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을 아름답게

 

 

 

 

 

 

 

                추운 겨울이 지나가고 따스한 봄이 오

                자연은 어디선가 꽃샘추위를 몰고 오고 사람들은 꽃샘추위에 몹시도 당황을 합니다.

 

                고난은 누구나 다 당하기를 싫어하는 것이지만

                그러나 고난에는 우리의 잠자던 영혼을 깨우는 힘이 있습니다.

 

                얼마 전 서울의 한 강연장에서 일어난 리퍼트 美 대사의 피습사건을 보면서

                60년 전 한국 전쟁의 상처가 이렇게도 크게 남아 있을 줄 미쳐 생각지 못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언론에 동조하며

                어떤 이들은 김기종씨를 테러분자라고 비난하고 

                어떤 이들은 美 대사를 향해 춤을 추며 영웅으로 모셨습니다.

 

                그러나 이 보다도 안타까운 사실 하나는 우리 사회에 무슨 일만 터지면

                항상 반복되는 종북 논란과 국가 보안법은 무엇인지

                우리를 더욱 위협하는 무서운 존재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 동안에 우리는 단 한 번도 이 민족이 당한 고난의 의미를 깊이 생각하지 않은 체

                안보만을 높여 왔고 민족 분단을 정권 유지의 유리한 방패막이로 사용하여 왔을 뿐입니다.

 

                우리는 너무나 큰 전쟁을 겪었으면서도 거기서 얻은 교훈이 기껏해서 안보뿐이라면

                우리는 그 전쟁이 주는 많은 교훈을 상실하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래 전에 <25시>의 작가 게오르규 씨가 한국을 방문했을 때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 인생 항로의 괴롭고 어려운 시련을 이겨낸 사람에게는 누구나가 모자를 멋고 인사를 드리게 됩니다.

                지구상에서 한국 민족처럼 괴로움을 당한 민족이 없어 나는 존경하는 마음으로 인사하고 싶습니다 "

 

                그는 그의 작품 <25시>에서 " 빛은 동방에서 온다 "고 말하며 그 동방이 바로 한국이라고 말했습니다.

                그것은 한국인이 무척 괴로운 시련을 겪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정말 그가 말한 대로 괴로운 시련을 겪은 민족임에는 틀림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고난 속에서 그가 말하고 있는 어떤 빛을 찾았는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고난은 당한 것만으로는 값진 것도 아니며 그 고난의 의미를 깨달을 때

                그래서 어떤 빛이 나올 그 고난은 더욱 값진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세계사에서 이스라엘 만큼이나 수난을 많이 겪은 나라가 또 있을까요?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를 보면 강대한 나라들 틈바구니에 끼어 끊임없이 침략을 받고

                이리저리 쫒기는 고난의 역사였습니다.

 

                이러한 고난을 보며 예언자들은 한결같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내산에서 맺은 하나님과의 계약을

                성실하게 지키지 않았기 때문에 오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고난의 일차적인 의미를 죄에 대한 형벌로 이해 하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언자들은 끊임없이 그 민족에게 회개를 촉구하였습니다.

 

                유대인들은 지금도 매일 통곡의 벽앞에 나가 죄를 고백하고

                그들의 성전이 복구되어 경배하는 날이 오기만을 기도하고 있습니다.

 

                통곡의 벽앞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날은 티사 밥(Tishe B`ab)으로 그들이 우는 날로 가장 슬픈 날입니다.

                그 모습이 어찌나 애처로운지 가던 사람도 돌아설 지경입니다.

 

                만약에 인과응보(因果應報)사상이 죄를 지은 사람에게는 응당한 고난이 온다는 것이 맞다면

                고난은 하나의 형벌로 이해 되어져야 할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민족이 당하고 있는 고난도 어쩌면 우리가 저지른 죄에 대한 하늘의 경고는 아닐까요?

                정권욕에 사로 잡혀 국민들을 돌보지 아니한 정치가들의 죄와 이 시대에 의미를 부여하지 못하고

                역사를 해석하여 비젼을 제시하지 못한 창백한 지성인들의 무기력함에 대한 진노인 줄도 모릅니다.

