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처럼 목자처럼

 

 

 

 

              을미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한 해를 보내고 또 다른 새해를 맞는다고 하지만 나이를 한 살 더 먹는 것이요

              그것은 결국 죽음에 더 가까이 다가간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육체는 비록 시간을 따라 낡아지고 쇠하여 가며 어쩔 수없는 고난과 아픔을 겪지만

              우리는 영원을 추구하는 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시간 속에서는 기쁨이 생겼다가도 사라지고 평화롭다가도 불안이 예고없이 다가옵니다.

              그러나 영원 속에서는 낡아지는 법이 없습니다.

 

              우리가 영원을 추구하며 살아갈 때 우리는 어떠한 고난과 아픔에도 참을 수있고

              세상이 주는 근심과 불안들도 얼마든지 극복해 나갈 수 있습니다.

 

              우리가 "새해에 복 많이 받으세요" 라고 인사하는 의미는

              바로 이러한 영원의 복을 풍성하게 받으라는 뜻입니다.           

 

              특히 을미년 새해에는 진실과 성실과 화합을 다짐하는 "청양의 해" 이기에

              우리에게는 각자 남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매일 매일을 새로운 자세와 각오로 임한다면

              우리의 가정과 나라에는 놀라운 희망으로 가득할 것입니다.

 

              당신은 따사로운 오후에 넓고 푸르고 마음도 상쾌한 초장에 나가

              양들이 무리를 지어 한가롭게 풀을 뜯으며 놀고 있는 장면을 보았습니까?

 

              거기에는 어떤 걱정이나 위험도 없고 오직 평화와 사랑만이 있을 뿐입니다.

 

              세상은 인간들을 만물의 영장이라고는 하지만 사실 인간은 양(羊)과도 같은 것입니다.

              우리가 양을 볼 때 평화와 목자가 생각나고 목자는 곧 지도자로도 설명할 수 있습니다.

 

              양은 본래가 아둔한 동물입니다.

              양은 백 미터 이상 떨어진 전방들을 바로 볼 수가 없습니다.

 

              어리석게도 양은 스스로 먹이를 구할 수도 없고 적을 물리칠만한 강한 힘도 없습니다.

              그리하여 양은 반드시 목자가 필요하고 목자 없이는 살아갈 수도 없습니다.

 

              인간도 마찬가지로 내일 일을 알지 못하고 혼자서는 세상을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너무도 이기적이어서 자신만 생각할 뿐 이웃에게 관심이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맹수가 양들을 물어 죽여도

              그냥 못 본 척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으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목자들은 마음이 진실합니다. 

              그가 먹여주는 꼴은 언제나 독초가 없습니다.

              목이 마르면 마시우게 하고 배가 고프면 배부르게 합니다.

 

              그리하여 양들에게 위험이 닥쳐오면

              목자는 피하지 아니하고 제일 먼저 달려가 양들을 구출합니다.

 

              지난 2004년에 우리 사회는 당동벌이(當同伐異)라는 사자성어가 있었습니다.

              이 말은 같은 무리와는 당을 만들고 다른 무리에게는 공격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일까요?

              요즘 우리 정치인들이 하는 꼴을 보면 어쩌면 그렇게도 닮았습니까.

 

              국민들이 저들에게 모아준 표는

              오직 나라와 국민들을 위해서 최선을 다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정치인들은 하라는 일들은 하지 못하고서

              또 다시 자신들의 밥 그릇 챙기기에만 여념이 없습니다.

 

              우리 사회가 이렇게 마음에 맞는 사람끼리만 어울리고

              생각이 다른 사람들과는 배척한다면 이 보다 더 편협되고 이기적인 사회는 없을 것입니다.

 

              새해의 마음 가짐은 언제나 다름이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같은 것을 추구하는 구동존이(求同存異)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비록 자기 마음에 맞는 것이 하나 없어도 다른 것이 있음을 존중하고

              함께 지혜를 모아갈 때 거기에 평화가 있고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 수 있는 것입니다.

 

                                                     목자와 양의 자세한 이야기는 http://blog.daum.net/91386/16752488

 

              가슴이 따스한 사람 해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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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은 연못

 

 

 

 

 

                   인간의 마음은 하나의 작은 연못과도 같습니다.

 

                   거기에는 어떠한 장애물도 있지 않고

                   잔잔한 물 위에는 오직 평화와 기쁨만이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그 마음 속에 더러운 것이 한번 들어오면

                   곧 평화는 깨어지고 기쁨은 사라지고 맙니다.

 

                   그렇다면 양심이란 무엇일까요?

 

                   인간의 양심은 연못 속의 물이 얼어 있는 마음이 아닐까요?.

                   연못가의 얼음이 형성되기가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만일 누군가가 막대기로 연못가의 물을 계속 휘 저으면

                   어떠한 추운 날씨에서도 연못이 어는 것을 방지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얼음막이 형성되도록 그냥 방치해 두면

                   연못가의 물은 표면부터 얼기 시작하여 마침내는 온 연못가가 빙판이 되고 말 것입니다.

