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을 기다리는 사람에게

 

 

 

 

 

             이 이야기는 성경 속에 나타난 베데스다 못가에 한 병자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희망이란 무엇이며 희망은 어떻게 오는 것인지 제대로 엿볼 수가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 "예루살렘에 있는 양문 곁에 히브리 말로 베데스다라 하는 못이 있는데

                               거기 행각 다섯이 있고" 라는 말이 있습니다.(요한복음 5장 2절)

 

             베데스다 연못은 최근에 와서야 발견되었고 그 길이가 44m, 깊이는 9m 입니다.

             또 각 연못에는 9m 높이의 문이 5개씩 있습니다.

 

             자세한 이야기들은 교회의 신자라면 누구나가 잘 알고 있는 내용입니다.

 

             베데스다 연못은 마치 인생 역전을 꿈꾸는 사람처럼 천사가 가끔 내려와 물을 움직여 놓고 가는데

             그때 제일 먼저 못에 들어간 병자는 어떤 병에 걸렸든지 낫는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많은 병자들은 그 못에 들어가기 위하여 행각에 누워서 연못의 물이 동하기만을 기다렸습니다.

             실제로 물이 동할 때 들어가면 병이 낫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처럼 기적을 바라며 거기에 모여 들었습니다.

             그 사람들 중에는 38년 된 병자 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의 병이 어떤 것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가 38년 동안 병에 시달려 왔었다는 것은 그가 평생을 병 가운데 있었음을 말해 줍니다.

 

             남들은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고 아기도 낳고 활동하는 시기에 그는 병 때문에 고통을 받으며

             허송세월을 보냈습니다.

 

             그는 아마도 38년 동안 온갖 치료는 다 받아 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효과가 없었고 이제는 기적만을 바라며 이 연못을 찾아 왔을 것입니다.

 

             긴 병에 효자 없다는 말대로 가족들도 이 오랜 병자에 대해 포기하고 돌보지 않았는 지도 모릅니다.

             물이 동할 때 그를 물에 넣어주는 사람조차도 없는 것으로 보아 친구나 가족들도 다 떠나고

             자기 혼자만 남았을 지도 모릅니다.

 

             그에게는 모든 희망이 다 끊어지고 오직 물이 동하기만을 기다리는 절박한 순간이었을 것입니다.

             우리가 여기에서 주목할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포기하지 않고 희망을 기다렸다는 사실입니다.

 

             실제로 연못가에는 자신보다도 동작이 빠른 사람들도 많고 어쩌다 물이 동한다고 하더라도

             이 병자가 물에 들어가 나을 수 있는 확률이란 거의 없는 것일 지도 모릅니다.

             그런데도 그는 포기하지 않고 거기에 눌러 앉아 희망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이 병자들처럼 베데스다 못가에 나와 어디로 부터 왔는 지는 모르지만

             막연하게나마 희망을 가지고 기다리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어서 빨리 자신의 문제들이 해결되어 자유하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 민족은 참으로 견디기 힘든 상황에서도 잘 참고 기다려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당쟁으로 지샌 조선조 오백년 동안 우리 민족은 많은 고통 속에서 새날을 기다려 왔습니다.

 

             때로는 동학혁명과 같이 몸부림 치면서 항거하기도 하였지만 묵묵히 그 고난을 견디면서

             새날을 기다려 왔습니다.

 

            오늘날 같이 정국이 어수선하고 불안한 때는 더욱 더 그 날이 그리워지기는 마찬가지 입니다.

            아무리 뉴스를 들어 보아도 어렵게 얻은 민주주의는 죽은 것만 같고 불의만이 살아서

            온 나라를 장악하며  날 뛰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우리는 지금 베데스다 못가에 물이 동한 줄 알고 모두가 뛰어 들어가 보았지만 실상은 물이 동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또 다시 실망을 하면서도 그 못을 떠나지 못하고 기다리는 병자들처럼 정말 물이 동할 날만을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쉽게 이 기다림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입니다.

            비록 몇 백 번의 실망이 우리를 엄습한다 할지라도 결코 자유에 대한 희망, 남북 평화통일에 대한 기대,

            아름다운 세상에 대한 희망을 포기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이 시대가 아무리 우리에게 실망을 안겨 주어도 우리의 희망을 더욱 확고하게 가져야 할 것입니다.

 

            냉전시대가 끝나고 세계 역사의 흔들림은 많은 변화를 가져 온 것이 사실입니다.

            독일이 통일 된 것이나 미국이 쿠바와 손을 잡은 것이나 어제의 원수가 오늘의 친구로 변해

            손을 잡고 경제와 문화, 심지어는 군사까지도 교류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냉전시대가 끝난 지금 세계는 더 많은 병자들이 도움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 나라의 상황도 정권이 바뀌면서 한 바탕 물이 요동칠 것처럼 보였지만 막상 해결된 것은 별로 없고

            그 못의 병자들처럼 문제들만이 계속 쌓이고 있습니다.

 

            결국 우리가 기다려야 할 것은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주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고통 중에서 낙심하지 아니하고 정의를 추구하며 평화를 기다릴 때 희망은 오는 것입니다.

 

            지금 정부는 우리 나라가 FTA를 추진하면 당장이라도 돈벼락에 맞을 것처럼 국민들을 유도하고 있지만

            FTA가 성사된다고 해서 우리의 물건만이 그대로 그 나라에 진열되는 것은 아닙니다.

            더 많은 과제와 문제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제 중국과 여러 나라와도 FTA가 추진되고 농촌을 비롯한 우리 사회가 더 큰 위기에 몰렸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우리는 끈질기게 원칙을 지켜야 할 것입니다.