 

                이 민족앞에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선포하지 아니하고

                분열만을 거듭해 온 교회의 잘못에 대한 대가(代價)인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이제까지 자기가 잘못했다고 시인하는 정치가들을 보지 못했으며

                모든 일의 책임을 통감하고 물러나는 지도자들을 보지 못했습니다.

                결국 우리의 양심이 둔화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고난의 일차적인 의미가 죄에 대한 댓가라면

                왜 죄 없는 사람들까지 애매하게 고난을 당해야만 하는가 라는 의문이 생깁니다.

 

                이런 의문은 옛날에만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세계 역사 속에서 끊임없이 반복되어져 온 사실입니다.

 

                히틀러의 나치 정권 밑에서 아무 죄없이 학살당하고 수 많은 유대인들이 부르짖었으며

                미국의 흑인 노예들이 채찍 밑에서 신음하며 울부 짖어 왔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유신시대와 군사정권 밑에서 무고한 사람들이 박해를 받고 자유를 부르짖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이산가족 상봉을 지켜 보면서 느낀 것은 고난 당한 것은 애매한 민중들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어린 학생들은 또 무슨 죄가 있어서 사랑하는 부모님께 마지막 작별인사도 못드린 체

                지옥같은 그 세월호에서 구슬픈 눈물 하염없이 흘리면서 꽃잎처럼 떨어져야만 했을까요?

 

                여기에는 분명히 고난보다는 더 깊은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보다 더 깊은 고난의 의미가 무엇일까를 찾으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러다가 알게 된 것이 모든 육체와 정신이 무너져 버린 곳에서 진정 영혼이 빛을 발한다는 사실을

                깨달아 알게 된 것입니다.

 

                위대한 영혼은 고난을 통해서 빛나는 법입니다.

                고통이 결여된 인생은 천박하고 그 예술은 사람의 심금을 울리는 깊이와 영감을 가질 수 없습니다.

                이것은 개인이나 한 민족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일찌기 인도의 시성 타골도 한국을 가리켜 " 아시아의 황금 시대에 빛나던 등불 "로 보고

                그 등불이 다시 한번 켜지는 날 동방의 밝은 빛이 될 것이라고 소개한 바 있습니다.

 

                중국의 석학 임어당(林語은 한국에 왔을 때 거문고 소리를 들어보며

              " 우는 소리와 절규하는 소리가 같이 난다 "면서

                감각으로는 우는 소리가 들리고 영감으로는 절규하는 소리로 들린다"고 하였습니다.

 

                오랜 고통의 누적에서 우러나는 절규이며

                그것은 앞으로 국제시대에 소중하게 평가될 한국의 희망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이 약소민족인 우리가 겪고 있는 고난은 결코 우리만의 고난일 수가 없습니다.

                우리 민족의 통곡은 전 세계가 당해야 하는 아픔을 대신하고 있는 고난임이 틀림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 고난을 통해서 일어선 우리 민족의 빛이 온 세계를 비추는 희망의 빛이 될 수있습니다.

 

                우리는 폭력으로 이루어진 사회를 정당한 것이라고 받아 들여서는 안됩니다.

                아무리 그럴 듯한 명분이 있다 하더라도 우리 안의 어떠한 폭력이나

                대륙간 탄도 미사일 사드 도입같은 무기는 단호하게 막아야 할 것입니다.

 

                미국이 무기를 개발하는 명분은 세계 평화를 위한다고 하지만 그들이 내다 파는 무기가

                오늘날 세계 도처에서 전쟁을 야기시키고 있다는 사실을 볼 때 평화를 위한 무기란 논리적으로나 가능하지

                실제적으로는 인명을 살상하는 무서운 무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악을 막는다는 명분으로 또 다른 폭력을 사용한다는 것은 우리는 결코 용납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봄이 오는 길목에서 꽃샘추위가 우리에게 들려주는 소식은

                꽁꽁 얼어붙게 하던 겨울은 이제 가고 만물을 소생하게 하는 봄이 왔다는 기쁜 소식입니다.

