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스한 부모님의 마음으로

  

 


            6월은 우리에게 얄밉게 아름다운 계절입니다.

            6월이 오면 나라를 위해 쓰러져 간 숭고한 영령들의 피와 민중들의 뜨거운 함성으로

            나라안에는 온통 장미꽃보다도 붉은 정열이 타오릅니다.

 

            이념과 사상을 넘어 남북 정상이 만나 기쁨으로 얼싸 안았던 희망의 계절이요

            2002년에는 월드컵의 축구 열기로 전 세계를 놀라게 한 감동적인 계절입니다.

 

            6월의 하늘 길을 걷고 있노라면 어디선가 그윽한 향기들이 우리 마음의 천국으로 들어와 더욱 설레이게 합니다.


           그런가 하면 요즈음 주변에는 봄날처럼 따스하고 인정있는 모습은 보기 어렵고

           살벌하고 잔인한 일들이 자주 일어나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마음도 점점 각박해져서 자기 일에만 더욱 관심을 갖는 것 같습니다.

           TV의 격투기를 보면서 흥분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사람들이 죽어도 자신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듯 애써 기분을 감추응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불행하게도 우리는 한국전쟁을 통해서 고난을 많이 겪었기에

           매일같이 북한에 대한 이야기나 이념문제로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습니다.

 

           그것은 또 하나의 우리 마음 속에 북한에 대한 무서운 적개심을 불어 넣고 복수를 다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외에도 세계 도처에서 일어나는 문제들은 "이는 이로 갚으라"는 전쟁과 보복뿐입니다.

 

           이러한 세계 속에서 우리들은 거기에 자연히 물들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우리가 사랑을 외쳐봐도 자신이 사랑보다 감정을 앞세우고 있는데

           어떻게 이 세계 속에 평화가 이루어 질 수 있을까요?

 

           이미 굳어질 대로 굳어져 버린 기성 세대에는 기대할 수 없고 다음 세대에나 기대해 볼 수밖에 없는데

           어릴 때부터 철저하게 적개심을 불어 넣고 있는 상황에서 과연 통일이 가능할까요? 어려울 것입니다.

           결국 이 땅에 전쟁과 보복은 그칠 날이 없고 그로 인해 온 인류는 종말을 맞이하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전혀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그것은 자식들을 향한 따스한 부모님의 마음으로 사는 길입니다.

 

           부모님의 마음이란 한마디로 親 (어버이친) 입니다.

           부모란 떠나가는 자식의 뒤를 보다가도 보이지가 않으면 동산위에 올라가서 보고

           그래도 보이지가 않으면 나무 위에 올라 서서 바라보는 것이 부모의 마음입니다.

 

           진정한 부모란 자식이 비록 살인을 저지른 사형수라도 모든 것이 다 내탓이려니 하며

           날마다 눈물짓고 자식을 위해 기도하며 교도소를 제집처럼 드나드는 부모일 것입니다.

 

           여기에서 나는 한국 교회와 우리 사회에게 묻고만 싶습니다.

           과연 우리들은 자식들을 위해서 얼마나 기도했으며 남북통일을 위해서 얼마나 노력해 보았습니까?

           걸핏하면 자식들을 내세워서 자기 맘대로 움직이고 북한을 적으로만 생각하지 않았습니까?

 

           우리 속담에 " 미운 놈 떡 하나 더 주라" 는 말이 있습니다.

           미운 놈에게 떡 하나를 더 준다는 것은 그 떡 하나가 원수를 친구로 만든다는 기적을

           우리 선조들은 생활 속에서 발견했던 것입니다.


           부모님의 마음이 가장 아플 때는 자식들간에 싸우는 모습입니다.

           부모님의 마음처럼 언제나 희생을 하면서도 참아내고 빼앗기고도 더 주려할 때

           거기서 싸움은 끝이 나는 것입니다.