 

                   결국에는 그 빙판은 매우 견고해져서

                   그 위로 사람들이 아무리 지나쳐도 끄떡도 하지 않을 것입니다.

 

                   인간의 양심도 이와 같은 것입니다.

 

                   점차로 얇은 막이 형성되기 시작하여 결국은 단단해 지고 무감각해 지면

                   그 일이 평화인지 불화인지, 정의인지, 불의인지를 제대로 알 수 없고

                   어떤 착한 행실로도 진정한 희망을 찾을 길이 없습니다.

 

                   혹시 우리 사회가 지금 양심이 너무 굳어져서

                   무엇이 중요하고 필요한 지를 모르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우리 사회의 현실을 돌아볼 때 우리는 너무도 쉽게 생각하고

                   너무도 빠르게 결정을 내려 버립니다.

 

                   우리가 조금 잘 살게 되었다고 생각 할때는 우리의 생활을 한껏 부풀렸다가

                   경제 위기가 닥쳐오자 우리는 또 다시 망할 것처럼 죽는 시늉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들도 조그마한 문제에도 감정이 폭발하여 우울해 지는가 하면

                   별 것 아닌 일에도 기분이 좋아져서 싱글벙글 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뭐 양심이 밥 먹여 주느냐고 정의에는 관심도 없습니다.

                   그러나 비록 양심이 밥을 떠 먹여 줄 수는 없겠지만 죽어가는 나라를 구해 줄 수는 있지 않습니까.

 

                   우리 가정에 먹을 것이 떨어져 낙심하게 될 때에

                   아궁이에 던져 넣은 고구마를 꺼내 먹던 긴 겨울이라도 좋고

 

                   오늘처럼 눈이라도 내리는 날에는 모두가 밖으로 나와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면

                   그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진정한 행복이 아니겠습니까?

 

                   지금은 우리가 한탄하고 원망하며 불평할 때가 아니라 사랑의 불을 지펴야 할 때입니다.

                   굳어져 가는 우리 양심을 살려내어 희망의 불 길이 타오르도록 모두가 관심을 가져야 할 때입니다.

 

                   그리할 때 우리를 위협하던 추위는 물러가고

                   이 땅에 아름다운 꽃이 만발하는 희망의 새 봄이 찾아오고 말 것입니다.

 

 

 

 

                   가슴이 따스한 사람 해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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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정한 구제(救濟)

 

 

 

 

 

 

                유대인의 경전에 의하면  남을 구제하는 방법에는 여덞가지 정도가 있다고 합니다.

 

                첫 째는 주기 싫어서 망설이고 있다가 할 수없이 주고는 후회하는 경우이고

                둘 째는 주기는 주되 아주 조금 주는 경우이며

                셋 째는 받는 사람이 만족스러울 만큼 주되 그 대신 넌지시 어떤 부탁을 하는 경우

                넷 째는 어떤 부탁도 없이 후히 주나 여러 사람이 다 보는 데서 상대방이 창피해 하고

                           어쩔 줄을 모르게 하는 경우입니다.

 

                다섯째는 그가 그 앞을 지나갈 때 다른 사람은 알지 못하게 돈을 받아갈 수 있도록

                             배려해 주는 구제이고

                여섯째는 구호물품을 사람들에게 주면서 받는 편에서는 알지 못하도록

                             그들의 집에다 몰래 가져다 주는 것이며

                일곱째는 주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이 피차 알지 못하도록 공동의 모금함에 넣으면서

                             은밀히 도움을 주는 경우입니다.

 

                마지막으로는 그가 더 가난해 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 그의 채권자들의 요구를 대신 들어주고

                             그가 그의 잃어버린 유산(遺産)을 되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며

                             그가 새 직장을 구하거나 새 일자리를 찾아서

                             다시는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지 않고서도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구제입니다.

 

                지금도 우리의 주위에는 사랑과 정의가 넘치는 자선과 치료와 봉사의 발길이 많이 있지만

                그것은 나름대로의 가치가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과 정의가 없는 선(善)이란 결코 선(善)일 수가 없습니다.
                가식적일 뿐, 모두가 선인 것처럼 보여질 뿐입니다.

 

                진정한 구제란 자기도 잘 보이지 않는 영원한 그 나라에 투자하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어떠한 까다로운 조항이나 이유도 없고 용도도 묻지 않으며

                자기가 얼마만큼 투자했다고 소문내고 자랑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렇지만 거기에는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한번도 경험하지 못하고

                받아 본 적도 없는 영원한 기쁨과 축복의 희망들이 차곡차곡 쌓여져 있습니다.

 

 

 

                가슴이 따스한 사람 해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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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희망의 꽃을 피우자

 

 

 

 

 

                          늦게 꽃이 피는 식물들은 대개가 매우 아름답고 커다란 꽃으로 피어난다.

 

                          이것을 잘 아는 화초 연구가들은 식물을 차가운 곳에서 가꾸기 시작했다.

                          차가운 냉실에 있는 식물들은 꽃을 피우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식물이 차가운 곳에 있다해도 실제로 그 온도는 식물에 조금도 해를 주지 않는다.