 

                앙상한 나뭇가지가 영광스러운 부활 승리를 위해 꽃샘추위를 이겨내고

                美 대사의 피습사건으로 인하여 한미동맹이 더욱 더 강화된 것처럼

                우리가 겪고 있는 이 고난을 헛되게 하지 말고 거기서 참된 의미를 찾아내며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가슴이 따스한 사람 해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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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강에서 바라본 아름다운 세상

 

 

 

 

                       며칠 전에는 서울 근교의 한강 길을 한참이나 걸었습니다.

                       강 가와 들판에는 온통 초목들이 하얗게 덮혀 있었고

                       먹이를 찾는 물새들은 물 위에서 유영하며 한가롭게 노닐고 있었습니다.

                       참 아름다운 풍경이었습니다.

 

                       조금 더 길을 걸어 가다가 한 젊은이를 만났습니다.

                       그 젊은이는 어깨에 배낭을 둘렀었고 그는 내게로 와 길을 물었습니다.

 

                       그 젊은이는 답답한 도심보다는 속이 뻥하고 뚫릴 것같은 한강이 좋다고 했습니다.

                       내게 지도를 꺼내 보이며 자신이 가야할 방향을 확인하고서 황급히 돌아서는 그의 모습에서

                       나는 그 젊은이가 매우 아름다워 보였습니다.

 

                       마침 어디에서 날아왔는지 참새 떼가 내 앞으로 와서는 공중제비를 펼치고

                       갈대 숲에 모여서 재잘 거리며 나를 즐겁게 해 주었습니다.

 

 

                       그 순간 나는 우리가 꿈꾸고 있는 나라를 한번 생각해 보았습니다.

                       과연 우리가 상상하는 나라는 어떤 나라일까...

 

                       분명히 이 보다는 아름답고 춥지도 않을 것입니다.

                       아름다운 세상을 생각할 때마다 다시 한번 우리 사회를 돌아 봅니다.

 

                       요즘 언론을 보면 매일 같이 사람을 죽이고 비난하고

                       성폭행을 했다는 기사들로 가득합니다.

 

                       거기에다가 남북간의 대치로 인한 소모적인 종북 논란은

                       우리들의 이성을 마비시켰고 급기야는 한 정당까지도 가차없이 해산시키고 말았습니다.

 

                       이 얼마나 한심스러운 일입니까?

                       통진당의 사태는 어쩌면 우리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정치적인 일인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어쩌면 먹고사는 문제가 더 중요하지

                       노동자들이 살겠다고 아우성치는 소리에는 별 관심이 없는지도 모릅니다.

 

                       차라리 이번 기회에 통진당같은 세력들이

                       우리 사회에서 영원히 사라졌으면 하고 생각했는지도 모릅니다.

                       무서운 이기주의, 냉혹한 사회가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 사회가 언제부터 이렇게 무서운 사회가 되었는지...

                       생각하면 할수록 온 몸이 소름으로 두렵기까지 합니다.

 

                       요즈음 사람들이 자신의 신념을 관철하기 위해 분신이나 자살을 하는 것을 보면

                       우리는 사상과 이념의 포로가 된다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를 알게 됩니다.

 

                       권력을 잡은 사람들의 얼굴이 포악한 괴물로 보이고 북한 사람의 얼굴이 마귀같이 보이는데

                       어떻게 그 사회가 발전할 수 있으며 어떻게 그 나라가 통일이 될 수 있을까요?

 

                       어쩌면 그것은 순전히 그 내부적인 사태

                       외부적인 작용에 의해서 붕괴될 날만을 기다리고 있는 우리의 무관심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저들은 전부 나쁘고 우리만 옳다고 확신하고 있는 우리 사회를 향하여

                       어느 한 양심가가 네 생각이 틀렸으며

                       저들도 우리와 같은 한 가족이요 우리의 이웃이라고 말한다면

 

 

                       과연 우리는 과연 얼마나 순복(順服)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지금 가인의 후예처럼 자꾸만 멸망의 길을 향해 달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끝까지 실망하지 않는 것은

                       그 젊은이와 같이 자신의 자리에서 묵묵히 최선을 다하며

                       정의롭고 아름다운 사람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우리 사회에서 그들만이라도 많이 나타나서 힘을 보태 준다면

                       우리 사회는 한층 더 밝아지고 아름다운 세상이 될 것입니다.

