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를 떠나 보내며...

 

 

 

 

      어머니! 당신으로 인해서 우리들은 너무도 행복했습니다.

      온화하시고 정이 많으면서도 사랑이 깊어 우리는 늘 어머니께 메달려 투정을 부렸었지요.

      연희동에서 연희동으로 자꾸 맴 돌면서 우리는 단 한번도 어머니의 깊은 뜻을 헤아려 보지 못했습니다.

 

      어머니와 우리 가족들만이 아는 비밀들...

      쌀이 떨어져 남은 밥은 물말아 먹고 기름이 잔뜩 묻은 튀김은 골라 먹느라 우리는 조금도 배고픈 줄을 몰랐습니다.

      어느 때는 날마다 깡통으로 신문지를 긁으며 뻥튀기로 바꾸어 먹고 그때 우리는 처음으로 칼라TV를 마련했지요.

 

      아버지가 드디어 먼 곳에서 돌아오실 때에는 우리 가족은 날아갈 듯이 너무도 행복했습니다.

      어머니가 고생한 사연들을 우리들은 너무도 많이 알고 있습니다.

 

      어머니!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시기 전날,

      우리들은 병원측과 싸우면서 한바탕 실랑이를 벌이기도 했습니다.
      그 동안에 어머니가 병원에서 얼마나 많은 수술과 치료를 받았던지 추가되는 비용만 자꾸만 쌓여갈 뿐이었습니다.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우리들은 우리들대로 얼마나 아프시고 힘이 들었을까요.

 

      그래서 우리들도 더 이상 그대로는 두고볼 수만은 없어 한사코 병원측과 싸우며 어머니를 집으로 모셔다가

      편하게 보내드리고만 싶었습니다. 이제는 병원측의 그 누구도 우리들의 고집을 꺾을 수가 없었답니다.

 

      드디어 경찰차를 앞세우고 어머니를 병원차에 실어서 집에 와 보니 집안의 분위기는 말이 아니었습니다.

      어머니가 계시지도 않는 그 집안이 어찌 그렇게 행복할 수가 있을까요.

 

      어머니가 퇴원하셨을 때 누군가는 새 옷으로 입혀드리고 있었는데 어머니는 왜 그렇게 눈만 감고 계셨는지요.

      우리들은 그것이 자식들이 밉고 서운함도 크셔서 일부러 그러시는 줄로만 알았답니다.

 

      밤이 되자 어머니는 그 동안에 얼마나 많은 고통을 참아오셨는지 입안에서는 자꾸만 노란 물이 흘러나왔고 

      새벽이 되어서야 겨우 멈출 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어머니는 잠시 눈을 뜨셨다가 주위를 쭉 둘러 보시고는 평안한 마음으로 하늘나라로 가셨지요.

 

      어머니! 그때 우리는 얼마나 한없이 울었던지  

      남들이야 어떻든지 어머니께 못해드린 그 일만 생각나서 더 크게 울었답니다.

      아버지도 옆방에서 그 소리를 듣고 달려나와 어머니를 보시고는 한없이 자책을 하셨지요.

      그 날 우리들은 아버지가 그렇게도 눈물이 많으셨던가 처음으로 알았습니다.

 

      어머니의 입관을 막 시작하려는데 당신의 주검을 바라보니 차마 눈 뜨고는 볼 수가 없었답니다.

      그 몸은 차라리 병원용 실험 도구였지 어머니의 모습이라고는 찾아 볼 수없었습니다.

 

      머리에서는 커다랗게 구멍이 여러군데 있었고 코에서는 노랗고 진한 약물이 쉬임없이 나왔습니다.

      얼마나 아프셨고 또 얼마나 참기가 힘이 드셨을까요...

 

      어머니!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어머니를 맡았던 그 의사는 잘못이 드러나자 의정부의 다른 병원으로 신속하게

      자리를 옳겼다고 합니다.

 

      아마도 만일을 대비하여 미리 피신부터 하고본 것이지요.

      그것도 모르면서 우리들은 너무도 순진해서 꼬박 꼬박 병원측의 지시대로 순종을 잘했습니다.

 

      병원을 찾아 당당하게 머리를 깎고 C.T찍고 M.R.A찍고 3차례의 모든 수술과정까지 검사를 받으셨던 어머니가

      결국에는 3개월만에  고생만 하시다가 가셨습니다.

      병원에서 나오는 날 우리들은 너무도 분통해서 병원측에 한번 따졌더니

      병원에서는 하는 수없이 겨우 특진비만 빼주었지요.

 

      어머니! 어머니의 장례식은 부득이 당신께서 사시던 작은 아파트에서 단촐하게 맞았습니다.

      경로당에서는 대형천막과 넓은 돗자리까지 많이 챙겨 주었구요...

 

      졸지에 상주가 되어버린 나는 지금도 어머니의 그 죽음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습니다.

      모두다 어떻게 아셨는지 안면도 없던 사람들이 쉬지 않고 찾아와 너무도 혼이났습니다.

 

      그 가운데는 여러 목사들과 국회의원,구청장,힘있는 사람들도 많이 왔습니다.

      나의 친구들도 왔지만 우리들은 그저 눈으로만 바라볼 뿐 마음속으로는 이미 모든 것들을 이해했습니다.

