게 자리잡고 있습니다.

 

               이 전쟁은 우리에게 너무도 큰 비극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우리 속에 쌓인 원한은 아무리 시간이 흘러가도 좀처럼 씻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오늘날 한국 교회가 수 없이 분열을 거듭한 것은 바로 이런 용서와 화해의 마음이 결여된 것이 아니겠습니까?

               자기 자신을 희생함 없이는 누구도 다른 사람의 허물을 용서할 수 없고 화해도 불가능할 것입니다.

 

               미움은 계속해서 미움을 낳게 되고 끝 없는 원한과 복수를 낳을 뿐입니다.

               우리 안에 있는 교만과 미움, 분노와 원한을  간직하고 있으면 우리는 또 다른 악을 불러오고 말 것입니다.

 

               오늘날처럼 한국 교회가 급성장하여 큰 교회를 많이 갖고 있지만 그런 것들은 하나도 자랑할 것이 못됩니다.

               오히려 올바른 공동체를 이루지 못한 채 덩치만 큰 교회는 심판의 대상일 뿐입니다.

 

               마찬가지로 이 작은 나라안에서 이러한 용서와 화해의 정신을 가장 잘 아는 사람들이 나라를 이끌어 가고

               이 땅의 불화와 갈등을 치료해 나갈 때 거기에 아름다운 통일이 이루어 지는 것입니다.

 

 

 

               가슴이 따스한 사람 해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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