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에라는 도구를 아십니까?.

 

달구지나 쟁기의 채를 잡아두기 위하여 짐승의 소나 말에 얹는 도구를 멍에라고 부릅니다.

소나, 말을 구속하고 무거운 짐을 지게하여 그 삶을 제약하는 것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인간의 어리석음과 무지등이 이러한 삶을 구속하고 제약하는 멍에와도 같습니다.

그 멍에로 인하여 인간은 나면서부터 죽기까지 고통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소나, 말이 늘 그 멍에로 인하여 자기의 운명으로 알고 받아 드리는 것처럼

인간또한 태어나면서부터 노예의 낙인이 찍히고 평생 낙인과 더불어 거기에 길들여지는 것입니다.

 

우리의 오랜 역사를 보면 반상제도에 의해 상민으로 태어난 사람은 
제나 그 신분을
벗어 버리지 못하고 온갖 제약을 받으며 일생을 마쳐야만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운명으로 알고 양반을 섬기며

그들이 베푸는 선심에 의하여 일생을 마쳐야만 했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삶 역시 편견과 관념의 노예에 사로잡혀 자유롭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까?. 

 

일반적으로 사람은 일류 대학이라는 집념에서 자유롭지가 못한 것이 사실입니다.

일류 대학이라야 다 똑똑하고 유능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오늘의 이 파국(破局)을 몰고 온 장본인들이 결국은 누구입니까?

어떤 면에서 일류 학자들의 사고가 고정화되어 창의적이지 못하고

새로운 것들에 대하여 익숙하지 못하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자기들 또한 그러한 멍에가 있으면서도 메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다는데 문제입니다.

 

사람들은 이러한 이념이나 관습에 사로잡혀 
편안하고 
큰 문제가 없다면 좀처럼 바꾸려 들지 않는 것입니다.

 

바다에 사는 게는 보통 일곱 번씩 허물을 벗고 살아갑니다.

그 허물을 벗지 못하는 게는 더 이상 성장하지 못하거나 죽어버리고 

우리 인간들 또한 끊임없이 세포들을 만드는데

낡은 세포들은 죽고 새로운 세포들이 성장하게 마련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사회가 이렇게 고통을 겪는 것은 
어쩌면 허물을 벗기위
한 하나의 과정은 아닐까요?

 

시기를 알고 때를 구분하여 준비를 하는 사람만이 지혜로운 자일 것입니다.

벗어야 할 멍에, 탈피해야 할 관습들은 벗어 버리고 좀 더 자유롭 살아갈 때입니다.

 

지난 날 우리가 이룩한 업적들은 생각하지 말고 

자기 앞에 펼쳐진 새로운 미래를 향하여 새롭게 도전해야 할 때입니다.

 

실험실에 앉아 새로운 진리탐구를 위해 끊임없이 연구하는 학자들처럼

자기 앞에 펼쳐진 새로운 미래를 향해 끊임없이 연구하고 도전하여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가슴이 따스한 사람 해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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