 

      그러고 보면 어머니께서는 복도 참 많으셨고 가시면서도 끝까지

      우리에게 희망을 던져주고 가신 무척 따스한 분이셨습니다.

 

      어머니! 우리들은 거지나 불쌍한 사람도 아니건만 사람들은 왜 자꾸 우리들을 이상한 눈빛으로 쳐다보는지

      난 그들이 너무도 미웠습니다.

 

      그 날에도 잠시 복도에 나가 쉬고 있을 때 어느 국회의원과 보좌관이 찾아와 복도의 한 중앙에 서서 말하기를

         "우리는 부조를 얼마나 해야 하나. 십만원만 할까?"  "아니요, 그냥 적당히 3만원만 하시죠?"

 

      아마도 그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마음은 안중에도 없는가 봅니다. 

      부조보다는 마음이 마음보다는 관심이 관심보다는 사랑을 주는 사람이 왜 그렇게 없을까요?

      부디 내가 사는 동안에는 변함없이 사랑을 많이 베풀 수있게 하늘에서도 꼭 도와주세요.

 

      어머니의 장지는 강원도 철원에 있는 목련공원으로 정했습니다. 철원에 사는 남동생이 고생을 많이 하였지요.

      장지로 떠나는 날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왔던지 나는 맨 앞에서 검은 승용차를 탔고

      다른 사람들은 버스를 타고 검은 띠를 두르며 꼬리를 길게 늘어놓고서 나를 따라왔지요.

 

      가는 길에 우리는 동생 집에 머물며 며칠 전에 어머니와 함께 대추나무를 털면서 포식을 하던 그때를 떠올렸습니다.

      포장길을 따라 우리들은 어머니와 함께 직탕폭포까지 걸으며 소라도 잡고 사진도 많이 찍었습니다.

 

      어머니! 문득 그 동안에 우리를 위해 힘을 써준 많은 사람들의 얼굴이 떠 오릅니다.

      자신의 일도 아니건만 저들은 우리를 위해 기꺼이 휴가를 내어 따라온 사람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언제쯤 잊혀 질까요. 그들의 고마운 마음들을...

      아버지께서도 흡족하신듯 시종일관 친구분들께 허세를 부리기 시작했습니다.

 

      학창시절 나는 어머니와 용돈문제로 참 많이도 싸웠지요.

      그리고 내가 어엿이 자라 결혼을 하게 되었을 때 어머니는 잘했노라며 어머니의 고민도 사라지셨지요.

 

      어머니는 나보다는 아내편을 더욱 들어주시며 아들의 흉 보는 것을 유일한 낙으로만 삼으셨답니다.

      할머니의 둘째 손주는 할머니의 심각성도 모른채 날마다 한강의 놀이배를 태워 달라고 떼도 참 많이 썼습니다.

      내가 병원을 찾아갈 때마다 어머니는 더 이상 굶고 다니지 말라면서 침대밑에서 돈을 몰래 꺼내 주시고는 하셨지요.

 

      당신의 사그라진 육신으로 버티는 그 숭고함,

      숨쉬기조차 몹시 힘들어 하면서도 앙상한 손으로 자식들의 건강을 염려하여 주시는 회한의 모습들을

      제가 어찌다 잊을까요.

      떠나는 사람들은 모두 다 쉽게 잊겠지만 보내는 우리들은 결코 잊을 수가 없습니다.

 

      어머니! 우리가 장지에 도착하여 높은 곳에서 아래를 바라보니 장지가 어찌 그리 아름다운 지요.

      사방이 나무와 숲으로 병풍처럼 둘러있고 아늑하고 편안한시설들이 나는 좋았습니다.

 

      빼곡한 비석들은 하나같이 질서정연하게 구역에 따라 장식하였고

      빨강 노랑 분홍 보라꽃으로 묘지를 더욱 더 아름답게 수 놓았습니다.

 

      어머니를 잠시 이곳에 묻어두고 산에서 내려오는데 어느 큰 바위 위에 새겨진 이름모를 시한편이 있었습니다.

     "나도 너희들처럼 살아있을 때에는 많은 꿈들이 있었노라"

 

      그 순간 나도 모르게 두 눈가에서는 자꾸 울음이 흘러나와 두주먹을 불끈 쥐었습니다.

      인생의 종말은 결코 우연이 오는 것이 아니라고 말입니다.

 

      인생의 종말때문에 인생의 인위적인 명예와 출세가 다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위대한 사람들의 무덤도 말이 없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인생의 모든 것은 흙입니다.

      그런데 무덤의 흙은 우리들에게 아무 것도, 아무 말도 말하지 않고 조용하네요.

      다만 한가지 이 흙은 당신의 조상이고 이 흙은 당신의 부모이며

      이 흙은 당신들을 위해 먼저 간 수많은 영령들의 희생이며 농민들의 것이라고 들려옵니다.

 

      산 자가 공유하지 못하고 아픔과 고통과 괴로움이 없는 그곳, 편히 쉬십시요...

      그리고 세월이 지나 우리들도 얼른 자라서 그곳으로 갈터이니 그 때 우리 다시만나요.

 

 

      가슴이 따스한 사람 해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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