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인들의 올바른 천국이해

 

 

 

 

 

 

어느 날 아내와의 약속으로 서울 명동에 갔을 때의 일입니다.

 

 

어느 신사로 보이는 한 사람이 명동의 한 중앙에 서서 지나가는 행인들에게 전단지를 나누어 주며

"예수 믿으세요, 예수믿고 천당가세요. 예수천당, 불신지옥"이라고 소리치고 있었습니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말이 없는데 그 일행들은 전혀 신경 쓰지않고 더욱 더 소리를 높여가며

"예수천당, 불신지옥"을 외쳤습니다.

 

그런데 그의 발 밑에서는 몇 개의 병이 놓여져 있었는데 가까이 가서 살펴보니

그의 온 몸에서는 술 냄새가 진동하고 있었습니다.

 

 

성경의 공관복음에 보면 "천국과 하나님의 나라"는(마태복음37회,마가복음14회,누가복음32회) 각각 등장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첫 교훈이 막1:15에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왔다"는 것이고

마4:17에는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복음서의 주제가 하나님의 나라임을 뜻하며 예수님의 교훈이 하나님의 나라임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서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잘못 생각하거나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천당(天堂)이라 부르면서 궁궐같은 집을 연상하며 천국은 마치 죽어서 가는 좋은 곳이라고 믿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아마도 이러한 이유에는 동양의 유토피아인 무릉도원이나

불교에서 말하는 극락세계(極樂世界)등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라 할 수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어떤 이는 하나님의 나라를 인간이 예수님의 교훈을 따라서 세운 일종의 지상낙원이라고 믿고

또 어떤 이는 인간의 마음속에 있는 하나님의 뜻에 대한 인간의 응답과 복종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는 이러한 것들과는 관계없이 항상 존재하고 있는 것이기에 잘못된 생각입니다.

 

사람들이 잘못된 종말론에 빠지는 것은 처음부터 복음의 이해가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과 고난과 십자가의 부활이 잘 이해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잘못된 구원관은 결국 하나님께 대한 절대 신뢰보다는

인간의 수단이나 방법이 끼어들 틈을 만들고 신앙결핍이 생겨날 수가 있습니다.

 

기도는 하면서도 그대로 되리라고 믿지는 않고 (막11:24 ),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일에 하나님의 도움을 요청하는 자기주관적인 신앙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과거 교회의 복음은 '예수믿으면 천당간다"는 신비주의에 가까왔습니다.

예수 믿으면 무엇이나 잘 되고 복 받는다는 말로 확대되어

가난과 고난에 찌들린 사람들에게 이 소리는 매력적이고 기쁜 소식이 되어온 것이 사실입니다.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예수만 믿으면 천당간다니 이렇게도 쉽고 좋은 종교는 세상에 다시 없는 종교일 수밖에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여기에 사로잡혀 영혼도 구원받고 사업이 잘되며 건강도 지킬 수 있다는 희망으로 교회를 다니는 것입니다.

 

이러한 현상은 오늘날 한국 교회의 모든 주류가 되어 교인들로 하여금 받을 생각만하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무엇을 할 것인가를 약화시켜 놓았습니다.

 

마6:31-33에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 하시리라"는 말씀은

 

그리스도인은 최고의 가치를 하나님 나라에 두고 하나님의 의를 따라 그것을 실천해 나갈 때

영혼의 만족과 평안과 인간의 필요한 모든 것을 채워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지금 하나님의 나라가 이 곳에 임하여서 내가 그 일을 하여야 하겠다는 생각보다는

오히려 자기가 죽어서 이 다음에 천국 갈 궁리만 하고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의식이 교회들로 하여금 현실을 외면하고 세상을 비추어야 할 사명을 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인의 숫자가 전체인구의 20%가 넘으면서도 왜 우리사회가 혼란스럽고 무질서가 팽배하며

명예만을 추구하는 것일까요?

바로 교회가 현실을 기피하고 사후에 갈 천당만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어떤 곳일까요?

성경에 하나님의 나라가 선포되었을 때 그 말은 당시 유대인들에게는 처음듣는 생소한 단어가 아니었습니다.

