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범죄 어떻게 할 것인가?

 

 

 

우리 사회는 지금 도덕성이 약해지고 가치가 혼돈되는 혼란의 시대를 살고 있다.

질서가 지켜지기 어렵고 각종 폭력과 성(性)범죄등 온갖 죄악들이 판을 치고 있다.

 

날로 심각해지는 성(性)범죄 앞에서 모두가 엄벌을 해야 된다고 말하지만 그러나 법질서를 갈망하는 외침에 너도 나도 이성을 잃어서는 안된다.

 

그것은 범죄의 유형은 다양하고 성(性)적인 의미 또한 다르기 때문이다.

성범죄란 크게 성폭행,성추행,성희롱,성매매,성상납등 그 원인도 다양하다.

 

그렇지 않아도 선거철마다 표를 의식한 정치인들이 국민들의 감정에 따라 법을 아무렇게나 내 놓는 이 마당에

모두가 이성을 잃고 아무렇게나 범죄자를 다루고 만다면 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들은 매우 크다.

   

역사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 모든 사건에는 문제를 보는 관점이 다르다.

어떤 사건이 일어났을때 그 사건 자체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먼저 그 뿌리를 보는 것이다.

대체로 문제가 발생하는 것은 그 관계가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 사회의 문제는 모두 기초가 흔들리는데 있다.

어디를 가나 범죄를 추방하자는 말은 많지만 실상은 범죄원인이 어디로 부터 왔는지 근원적인 것을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마치도 사람이 병에 걸렸으니 왜 그 병이 걸렸는지를 모르는 것과도 같다.

의사는 그 병을 치료해 줄 수는 있어도 언제 또 다시 재발될는 지는 아무도 알 수가 없다.

결국 병이 든 것은 사람이지만 근본을 따지고 보면 우리 사회와 환경이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정신 분석학의 권위자 프로이드는 성에 대해 "인간의 모든 쾌락의 본질은 고통의 긴장으로 부터 해방"이라고 하며

배고픔,갈증,성적욕망,운동등과 같이 욕구를 충족시킴으로서 만이 해소된다고 했다.

 

강렬한 성적 욕구는 생리적 현상이라기 보다 정신적 질환에 가깝고

정신적 질환은 사회적 요인과 심리적 요인등 말로는 다 설명할 수 없는 요인들이 너무도 많다.

 

우리 사회가 나아지고 빈부격차가 생기면서 각종 우울과 열등감, 패배와 불안등으로 나타나고 있다.

경쟁만이 우선시되는 사회에서 소외된 자들의 상실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그 가운데 빈부격차와 열등감에 따른 상실감은 사람들에게 냉소를 보이며 증오하고 자살로 이어지기도 한다.

지나친 성적욕구는 불안으로 나타나 각종 음란물이나 포르노, 성매매등에 빠져 성적 욕구를 만족시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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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관가운데에는 자위(自慰)라는 것도 있다.

자위가 꼭 나쁜 것은 아니지만 주위의 시선들이 몰릴 때에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성 도착증에 빠질 수도 있다.

 

사람의 감정은 카멜레온과 같아서 행동에는 반드시 원인이 있다.

이것은 아이들이 불 안정할 때 나타나는 손톱을 물어 뜯거나 엄지 손가락을 빠는 것과도 같은 것이다.

 

예로부터 자식만한 농사가 없다는 말이있다.  

자식을 키우다보면 여간 신경쓰이는 것들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외출을 나가 있다가도 자식들을 생각하면 행여나 어떻게 되었을까 자식을 가진 부모라면 모두 한결같을 것이다.

 

우리의 사회가 자신과 가정은 돌보지 않고 무작정 성공만 하려는 중독은 부모나 자녀들에게 커다란 위기가 되고 있다.

과거에는 주로 여성들에게 집중되었던 성(性)범죄가 이제는 점차로 어린 아이에게로 까지 옮겨지고 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침입자는 언제나 가까이 있게 마련이다. 아무리 통제하고 보호해도 사고는 언제나 다른 곳에서도 일어난다.

 

내 어릴적 배고프던 시절에 주인 몰래 참외밭에 들어가 서리하다 들키고 꿀밤맞고 호되게 혼나던 때가 있었다.

혹시나 부모에게 이르면 어떻게 하나? 속이나 상하지는 않으실까? 안절 부절못하며 손이 발이 되도록 빌어야만 했던 때가 있었다.

지금은 비록 그 밭은 사라졌지만 그 맛은 지금까지도 잊을 수가 없다.

 

농사를 짓다보면 신경써야 할 일들이 한 두가지가 아니다.

 

잡초를 제거하고 가지를 잘라주면서 소독을 실시하고 병충해를 막아 햇빛과 공기를 일정하게 보내주어야 한다.

과수밭의 농민이 바쁜 것은 잠시만 돌보지 않아도 자라나는 잡초와 해충들을 막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잡초는 가만히 두어도 잘 자라지만 과실들은 잠시라도 돌보지 않으면 곧 병들고 만다.

농약을 살포해도 괜찮지만 한번 잘못뿌리게 되면 천적이 먼저 죽고 사람이나 자연에게 큰 피해가 된다.

 

때로는 비바람이 치고 가뭄이 오며 각종 동물들과 새들이 찾아와서 농사를 망쳐 놓기도 한다.

아무리 내쫒고 고함도 쳐 보지만 또 다시 그들이 찾아와서 기회를 엿보며 어떤 동물들은 보호종이라서 구제해 주기도 한다.

과수밭의 애타는 농민의 심정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그것을 몰래 따 먹고 상처를 내기도 한다.

이같은 과수밭의 모습들은 어쩌면 우리의 병적인 성(性)범죄와도 같다.

