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5월 11일 토요일, 이른 아침 고창 청보리밭으로 향하는 차창 밖의 풍경이 마음을 설레이게 하네요.

휴대폰으로 찍은 사진들입니다.

 

 

 

 

 

 

 

 

 

 

고창 청보리밭에서...                                                 발은 무겁고 배는 고팠지만 그래도 유익했습니다.

 

 

                       당신의 사명은 무엇입니까

********************************************************************************************************************************

                                               사명이 있는 자는 절대 죽지 않는다. 리빙스턴

********************************************************************************************************************************

 

 

 

                                                                                           

 

사람은 누구에게나 사명이 있습니다.

어린아이에서 대통령까지 사명이 있게 마련입니다.

 

사명 (使命)이란 삶의 밑천을 말합니다.

인생의 목적이며 맡겨진 일을 뜻합니다.

 

 

그것을 잘만 활용하면 큰 부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중단되는 날 아무 가치도 없습니다.

 

그 사명을 잘 가꾸고 활용하여 과업이 마치는 날

그 사명의 가치를 깨달아 알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가진 사명은 배역과도 같습니다.

무대 위의 주인공들처럼 자기를 변화시켜 연기를 하는 것입니다.

거지가 되려하면 거지다와야 하고 왕자가 되려하면 왕자 다와야 합니다.

 

일단 무대가 시작되면 자기의 뜻과는 관계없이

분장을 하고 다시 그려서 그 역할을 소화해 내는 것입니다.

 

때로는 똑똑한 사람이 바보가 될 때도 있습니다.

아무리 배우지 못한 사람도 귀하게 쓰임받을 때도 있습니다.

이렇게 그 배역에 최선을 다하다 보면 언젠가는 그것이 이뤄지는 것입니다.

 

이 배역을 소화하십시요.

실패하고 쓰러지고 넘어지고 짓밟히십시요.

 

그 일이 무언지 내게는 잘은 몰라도

거기에는 분명히 우리가 알지 못하는 더 깊은 뜻이 있을 것입니다.

 

미래가 없는 삶은 죽은 것입니다.

삶의 목적도 없고 희망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사람이 사명을 가진다는 것은

그 사명으로 미래를 모험하고 모든 도전과 싸우기 위한 것입니다.

 

사명은 간직하는 것이 아닙니다.

방치해 두는 것이 아닙니다.

날마다 활용하여야 할 무기요, 모험의 도구입니다.

 

우리앞에는 수 많은 문제들이 놓여져 있습니다.

사명을 통해 하나둘씩 이루어 나갈 때 미래를 향하여 그 만큼 다가서는 것입니다.

 

오늘의 현실에 대하여 너무 무관심하지 마십시요.

사회의 억압과 불의앞에 외면하지 마십시요.

자신을 가로막는 어떠한 것과도 싸우십시요.

 

가난은 나라도 구제하지 못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사명이란 곧 가난과의 싸움이기도 합니다.

 

가난을 완전히 구제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과 맞서서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미래를 모험한다는 것은 

바로 자기에게 주어진 일들에 도전(桃戰)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외면하지 아니하고 피하지 아니하고 정면으로 맞서 싸우는 것입니다.

 

문제와 맞설 때 고난이 따르게 마련입니다.

그 고난이 두려워 현재의 만족에 안주하지 마십시요.

비록 자신의 삶이 미숙하고 서툰다 할 지라도 너무 염려하지 마십시요.

 

행복이란 얼마나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얼마나 부끄럽지 않고 얼마나 최선을 다했느냐입니다.

 

당신을 가로막는 어떠한 것에도 개의치 마십시요.

싸우다가 깨지고 넘어진다 할지라도 결코 두려워 하거나 피하지 마십시요.

 

당신에게 아직 할 일이라도 남아있다면

그것을 향해 끝까지 최선을 다해 도전하는 것입니다.