 

 

 

                       가슴이 따스한 사람 해피

 

 

 

 

                        

                        인간은 연못

 

 

 

 

 

                   인간의 마음은 하나의 작은 연못과도 같습니다.

 

                   거기에는 어떠한 장애물도 있지 않고

                   잔잔한 물 위에는 오직 평화와 기쁨만이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그 마음 속에 더러운 것이 한번 들어오면

                   곧 평화는 깨어지고 기쁨은 사라지고 맙니다.

 

                   그렇다면 양심이란 무엇일까요?

 

                   인간의 양심은 연못 속의 물이 얼어 있는 마음이 아닐까요?.

                   연못가의 얼음이 형성되기가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만일 누군가가 막대기로 연못가의 물을 계속 휘 저으면

                   어떠한 추운 날씨에서도 연못이 어는 것을 방지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얼음막이 형성되도록 그냥 방치해 두면

                   연못가의 물은 표면부터 얼기 시작하여 마침내는 온 연못가가 빙판이 되고 말 것입니다.

 

                   결국에는 그 빙판은 매우 견고해져서

                   그 위로 사람들이 아무리 지나쳐도 끄떡도 하지 않을 것입니다.

 

                   인간의 양심도 이와 같은 것입니다.

 

                   점차로 얇은 막이 형성되기 시작하여 결국은 단단해 지고 무감각해 지면

                   그 일이 평화인지 불화인지, 정의인지, 불의인지를 제대로 알 수 없고

                   어떤 착한 행실로도 진정한 희망을 찾을 길이 없습니다.

 

                   혹시 우리 사회가 지금 양심이 너무 굳어져서

                   무엇이 중요하고 필요한 지를 모르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우리 사회의 현실을 돌아볼 때 우리는 너무도 쉽게 생각하고

                   너무도 빠르게 결정을 내려 버립니다.

 

                   우리가 조금 잘 살게 되었다고 생각 할때는 우리의 생활을 한껏 부풀렸다가

                   경제 위기가 닥쳐오자 우리는 또 다시 망할 것처럼 죽는 시늉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들도 조그마한 문제에도 감정이 폭발하여 우울해 지는가 하면

                   별 것 아닌 일에도 기분이 좋아져서 싱글벙글 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뭐 양심이 밥 먹여 주느냐고 정의에는 관심도 없습니다.

                   그러나 비록 양심이 밥을 떠 먹여 줄 수는 없겠지만 죽어가는 나라를 구해 줄 수는 있지 않습니까.

 

                   우리 가정에 먹을 것이 떨어져 낙심하게 될 때에

                   아궁이에 던져 넣은 고구마를 꺼내 먹던 긴 겨울이라도 좋고

 

                   오늘처럼 눈이라도 내리는 날에는 모두가 밖으로 나와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면

                   그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진정한 행복이 아니겠습니까?

 

                   지금은 우리가 한탄하고 원망하며 불평할 때가 아니라 사랑의 불을 지펴야 할 때입니다.

                   굳어져 가는 우리 양심을 살려내어 희망의 불 길이 타오르도록 모두가 관심을 가져야 할 때입니다.

 

                   그리할 때 우리를 위협하던 추위는 물러가고

                   이 땅에 아름다운 꽃이 만발하는 희망의 새 봄이 찾아오고 말 것입니다.