 

성폭행이란 마치"서리"와도 같은 것이다.

사람이 "서리 맞았다"는 것은 어떤 권력이나 힘에 의해 타격이나 피해를 받아 힘을 잃었음을 뜻하는 것이고

"서리 맞은 구렁이"는 피해자가 힘이 꺾여 앞으로 잘 될 희망이 없음을 표현하는 말이다.

 

마찬가지로 성 피해당한 아픔은 크겠지만 냉정을 찾고 농민이 동물들을 사랑하여 보호하는 것처럼

인간 또한 죄가 아무리 밉더라도 인간은 죽여야 할 존재가 아니라 보호되어야 할 천연자원과도 같은 것이다.

 

우리 말에 "빈대 잡으려다 초가 삼간 다 태운다"는 말이 있다.

당장에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하여 너무 한 곳에만 집착하다보면 더 큰 손해가 일어난다는 의미이다.

 

빈대와 성 범죄자 모두가 피해를 주는 것은 맞지만 이것을 잡으려고 모든 사람들을 의심하고 감시하고 만다면 이 사회는 모두 불신의 늪에 빠져 더 이상 헤어나올 수가 없다.

 

거리마다 경찰서가 많아지고 감시가 늘어나며 전자발찌와 화학적 거세를 한다는 의미는 결국 사회가 병들었음을 뜻하는 것이다.

"조금만 이해하면 안되겠느냐"고 하지만 막상 사람이 의심받고 나면 마음만은 편치않다는 것은 결코 혼자만의 생각일까?

 

몇일 전, 집 앞의 공원에서 운동복을 걸치고 책을 보는데 뜻하지 않게 검문을 받아야만 했다.

그렇지 않아도 연희동 살던 시절에 골목에 들어서면 언제나 정경들이 나타나 같은 주민이라도 검문을 받던 때가 있었다.

그때가 엊그제인데 또 다시 검문을 받고보니 "요즘 경찰은 참 사람조차 구분을 않는구나"라는 생각은 단순히 착각일까

 

아마도 내 집앞이 학교들이 많고 공원이라서 여겨지지만 왠지 내 모습이 초라하고 험상 궂으며 불안해서 검문부터 하는 것이리라...  

 

날로 심각해지는 법과 문제에 대해서 모두가 법질서가 바로 세워져야 한다고 말을한다.

그러나 법질서를 갈구하는 외침에 너도 나도 이성을 잃고 생각없이 흥분되어서는 안된다.

그것은 법질서는 분명히 공의로운 사회를 위한 수단일 뿐이지 결코 목적이 되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범죄예방을 위한 근본적인 대책은 사람들로 하여금 반드시 그에게 올바른 윤리의식을 심어주는 일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어떠한가?

지나친 입시 교육으로 인해 윤리나 도덕같은 교육은 빠지고 기술이나 취업같은 과목이 중심이 되면서 가치관과 의식조차 모르는 세대들이 거리를 마음껏 활보하며 다니고 있다.

 

사람은 누구나 어떤 관습이나 전통에 얽매어 의미를 상실해 버릴 때가 있다.

늘상 반복되어지는 생활 속에 피로와 권태를 느끼고 공허에 빠질 때가 많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술을 마시고 그 기운으로 기분을 달래거나 술이나 마약, 게임, 성 도착에 빠져서 이러한 공허를 몰아내고자 한다.

 

어떤 사람은 주위의 관심이나 사랑이 부족하여 반려견이나 애완동물에 빠져 대리만족을 느끼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은 일시적인 것뿐 아무런 만족도 줄 수가 없다.

참된 만족은 성이나 술과 같이 어떤 강제적이나 저절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보람있는 일들을 찾고 사람들을 만나며 자신을 돌아보아야 한다.

 

법은 만인앞에 공평해야 한다. 강자보다는 약자에게, 가진 자보다는 소외된 자들에게 법은 더욱  절실한 것이어야 한다.

인지상정(人之常情)이란 말과 같이 자신에게는 그토록 인정을 말하면서 남이라고 그렇게 함부로 마구 대할 수는 없다.

 

영국의 극작가 죠지 버나드쇼우는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가하는 가장 나쁜 죄는 그에 대한 증오가 아니라 무관심"이라고 했다.

국민의  감정과 분위기로 어쩔 수없이 범죄를 중벌로 다스린다고 피해자와 가해자의 모든 억울함들이 해소되는 것은 아니다.

중형은 단지 엄포를 가함으로 감정과 원한을 드러내고 더욱 증오심만을 키워줄 뿐이다.

 

오히려 사회 분란을 일으키고 성을 상품화시키는 환경매체, 유흥가,모텔,스팸문자,메일발송 등을 집중 단속하고 성을 찾는 사람들이나 성을 파는 관련자들, 권력자들에게는 더욱 엄벌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우리의 가정과 사회의 질서는 따스한 공의로움에서 나온다.

공의(公義)란 연약하고 소외된 자들의 입장에 서서 모든 사람을 공평하게 대하는 것이다.

죄가 아무리 밉지만 사회문제는 개인의 문제이기 전에 우리 사회의 전체 문제이다.

 

가장 바람직한 문제해결은 범죄자와 피해자와의 만남을 끊임없이 화해시키고 치료하여 속히 사회로 복귀시키는 일이다.

그리하여 범죄자가 피해자에게 진심으로 용서를 구하며 자유를 얻도록 중재하고 간접적으로는 그가 속한 사회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돕는 일이다.

 

우리 사회가 용서와 사랑이 있는 따스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가해자에게는 마땅히 징계와 함께 관심과 애정으로 감싸주고

자신의 과오를 깊이 반성하고 책임질 수있는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가슴이 따스한 사람 해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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