 

 

가슴이 따스한 사람 해피

 

 

 

 

 

 

 

 

 

 

 

 

 

 

 

 

 

 

 

 

 

 

 

 

 

 

 

 

 

 

 

 

 

 

 

 

 

얼마쯤 가다가 뜻밖에 팝콘 TV의 춘자님을 만났습니다.  조금은 놀랐지만 그의 도전에 악수를 하면서 발길을 돌렸습니다.

 

 

 

 

 

 

 

 

 

 

 

 

 

 

'희망주는 강연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여름의 약속  (0) 2019.06.19
내 영혼의 시냇물  (0) 2019.05.31
징검다리  (0) 2019.05.04
폭풍이 부는 세상  (0) 2019.04.25
갈등 속에서  (0) 2019.04.12

 

 

                                                          부자와 가난한 자

 

 

 

 

 

 

 

            이 세상에서 돈 만큼이나 힘 있는 것이 또 있을까요?

            돈 앞에서는 사랑도 보이지 않고 만물이 다 고개를 숙입니다.

 

            재물의 힘이 얼마나 센지 그것을 소유한 자는 달리 의지할 대상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합니다.

            그리하여 부자는 다른 사람들보다 타락할 가능성이 높은 반면에 인정받기도 매우 어려운 것입니다.

 

            부에 대해 말할 때 우리는 재물을 많이 가진 사람만이 부자인 것으로 생각하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입니다.

            진정한 부자란 빚이 없고 생활 필수품을 조달하고도 여유가 있는 사람입니다.

            반면에 가난한 자는 고립입니다.

 

            우리가 가난해 질 때 우리는 외로와 집니다.

            친구가 우리를 떠나거나 우리가 그들을 기피하게 됩니다.

            그리고 나의 형제들도 우리에게서 떠납니다.

            이것은 그들이 가난한 자를 회피한다는 뜻이 아니라 그를 더욱 고독하게 내버려 둔다는 뜻입니다.

 

            그리하여 가난한 자들은 생계유지를 위해서 머나먼 바다를 건너야 하며

            온갖 더러운 악취들도 향수처럼 참아내야 하고 땅에서는 힘들게 일을 하며

            공장에서는 쉬지않고 작업하며 시장과 거리에서도 고되게 일해야 합니다.

 

            이와는 반대로 부자는 가난한 서민들의 사회 진출과 학문과 행복과 자유와 건강을 위해

            아무 것도 돌보아 주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가난으로 고통할 때 부자들은 오히려 비대해집니다.

            가난한 자는 간절한 말로 구하여도 부자는 엄한 말로 대답을 합니다.

 

            이러한 세상에서 아무리 지식이 많고 인격이 훌륭하다고 해도 누가 가난한 사람들과 친구가 되려 할까요?

            그리하여 우리는 단순히 가난한 자를 구제하는 것뿐 아니라 그들을 도와야 합니다.

 

            주는 것만으로는 그들에 대한 의무를 다했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가난한 자들이 절망의 바다에서 스스로 헤엄쳐 나올 수 있도록 튼튼한 일자리를 만들어주고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길입니다.

 

            힘이란 무엇일까요? 정의를 위한 능력입니까? 불의를 위한 권력입니까?

            요즘 우리 정부의 하는 일을 보고 있으면 정부는 누구를 위해서 존재하는지 모를 때가 많습니다.

 

            실제로도 힘 없는 노동자가 열악한 노동 환경과 최저 임금등으로 사측과 맞서 시위를 할라치면

            우리 정부는 기업이 살아야 한다는 명목으로 노동자들을 몰아내고 감옥에다 가두어 버립니다.

 

            그런가 하면 우리 정부는 보수 단체들의 대북전단 살포에서는 그냥 바라만 보고 있습니다.

            우리 정부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대북전단 살포가 표현의 자유라고 말하면서

            이것을 제한할 법적규정은 아직 없다고만 강변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종편방송사들은 한 술 더 떠 저들을 위해 써포트 된지 오래입니다.

            보수 단체가 행동을 개시하면 자신들의 임무가 무엇인지 아름답게 포장을 하고 있습니다.

