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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영혼의 시계가 울릴 때에

                                  이 글을 오늘도 일터에서 수고하시는 모든 이들에게 바칩니다.

 

 

 

 

 

 

            

             정확하지 못한 시계는 아무 가치가 없습니다.

 

             그 시계가 아무리 아름답고 금이나 보석으로 반짝반짝 빛난다 할 지라도 시간이 맞지 않는다면

             그 시계는 시계로서 아무런 쓸모가 없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사람도 얼마나 가치 있느냐 하는 것은 그의 외모나 돈, 권력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의 성품에 달려 있습니다.

 

             그는 과연 진실합니까? 그는 언행이 일치합니까?

 

             만일에 그렇다고 한다면 그는 시간을 정확히 알려주는 우리의 희망과도 같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희망이 너무 그에게만 의존하고 아무런 일도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더 큰 것을 잃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우리 집 서재에는 지금도 조그만 시계 하나가 놓여져 있습니다.

             아무나 들을 수도 없고 볼 수도 없는 오직 저만이 갖고있는 몇 개의 시계입니다.

 

             비록 세월은 흘러 시계는 낡고 많이 변했지만 그 시계는 하루에 한 번씩 정확하게

             지금도 나를 깨워줍니다.

 

             1990년 초 어느 봄날에 나는 정든 부모님을 떠나서 사랑하는 아내와 자식들 둘을 이끌고

             내가 사역하고 있는 쌍문동으로 이사를 했습니다.

 

             내가 오랜 연단을 끝마치고 꿈꾸던 일을 하기 위해 어느 신문에 난 광고를 보는 순간

             이력서를 꾸미고 들어간 지 단 일 주일 만이었습니다.

 

             나는 교회의 전임자가 되어서 오늘은 교인들을 양육하고 내일은 시내로 나가

             밤 늦도록 교회의 행정일을 돌보아야만 했습니다.

 

             웬만한 사람들도 보기 힘들다는 그 휴대폰을 나는 오른쪽 옆구리에 차고 왼쪽에는 삐삐를 차며

             혹시나 저 사람은 누구일까 하는 오해도 참 많이 받았습니다.

 

             아무리 낯설고 처음보는 사람들도 당당하게 만날 수가 있었습니다.

             그 날도 예전처럼 시내로 나가 교회 행사 준비를 하며 기념품을 사다가 교인들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것은 비록 작고 보잘 것없었지만 너무도 사랑스러운 시계였습니다.

             그런데 뒤 늦게 안 사실이지만 그 중에서는 다른 시계도 함께 섞여 있었습니다.

 

             한 개만이 아니라 여기 저기서 "이 시계가 무엇이냐"는 교인들의 항의가 빗발쳤습니다.

             그것이 몇 개였고 누가 받았는지를 다시 확인한다는 것은 교회로서는 너무 무책임한 처사였습니다.

 

             나는 꼼짝없이 교회 행사를 망친 주범이 되고 만 것입니다.

             그리하여 나는 할 수없이 다시 시내로 나가 그 기념품가게를 찾아 사장님에게 물었더니

             그 분은 다행히도 내게 용서부터 구했습니다.

 

             그 시계는 나 보다 더 한참 뒤에 누군가가 의뢰한 시계인데 때마침 그 날따라  주문량이 많아져서

             혼동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내게 몇번이고 용서를 구하면서 마음까지 보태서 그 기념시계를 200개나 더 주셨습니다.

 

             그 순간 나는 고마움보다는 먼저 미안함과 부끄러움에 그만 얼굴이 화끈거려졌습니다.

             내게도 좀더 확인하지 못한 잘못들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분도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일터로 나와 한 개의 물건이라도 더 팔기 위해

             밤이 맞도록 고생하시는 것을 생각하면 나는 그 분의 정직함에 그만 고개가 숙여졌습니다.

 

             덕분에 내가 좀더 많은 시계를 챙겼지만 무엇보다도 확실히 챙긴 것은 그 분에 대한 높은 신뢰였습니다.

             그것이 인연이 되어 지금도 나는 교회 행사가 있을 때면 종종 그 분과도 의논을 한답니다.

 

             교회가 예산이 없으면 좀 어떻습니까?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하면 되고 서로가 믿고 이해를 해 주면서

             그 분은 차라리 내게는 엘리야를 도와준 까마귀떼와도 같은 존재였습니다.

 

             아무리 급하고 어려운 일들도, 책을 만들 때에도, 다이어리를 만들 때에도, 앨범을 제작할 때도

             무슨 상패나 기념품이 필요할 때도 내게는 모든 것이 그 자리에서 해결되었습니다.

 

             혹시라도 내가 그곳 주위를 서성이고 있을 때면 그 분이 먼저 나를 알아보시고는

           " 식사는 하셨냐고... 오늘은 또 무슨 일이 없으냐고..."

 

             이러한 관계에서는 어느 목회자가 그 사업장을 애용하지 않겠으며 기도를 하지 않겠습니까?

