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겨울날 대성리 모처에서 제자들과 즐거운 M.T

 

                    복음과 현실 사이에서

 

 

 

           지난 겨울날, 연말은 다가오고 날씨도 춥던 한 밤중에 어느 신사가 찾아왔습니다.

 

         시간은 어느덧 자정이 다 되었는데 그는 고급 양복을 차려입고

         술에 몹시 취한 듯 비틀 비틀 거리면서 교회안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는 마침 아무도 없는 교회 강단아래에서 엎드려 있는 나를 보고는 연신 헛기침을 하면서

         어서 속히 나의 기도가 끝나기만을 바라는 눈치였습니다.

 

         하는 수없이 기도를 잠시 중단하고 신사에게로 다가가 난로를 틀어주며 "어떻게 오셨지요?"하고 묻자

         그 신사는 내게 자신의 신분증을 보여주며 집에 갈 여비가 없다면서 이만원만 빌려달라고

         사정했습니다.

 

         예전에도 한 취객이 찾아와 자신의 아내를 찾는다며 한바탕 소란을 떨어놓고 그의 못난 부분까지도 다 드러내며

         모든 것을 토로하기에 나는 그저 묵묵히 그의 얘기를 들어주며 겨우 달래서 보내드렸던 적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도 또 다른 취객을 만나고 보니 결국은 서재안으로 들어가 돈을 들고 나왔습니다.

         그리고 하얀 봉투 앞면에는 "하시는 일 위에 평안과 축복이" 하면서 진심으로 그의 앞길을 축복해 주었습니다.

 

         비록 내게는 스쳐 지나가는 한 나그네일지라도 조금은 그의 건강과 가정이 염려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몇 일이 지나자 그 신사는 또 다시 나를 찾아와 넉살좋게도 돈을 빌려 달라고 통사정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한 번도 아니고 두 번 세 번 그의 이런 행동은 연말까지 계속되었습니다.

         얼마나 이유도 잘 갖다 부치는지 "이번이 마지막 입니다"하면서도 돌아서고 나면 그 때뿐이었습니다.

 

         새해가 되어 외출을 하고 밤에 돌아와 보니 나의 기도하는 강단위에는 한 통의 하얀 봉투속에

         갓 나온 70여만원이 들어 있었고 내 마음을 울려주는 몇 자의 인사말도 담겨 있었습니다.

 

        "목사님! 교회들도 많이 있는 것 같은데 모두가 열쇠로 단단히 잠겨져 있고

         목사님처럼 고민을 얘기할만한 사람도 없더군요, 진심으로 고마웠습니다." 라는 감사의 편지였습니다.

 

         그 동안 내가 밤마다 잠을 자지 못하고 십자가만을 바라보며 나라와 민족을 생각하면 한숨뿐이고

         아름다운 세상과 나의 월세를 위해서 졸음과 싸우면서 내 속은 새까맣게 타들어가는 순간이었습니다.

 

         세월은 벌써 10여년도 지났지만 그 신사의 얼굴, 표정들은 지금도 내 기억속에 분명히 남아있습니다.

 

         우리의 태도에는 마땅한 부드러움이 있어야 합니다.

         진정으로 친절한 행동은 기쁨과 감동을 불러 일으킵니다.

 

         어떤 사람이 구걸하는 사람에게 동전 한 닢을 던져주며 온갖 생색을 다 낸다면

         그 사람을 구원하기 보다는 그에게 상처를 입히는 행동입니다.

 

         어떤 선물이든지 사랑으로 가득찬 마음으로 베풀지 않는것은 그 선물은 그 가치를 발휘하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는 아무 생각없이 무관심하게 지나치지만 세상에는 비참한 상황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만일에 부모나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무심코 주는 용돈이나 세뱃돈도 정성껏 봉투에 담아

         가장 예쁘고 부드러운 말로 사랑하는 ○○에게 하면서 진심으로 그의 꿈과 소망에 대해 축복을 담아준다면

         그 돈이 그렇게 아무 의미없이 헛되게 쓰여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만일에 어떤 사람이 병적으로 민감하다고 할 때 비록 그것이 그 사람에게만 국한된 문제일지라도

         그들이 필요없는 고통을 더 당하지 않도록 우리는 좀더 신경을 써야 할 것입니다.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속에 포함된 모든 진리를 전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복음의 일부분만을 말하기 쉽습니다.

 

         만일에 어떤 사람이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사실만을 강조한다면 그는 복음의 전부를 전한다고

         얘기할 수가 없습니다. 단 하나의 진리라도 빠트린다면 복음을 전파한다고 말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어떤 교파들은 의도적으로 몇몇 교리들을 정해놓고 자신들의 신앙원칙으로 삼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들은 감히 이 원칙을 넘어서는 사람은 정통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어떤 정치인들의 논리처럼 두 견해 사이에서 왔다 갔다하며 자신들의 필요에 따라 말을 바꾸고

         누구와도 손을 잡고 자신에게 필요가 없을 때면 가차없이 이단이니 종북이니 하는 사람들을

         나는 단호히 거부합니다.

 

         과연 그들이 정통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자신들의 잘못이 드러나고 세력을 더욱 강화하기 위해서라면 어느 정치인들의 불의처럼

         쪽지 한장만으로도 여 야의 싸움으로 몰고가 본질을 흐려놓고 마는 그들과 무엇이 다르다고 하겠습니까?

 

         복음을 전파하는 것은 모든 부류의 사람들을 공평하게 취급하는 것입니다.

         교인들에게만 설교한다든지 죄인들에게만 설교한다든지 하는 것은 복음의 전체를 설교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접촉하는 대상은 아주 넓고 다양합니다. 우리는 능력과 확신이 넘치는 사람을 상대할 수도 있습니다.

         또 믿음이 여리고 약한 교인이나 이제 막 회심한 사람을 상대할 수도 있습니다.

 

         또 두 견해 사이에서 갈등하는 사람이나 도덕적인 사람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타락한 자나 버림받은 자가 있을 수도 있고 이 모두에게 복음을 전해야만 할 것입니다.

 

         우리가 필요로 하는 사역자는 어떤 능력이 많거나 말을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복음을 전하는 사람입니다.

         또 우리가 필요로 하는 교회들은 교인들이 많거나 유명한 교회들이 아니라 복음대로 믿는 사람입니다.

 

         사역자나 교회들이 하는 일이 무엇입니까? 이들은 복음을 위하여 세워졌습니다.

         그것은 공식적인 사역뿐만이 아니라 모든 크리스챤들에게 해당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각자에게 주어진 책임은 본질적으로 다른 것이 아니라 정도에서 차이가 날 뿐입니다.

         모든 믿는 사람은 그 분을 위해서 일하도록 서로 연결되어 있고 모든 것은 그 분께서 책임져 주실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마음을 열고 복음을 전하지 않고서는 크리스챤이라고 부를 자격이 없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크리스챤들은 생명의 말씀을 들었음으로 그것들을 전해야만 합니다.

 

                "너희가 거져 받았으니 너희도 거져 주어라"

 

 

         가슴이 따스한 사람 해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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