 

            한편 일의 대가는 정확하고도 정직하게 보상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일부 부자들은 가을날의 수확처럼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부를 축적합니다.

            부자들 사이에는 노동의 가격을 깎아 부당한 대우를 하는 예가 얼마든지 있습니다.

 

            부자는 경쟁에서 성공하기 위해 힘없는 서민들을 악용하여 그들보다 더 싼 노동력으로

            사업을 크게 일으키고자 합니다.

 

            성경에서도 야고보는 부자들의 부당한 재물이 소리지르며 노동자가 울부짖는다고 표현했습니다.

            금은 보화가 금고에 쌓여갈 때 날카로운 외마디로 복수를 부르짖는 소리가 하늘에 울려 퍼지고

            압제받는 수많은 서민들의 요구가 아무리 정당하고 이들의 호소가 아무리 급박하다고 하더라도

            세상은 이에 귀를 기울이려고도 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이러한 호소는 마침내 하늘에 상달되고야 말 것입니다.

            추수꾼들의 신음과 탄원을 듣고 이에 보응하기 위하여 하늘은 마침내 채찍을 꺼내들고

            가난한 서민들을 짓밟는 부자들을 문책하며 그들의 활동을 정지시키고 징계를 내리고 말 것입니다.

 

            우리는 때때로 부유한 사람들의 재물을 부러워 하며 힘있는 자들의 권력을 부러워 합니다.

            이들은 물론 나름대로 행복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좋은 평판이 그것보다 더 가치가 있습니다.

 

            우리 선조들은 일찌기 가난한 옷을 입었어도 무엇이 행복인지 우리에게 보여주었습니다.

            행복이란 결코 즐기는 삶이 아니요 방심한 상태도 아니며 희희낙락하는 웃음도 아닙니다.

            진정한 행복이란 열심히 사는 것이요 꾸준히 수고하는 것이며 어떤 상황에서도 참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누가 인생을 마치 집과 같다고 표현했습니까?

            그러나 그 길이는 눈으로 측정되지 않고 날과 달과 해로 측정됩니다.

            어떤 인생은 매우 길지만 어떤 인생은 매우 짧습니다.

 

            때때로 이 집의 거주자는 나쁜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이기적인 사람이 그 집을 소유하면 그 집은 구두쇠의 집과같이 자기만을 위해 좁고 불편한 집이 됩니다.

 

            우리의 통일 문제는 너무나도 중요합니다.

            지금도 남북사이를 왕래하는 저 강물을 보십시오.

            한반도에서 이보다 더 자유롭고 행복한 것이 또 있을까요.

 

            남녘 들판에서는 벌써부터 물결치는 곡식이 풍성한 수확을 기다리고 있지만

            우리 마음의 들판에는 아직도 무성한 갈대만이 누렇게 피어나고 있습니다.

 

            곡식이 물결치는 들판에 서서 그것들이 바람에 바스락 거리는 소리를 들어보십시오.

            그것은 정녕 "사람이 뿌린대로 거두리라"는 하늘의 음악이며 자연의 소리입니다.

 

            통일로 가는 길목에서 국민들의 동의없이는 그 어떤 것 하나라도 통과할 수가 없습니다.

 

            지금도 남과 북, 해외에서 흩어져 살고 있는 우리 동포들이여!

            농부에게서 인내를 배우십시오.

 

            농부들은 농사짓는 일에 대해서 조바심을 내지도 않으면서 무관심하지도 않습니다.

            우리는 씨앗을 심은 후에 얼마 가지도 못하면서 너무 오래 기다렸다고 생각합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소망의 싹이 지체되어 속히 나지 않으면 짜증을 부리기 일쑤이고 포기하고 맙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풍성한 결실이 맺어질 수 있을까요?

            과연 마음이 조급한 사람들에게 무슨 소득이 있을까요?

 

            농부들은 이른 봄에 밭을 갈고 돌을 골라주며 밭을 휴경하기도 하며 써레질을 합니다.