 

구약시대때 부터 전해져 온 천국이란 개념은 어떤 특정한 장소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왕이시라는 것,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주권을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천국은 지상이 아니라 하나님이 친히 임하여 오실 때에 완전하게 실현된다고 믿었습니다.

여기에서 메시야 사상이 나타났고 이 메시야에게 하나님의 주권이 맡겨짐으로 그가 임하시면 천국은 실현된다고 믿은 것입니다.

 

예수께서 오신 후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에게 임하셨다고 하신 것은 구약에서 예언된 하나님의 나라가 구체화된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께서 오셔서 복음을 전하시고 십자가를 지신 모든 생애가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이며

그 분이 행하신 이적들은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여 온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눅17:20-21에서 바리새인들이 예수께 찾아와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하고 물을 때

예수는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안에 있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천국의 징조로서 볼 수있게 오는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유대인 묵시 문학가들은 말세의 징조에 더 관심을 가졌던 것이 특색입니다.

그들은 제 멋대로 상상력을 동원하여 "메시야의 저주"등을 운운하며 세상의 질서와 세계파멸을 떠 올렸습니다.

그 까닭은 현세는 악의 세력이 통치하여 메시야 통치가 시작되려면 이런 파괴와 혼란이 있어야 된다고 믿으며

그들은 시대의 징조에 관심을 가지고 천국이 볼 수있게 오는 것이라고 하게 된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가 그렇게 오는 것이 아니라고 하면서 "너희 안에 있다"고 하셨습니다.

과거에는 이 말이 신비적으로 해석되어 많은 논란을 가져온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여기서의 "너희"란 복수형이며 "안"이란 "속"이 아니라 "사이에"(in your midst), "가운데"(among)란 뜻으로

사람들 가운데에 서 계신 예수 자신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것은 바로 인간의 역사속에 이미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였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임재(臨在)는 권세와 영광으로 올 것을 기대했던 하나님의 나라와는 거리가 멀었고

그런 예수를 인정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들은 징조와 뚜렷한 권세들로 오는 하나님의 나라를 기대하였기 때문입니다.

 

예수는 이런 기대를 가진 사람들에게 천국의 설명으로 겨자씨를 비유하였습니다.

겨자씨는 땅에 심기울 때는 모든 씨보다 작지만 심긴 후에는 자라서 모든 나무보다 커지며 새들도 날아와서 깃들인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잘 보이지도 않는 지극히 작은 겨자씨의 형태로 임하여 온다는 사실을 깨우쳐 주신 것입니다.

 

주기도문에 나타난 "나라이 임하옵시며"(마6:10,눅11:2)란 뜻은 미래에 임할 하나님의 나라가 있음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장차 아름답고 화려하게 임하여 올 미래의 나라는 고난을 헤치고 성장해 간 결과이며

요한계시록이 보여준 새 하늘과 새 땅은 예수그리스도의 피와 순교자들의 피로 완성된 하나님의 나라의 표현입니다.

오늘의 하나님의 나라가 있고 미래의 영광된 나라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더 이상 아무 변화도 없는 그런 나라가 아니라 생명력이 있고 역동적(力動的)으로 변화하는 나라입니다.

이 생명이 자라는데 방해가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어떤 방해세력도 이 나라를 막을 수 없다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오늘날 이 역사속에서 계속 뿌리내려가며 자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이미 이 땅위에 임하였고 이미 시작되었으며 우리는 그 나라의 백성으로 초대된 가족과도 같은 것입니다.

그 나라의 백성이 되었다는 것은 생명력을 받았음을 뜻하며 그에게 할 일이 많고 그 책임도 크다는 사실을 의미합니다.

이 생명력이 있기에 그리스도인들은 어떠한 고난에도 굴하지 않으며 더욱 강인(强靭)하게 살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이 땅에 하나님의 주권이 확립되고 이 사회에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 질 수있도록

책임을 인식하고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선포해야 할 책임이있는 것입니다.

 

 

 

가슴이 따스한 사람 해피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