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가 고작해야 기싸움인가?

 

 

 

               지난 과거 우리는 문사문화에 젖어 혹독하리만큼 고초를 많이 체험한 폐쇄국가였다.

               그러다가 1987년 제5공화국이 끝나갈 무렵 노태우 대표의 갑작스런 6.29선언이 터져나오자

               그 동안 억압속에서 갇혀 지내던 이 사회가 빠르게 개방적인 사회로 급물살을 타게 되었다.

               이런 선언이 나올 수밖에 없었던 주요 원인은 노태우씨 개인의 결심만이 아니라

               거대한 민중들의 압력이 그의 심경에 많은 변화가 왔기 때문이다.

 

               이런 역사의 전환을 가속시킨 또 하나의 요인은 88올림픽이었다.

               그 날의 석촌호숫가에 앉아 바라다 보는 잠실운동장의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오색 풍선이 하늘가를 수놓고 비둘기가 창공을 향해 축하를 해 주었다.

 

               처음에 올림픽을 유치하였을 때는 정치적인 목적이 크게 작용하였지만 모두가 마음을 열고 올림픽을 받아 들였을 때

               사상 유례없는 동서의 모든 국가들이 올림픽에 참가하여

               세계변화의 물결이 그대로 우리 사회 속으로 흘러 들어오게 된 것이다.

 

               이번의 국회에서 제기된 전두환의 숨겨진 추징법도 속 시원하게 파헤칠 것은 파헤치고 거둘 것은 거두어야 옳건마는

               그렇게 하지 못하는 까닭은 여전히 이를 막으려는 구세력들이 너무도 완강하게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신과 남에 대하여 얼마나 관대하고 용서하며 살아왔을까?

               우리는 가끔씩 TV를 볼 때마다 해외나 우리나라에 살고있는 어려운 사람들을 바라볼 때가 많다.

               그들을 바라볼 때 우리는 안타깝게 여기며 서로 도와 주어야 된다고 말하기도 하며

               기금을 모으고 어떤 때는 직접 찾아가서 봉사하기도 한다.

 

               그것은 자신이나 남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따스한 인간애였나? 순수한 동정심인가? 아니면 위선이였을까?

 

               똑같은 입장에서 생각할 때 북한은 우리에게 어떤 존재일까?

               저들을 바라볼 때 우리는 같은 민족, 같은 동포라 하면서도 모두가 정치권에 휘둘려 이러한 인간애는 잊지는 않았는지...

 

               언제는 이런 핑계, 저런 핑계를 대며 마치도 금방이라도 말만 잘 들으면 저들을 다 먹여 살릴 것처럼 말하면서도

               정작 현실에서는 무감각하게 저들을 정치적 도구로밖에 생각하지 않았던가?

 

               이번에 무산된 남북간의 당국회담도 마찬가지이다.

               도대체 기싸움이 얼마나 중요하기에 같은 민족끼리 격을 따지며 사람들을 골라서 만난다는 말인가?

               대통령도 앞으로는 국가를 위해 아무와도 만나지는 않겠다는 말인가?

 

               아무리 남북회담의 무산소식이 정부와 언론들의 허탈감이 크다고 해서

               오랜시간 정부만을 바라보고 있었던 개성공단의 기업들이나 우리 국민들의 상심만큼이나 클까?

 

               이러한 남북간의 당국회담 무산은 일찌기 처음부터 예견된 사실이었다.

               이 날은 남북이 나란히 판문점에 모여 의견 조율을 하고 있었을 때에

               우리의 안방 TV에서는 자칭 보수전문가들이 화기애애한 표정으로 하루 온 종일 떠들며 훈수를 하고 있었다.

 

               어느 종편을 엿 보아도 이들은 마치 추리 소설처럼 꿰어 맞추고 마침내 현 정부의 신뢰 프로세스가 성과를 거두었다며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며 흥분에 들 떠 있었다.

 

               그러면서 이들은 정부에게 이래라 저래라 이번 기회에 우리가 더욱 주도권을 잡고 북한의 비핵화를 끌어내며

               저들의 버릇까지라도 단단히 고쳐 놓아야 할 것이라며 잔뜩 벼르고 있었다.

 

               신뢰(信賴)란 미로처럼 어느 한 쪽 이야기만을 듣고서 무작정 따라가는 것이 아니다.

               신뢰란 함께가는 사람들이 아무런 조건없이 그저 상황을 따져가며 남에게 먼저 오라거나 바라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주도자가 먼저 앞서가고 손내미는 것이다. 한 술에 배부르랴!

               상대가 나설 수있도록 더욱 더 책임을 다하는 것이다.

 

               한 부부가 갈등중에 서로 싸움을 하는데 믿을 수가 없는데

               어느 한쪽에게 당신이 먼저 내게  무엇을 해준다면 나도 무엇인가 해주겠다고 말한다면 그것을 어느 누가 믿을까?

               진정으로 대화할 의지들은 있었을까?

 

               내가 주도해야 옳고 저들이 주도하는 것은 죽으면 죽었지 결단코 수용하지 않겠다는 사고방식은

               진정한 신뢰받는 자세는 아니다.

               한 치도 물러서지 않겠다는 팽팽한 기싸움에서는 아무리 회담이 많이 성사되어도 진정한 대화가 될 수가 없다.

               내 고집과 내 주장을 내려놓고 겸손하게 신뢰를 쌓아가겠다는 자세없이는 남북간의 어떠한 만남도 의미가 없다.

 

               신뢰란 기싸움이 아니다.

               세워주는 것이다. 칭찬은 고래도 춤을 추게 한다고 하지 않던가?

               신뢰란 약자를 먼저 세워주고 덮어주고 서로 화해하는 것이다.

 

 

 

               가슴이 따스한 사람 해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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