            이것은 밭의 흙을 부드럽게 만들어 씨앗이 발아(發芽)할 수 있는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기 위함입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농부가 어떻게 결실의 때를 기다리는지 깊이 상고(詳考)해 보고

            우리가 초조하면 할수록 우리의 추수의 때는 더디게 실현된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지금은 모두가 반성하는 시기이지 황금빛 들녘을 자랑할 시기는 아닙니다.

            그 동안 우리들은 통일을 이루기 위해 무슨 씨앗을 심어왔는지 곰곰히 생각해보고

            내년에는 더욱 더 분발하여 아름다운 열매를 맺어야 할 것입니다.

 

            처음에는 진리의 가지가 뻗어 믿음의 잎이 되고 사랑의 꽃이 피어 조금씩 조금씩 더 커지고

            더 푸르고 더 성숙해져서 결국에는 아무도 말릴 수가 없을 때 완전한 통일이 이루어지게 될 것입니다.

 

 

            가슴이 따스한 사람 해피

 

 

 

'이슈와 진단'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불의에 대한 분노를 더욱 높여라  (0) 2014.12.16
자신에게 정직하라  (0) 2014.11.07
북한 인권에 대한 유감  (0) 2014.10.14
헛된 논쟁을 삼가라  (0) 2014.09.26
이 시대의 요구  (0) 2014.09.17

幸福이란

 

 

 

 

 

幸福이란 누군가가

어느 하늘 아래에

 

 

해가 지도록 온 몸으로

세상을 경험(經驗)하고

 

 

시간(時間)과 영원(永遠)사이에서

내일을 기약(期約)하며

 

 

아직도 채우지 못한

마음속의 빈 공간(空間)이다.

 

 

 

 

가슴이 따스한 사람 해피

'마음의 표현대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세계인앞에 더 이상 왈가왈부하지 마라.  (0) 2013.05.10
술과 엿장수  (0) 2013.05.10
무한 경쟁시대  (0) 2013.04.25
세상 이치  (0) 2013.04.19
당신은 행복하십니까?  (0) 2013.04.17

 

 자살(自殺)! 꼭 해야만 합니까?

 

 

 

 

 

요즘 우리 주변의 자살(自殺)문제가 사회적으로 적쟎은 혼란을 주고 있습니다.

지난 10월 7일 밤 대중들에게 인기강사로 유명한 최윤희씨가

오랜병마로 시달리다 견디지 못하고 남편과 함께 동반자살을 하고 말았습니다.

 

이번 그의 자살이 큰 충격을 주는것은 그가 단지 유명인이라서가 아니라

행복을 전달하는 행복전도사요, 공인이었기 때문입니다.

 

유명인은 곧 공인(公人)이라 할 수있습니다.

 

공인이란 넓은 의미에서 사회의 구성원은 누구라도 그 재능과 영향력을 인정하여

국가나 사회가 그들에게 공적인 일을 부여하여 동경과 가치를 추구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번 자살을 두고 과거와 마찬가지로 자기신변의 두려움이나 고통에 따른 괴로움의 표출이라고 할 수있습니다.

그렇다면 죽음만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줄 수있을까요?

 

죽음은 단지 자신과의 마침이지 자신을 둘러싼 기대열망에 자살만이 능사인가라는 가치판단이 따릅니다.

사람은 태어나면서 자신을 사랑하고 보호하려는 본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인간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목숨을 끊는다는 것은 자기자신만이 아니라 사회전체에 해를 끼치는 것과도 같습니다

 

벨기에의 극작가 메테를링크가 지은 "파랑새"라는 동화가 있습니다.

가난한 치르치르와 미치르의 오누이는 파랑새를 찾아 기억의 나라로 행복의 나라로 미래의 나라로 떠났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끝내 찾지 못하고 기진맥진하여 돌아와보니 그들이 찾던 파랑새는 집안에 있었다는 내용입니다.

