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火)과 죄(罪)

 

 

                           

 

 

                  우리는 종종 TV나 신문을 통해 큰 화재 사건을 접할 때가 있다.

                  그런데 그 사건에 대한 결말은 대부분이 그 불의 원인을 자세하게 모른다는 사실이다.

 

                 당신은 지금 시내의 한 복판에서 불에 타기 쉬운 물건들을 모아놓고 그 위에 작은 불씨 하나를 던져 보라.

                 그리고 나서 그것을 그냥 내버려 두라.

                 그 불씨는 이 곳에서 저 곳으로 옯겨 붙어 하나의 큰 불을 이루고 결국에는 이 집에서 저 집, 이 길에서 저 길로

                 마음껏 옮겨 다니며 마침내는 도시 전체를 악마의 불꽂 속으로 빠지게 할 것이다.

 

                 죄도 이와 같다.

                 하나의 작은 죄는 한 개인 안으로 들어와 그 개인 전체를 더럽히고

                 한 사람의 잘못된 행실은 그 사람의 가정과 이웃들에게 악영향을 끼치게 하며

                 한 사람의 타락한 모습은 수 천, 수 만의 사람들에게 그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그 한 사람의 범죄는 그 사람이 속한 나라 전체를 타락시킬 수도 있다.

 

                큰 불은 나무와 같은 연약한 것들을 불로 변화시킨다.

                왜냐하면 불은 그의 재료들로 자신과 같은 불을 만들기 때문이다.

                이것은 죄도 마찬가지이다.

 

                죄는 자신이 지배하는 모든 것들을 저주로 변화시킨다.

                죄는 인간의 건전한 소유욕을 무분별한 욕심으로 변화시키며 인간의 바람직한 야망도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신의 목적한 바를 이루려고만 한다.

 

                보라! 한 때는 건강하고 아름다운 신체가 있는 많은 사람들이 이제는 죄로 인하여 쇠약하고 추하게 변해 버렸고

                한 때는 강력하고 나는 새도 떨어 트렸던 사람들이 이제는 죄로 인해 그 힘을 상실해 버렸다.

                또한 한 때는 희망으로 부풀었던 많은 사람들이 죄로 인하여 이제는 아무 희망도 없이 살아가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세상에서 불과 죄를 바라보며 어떻게 대처해야 옳을까?

 

                큰 불은 그 주위에 있는 모든 것들을 완전히 태우고 힘이 없을 때에야 비로서 꺼지게 마련이다.

                공인들의 언행이 사회에 큰 영향력을 끼치는 것처럼 높은 사람들의 죄는 아름다운 사회를 혼탁하게 만든다.

 

                그리하여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은 일반 사람보다도 그 책임을 더욱 무겁게

                만일에 부정을 저질렀을 때에는 죄를 가중하여 형벌함이 옳다.

                당신같은 사람들로 인해서 이 나라가 더욱 더 비난을 받게 되는 것이라고 말해 주어야 할 것이다.

 

                팔이 안으로 굽는다고 툭하면 불기소, 심심하면 집행유예로 봐주는 것은

                이는 우리 국민들을 너무 우습게 여기는 처사이며 가진 자들만의 특혜이다.

                이것은 결국 권력을 잡으면 자기들 편리한 대로 얼마든지 법을 뜯어 고칠 수도 있다는 자기들의 오만이다.

 

                아름다운 세상이란 결코 힘 없는 자가 무시받는 것이 아니라 우선적으로 옹호받는 세상이다.

                힘 없는 사람들은 권력앞에서 이성을, 무력앞에서 권리를 더욱 갈망한다.

                그러나 민족적 기질이나 사회적 기질, 힘 있는 사람들은 이것을 망각한다.

                그리하여 이들은 모든 것들을 자기들의 마음대로 밀어 부치는 것이다.

 

                결국 그 책임은 오늘의 우리들에게 있다. 이 사회가 그들을 그렇게 만들어 버렸기 때문이다.

                오늘의 기성 정치인들을 변화시키기에는 저들의 마음이 너무 완고하다.

                그리하여 우리는 미래를 내다 보면서 다음 세대들에게 정의가 무엇인지, 올바른 가치관을 심어주고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가슴이 따스한 사람 해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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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빛 바랜 졸업식

 

 

                                                   (개사) 

 

                                                빛 나는 졸업장을 타신 언니께

                                                코  딱지를  한 사발 선사합니다.