         

            아무리 거센 물결이 요동친다 하더라도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지켜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우리가 역사의 심판대 앞에서도 당당하게 될 것입니다.

 

            38년 동안 병에 시달리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낫기를 기다리던 병자에게

            어느 날 갑자기 예수가 찾아 왔습니다.

 

            예수는 왜 그 많은 병자들 가운데서 그를 택했는 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것은 상징적인 의미요,

            병들어 있는 이스라엘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지금 성경의 관심사는 그 연못가에 있는 모든 병자보다도

            병이 가장 오래 된 이 사람을 고쳐 주었다는 사실에 촛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이 병자는 자신이 바라던 대로 물이 동하지는 않았지만 그 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 되었습니다.

            오랜 병에서 자유함을 얻고 일어나 걷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이 그토록 기다리고 기다리던 메시야가 오셨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우리가 기대하는 것은 어떤 요행수(數)나 불완전한 것들이 아닙니다.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있는 근본적인 변화입니다.

 

            오늘날 우리 상황에서는 무엇보다도 정치권력을 통한 악의 불의가 극대화되고 있습니다.

            정통성과 도덕성을 상실한 권력은 온갖 거짓과 불의를 자행하고 그것을 교묘하게 은폐하며

            힘으로 그 거짓을 정당화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런 풍조가 정치에만 국한된다면 문제는 비교적 간단합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모든 사회 구석 구석에 파급되어 이 사회가 정의를 외면하고 도덕성을 잃어가고 있는 것이 문제입니다.

            정치가 부패하면 사회 전반이 영향을 받는 것입니다.

 

            거짓과 불의로 뭉쳐진 정치는 우리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고 있는데 우리가 그것을 보고 방관만

            한다면 이 땅에는 무슨 희망이 있을까요?

 

            우리가 이 거대한 물결에 대항하여 진리를 파수하고 정의를 추구하며 평화를 위해 노력할 때

            거기에 우리의 희망이 오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자고 나면 싸우고 문제가 많은 세상 속에 살고 있습니다. 그것은 모두가 정치하는 사람들이

            국민들 위에 군림하여 오직 한 사람에게만 충성을 바치려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우리가 실망치 아니하는 것은 아직도 우리 구석 구석에는 이름없이 빛도 없이 선뜻 나서서

            희망을 주고 있는 손길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제 이 겨울에 낙담하여 실망하지 말고 실의에 빠진 사람들에게 희망을 외쳐야 할 것입니다.

            지쳐버린 농민들과 실의에 빠진 사람들에게 용기를 불어 넣어야 할 것입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낙심하지 말고 희망을 기다리면

            추운 겨울은 물러가고 만물이 소생하는 봄은 오고야 말 것입니다.

 

 

 

            가슴이 따스한 사람 해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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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해가 저물어 가고 있습니다.

 

 

 

 

                          다사 다난했던 한 해도 저물어 가고 이젠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금년 한 해를 되돌아 볼 때 금년은 너무나도 힘든 한 해였습니다.

 

                          박근혜 정부가 고운 한복을 차려입고 나와 국민들앞에 마음껏 맵씨를 뽐냈지만

                          경제도 정치도 서민들도 너무나도 힘들었습니다.

                          여기 저기서 희망을 잃어버린 목소리들이 들려오는 듯 합니다.

                          사실상 우리 국민들은 금년 한 해동안 희망을 모른 채 살았습니다.

 

                          국정원의 대선개입에 항의하느라 모두가 피곤하였고

                          자고 일어나면 터지는 정치인들의 싸움에 국민들의 삶은 항상 짜증이 났습니다.

                          아마도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겠다는 준비가 부족했던 것이 아닐까요?

 

                          12월은 결산과 준비의 달입니다.

                          지난 날들을 정리하면서 결산을 하며 새롭게 새해를 준비하는 때입니다.

                          좋은 준비는 바른 결산에서 비롯됩니다.

                          바르고 정확한 결산만이 희망찬 내일을 준비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결산한다는 것은 곧 반성한다는 말입니다.

                          톨스토이는 반성한다는 것은 "새로운 생활의 첫 걸음"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주위의 환경과 이웃의 반응에 대하여 자기 반성이 없습니다.

                          때로는 자기 자신이 변한 것도 모르고 자기 반성이 없이 주위 환경에 대한

                          변화만 생각하고 불평하고 원망할 때가 많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지난 한 해 동안 괴로웠던 일과 실패했던 일을 결산하고

                          내가 왜 이렇게 되었는지, 내가 꼭 그 시간에 그렇게 밖에 할 수 없었는지,

                          내가 꼭 그렇게 거짓말을 해야 했고, 잘못을 저질러야만 했었는지,

                          다른 방법은 없었는지, 냉철하게 반성을 해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얼마든지 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탐욕에 눈 어두워 남들보다는 자기가 더 중요하게 생각된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서로가 먼저 나서주기를 기다리며

                          게으르고 되는데로 사는 못된 타성에 젖어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앞에 할 일이 태산같이 쌓여 있음을 보면서도 과감히 떨쳐버리지 못하고

                          누군가가 앞장서서 대신 해주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국가도 마찬가지입니다.

                          밤새 수고를 하였으나 아무 것도 잡지 못하는 빈 배의 상태에 놓여 있습니다.

 

                          망설임은 무엇인가가 부족함을 느낀다는 뜻입니다.

                          자기 자신은 논외로 치고 다른 사람만을 가지고 탓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모두가 말만 앞세우고 행동은 하지 못하는 사람은 아닙니까?

 

                          한 해가 저물어 가고 있습니다. 새해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희망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가슴이 따스한 사람 해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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