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을 아름답게

 

 

 

 

 

 

 

                추운 겨울이 지나가고 따스한 봄이 오

                자연은 어디선가 꽃샘추위를 몰고 오고 사람들은 꽃샘추위에 몹시도 당황을 합니다.

 

                고난은 누구나 다 당하기를 싫어하는 것이지만

                그러나 고난에는 우리의 잠자던 영혼을 깨우는 힘이 있습니다.

 

                얼마 전 서울의 한 강연장에서 일어난 리퍼트 美 대사의 피습사건을 보면서

                60년 전 한국 전쟁의 상처가 이렇게도 크게 남아 있을 줄 미쳐 생각지 못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언론에 동조하며

                어떤 이들은 김기종씨를 테러분자라고 비난하고 

                어떤 이들은 美 대사를 향해 춤을 추며 영웅으로 모셨습니다.

 

                그러나 이 보다도 안타까운 사실 하나는 우리 사회에 무슨 일만 터지면

                항상 반복되는 종북 논란과 국가 보안법은 무엇인지

                우리를 더욱 위협하는 무서운 존재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 동안에 우리는 단 한 번도 이 민족이 당한 고난의 의미를 깊이 생각하지 않은 체

                안보만을 높여 왔고 민족 분단을 정권 유지의 유리한 방패막이로 사용하여 왔을 뿐입니다.

 

                우리는 너무나 큰 전쟁을 겪었으면서도 거기서 얻은 교훈이 기껏해서 안보뿐이라면

                우리는 그 전쟁이 주는 많은 교훈을 상실하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래 전에 <25시>의 작가 게오르규 씨가 한국을 방문했을 때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 인생 항로의 괴롭고 어려운 시련을 이겨낸 사람에게는 누구나가 모자를 멋고 인사를 드리게 됩니다.

                지구상에서 한국 민족처럼 괴로움을 당한 민족이 없어 나는 존경하는 마음으로 인사하고 싶습니다 "

 

                그는 그의 작품 <25시>에서 " 빛은 동방에서 온다 "고 말하며 그 동방이 바로 한국이라고 말했습니다.

                그것은 한국인이 무척 괴로운 시련을 겪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정말 그가 말한 대로 괴로운 시련을 겪은 민족임에는 틀림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고난 속에서 그가 말하고 있는 어떤 빛을 찾았는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고난은 당한 것만으로는 값진 것도 아니며 그 고난의 의미를 깨달을 때

                그래서 어떤 빛이 나올 그 고난은 더욱 값진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세계사에서 이스라엘 만큼이나 수난을 많이 겪은 나라가 또 있을까요?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를 보면 강대한 나라들 틈바구니에 끼어 끊임없이 침략을 받고

                이리저리 쫒기는 고난의 역사였습니다.

 

                이러한 고난을 보며 예언자들은 한결같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내산에서 맺은 하나님과의 계약을

                성실하게 지키지 않았기 때문에 오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고난의 일차적인 의미를 죄에 대한 형벌로 이해 하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언자들은 끊임없이 그 민족에게 회개를 촉구하였습니다.

 

                유대인들은 지금도 매일 통곡의 벽앞에 나가 죄를 고백하고

                그들의 성전이 복구되어 경배하는 날이 오기만을 기도하고 있습니다.

 

                통곡의 벽앞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날은 티사 밥(Tishe B`ab)으로 그들이 우는 날로 가장 슬픈 날입니다.

                그 모습이 어찌나 애처로운지 가던 사람도 돌아설 지경입니다.

 

                만약에 인과응보(因果應報)사상이 죄를 지은 사람에게는 응당한 고난이 온다는 것이 맞다면

                고난은 하나의 형벌로 이해 되어져야 할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민족이 당하고 있는 고난도 어쩌면 우리가 저지른 죄에 대한 하늘의 경고는 아닐까요?

                정권욕에 사로 잡혀 국민들을 돌보지 아니한 정치가들의 죄와 이 시대에 의미를 부여하지 못하고

                역사를 해석하여 비젼을 제시하지 못한 창백한 지성인들의 무기력함에 대한 진노인 줄도 모릅니다.