                          그 식물이 다시금 따뜻한 대기 가운데로 나오게 될 때에는 자연스럽게 꽃을 피우게 된다.

 

                          이러한 사실은 인간 세계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오랫동안 죄수들처럼 차가운 냉실과 같은 방에서 숨을 죽이며 지내왔다.

 

                          꿈도 많았었다. 눈물도 많았으리라...

                          그러나 어느 날 우리가 따뜻하고 밝은 소망의 빛을 보았을 때

 

                          우리는 미처 생각지도 못한 영광(榮光)과 타오르는 기쁨과 희열(喜悅)을 보고

                          그 누가 서로를 얼싸 안고 웃음 꽃 희망의 꽃을 피우지 못하겠는가

 

 

 

                          가슴이 따스한 사람 해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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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들을 위로하여라

 



              우리의 주변에는 언제나 스스로를 가두고 자포자기(自暴自棄) 하며

              힘들게 살아가는 많은 이들이 있습니다.

 

              마음에 상처를 받고 슬퍼하는 사람, 고통당하는 사람,

              그러면서도 위로받지 못하고 사는 많은 약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랑하던 사람과 헤어지고 사업이 부도나며 가난으로 눈물을 짓고 사는 이들이 바로 그러합니다.

              창백한 얼굴들, 여윈 어깨, 길에서, 공원에서 오늘도 그들은 위로를 찾아 헤매고 있습니다.

 

              약하고 가난한 자들만이 위로가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정치나 사회,문화,종교에 이르기까지 권력자들의 속에서도 위로 소리가 들립니다.

              그들은 모두가 지쳤으며 괴로움과 벗삼아 술과 도박으로 위안을 삼고 있습니다.

 

              위로란 그들의 피로를 풀어주고 그들의 굶주린 배를 채워주며 

              그들의 억울한 사정과 부당한 대우를 개선해주는 물질적인 것이 아닙니다.

 

              어떤 정치적인 변화나 사회적인 변화, 축제에 있는 것도 아닙니다.

              스포츠에 승리하고 국위를 선양하며 나라를 구하는 일도 그들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실제로 지난 날 우리사회가 월드컵의 열기로 떠들썩 했을때

              그 축제는 저들에게는 배 부른 소리요, 자기와는 관계없는 남들의 얘기입니다.

 

              인간은 대체로 보이는 것들에 의해 생각의 지배를 받고 물질과 명예를 추구하며 살아갑니다.

              우리가 겉만을 바라볼 때 인간은 너무 제한적이고 절망적일 수 밖에 없습니다.

 

              오늘날과 같이 모든 세계가 가진 자들 위주로 돌아갈 때

              없는 자들은 결국 약자요, 가난한 자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세계속에서 인간은 항상 체념하며 살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인간의 문제는 가치관의 문제이며 결단의 문제입니다.

 

              인간은 아무것도 소유할 수없는 존재입니다.

              빈손으로 왔다가 빈 손으로 가야하는 것이 인간입니다.

 

              그리하여 인간이 아무리 큰 돈을 들여 땅을 사고 집을 사지만

              실제로는 그것이 자기의 소유가 되는 것도 아닙니다.

 

              담장을 높이 쌓고 개를 기르며 도난 장치를 해놓고도 잠 못이루는 현대인들을 볼 때

              아무리 지키려해도 결국 도적은 자기 안에 있기 마련입니다.

 

              차라리 모든 것을 포기하였을때 마음에 평안이 찾아오고 자유로울 수가 있습니다.

              인간이 좀 더 넓은 세계를 바라보고 모든 것을 비우고 나면 비로소 자유를 찾을 수가 있을 것입니다.

 

              인간이 아직도 무엇인가 가졌다고 생각될 때 그 사람은 진정한 약자는 아닙니다.

              세상의 물질과 명예를 갖지 못해 비통해하는 그들이 약자는 아닙니다.

 

              진정한 약자란 자신의 힘과 능력으로는 도저히 해결할 수없는 나약한 자들을 말합니다.

              인간에게 자유가 없는 것은 자기가 약자이면서도 그것을 인정하지 못하고

              자기의 체면이나 고집, 자존심등이 그 길을 막아 슬픔에 빠져 버렸기 때문입니다.

 

              전통이 오래된 사회일수록 텃세가 심하여 약자들이 발 붙일 곳이 없는 것이 보통입니다.

              오늘날 위로와 평안을 주어야 할 이웃과 사회가 오히려 상처를 줄 때가 있습니다.

              위로받아야 할 사람들이 정착하지 못하고 불만을 토로하며 세상을 등지고 떠나고 있습니다.

  

              위로한다는 말은 곁에서 함께한다는 것이요,

              약자들을 무시하고 배척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우는 자와 함께 울고 그 사람과 같은 처지가 된다는 뜻입니다.

              우리사회가 이것을 주지 못할 때 다른 어떠한 일을 아무리 잘 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아름다운 세상이란 바로 모두가 함께하는 사회입니다.

              우리가 이 사회에 존재하는 이유와 목적이 있다면 그것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가슴이 따스한 사람 해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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