             경조사에도 빠짐없이 등장하고 남들에게도 소개를 해 주지 않겠습니까?

 

 

 

             누군가는 내게 이렇게 말할는지도 모릅니다.

             목회자가 설교만 잘하면 되지 무슨 그런 일까지 다 하느냐고...

 

             그러나 내 생각은 조금 다릅니다. 교회 일처럼 중요하고 예산을 쓰는 것은 투명해야 합니다.

             국가 일도 사업이 막중하고 국민들의 세금이 투입된 것은 더욱 더 투명해야 합니다.

 

             지금도 거리에서는 우리가 알든지 모르든지 아니꼽고 더러워도 일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환경 미화원에서 부터 가정 돌보미까지 직업도 다양합니다.

 

             그렇다고 그들이 모은 돈이 보잘 것 없다고 결코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어쩌면 그들의 돈은 자리에 앉아 편하게 돈을 모으는 그들보다도 목숨같을 지 모릅니다.

 

             농부가 부지런히 나가 농사를 지어도 하늘에서 비를 내려주지 않는다면

             그 농부의 수고는 모두가 허사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모든 소유가 다른 곳에서 보내준 선물임을 생각할 때 그것을 절제없이

             아무렇게나 써 버려서는 안될 것입니다.

 

             오늘도 많은 교회들이 건축이나 전도에는 정열을 쏟는 반면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고민하고

             실행하는 교회는 별로 없습니다.

             예수가 세상을 떠나기 전 마지막 남긴 " 내 양을 먹이라 "는 말씀처럼 실천하는 교회는 많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양들은 지금도 죽어가고 있는데 어떤 목회자들은 고급 호텔이나 고급 음식점에 모여서

             모임을 갖습니다.

 

             여기에 하나님이 기뻐 하실리가 없습니다.

             사람을 기쁘게 해야 할까요? 하나님을 기쁘게 해야 할까요?

 

             국가도 마찬가지입니다.

             매번 정권이 바뀔 때마다 느끼는 것은 정치인들이 나랏 예산을 너무 무분별하게 써 버리는 것입니다.

 

             국민들도 정부가 예산이 부족해도 큰 행사를 치루지 아니하면 무능하다고 말을 합니다.

             현재 우리 나라의 외환 보유액은 3,629억 달러로 세계 7위 수준입니다.

 

             그것도 대부분이 유동성이 심한 유가 증권이거나 해외로 갚아야 할 빚입니다.

             청년들의 취업난은 최악이고 국민들의 생활도 어렵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도 우리 국가 원수는 세계의 정상들과 만찬을 열지 못해 안달이고

             기업들은 기업들 나름대로 로비를 하지 못해 불만입니다.

 

             누가 외교을 하지 말라고 했습니까?

             그러나 자신만을 위한 외교, 내용이 빠져버린 외교는 결국 소비밖에는 남지 않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종종 우리가 아무리 계획과 전략을 세운다 하더라도 전혀 예기치 못한 사건이나

             약점으로 인해서 불행을 당할 때도 있습니다.

 

             지금이 어떤 세상입니까?

             정치인들이 선거에서 법정비용만을 가지고 당선되었다고 해도 그것을 믿는 국민은 아무도 없습니다.

 

             어떤 배의 선체가 아주 훌륭하고 잘 갖추어져 있어도 배를 조종하는 선장이 부주의 한다면

             그 배는 좌초되고 말 것입니다.

 

             만일 나라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이 뇌물을 받고 청탁을 들어 주고만다면

             그 나라는 부정으로 병들고 말 것입니다.

 

             만일 모든 사람이 이기적인 행사를 삼가하며 일용할 양식으로 만족할 줄 안다면

             오늘날의 빈부격차는 상당히 해소될 것입니다.

 

             한편 우리의 부모들은 인생의 풍파들을 많이 겪었던 세대입니다.

             우리의 아버지들은 우리에게 필요한 등록금을 위해서 몇 번씩이나 양심앞에서 울었는 지 모릅니다.

 

             우리의 어머니들은 우리에게 필요한 먹을 것을 위해서 여러 차례 거짓말을 했을 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 때의 옳지 못했던 자신의 부끄러움을 생각하며 오늘도 괴로워하고 있을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누가 우리의 부모에게 불의한 사람이라고 손가락질을 하겠습니까?

             그럴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우리들은 부모에게 더 감사를 해야 합니다.

 

             우리가 노력하고 떳떳하게 모은 그것으로 우리 부모를 공경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그 분들이 모든 죄책감에서 벗어나 남은 여생을 편히 사실 수 있도록 도와 드려야 합니다.

 

             불의하게 모은 재산이나 권력은 반드시 무너지게 되어있습니다.

             정직하게 살기 위해서는 반드시 댓가를 치러야만 합니다.

 

             오늘도 우리 영혼의 시계는 쉬지 않고 우리에게 묻고 있습니다.

           " 당신은 얼마나 정직하게 살아왔습니까? "

 

 

 

 

             가슴이 따스한 사람 해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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