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영혼의 사역(使役)

 

 

 

 

             사람은 젊었을 때나 일에 한창 몰두해 있을 때는 영혼의 소리를 잘 듣지 못한다.

           자기가 세상 일에 떠 밀려서 영혼의 소리를 무시하고 침묵시켜 버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언젠가는 그가 일을 떠났거나 병상에 누웠을 때 그 소리는 더욱 또렷하게 들려올 것이다.

 

           내가 처음 사역을 하던 때는 모든 것이 낯설고 세상 물정도 잘 모르던 때였다.

           마치도 한 젊은이가 산 속에서 나와 수양생활을 끝마치고 하산을 하는 심정처럼

           나도 정든 교회를 나와서 두렵고 낯설기만 한 세상에서 홀로서기를 시도했다.

 

           그 길은 결코 내능력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보이지 않는 힘이 작용했다.

 

          "기도는 기적을 일으킨다."  "기도는 만사를 변화시킨다."는 그 약속만을 믿고

           나는 주류들이 지배하는 세계 속에서 당당히 홀로 섰다.

 

           그들과 합류하며 일을 하고 가르치면서 때로는 변화시키기 위하여 부단히 힘을 썼다.

           그러나 주류세력들의 세계는 너무도 단단하여 그들은 아무에게나 문을 열어 주지 않았다.

 

           자기들과 깊은 연관을 맺고 있는 혈연, 학연, 지연등은 너무도 견고하여

           아무나 낄 수도 나설 수도 있는 성질이 아니었다.

 

           그러한 세계 속에서 외부인이 함께 하며 일을 한다는 것은 보통의 힘만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럴 때마다 내게 필요했던 것은 언제나 기도뿐이었다.

 

           지난 날 나는 어머니의 건강과 나의 장래문제를 위해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밤 낮을 지하실에 홀로 남아서 간절히 기도를 드리면서 솔로몬의 지혜를 얻기위해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어떤 교인은 나를 측은히 바라보며 내게 다달이 5.000원씩을 놓고 가셨다.

           새벽이 찾아오면 주위를 정리하고 아침에는 병아리떼들이 몰려와 배고픈 줄도 몰랐다.

 

           낮이면 주로 책을 읽고 밤이 되면 약수터에 올라가 목욕 제배를 하며 밤이 맞도록 기도를 했다.

           가진 돈 5.000원은 쪼개고 또 쪼개어서 날마다 200원씩을 소원 예물로 바쳤다.

 

           그러한 기도가 있어서인 지 내게는 언제나 행운(?)이 뒤따랐다.

           어머니의 생명은 기적적으로 15년이나 연장을 받으셨고 무에서 유를 창조해 내는 많은 기적들도 체험했다.

 

           그 중에서도 나의 가장 큰 축복은 무작정 찾아간 어느 교회에서 천사같은 아내를 만나게 된 사실이다.

           세상에 어느 여자가 볼품도 없고 가진 것도 없는 나에게 시집올 수 있을까?

 

           또 사람들은 나의 어떤 모습이 좋았길래 내게 종종 기도제목을 부탁했을까?

           명절이 다가오면 그 사람들은 나를 잊지 않고 인사를 하고 다녀갔다.

 

           어느 청년은 병원을 개업하여 내게도 스켈링을 해주었고 .

           어느 학생은 입으로 키타를 튕기더니 결국은 가수가 되어 있었다.

 

           어떻게 그 많은 사연들을 일일이 다 고백할 수 있을까?

           지금도 아내를 바라보고 있으면 나는 늘 아내에게 죄인이고 고맙고 미안하고 사랑한다는 말뿐이다.

 

           그 옛날 남편의 사례비가 15만원이었을 때 아내는 그 돈으로 이것 떼고 저것 떼고 또 떼면서

           그 나머지로 살림을 잘도 꾸려나갔다.

 

           아내가 처음 만삭 중이었을 때는 나는 차라리 반성부터 하게 된다.

           아내가 핏자를 그렇게도 먹고 싶어 하는데도 나는 핏자를 대신하여 겨우 피자빵만 사주었을 뿐이다.

 

           그러한 가운데서도 나의 고민은 언제나 사역들뿐이었었다.

 

           때때로 내 마음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릴 때면 나는 주저없이 그곳으로 달려갔다.

           어떤 때는 북한강의 어느 산위로 올라가서 하늘과 마주하며 힘껏 소리를 외칠 때도 많았다.

 

           그 곳에서 쉬면서 몇 날이고 자연과 속삭이며 바람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으면

           어느새 내 앞에서는 하늘이 허락해준 반가운 사람들도 와 있었다.

 

           그들이 누구이며 무엇을 하고 있는 지는 내게 별로 중요하지가 않았다.

           시간이 지나가고 서로가 어울리다 보면 그것은 차츰씩 알게 된다.

 

           중소 기업의 사장, 국회의원, 박사들, 교수들, 여러 목사들도 간혹 눈에 띄었다.

           그들의 몸은 지쳤으며 이미 망신창이가 되어 있었다.