 

           부모님의 마음은 한결같이 날마다 속만 썩이고 눈만 뜨면 싸우고 있는 자식들을 향하여

           조금도 미워할 줄 모르고 자식들을 위해 기도하며 그들이 주릴 때 채워주며

           목마를 때 마시게 하는 것이 부모님의 마음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예수를 믿는다는 사람조차도 사랑의 정신을 따르지 않는데 있습니다.

           더욱이 교회안에 끊임없이 분쟁이 일어나는 것은 교회가 행함에는 너무도 인색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너무 똑똑하고 인색한 사람들이 많으면 세상은 사실상 분쟁이 그칠 날이 없습니다.

           세상이 화평하려면 모두가 따스한 부모같은 마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남부 폴란드의 유명한 아우슈비쯔 수용소에 맥시밀리안 콜베라는 폴란드 신부가 갇혀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수용소 안에서 동물처럼 타락하며 빵 한 조각을 위해서는 도둑질도 서슴치 않는 그 때

           허약한 몸을 가졌으면서도 신부는 언제나 남에게 먹을 것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다른 사람이 쓰러지면 그 사람의 몫까지 대신 일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의 막사안에서 한 사람이 탈출하여 잡히지 않자 열 명을 골라서 굶어 죽게 한다는 것입니다.

 

           연병장에 사람들을 세워놓고 그 중에서 열 명을 골라 냈습니다.

           선택된 사람들은 모두가 원망했습니다.

           그 때에 콜레 신부가 나서서 " 제가 이 열 사람중 한 사람이 되겠습니다 " 하며

           특별히 가족때문에 걱정을 하고 있는 한 사람을 지목했습니다.

 

           결국 신부는 그를 대신해서 굶어 죽게 되었습니다.

           그는 굶어 죽으면서도 마지막까지 남아 한 사람 한 사람씩 죽어갈 때마다 그들을 위해 기도해 주었습니다.

 

           콜베 신부는 15일째 나치들의 석탄산 주사를 맞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는 정말 부모같은 마음을 가진 따스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한 사람에게는 생명을, 많은 사람들에게는 독재에게도 이길 수 있다는 용기를 주었습니다.

           그는 1971년 10월 17일 교황 바오로 6세에 의하여 " 가장 훌륭하고 가장 빛나는 인물 " 로 선정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시간과 정력을 다 바치고도 이제 여한이 없다고 말하는 따스한 부모님이 되십시오.

           이러한 부모들이 많아질 때 이 땅에는 반드시 평화가 올 것입니다.

           불의한 세력들은 물러가고 정의로운 평화가 반드시 이루어 질 것입니다.



           가슴이 따스한 사람 해피

 






                        세월호가 주는 역사적인 교훈





       요즘 우리는 TV를 통해서 누구나 한 번쯤은 갖게 되는 생각이 있다.

       모든 재난이 다 그러 하듯이 재난은 언제나 우리에게 많은 교훈과 아쉬움과 회환을 갖도록 해준다.


       그 가운데서 우리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재난이 왜 일어났고 재난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으며
       그 재난을 우리는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 지를 조심스럽게 접근해 보고자 한다.


       예로부터 우리는 어른들의 말이라면 무조건 순종하는 것이 어른들에 대한 공경이라고 배웠다. 
       그러나 오늘날 사람들은 누구도 낯선 사람이 아이들을 부르면 아무에게나 가지 말라고 가르칠 정도이다.


       맑고 천진난만한 아이들에게 어른들은 온갖 거짓말로 아이들의 순수성을 빼앗아 놓고 
       아이들이 속아 넘어갈 때마다 그것이 재미있다는 냥 시청자들을 현혹하기도 한다.


       우리는 지금 우리 자신이 저지른 죄가 어떤 결말을 가져올 지는 아무도 모른다. 
       뜨거운 눈물로써 우리 자신의 검은 부분들이 완전히 지울 수만 있다면...


       우리는 매일 죄를 의식하면서 지내야만 한다. 

       그 죄가 크든지 작든지 어떻든지 항상 주의 해야만 한다.