 

 

 

 

                   가슴이 따스한 사람 해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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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의 양심부터 살립시다.
          도시나 지방의 어느 중심지를 가더라도 한 지역안에는 여러 개의 상점이 길게 늘어져 있고
          그들 사이에는 무언가 은밀하게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들은 자기들 가운데에 오직 경쟁에서 살아 남아야 한다는 강한 일념으로
              치열하게 싸우고 있다.
                  그리하여 상대방보다 물건이 하챦고 불리하다 생각되면 가격을 임시 조정하는가 하면
                  싼 물건을 내놓고 서슴없이 속임수나 온갖 편법을 동원하기도 한다.
                  그들은 자신들만이 아는 비밀을 간직한 채 진실을 가리우고 이 물질을 넣기도 하며
                  아무런 효능도 없는 물건들을 마치 산삼보약과도 같은 냥 효능에 열을 올리기도 한다.
                    손님들을 위해서 내놓는 누룽지라고 예외일 수는 없다.
                    누룽지가 밥을 다 짓고 난 후에 드러난 구수한 그 누룽지가 아니라
                    실제로는 손님들이 먹다 남긴 밥들을 모아다가 물에 행구고 달궈진 누룽지라고 생각할 때
                    과연 그것이 진정한 누룽지라고 말할 수 있을까?
                      지금도 거리에서는 국적도 이름도 알 수없는 무니만 국내산인 경우가
                      얼마나 허다하게 많던가?
                              이렇게 상인들로 하여금 부정한 방법들을 사용하도록 부추키는 정부와
                              우리 사회의 눈은 어디를 향해 있을까?
                                  그러나 그들은 상대를 쓰러뜨리려고 하다가 결국에는 자기가 먼저 쓰러지고
                                  모두가 망해 버리고 만다는 사실들을 과연 알고나 있는 것일까?
                                    가슴이 따스한 사람 해피



                                       

                                   

                                   

                                   

                                   

                                              대한민국이 정말 부끄러워진다.

                                   

                                   

                                             세계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한국인처럼 부끄러운 나라가 또 있을까...

                                             남북이 두개로 나뉘어 진것도 서글픈 일인데, 동족끼리 서로 헐뜯고 싸우고 있는 것은 더욱 서글픈 일이다.

                                   

                                             마치도 한 가정의 부모들이 자식들앞에 싸우고 있는 모습들은 먼저 정신상태가 어떤지부터 의심스럽게 한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국제행사를 치룰 때마다 은근히 화합을 들먹이며 북한을 또다시 앞세워서 이용을 하는 것은 아닌가

                                   

                                             지난 수 십년 동안 우리는 이념이 다르다는 이유로 동족간의 총칼을 들이대고 마주보며 싸워왔다.

                                             북한에서는 매일같이 주체사상과 반동으로 안심할 날이없고 남한에서는 아직까지 빨갱이와 종북타령으로 바람잘 날이없다.

                                   

                                             해방때 부터 지금까지 우리는 모든 위정자들의 잘못은 공무원들에게로 공무원들의 잘못은 국민들에게로 전가만 시켜왔다.

                                             많은 경제인이나 언론도 누구하나 내탓이려니하는 자성하는 이가 없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기멋대로 이익만을 챙겨왔던 것이다.

                                   

                                             때때로 사람들은 당시에는 모르다가 시간이 많이흘러 그것이 새삼 잘못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을 때

                                             한 없이 자책하고 부끄러워진다.

                                             대체 사람들이 누구관대 그런 일들을 저질렀고 무슨 생각을 가졌길래 저렇게도 불안해하지 않는 것일까.

                                   

                                             나라를 곤경에 빠트리고, 국민을 살육하며, 거짓을 밥먹듯이 하면서도 저렇게 태연할 수있을까...

                                             아마도 그 마음에 양심이 무디어져서 이미 화인(火印)맞아 마비된 것이리라...

                                   

                                             나의 어린 시절 연희동에서 동네형들을 따라 산에서 뱀을 잡아 먹으려다가 크게 산불이 난 적이 있었다.

                                             산 아래 구덩이속으로 바람이 불어 순식간에 불길이 일어나고 산 주변으로 크게 번져나갔다.

                                             위에서는 산림계가 호루라기를 삑삑불며 달려내려오고 아래에서는 동네 사람들이 도구를 들고 올라왔다.