 

           책을 펴놓고 서로의 고민도 풀어 놓고 이야기꽃 희망의 꽃을 피우고 있으면

           신기하게도 한 가지씩은 꼭 해결되고 마는 꿈같은 이야기들...

 

 

 

 

           실제로 지난 2001년 겨울, 우리나라에서 월드컵이 시작되기 몇 개월 전에 이러한 일도 벌어졌다.

           나는 그 날도 교회 강단에 올라 아쉬움을 뒤로한 채 마지막 고별 설교를 한 적이 있었다.

 

           그 날 따라 많은 교인들이 나와서 마치 나를 환송이라도 하는 듯 나의 마지막 고별 설교에 경청해 주었다.

           그 중에서는 정치계의 거목이며 3김씨였던 한 분을 오랫동안 모셔 왔었던 어느 지인도 함께 했다.

 

           나는 그 자리에서 우리 나라의 월드컵 성적이 아무도 예상할 수도 없는 4강도 가능할 것이라고 알렸다.

           16강에만 들어도 감지덕지 할 상황인데도 우리나라가 16강을 넘어서 4강이라니 도대체 이 무슨 망발인가

 

           도시마다 붉은 물결과 의지들이 넘실거리고

           한번 신바람이 나면 우리 민족은 어떠한 일도 해낼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한 셈이었다.

 

           나에게도 그 동안 보이지가 않았던 여러 사람들로부터 전화가 빗발쳤다.

           나의 부친께서 어느 날 갑자기 세상을 떠나시지만 았았더라도...

 

           나는 임오년 따사로운 봄 내음과 함께 가족들을 이끌고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고 하시는 어느 영혼의 소리에 이끌려서 그 교회를 나왔다.

 

           아름다운 세상이란 어떤 화려하거나 거창하게 꾸며진 나라만은 아니다.

           그 나라는 참 좋은 나라요, 희망을 잃어버린 한 사람, 한 사람이라도 일으켜 세우는 데 있다.

 

           우리는 흔히 개체를 소중히 여길 때 전체를 무시하기가 쉽고 전체를 따를 때 개체를 소홀하기가 쉽다.

           사역이란 바로 이러한 폭넓은 사랑을 오늘에 실현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사역을 하다보면 종종 사역이 얼마나 어려운 지를 실감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렇게 전체를 상대로 하여 희망을 선포하고 동시에 한 사람, 한 사람의 고민과 아픔들을

           감싸주어야 하는 것이 사역인데 여기에 인간적인 한계를 느끼지 않을 수가 없다.

 

           그리하여 때로는 많은 사람들이 큰 기대를 하고 나왔다가 실망하고 돌아가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세상은 비록 그들을 실망시키게 할 지는 모르지만 우리는 그들을 끝까지 포기하지 아니하고

           실망시켜서도 안될 것이다.

 

           인간의 호흡에는 숨을 쉬는 것과 공기를 마시는 것이 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영혼에도 호흡이 필요하다.

 

           마음이 자기 집안에 앉아 자기 마음대로 조절하는 기관이라면

           영혼은 예민한 감각으로 그 선입견들을 몰아내고 깨우치게 하는 능력이라고 할 수 있다.

 

           내 영혼의 사역에서 제대로 활동하기 위해서는 자기만에 4개의 방이 필요하다.

           곧 골방과 글방, 심방과 처방이다.

 

           골방은 자기 사역에 저지르기 쉬운 잘못이나 도움이 필요할 때는 즉시로 엎드려서 기도하는 공간이고

           글방은 자기 사역에 허전하거나 채워야만 할 때 언제라도 충전을 해야만 하는 공간이며

           심방은 자기 사역에 관심있거나 소중한 사람들을 만나야 할 때 급하게 달려가는 공간이고

           처방은 자기 사역에 아프거나 쓰러져 있는 사람들을 보면 피하지 아니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공간이다.

 

           이들 중에 그 어느 것 하나라도 없어지면 영혼사역에 큰 차질이 빚어지고

           이러한 방들이 모두 갖춰질 때 영혼 사역은 하늘을 나는 새와 같이 세상을 향해 마음껏 날아 다닐 수있다.

 

           우리의 영혼은 때때로 신(神)의 대리자 역할을 한다.

           마음 속에서 무언가 말하고 있는 것은 외부에서 누군가 소리치는 메아리와도 같은 것이다.

 

           분주한 낮 시간의 소음이 그치고 모두가 휴식하는 정적만이 주위를 감쌀 때면 시계는 드디어 우리에게

           말을 한다. 그리고 늦은 밤 잠못 이루고 고민하는 나의 서제까지 시계소리는 들려 온다.

 

           그것은 마치 현재의 삶에 갈등을 겪고 있는 사람처럼 안락한 집과 사랑스런 아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뭔가 채워지지 아니하는 생의 허전함을 달랠 길이 없어서  

           내 영혼 깊은 곳에서 울려 퍼지는 영혼의 메아리인 것이다.

 

 

           가슴이 따스한 사람 해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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