       많은 사람들이 조심성 때문에 죄에 대하여 듣기를 꺼려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조심성이 옳게 적용될 수도 있지만 잘못 적용될 수도 있다.


       죄를 말하지 않고 그냥 지나치게 될 때 그 죄를 묵과하게 되는 잘못이 되고 
       그 죄를 다시 저질러도 된다는 우를 범하고 말 것이다.


       우리 사회는 어느 순간부터 더 이상 죄를 듣기 싫어하는 민족이 되어 버렸다. 
       그것이 군사문화가 만들어 낸 산물이라고 한다면 하루 속히 고쳐야 할 것이다.


       가장 분명해야 할 종교인들 조차도 더 이상 죄를 지적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듣기 싫어하는 설교보다는 듣기 좋은 말들로 채워가며 무조건 믿으면 구원받고 
       믿지 않으면 지옥간다는 말로 확대되었다.

 

       결국 이런 보상 교리는 신자들로 하여금 받을 생각만 하게 했지 
       그 나라를 위하여 무엇을 해야할 지를 약화시켜 놓았다.


       이 세상은 너무 악하고 요란하여 나만이라도 잘 믿고 천당가면 그만이라는 생각이 대부분의 교인들 생각이다. 
       이런 의식이 한국 교회로 하여금 이 사회를 변화시켜야 한다는 의지를 약화시키고 있다.


       세상을 비추어야 할 교회들이 빛으로서의 사명을 망각하고 있다. 
       한국 인구가운데 20%가 넘는 많은 교인을 두고서도 여전히 그 사회가 부도덕과 불의가 만연한 까닭은 
       바로 교회가 현실을 기피하고 사후에 갈 천당만을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도 마찬가지이다.

       우리 사회는 언제 부터인지 부정적인 말보다는 긍정적인 표현으로 바뀐지 오래이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도 모르면서 자기의 입장이 난처해 질 때마다 분위기가 가라앉는다는 이유로

       이내 화제를 돌려 버린다. 
       혹시라도 누군가 바른 충고를 할라치면 사람들은 '넌 매사에 부정적이야"하면서 따돌리기가 일쑤이다. 
       그러나 그것은 그 자신도 이미 솔직하지 못하고 있다는 반증일 것이다.


       역사에 있어서 목적이 없으면 아무 의미가 없다. 
       어떻게 보면 역사는 우연, 필연, 자유와 같은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연(愚然)이란 뜻하지 않은 일이 저절로 된다는 의미이고 
       그러한 우연성도 주관에 상관없이 객관적 차이가 있을 뿐이다. 
       분명한 것은 역사를 움직이는 중요한 요인 중에 개인적인 요인은 결코 배제해서는 안된다.


       지난 날 우리는 삼풍 백화점의 붕괴로 많은 인명의 사상자를 내고 많은 재산의 손실을 가져왔다. 
       그것은 참으로 서글프고 불행한 사건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주었다.


       삼풍 백화점이 붕괴된 가장 큰 원인은 모든 면에 부실공사 투성이었다. 
       설계도, 시공도, 감리도, 관리도, 인허가도 모두가 주먹구구식이었다.


       서초 구청의 8급 공무원 담당자가 삼풍 백화점의 사용허가를 내주었는데 그가 공무원직을 그만 두고 
       구청옆에다 큰 사무실을 차려 놓고 고급 승용차 3대를 굴렸다고 말한다.


       당시 세계 42개국의 공무원 청렴성을 조사했더니 1위가 스웨덴, 2위가 스위스, 3위가 싱가폴이었고 
       우리나라는 21위 였으며 중국이 41위였다.


       부정한 방법으로 돈을 번 경영주들의 탐욕이 있었는가 하면 그러한 참사 현장 속에서도 끝까지 살아남은 
       최명석 군(20세, 11일) 유지환 양(18세, 13일) 박승현 양(19세, 17일)은 우리에게 많은 감동을 주었다. 
       장장 377시간 만에 기적적으로 살아난 소식들은 너무도 신기하여 
       인간의 생명이란 과연 끈질기구나 하는 것을 새삼 느낄 수가 있었다.