                                   

                                             그 때에 우리들은 간이 콩알만해져서 산을 넘고 도망을 갔지만

                                             그 때의 그 후유증은 지금까지도 내 기억속에 또렷이 남아있다.

                                   

                                             양심이란 무엇일까? 양심은 빛이 들어오게 하는 창문같은 것이 아닐까

                                             사람이 죄를 지을 때면 창문은 점점 더러워져서 빛을 차단하고 그래서 마음이 굳어져 버린 것은 아닐까

                                   

                                             오늘날 사람들이 죄를 너무도 가볍게 여기는 것은 그들이 죄를 전혀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이다.

                                             자기만 혼자 있을때는 그렇게도 무서워 벌벌 떠는 사람들도 자기의 편이 모아지고 감싸주게 되면

                                             끝까지 죄를 감추면서 거짓말로 합리화시켜버리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죄를 짓고서도 끝까지 잠못 이루는 법이 없다.

                                             저들은 일찌기 광주시민을 학살하고 민간인들을 사찰하고 댓글로 나라를 어지럽혔음에도 불구하고

                                             조금도 당황하는 기색이란 전혀 없다.

                                             오히려 자기들의 잘못을 덮으려고 또 다른 거짓을 꾸며내고 자꾸만 사람들의 눈 길을 피해가고 있다.

                                   

                                             이들의 양심이 죽었다는 것은 나라에 사회적 이슈가 있을 때에 잘 드러난다.

                                             만일에 우리에게 어떤 주제가 있을 때에 그들은 벌써 마음에 작정들을 하고나와 논쟁하기를 즐긴다.

                                             그들은 자기가 하는 일에 잘못을 알면서도 인정하지 않고 자기를 자꾸만 합리화시키려고만 하는 것이다.

                                   

                                             이런 일들이 가능한 것은 우리 언론의 모습에서 쉽게 엿볼 수가 있다.

                                             TV의 인기프로그램인 100분 토론이나 추적60분등 시사프로그램을 보더라도 상식과 이성있는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고

                                             이들을 잡아 주어야 할 사회자도 어느 덧 중심을 잃어버리고 막무가내식 억지주장만이 난무하고 있다.

                                   

                                             과연 이러한 언론들이 우리의 궁금한 것을 풀어주고 제대로 삶을 인도해 줄 수있을까

                                   

                                             지난 과거에 우리 사회안에 온갖 불의로 가득찼을 때 언론들은 과연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권력자들의 눈치만을 살피며 온갖 시녀 노릇을 다해 오지는 않았던가

                                   

                                             정치도, 권력도, 언론도 다 이러할 진대 과연 한국은 세계에서 어떤 나라일까?

                                             유감스럽게도 한국은 2013년도 현재 세계 14개 지표에서 제일 꼴찌수준이다.

                                             사회참여도, 부패인식,생활만족도,자살,이산화탄소 배출량,실업자,고용보호,공공사회지출등 모든 분야에서 꼴찌이다.

                                   

                                             한국에서는 집이나 소득, 직업보다도 인간관계는 가히 땅속 끝이다.

                                             내가 말한 것이 아니라 OECD가 직접 발표한 것이다.

                                   

                                             모두가 부끄러운 줄을 알아야 할 것이다.

                                             지금은 모두가 그렇게 자기 집안에서 서로 물어뜯고 할퀴고 비난만 할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좀 더 우리 사회가 통일을 앞당기고 어떻게 하면 좀 더 실업자들이 일을 하고

                                             어떻게 하면 좀 더 우리 사회가 나은 생활을 할 수있을까를 생각할 때이다.

                                   

                                   

                                             매일 눈만뜨고 밥만 먹으면 싸울 궁리나 하는 정치권들과 언론들과 정부 여당들은 과연 누구를위해 싸우고 있는지

                                             우리 국민들의 아픔을  진심으로 헤아리며 자성하고 있는지를 심히 묻고만 싶어진다.

                                   

                                   

                                   

                                   

                                   

                                             가슴이 따스한 사람 해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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