 

이 이야기는 행복이란

무지개너머 높은 산과 깊은 물을 지나서 찾을 수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가까이에 있다는 뜻입니다.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스스로 비하하며 공연히 자신의 처지를 한탄해서는 안된다는 교훈입니다.

 

강 가옆에 사는 사람이 어찌 물의 귀중함을 알겠습니까?

그러나 사막을 여행하는 사람들에게 물이란 사막의 오하시스요, 한 줄기 생명수입니다.

 

인간은 항상 소유하고 있지 못한 것들에 대한 헛된 욕망과

소유하고 있는 것들에 대한 싫증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실제로 인간은 어려울때보다도 부요할 때가 더욱 생활하기가 어렵습니다.

인간은 아무리 좋은 환경에 있다 할지라도 만족을 느끼지 못하는 존재입니다.

하나를 얻고 나면 좀 더 가지고 싶고, 좀 더 먹고 싶고, 좀 더 누리고 싶은 것이 인간의 욕망입니다.

 

차라리 어렵고 궁핍할 때에는 그러려니하며 모든 것을 체념할 수 있지만

자기가 여유로울 때에는 언제나 유혹에 넘어가기가 쉬운 법입니다.

 

마음이 여유로울 때에는 교만해지거나 유지하려고 하는 고민이 따르고

자기가 어려울 때에는 자신의 신념마져 흔들릴 수있는 못된 유혹이 생길 수가 있습니다.

 

인간은 언제나 보람된 일에는 기뻐하지만 고통과 어려움앞에서는 괴로워하기 마련입니다.

자신의 행복도 모르면서 어찌 타인의 처지를 알겠습니까?

 

우리 사회에서 남에게 인정받는 길이란 일상생활에서 더욱 더 義를 드러내야 합니다.

 

무엇을 하든지 그것이 과연 義의 것인지 아닌지를 분별해야 합니다.

그것이 義의 것이 아니라면 그것은 인간의 고상한 능력을 신봉하여 스스로 만족을 얻으려는

타인을 향한 진정한 義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결국 義의 뜻이 아닌 선행이란 자기만의 영달이지 그의 고통또한 남들로부터 인정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공인이란 한마디로 義의 뜻을 전하려하는 자들입니다.

국가나 사회가 그들의 업적을 인정하고 격려하여 그들에게 붙여주는 호칭이 그것입니다.

행복을 더 많이 알리라는 의미에서 행복전도사요, 기부를 더 많이 알리라는 의미에서 기부전도사로 붙여줍니다.

 

얼마나 견디기 힘들었으면...하며 동정을 보내기도 하고 그래도 자살만은 안된다고 타일러 보지만

과거 자신이 사람들로부터 받아온 사랑에 견주어 보면 그같은 고통과 비천함 따위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행복이란 고통을 초월할 때 그 진가는 더욱 빛나는 것입니다.

남에게 인정받으려하거든 먼저 어떠한 형편에든지 스스로 자족하는 법을 터득해야 합니다.

 

이 세상가운데에는 그보다 더 많은 고통가운데 사는 사람들이 존재하며

그 동안 당신의 말에 귀기울여주고 당신을 기대하는 많은 열망에 더 이상 의지를 꺾어서는 안됩니다.

 

왜 자살이 어리석은 것일까요?

열심히 살지못한 순간의 어리석음 때문입니다. 열심히 사십시요. 그것도 인간의 사명(使命)입니다.

자살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없는 대신에 살아야 할 공포가 존재합니다

 

죽음에 맞서 그 죽음을 선택하는 것은 어쩌면 용기있는 행동일 것같지만

그러나 죽음보다 살아갈 일이 더욱 더 무섭고 두려워질 때

어떻게든지 살아서 대처해 가는 것이 더욱 더 용기있는 행동일지도 모릅니다.

 

(生命)은 생물이 기본적으로 가지는 속성이지만

인간의 생명은 살아가라는 하늘의 명령이고 자살의 반대는 살자입니다.

 

 

 

 

 

가슴이 따스한 사람 해피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