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는 교회다워야 한다

 

 

 

 

            우리는 가끔씩 사회에서 교회가 왜 앞장서서 정치적인 문제에 관여하느냐고 질문할 때가 있다.

         그러나 정치가 거짓과 불의라는 두 뿔을 가진 마귀라고 생각할 때 그 말이 얼마나 어리석은가를 다시한번 알게 된다.

         교회가 정치를 하라는 것이 아니라 교회는 그 정치 속에 깃들인 거짓과 불의를 몰아내고 싸워야 한다.

 

         거짓과 불의로 무장한 세력들은 지금도 우리의 삶에 온갖 영향을 주고 있는데

         교회가 그것을 바라보며 방관만 하고 있다면 그것은 교회로서 진정한 책임이 아닐 것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무엇보다도 정치권력을 통한 마귀의 발악들이 극대화되고 있다.

         정통성과 도덕성을 상실한 권력은 온갖 거짓과 불의를 자행하고 그것을 교묘하게 은폐하며

         폭력으로 그 거짓을 정당화하려고 하는 것이다.

 

         이런 풍조가 정치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지금 거짓과 불의는 모든 사회에 파급되어 이 사회가 정의를 외면하고 도덕성을 상실해가는 것이 더 큰 문제이다.

 

         정치가 부패하면 사회전반이 영향을 받게 마련이다.

         사람에게 병이 생기면 한 곳만 아픈 것이 아니라 전체가 열이 나고 앓게 되는 원리와도 같은 것이다.

 

         지금 우리의 문제는 모두 병에 걸려 몸살을 앓고 있는 환자와도 같다.

         이 사회가 자꾸 아우성치고 열이 나고 있는 것은 그래도 이 나쁜 대적과 싸우려는 세력이 있기 때문이다.

 

         만일에 지금과 같이 우리가 진통을 겪으면서도 이 악에 대항하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벌써 죽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몸살을 앓고 있기는 해도 아직은 죽을 병에 걸린 것은 아니다.

악에 대항하는 모든 세력들이 힘을 모아 이 악을 몰아낼 때 비로소 이 사회는 다시 정상적인 상태로 회복하게 될 것이다.

 

         우리 한국에 많은 교회들이 있지만 그것을 결코 부러워 하지말라.

         교회가 많다는 것은 그 만큼 교회가 할 일도 많다는 것을 의미하고

         교인이 늘어난다는 것은 그 만큼 한국사회가 변화되어간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교회들이 오늘의 상황에서 한 일이 무엇이었느냐고 물어본다면 과연 무엇이라고 대답해야 옳을까

         마귀가 자꾸 날 뛸때 구경만하고 도외주었다고 말을 할까

         차라리 현실을 외면하고 잊어버리고 살 수있게 교인들을 미혹시켜 무감각하게 만들었다고 대답할까

 

         국가가 비대해지면 반드시 국가주의로 가게되고 국가주의는 국민의 뜻과는 정반대의 길로 가게 마련이다.

         그 동안 지향해온 구미문화는 일본과는 다르게 거대주의였다.

 

         기업만이 그런 것이 아니라 국가도 다른 나라보다 크지 않으면 안되었고 정당도 군대도 모두 강해야 된다고 생각했다.

         교회도 성장주의에 사로잡혀 대형교회가 교회의 최고 목표처럼 너무 큰 것만을 좋아하게 된 것이다.

 

         우리 한국교회도 이 원칙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교회는 무조건 크지 않으면 교회가 아닌 것으로 생각한다.

 

         이 좁은 나라에서 자기교회의 교인들을 늘리기 위해 다른 교인을 데려오거나

         전문적인 강사나 전도인을 초빙하여 사람들을 포섭해 오기도 한다.

 

         혹시나 교회가 갱신이 늦는 것은 갱신되어야 할 교회지도자가 갱신을 부르짖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말로는 교회개혁을 외치면서도 실제로는 정치인들처럼 자기에게 방해가 되면

         가차없이 이단이나 불순한 자로 내 몰아 사회의 갈등을 부추기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 동안 교회가 너무 몸이 비대하여 거동이 불편했다면 이제는 조금 덜 먹고 규칙적인 운동으로 몸을 가볍게 해야 할 것이다.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묶인 자에게 해방을, 눈먼 자에게 광명을,

         억눌린 자에게 자유를 주시기 위함이었다.

         그리하여 예수는 목자로 양 아흔 아홉마리를 들에 두고 길 잃은 한 마리 양을 찾아 나선 것이다.

 

         생명은 하나이다. 이 하나의 생명을 위해 전체가 복종하는 그것이 바로 구원의 정수이다.

         작은 하나의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교회, 단체, 국가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다는 것이 바로 복음이다.

 

         교회건물은 하나의 필요이지 조건은 아니다. 교회의 의식도 하나의 순서이지 절대가 아니다.

         신라시대에 그렇게 많던 불교가 몰락한 것도, 고려시대의 사찰도, 금강산의 암자도 많이 있었지만

         지금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가 않는다.

 

         교회가 정의나 진실, 예수를 잃어버리고 사람보다는 권력자의 편에 설 때 그 교회는 죽고 만다.

         교회의 생명은 십자가의 사랑과 희생에 있다.

 

         교회는 교회다워야 한다. 교회 자체가 바로 예수의 몸이다.

 

 

         가슴이 따스한 사람 해피

'희망주는 강연방'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경쟁과 자유  (0) 2013.07.22
준법정신(遵法精神)   (0) 2013.07.18
여름나기  (0) 2013.07.01
광고의 공세(攻勢)속에서  (0) 2013.06.28
마음에 탐욕을 버리라  (0) 2013.06.26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