 

                이 민족앞에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선포하지 아니하고

                분열만을 거듭해 온 교회의 잘못에 대한 대가(代價)인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이제까지 자기가 잘못했다고 시인하는 정치가들을 보지 못했으며

                모든 일의 책임을 통감하고 물러나는 지도자들을 보지 못했습니다.

                결국 우리의 양심이 둔화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고난의 일차적인 의미가 죄에 대한 댓가라면

                왜 죄 없는 사람들까지 애매하게 고난을 당해야만 하는가 라는 의문이 생깁니다.

 

                이런 의문은 옛날에만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세계 역사 속에서 끊임없이 반복되어져 온 사실입니다.

 

                히틀러의 나치 정권 밑에서 아무 죄없이 학살당하고 수 많은 유대인들이 부르짖었으며

                미국의 흑인 노예들이 채찍 밑에서 신음하며 울부 짖어 왔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유신시대와 군사정권 밑에서 무고한 사람들이 박해를 받고 자유를 부르짖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이산가족 상봉을 지켜 보면서 느낀 것은 고난 당한 것은 애매한 민중들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어린 학생들은 또 무슨 죄가 있어서 사랑하는 부모님께 마지막 작별인사도 못드린 체

                지옥같은 그 세월호에서 구슬픈 눈물 하염없이 흘리면서 꽃잎처럼 떨어져야만 했을까요?

 

                여기에는 분명히 고난보다는 더 깊은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보다 더 깊은 고난의 의미가 무엇일까를 찾으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러다가 알게 된 것이 모든 육체와 정신이 무너져 버린 곳에서 진정 영혼이 빛을 발한다는 사실을

                깨달아 알게 된 것입니다.

 

                위대한 영혼은 고난을 통해서 빛나는 법입니다.

                고통이 결여된 인생은 천박하고 그 예술은 사람의 심금을 울리는 깊이와 영감을 가질 수 없습니다.

                이것은 개인이나 한 민족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일찌기 인도의 시성 타골도 한국을 가리켜 " 아시아의 황금 시대에 빛나던 등불 "로 보고

                그 등불이 다시 한번 켜지는 날 동방의 밝은 빛이 될 것이라고 소개한 바 있습니다.

 

                중국의 석학 임어당(林語은 한국에 왔을 때 거문고 소리를 들어보며

              " 우는 소리와 절규하는 소리가 같이 난다 "면서

                감각으로는 우는 소리가 들리고 영감으로는 절규하는 소리로 들린다"고 하였습니다.

 

                오랜 고통의 누적에서 우러나는 절규이며

                그것은 앞으로 국제시대에 소중하게 평가될 한국의 희망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이 약소민족인 우리가 겪고 있는 고난은 결코 우리만의 고난일 수가 없습니다.

                우리 민족의 통곡은 전 세계가 당해야 하는 아픔을 대신하고 있는 고난임이 틀림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 고난을 통해서 일어선 우리 민족의 빛이 온 세계를 비추는 희망의 빛이 될 수있습니다.

 

                우리는 폭력으로 이루어진 사회를 정당한 것이라고 받아 들여서는 안됩니다.

                아무리 그럴 듯한 명분이 있다 하더라도 우리 안의 어떠한 폭력이나

                대륙간 탄도 미사일 사드 도입같은 무기는 단호하게 막아야 할 것입니다.

 

                미국이 무기를 개발하는 명분은 세계 평화를 위한다고 하지만 그들이 내다 파는 무기가

                오늘날 세계 도처에서 전쟁을 야기시키고 있다는 사실을 볼 때 평화를 위한 무기란 논리적으로나 가능하지

                실제적으로는 인명을 살상하는 무서운 무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악을 막는다는 명분으로 또 다른 폭력을 사용한다는 것은 우리는 결코 용납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봄이 오는 길목에서 꽃샘추위가 우리에게 들려주는 소식은

                꽁꽁 얼어붙게 하던 겨울은 이제 가고 만물을 소생하게 하는 봄이 왔다는 기쁜 소식입니다.

 

                앙상한 나뭇가지가 영광스러운 부활 승리를 위해 꽃샘추위를 이겨내고

                美 대사의 피습사건으로 인하여 한미동맹이 더욱 더 강화된 것처럼

                우리가 겪고 있는 이 고난을 헛되게 하지 말고 거기서 참된 의미를 찾아내며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가슴이 따스한 사람 해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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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움과 갈등을 뛰어 넘어

 

 

 

 

               오래 전 현대 그룹의 명예회장이었던 고 정주영 회장이 평화로움과 풍요를 상징하는 소떼를 이끌고

               분단과 대립의 상징인 판문점을 통해서 북한을 방문하였습니다.