 

                                                물려받은 책으로 엿~을 사 먹고

                                                우~ 리는 언니뒤를 따르렵니다

 

 

               어릴 적 내가 유난히도 장난치며 개골스럽게 불러대던 졸업식의 노래가

               막상 내 자신이 졸업하자 그 날에는 얼마나 목을 빼며 진지하게 불렀던지...

 

               세월은 흘렀지만 학교를 졸업한다는 것은 그 때나 지금이나

               어쩌면 그만큼 자기 삶의 성장과 진보가 이루어지고 있음을 우리는 잘 안다.


               그래서 우리는 졸업을 기뻐하고 더욱 축하하게 된다.

 

               정든 학교를 졸업하자 친구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나는 응암동으로 다른 친구들은 소식도 끊겨졌다.

               때 마침 우리가 살던 정든 집도 떠나게 되어서 모든 것이 낯설기만한 세상이었다.

 

               머리 교육 하나는 제대로 가르쳐 준다는 명문학교를 다녔서도 내게는 공부가 지지리도 인연이 없었다.

               영어와 수학시간에는 따분해서 졸기가 일쑤였고 한자공부나 시를 외우는 것이 오히려 즐거웠다.

 

               학교 분위기는 채 익히지도 않았는데 입학식날 다음에는 일제히 평가고사가 이루어져

               이것이 무엇인지 시험을 마치고야 겨우 반편성이 이루어졌다.

 

               그래서 그랬을까... 나는 줄곧 학교를 다니면서도 공부와는 거리가 멀었다.

               학교를 졸업하면서 받은 것이라야 졸업장과 글짓기 상이 전부였다.


               그 후에도 나의 머리는 한결 같았다.

               어떤 친구들은 추천을 받지 못해 담임 교사의 청탁제의까지 받아야  했다.

 

               우리가 학교에서 공부를 하는 것은 단지 지식을 얻기 위함만은 아니다.

               지식을 얻음과 동시에 올바른 인격 형성과 나아가 올바른 가치관으로 주어진 삶을 바르게 살기 위함일 것이다.

 

               그러나 오늘의 공 교육은 비싼 등록금에 비해 너무 많은 문제를 안고 있기에

               이러한 목표를 심어 주기에는 이미 때 늦은 상태에 놓여져 있는 것은 아닌가.

 

               그래서 많은 부모들이 이런 저런 원인을 들어 자녀들에게 비싼 사교육을 들여서라도 가르쳐야

               마음이 조금씩은 위안이 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요즈음은 대안교육을 시키는 학교도 늘어가고 있고 어떤 부모님은 아예 자녀를 학교에 보내지 않고

               집에서 한문이나 영어만 가르치는 전문가정도 늘어가고 있다.

 

               교육이란 어떤 교육이든지 그 목표하는 대로 배울 수만 있다면 그 교육은 이미 달성되었다고 볼 수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문제는 교육이념이 분명치가 않다.

 

              고등학교 때까지의 과정은 순전히 대학에 가기위한 교육으로 교육이념이 없는 입시교육에 불과하고

              대학교 과정 또한 그리 좋은 것만은 아니다.

 

              우리 대학의 현실은 하나의 사회에 진출하기위한 준비과정에 머물러 있고

              거기에서 올바른 가치관이나 삶을 위한 철학이나 사상등을 찾아 볼 수가 없다.

 

              특히나 산업사회와 정보사회에서 중요한 것은  기술일 진데 대학에서 전문학과 과정의 인기는 사라지고

              모두 기술을 위한 교육만이 가치가 되어가고 있다.


              이런 현실 속에서 과연 학생들에게 어떻게 졸업을 축하하며 충고해야 될지 여간 의문스럽지 않을 수없다.

 

              무엇을 축하해야 한단 말일까?

              그 동안 졸업장 따느라 수고했고 학교를 별탈없이 다녔으니 축하해야 한다고 말할까?

 

              자격증이 없이는 어떤 다른 일도 아무나 할 수없는 반드시 필요한 자격증!

              우리 교육의 졸업장은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의 자격증이 되고 말았다.

 

              빛 바랜 졸업식!

              진정 우리가 졸업을 축하하고 자랑스럽게 하기 위해서는 먼저 이러한 과정을 거친 사람들에 의해서

              우리 사회의 모순과 현실이 극복되고 새로운 변화를 이룰 수있다는 신뢰감을 그들에게 먼저 주어야 할 것이다.

 


              가슴이 따스한 사람 해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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