       이번에 일어난 세월호의 침몰 사고 역시 크게 달라진 것이 없었다. 
       돈만 주면 무엇이든지 통과되는 국가의 행정체계나 
       돈만 있으면 불법을 저질러도 된다는 기업측의 과욕이 빚어낸 참극이었다.


       공직자가 퇴직을 하면 남은 여생을 가족들과 함께 편히 지낼 생각은 하지않고 또 다시 신분 세탁을 하며 
       정부 기관에 남아 계속 일을 하고 있는데 과연 정부와 기업과의 유착관계는 끊어질 수 있을까?


       이미 무너질 대로 무너져 버린 지휘체계의 혼선은 우리 국민들에게 말할 수없는 실망감만 주고 말았다. 
       거기에다가 초기 대응에 미숙하기 짝이없는 국가가 보여준 모습들은 과연 그들이 우리 국가인가 싶을 정도이다.


       국가 기관이란 원래가 그 사회의 최고 전문가로 뭉쳐진 최고 권력 기관이다.
       군인이 총을 무서워 하면 전쟁터에 나갈 수 없는 것처럼 
       아마츄어는 기분나는 대로 하면 그만이고 프로는 자기의 생명을 걸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국가 기관이 죽음을 두려워 해서야 어떻게 전문가라고 할 수가 있을까?

       툭하면 조류타령들이나 하고 극도로 몸을 아끼면서 어떻게 귀한 생명을 구조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배는 이미 기울어져서 사람이 언제 죽을 지도 모르는 판국에 무책임한 선장과 선원들은

       승객들에게 그래도 배 안이 가장 안전하니 기다리라고 했다니 정신있는 사람인가?


       살신성인(殺身成仁)이란 말은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자기가 희생당한 사람이다. 
       만일에 그러한 일만 없었다면 자신은 더욱 잘 살 수 있었는데도 누군가가 국가를 대신하여 사람을 구출하고 
       세상을 먼저 떠났다면 국가는 그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그를 의인처럼 받들고 최대한 보상해 주어야 할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그 고난의 원인들을 따지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지금 당하고 있는 이 고난의 현실을 어떻게 극복하느냐 하는 것이다.


       그 원인이 어디로 왔던지 간에 중요한 것은 비극적인 우리 고난의 현실이다. 
       오늘날 이 사회속에 고난이 있고 저들이 걸어온 것과 같은 비극적인 인생이 있다.


       희망이란 바로 두려웠던 마음은 사라지게 하고 모든 만물을 소생하게 하는 봄같은 소식이다. 
       방안에 문을 꼭꼭 걸어 잠가놓고만 있을 것이 아니라 봄날의 따뜻한 동산에 올라가 답답했던 마음을 내려놓고 
       자기의 마음들을 햇살에 비추이면 희망의 꽃이 그 속에서 피어나게 될 것이다.


       예로부터 "민심(民心)은 천심(天心)"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백성들의 마음을 외면할 수는 없다는 뜻으로 민심이 자꾸 땅에서 매이면 국가는 그마만큼 불행해지고 
       민심이 즐겁고 평안하면 천심은 국가에게 복을 내린다는 의미이다.


       지금 우리가 당한 이 고난은 분명히 이 민족이 더 이상 정쟁을 중단하고 
       남북이 속히 화해하며 민심을 돌아보라고 하는 하늘의 깊은 뜻도 있다.

       그리하여 하늘은 오늘도 우리에게 복과 화를 준비하고

       위정자들의 마음을 깨우쳐서라도 아름다운 세상을 이루어 가는 것이다.



       가슴이 따스한 사람 해피


'이슈와 진단'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세월호와 지도자의 책임  (0) 2014.05.28
지도자의 잘못과 유감  (0) 2014.05.13
하나됨을 위하여   (0) 2014.04.20
아! 무심하다. 세월호(歲月號)  (0) 2014.04.17
우리 사회와 어르신들께  (0) 2014.04.15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