 

               그의 소떼 방북은 단순한 일회성 행사라기 보다는 남북사이에 드리워져 있던 갈등과 반목,

               긴장을 누그러 뜨리는 상징적 사건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이런 회장의 행동을 보면서 우리가 저들에게 잘못한 것이 없는데 무엇때문에 저들에게

               선물을 주어가면서까지 화해의 물꼬를 트느냐고 항의를 할 것입니다.

 

               논리적으로 말할 때 그것은 북쪽에서 오히려 소떼를 이끌고 남쪽으로 내려와 화해의 진상품으로 바치면서

               전쟁을 일으켜 수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잃게 한 그 사죄를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상황은 그런 것을 기대하기는 어렵고 그렇다고 마냥 이대로 내버려 두면서

               서로 미워할 수만은 없는 일입니다.


               마치도 한 가정의 심정처럼 미움과 갈등은 결국 우리의 삶을 멍들게 하며

               물질과 그 어떤 것으로도 보상할 수 없는 많은 손실을 우리에게 안겨 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속히 이것을 털어 버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지금도 우리의 남북 사이에는 많은 이산가족들이 살고 있습니다.

               해마다 명절이 오면 우리는 이산가족들을 보면서 이들이 서로 상봉을 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우리의 정치인들은 이들을 정치적으로 이용만 할 뿐 이들에게는 아직도 진정성있는 상봉은 오지 않았습니다.

 

               만일에 이산가족 상봉이 그들에게 너무도 중요하고 절실했다면

               이처럼 무관심하고 북한만 비난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속담에 미운 놈 떡 하나 더 주라는 말이 있습니다.

               떡 하나를 더 주어서라도 서로 가진 미움을 털어 버릴 수만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은 없을 것입니다.

 

               사랑은 적극적으로 어떤 행동을 하기 이전에 먼저 우리 속에 있는 시기와 교만과 무례함과

               이기심을 버리는 것부터 시작해야함을 가르쳐 주는 교훈입니다.


               성내지 아니하고 원한을 품지 않는 것이 바로 사랑임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린 아기가 부모의 사랑 안에서 자랄 때는 건강하게 자랄 수 있지만

               아이가 고아가 되어서는 그 인격 형성에 많은 장애가 있음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생명의 본질은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언제부터인지 우리의 마음 깊은 곳에는 미움과 시기와 이기심과 분노가 우리의 마음을 덮어 버렸습니다.

               지금 우리 속에는 그 옛날 일어났던 전쟁때문에 미움이 깊게 자리잡고 있습니다.

 

               이 전쟁은 우리에게 너무도 큰 비극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우리 속에 쌓인 원한은 아무리 시간이 흘러가도 좀처럼 씻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오늘날 한국 교회가 수 없이 분열을 거듭한 것은 바로 이런 용서와 화해의 마음이 결여된 것이 아니겠습니까?

               자기 자신을 희생함 없이는 누구도 다른 사람의 허물을 용서할 수 없고 화해도 불가능할 것입니다.

 

               미움은 계속해서 미움을 낳게 되고 끝 없는 원한과 복수를 낳을 뿐입니다.

               우리 안에 있는 교만과 미움, 분노와 원한을  간직하고 있으면 우리는 또 다른 악을 불러오고 말 것입니다.

 

               오늘날처럼 한국 교회가 급성장하여 큰 교회를 많이 갖고 있지만 그런 것들은 하나도 자랑할 것이 못됩니다.

               오히려 올바른 공동체를 이루지 못한 채 덩치만 큰 교회는 심판의 대상일 뿐입니다.

 

               마찬가지로 이 작은 나라안에서 이러한 용서와 화해의 정신을 가장 잘 아는 사람들이 나라를 이끌어 가고

               이 땅의 불화와 갈등을 치료해 나갈 때 거기에 아름다운 통일이 이루어 지는 것입니다.

 

 

 

               가슴이 따스한 사람 해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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