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능을 가치있게

 

 

 

 

          

           나의 유년 시절, 조금은 부끄럽고 창피스런 일이지만

           내게는 오직 노는 것, 장난이 더 즐거웠던 시절이 있었다.

           공부와 철이 뭔지도 모르던 시절에

           내가 세상에서 처음으로 수학과 한글을 배우게 된 것은 초등학교 4학년 무렵이었다.

 

           연희동 산 5번지 시절, 작은 아버지는 나와 동생, 두 형제를 붙들고서

           다 큰 녀석들이 아직도 글씨도 쓸 줄 모르고 시계도 볼 줄 모른다면서

           아랫 마을에 있는 작은 아버지 댁으로 끌고 가셨다.

 

           캄캄한 밤에 우리는 한참을 내려가서 지금은 대림아파트로 변했지만 어느 집안으로 들어갔다.

           방 안에서는 노트와 시계, 자 한개가 놓여 있었고 거기에서 우리는 꼼짝없이 공부를 해야만 했다.

 

          추상같은 작은 아버지는 대나무 자 한개와 노트를 주시면서

          앞으로 너희들은 글씨를 쓸 때마다 자를 대고 또박 또박 쓰라고 하시고는 시계 공부도 가르치셨다.

 

          한가지를 이해하기까지 이마와 등뒤에서는 식은 땀이 계속 흘러내렸고

          다음날도 또 다음날도 작은 아버지는 같은 글씨를 반복시키시며 그렇게 우리들은 글씨를 배웠다.

 

          나의 초등학교 성적은 반에서 늘 꼴찌였다.

          어쩌다가 내가 한번 맞추기라도 할라치면 선생님은 너무 이상하다는 듯이 그냥 넘어갔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지루한 산수 시간보다도 운동장에 나가 뛰 노는 시간이 더욱 더 좋았다.

 

          그러다가 내가 중학생이 되자 모든 것들이 바뀌게 되었다.

          선생님의 얼굴도 매일같이 자주 바뀌었고 나의 행동도 그만큼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공부를 하는 한 시간은 마치도 어른들의 세계처럼 너무도 지루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교과서나 노트에다 낙서를 하며 싸인도 만들고 초상화도 그리면서 시간을 떼웠다.

 

          차라리 머리라도 나빴으면...

          나는 매일 국어책에 나오는 시나 한문의 고사성어들은 다른 시간을 이용하여 모조리 외워버렸다.

          그것은 나의 지루함을 달래주는 심심풀이였고 써먹는 재미라도 있었다.

 

          그러던 중에 어느 날 내게 놀라운 변화가 찾아왔다.

          그것은 나도 모르는 사이 내 필체가 마치 책을 복사라도 한듯이 교과서를 그대로 따라하고 있었다.

 

          그것은 내가 2학년이 되자 점점 더 확실해져서 이젠 그 누구도 따라오지 못할 만큼 재능이 되었다.

          가끔은 교무실로 불려나가 선생님의 업무를 대신 도와 드리면서 나의 공부하는 자세도 크게 달라졌다.

 

          내가 고등학생이 되자 그것은 내게 커다란 자신감이 되었고

          선생님들은 또 어떻게 아셨는지 내게 종종 칠판 글씨를 부탁하셨다.

 

          심지어는 훗날 내가 최고 학부과정에서 모두가 컴퓨터로 리포트를 작성할 때에도

          나는 어려운 집안사정으로 필체로만 대신하여 제출 할 때도 많았다.

          다행스럽게도 교수들은 내게 좀 더 후한 점수를 메기셨고 아마도 그런 정성이 너무도 가상했으리라.

 

          군에 들어 가서도 나의 임무는 부대 안의 글씨와 행정과 훈련 궤도를 도맡아 그렸다.

          그러한 덕분인지 나는 참 유독히 행운(?)도 뒤따랐다.

          남들에게는 지독하다는 화생방의 훈련과 극기훈련도 잘도 피해 나갔다.

 

          별명은 할렐루야 아저씨로 통했다.

          까무잡잡한 얼굴과 덥수룩한 수염은 마치 내가 성경 속에 나오는 예수로만 보였나 보다.

          내가 본격적으로 정장을 차려입고 강연을 다니게 된 것도 다 그러한 인연 때문이리라...

 

          막상 나의 제대 날이 가까와 오자 나에게는 사회로의 적응시간이 너무도 절실했다.

          좀 더 부드럽고 따스해지며 모든 사람들과도 어울릴 수 있는 나만의 시간이 필요했다.

 

          우연히 알게 된 어느 지인의 도움으로 나는 향목에 가입하게 되었다.

          거기에서 나는 여러 목사님들과 신부님, 스님, 수녀님들까지 한꺼번에 만나볼 수가 있었다.

          때로는 땅굴 견학과 전방시찰, 임진각에도 함께 오르며 우리는 자주 친목을 도모했다.

 

          가끔은 부대장의 증정마크가 새겨진 책을 받아들고 과연 내가 가는 길이 이 길인가 궁금할 때도 많았다.

          원치도 않는 길에 학비를 마련해야 할 때는 너무도 힘겨웠다.

 

          그런 때에 나는 한 자루의 칼과 자 하나, 형형색깔의 썬팅지를 사다가 신문 광고지에 싣고

          어떤 날은 유치원, 어떤 날은 음식점, 어떤 날은 학원에서 보내면서 인테리어를 해 주었다.

          그들은 내게 고마움의 답례로 품삯보다도 더 좋은 훗날에 언제든지 찾아오라며 호의까지 베풀어 주셨다.

 

          때로는 중소업체의 병원 게시판을, 때로는 문화예술의 광고간판까지...

          정성스럽게 육교 난간에 걸어놓고 그 아래로 슬그머니 지나가는 나를 바라볼 때면

          또 한번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내가 가는 길이 이 것인가 하는 자문을 할 때도 많았다.

 

          지금도 간혹 예산이 부족할 때면 그 때를 떠 올리며 종종 많은 유혹을 받기도 한다.

          어느 날은 서울 시내의 모 대형광고 업체로 부터 간절한 손을 내 밀었지만

          아내와 미처 상의를 해 보기도 전에 난 그 자리에서 웃음으로 답했다.

 

          생각해 보면 우리의 재능들은 귀하게 쓰여질 때가 많다.

          자기의 재능이 언제, 어디에서, 어떻게, 누구를 위해 쓰이느냐에 따라서 그 가치는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어느 방면에서 뛰어난 재능들을 가지고 있다.

          어떤 사람은 신체적인 힘이 매우 뛰어나고, 어떤 사람은 정신적인 힘이 매우 뛰어나며

          어떤 사람은 행동하는 일에 알맞고, 어떤 사람은 계획하는 일에 알맞으며

          어떤 사람은 나라를 통치하는 데에 적격이고, 어떤 사람은 자기 일이나 사업에 더 적합하다.

 

          이러한 다양성이 모여서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고

          그 속에서 우리는 지위와 직분을 나누어 함께 살 수 있도록 계획되었다.

 

          만일 우리가 적은 재능을 갖고 있다면 그것은 그 능력에 알맞는 지위가 생길 것이고

          그 자리에서 자신이 누릴 수 있는 가장 보람된 기쁨과 행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내게 있어 재능은 단순한 밥벌이용이나 흥정거리 대상이 아니다.

          그것은 내게 세상 어떤 것보다도 귀하고 주고 또 주어도 아깝지 않은

          나의 소중한 사람들께만 드릴 수 있는 나의 소박한 희망이다.

 

 

          가슴이 따스한 사람 해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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