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시절의 이성친구

 

 

 

 

오래 전 나의 고교시절에 짖궂도록 이성이 그리워

 

학교를 통학할 때마다 버스안에서 이성들의 가방을 들어주며

 

은근히 가방 속에다 메모 한장을 적어넣고 한번 사귀고 싶다면서 고백하던 그 시절이 있었다

 

 

 

검정교복과 푸른교복은 춘하추동 언제나 입고 다녀야만 했던 제복이었다.

 

 

 

교복을 입고 마음을 졸여가며 혹시나 선도부원들에게 붙들릴까

 

학교교정에 들어서면 그제서야 안도의 한 숨 길게 내 뿜고 주어진 자율학습도 잊은 채 나는 글쓰기에만 바빴다.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걷다보면 거리에서는 하나둘씩 남녀 학생들이 어울려 걸어가는 모습은

 

언제나 내겐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비가 내리는 날이오면 남,녀둘이 빨간우산 하나에 함께 걷고

 

눈이 오는 날에는 남,녀둘이 빵집에 앉에 도란도란 이야기하는 모습은 내게는 너무나도 질투의 대상이었다.

 

 

가끔씩 그 모습이 떠 오를 때면 밖으로 나가 아무 이성이나 붙잡고 말을 건네보고도 싶었지만

 

용기가 나질않아 가슴만 두근두근 망설일 때도 많았다.

 

 

 

언제부터인지 내게는 펜팔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한 때는 "여고생활"이라는 잡지가 나와 여고생들로부터 많은 인기가 있었다.

 

 

혹시나 하는 기대를 갖고 잡지를 구입하여 이성에게 편지도 보내보고

가요책, 문화책 할 것없이 뒷장의 주소란을 골라서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어떻게 무슨말로다 나의 심정을 표현할까...

 

마땅한 편지지도 없던 그 시절에 틈틈히 수집하던 예쁜 껌종이들은 나만의 향기로운 편지지였다.

 

 

 

수노아, 민들레, 라일락, 꽃편지등과 같은 예쁜 껌 종이들은 오늘날과는 다르게

 

학생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수집을 해볼만한 향기로움이 있었다.

 

 

예쁜 껌종이들을 한장 한장 길게 풀로 붙여 편지지로 만들기에는 제격이었다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어느 남학생이" 하면서 구구 절절  한통의 편지를 보내기 위해 밤을 새워 읽어보고 또 써 보고

 

창밖은 이미 날이 밝았는데 버려진 껌종이는 어느 새 휴지통을 가득 메웠다.

 

 

 

뜻밖의 이성에게 온 답장들은 혼자서만 보기에는 너무 아쉬워 학교 친구들에게도 자랑하려다가

그만 선생님께 들켜서 전체가 보는 앞에서 낭독했어야만 했던 일들은 지금도 생각해 보면 너무나 쪽팔려서 쥐구멍이라도 들어가 숨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 날 이후로도 이러한 답장을 기다리는 설레임은 계속 되었다.

내가 그렇게 다른 곳에 더 관심을 갖지만 않았더라도...

 

 

 

서울의 천호동 어느 여학생은 공부에는 관심이 없었고 날라리란 이미지만 잔뜩 심겨준 채 연락이 두절되었고

 

경기도의 금촌 어느 여학생은 그녀 형부의 적극적인 협조와 관심에도 불구하고 내겐 짐이 되어 자연스레 헤어졌으며

 

강원도의 속초 어느 여학생은 학기중에 유학을 떠난다며 작별하였고

 

 

경상도의 경산 어느 여학생은 부모님이 과수원을 하던 장애인으로

 

마음에 들지 않거든 찢어도 좋다며 자기의 상반신 모습의 사진 한장을 보내왔다.

 

그가 궁금하던 차 여름 휴강을 맞아 한번 찾아가 보았으나 찾을 수없어 하룻 밤을 그만 터미널에서 지새우고 돌아왔다

 

 

 

나의 재학시절 펜팔은 이성이 절실했던 호기심많던 사람들에게 교제의 한 방법이었다.

 

오늘날과 같이 개인정보가 노출되어 이용 당하기 전만해도 펜팔은

 

모든 사람들에게 설레임을 안겨주고 다리를 놓아주는 교제의 한 방법이었다

 

 

 

펜팔은 주로 유료와 무료로 나뉘어 유료는 국내펜팔과 외국펜팔을 대상으로 편지만을 주고받으며 이루어졌다.

 

여성은 무료이고 남성은 우체국에 도착된 여성의 우편물을 찾아가는 것으로 해결되었다.

 

상대로부터 연락이 오지 않을 때는 올 때까지 상대를 바꾸어 주기도 했다.

 

 

 

유료펜팔이 확산되면서 결혼과 재혼만을 전문으로하는 각종 업체들도 줄을 지어 등장했다.

 

 

 

우리 사회의 불 건전한 교제와 퇴폐적인 만남이 성행하게 된 것은 가정에 컴퓨터가 보급되면서 부터이다.

지금은 어디를 가나 모텔 산업이 확산되고 성(性)문화가 발달되어 자유롭게 펜팔을 할 수가 없지만

그것은 돈과 상업주의에 빠져 잘못된 性의식과 마음을 억누르지 못한 사람들에게서 비롯된 것이다

 

 

 

건전하고 순수한 만남의 교제는 오히려 생활에 활력을 불어넣어 교제를 통해서 많은 위로와 힘이 된다.

 

 

과거엔 주로 가요책이나 스포츠, 일간지, 어느 단체에서 발행된 정기간행물들을 통해서

 

회원을 확보하고 회원들과의 친목을 도모하며 순수한 만남에서 친교가 이루어졌으며

 

홀로 된 사람들에게는 정보와 다리를 연결시켜주는 중매인의 역할을 담당하기도 했다

 

 

 

지금은 아련히 사라지고 추억이 된 펜팔문화

 

가끔씩 내가 마음을 잃고 혼란스러워 할 때 의지할 수있는 친구는 지금 너무도 소중하다

 

친구가 보고싶다

 

 

 

 

 

 

 

가슴이 따스한 사람 해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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