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과 추억이 있는 연희동            <정보자료>

 

 

 

            내 어릴 적 부모가 처음으로 터를 잡고 산을 깎아 마을을 이루던 곳

            지금도 서울 연희동에 가보면 저 멀리로 산 하나가 우뚝 서있고 그 꼭대기로 작은 군부대 하나가 보인다.

            밤에는 반짝반짝 조명이 돌아가고 낮에는 군인들이 쉴사이없이 산을 오르내리며

          아래로는 아직도 작은 물탱크 하나가 흉물스럽게 남아있다.

 

            그 위를 조금만 더 올라가면 행복을 가득담은 옥천샘이 나타나고

            좌측맨 아래로는 서대문구청이, 중앙 한가운데로는 방공호가 이제는 자연사 박물관이 되어 사람들을 부르고 있다.

 

            아주 오래 전, 이곳에서는 수많은 약장수들이  찾아와 "자 비암이 왔어요. 이 약 한번 먹어봐" 하면서

            매주에 꼬박꼬박 원숭이들을 풀어놓고 약을 팔며 재주를 부리던 장소였었다.

 

            지금은 모든 집들이 다 떠나가고 산(山)만이 외롭게 남아 있지만

            그 때까지만 해도 이곳은 사람들에게 희노애락을 안겨주던 내게는 꿈많은 동네였다.

 

            그 때일들을 가만히 떠올려 보노라면 이곳은 이따금씩 날라오는 잉꼬새로 모든 아이들에게 호기심의 대상이었고

            이 곳에서 만들어지는 온갖 놀이들은 어느새 이 동네 저 동네로 전국에 유행되기도 했다

 

            어디선가 한 마리 잉꼬새가 날아와 전신주에 앉아 뾰롱뾰롱하며 울고 있으면 동네사람들이 몰려와 구경을 하며

            어떤 사람들은 대나무를 가져와 끝에 나일론 끈을 매달아 잉꼬새를 잡기도 했다.

            노랗고 하얗고 파란 잉꼬새는 시력이 좋지않아 자주 참새들과 섞이며 잘도 날아다닌다.

 

            한 번은 우리 집 개나리밭으로 잉꼬새 한마리가 앉았는데 그 모습이 어찌나 사랑스러운지  나는 살금살금 다가가             잽싸게 잉꼬새를 잡아서

소쿠리에 넣고 창문가에 매달아 두었다. 

 

            그런데 몇 날이 지나지 않아 어머니가 모기를 잡는다며 그것을 이리저리 마구 뿌려대는 바람에

            잉꼬새는 몇일을 견뎌내지 못하고서 그만 꿈나라로 떠나고 말았다.

 

            잉꼬새를 만져보면 깩깩하며 손을 물어뜯기도 하고 따뜻하고 부드러운 그의 깃털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지금은 아무나 올라갈 수도, 다가갈 수도 없지만

            오래 전 군 부대의 공사가 시작되면서 마을에서도 돈을 벌 수있는 기회가 찾아왔다.

 

            연희동의 산 5번지 마을...

            군용트럭이 쉴사이없이 마을까지 벽돌을 싣고 내려다 놓으면 주민들은 경쟁하며 군부대까지 벽돌을 날라다 주었다.

            공중에서는 헬리콥터가 부지런히 장비들을 매달아 나르고 땅위에서는 주민들이 쉬지 않고 벽돌을 지고 날랐다.

            작은 것은 한 장에 10원, 커다란 것은 50원, 빨간 것은 30원, 깨어진 것은 반으로 깎아주기도 했다.

 

            어린 코 흘리게 아이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은 살갗이 벗겨지고 벽돌은 굴러가며 희생자들도 많았다.

            아주머니들은 수건으로 또아리를 만들고 아저씨들은 나무를 잘라 등지게를 만들고

            아이들도 벽돌을 가슴으로 안으며 부지런히 돈을 벌었다.

 

            사람들은 산을 오르고 힘이 들때에는 바위턱에 앉아 땀을 식혔고 어떤 사람들은 약수터에서 등목을 하였으며

            어떤 사람들은 풀 숲에 벽돌을 감춰놓고 자꾸자꾸 경쟁을 하기도 했다.

 

            산 위에 올라서서 일이 끝나고 나면 마치도 모든 것을 다 가진냥 세상이 내 눈안에 들어왔다.

            산 길이는 굽이굽이 수십 킬로미터나 되었고 서울의 모든 시가지들은 나의 발밑에서 아무 것도 아니었으며

            나의 머리는 핑핑돌며 잡시 어지러웠다가 시원하게 불어오는 맞바람도 결코 싫지가 않았다.

 

             아직도 마을에서는 아이들이 나와 신나게 놀고있는데 어떤 아이들은 딱지가 없어 구경만 하고 있고

             어떤 아이는 구슬치기로, 어떤 아이들은 다방구를 하며 놀고 있었다.

             가게에서는 일도 돈으로 바꿔주기도 한다는데 나도 그렇게 놀아야 하나...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벌어본  2.500원

             그런데 난 차마 그 돈을 거머쥐고서도 한 푼을 써 보지도 못했다.

 

             어머니는 일찌기 빵장수 나가시고 아버지는 중동에 나가시며 써야 할 것들도 많을텐데...

             마치도 죄인처럼 고민하다가 이 돈은 내 것이 아닌것처럼 어머니에게 돈을 슬쩍 드렸더니

             어머니께서는 나를 바라보시고는 그만 아연실색하시면서 노발대발하시면서 빗자루 꺼내들고 회초리 꺾어들고

 

            "이 눔의 자식! 하라는 공부는 하지 않고 누가 널더러 돈을 벌어오라고" 하시면서 분이 다 풀리도록

             내게 회초리를 퍼붓고는 나는 그 자리에서 뭐가 뭔지도 모른채  괜히 혼쭐이 나서 그만 엉엉울기만 하였다.

             그 날 처음으로 내 앞에서 하루 온종일 울고 계시는 어머니의 눈물을 바라보며

             얼마나 죄송한지 그 모습은 지금도 차마 잊을 수가 없다.

 

                                                                                                            해피의 연희동 변천과정 ①중에서

 

 

         

   가슴이 따스한 사람 해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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