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민중항쟁추모탑

 

   국가 개조는 잘못된 역사를 바로 돌려놓는 것이다.

 

 

 

 

              누가 내게 주체성이 없는 발언이라고 시비 걸지는 모르지만

              한일 합방으로 부터 시작된 우리의 짧은 역사를 돌아 보면

              미일간의 포오츠 머드 조약(Portsmouth) 이나 강대국들의 카이로, 얄타회담의 결과로

              오늘의 남북이 두 동강이 났다는 것을 안다면 우리는 약소민족의 한을 어디가서 달랠 길이 없다.

 

              우리의 한반도는 마치 한 부부가 오랫동안 살다가 헤어진 어느 가정의 슬픈 현실과도 같다.

              평화로웠던 가정에 어느 날 힘센 장정들이 몰려와 가족들을 총칼로 위협하며 강제로 떼어 놓고 하는 말이

              너희들은 지금부터 함께 살아서도 안되고 만나서도 안된다며 협박을 하는 것과도 같은 상황이다.

 

              실제로 우리 민족은 2차 세계 대전 후 미국과 구소련의 잘못된 정치적 타협에 의해서 남북으로 분단되었다.

              더욱이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진영을 대표해서 남북은 처절하리 만큼 대리전쟁을 치루어야만 했고

              약소민족의 서러움을 맛보기도 했다.

 

              남북이 갈라진 것도 부끄러운 일이지만 동쪽끼리 서로 헐뜯고 싸우는 것은 더 없이 부끄러운 일이다.

              북한은 북한대로 남한은 남한대로, 북한은 구소련과 중국의 힘을 입고 남한은 UN과 미국의 힘을 입었다.

 

              북한에서는 주체사상이니 반동이니 운운하면서 적화통일에 급급하였고

              남한에서는 반공이니 빨갱이니 운운하면서 정권유지의 방편으로 삼아 왔던 것이다.

 

              그리하여 지난 5.16 군사 쿠데타가 일어 났을 때 군부는 쿠데타 과업을 완수하고

              군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겠다고 철석같이 약속을 하였지만 저들은 군으로 돌아가는 대신에

              정권을 장악하고 계속해서 집권을 하기 위해 보다 강력한 수단을 동원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들이 집권을 하고 있는 동안 우리 사회는 말할 수 없이 무서운 공포 속에 떨어야만 했으며

              저들의 총칼 앞에 사람들은 머리를 조아리며 충성을 맹세하고 말없이 협조를 해야 했다.

 

              그들이 누구인가?

              지금의 보수를 자칭하는 정치인이었고 언론이었으며 경제계, 교육계, 종교계들도 있다.

 

              그들은 정의가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오로지 자기들이 하는 일은 다 옳고

              그들에게 반항하는 무리들은 적색분자로 몰아 이 사회에서 영원히 추방을 시켜왔던 것이다.

 

              그러다가 지난 2000년 6월 13일에는 평양에서 사흘동안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 간의

              역사적인 남북 정상 회담이 있었다.

 

              6월 15일에는 남북 정상들 간의 "남북 공동 선언 합의서"가 채택되었으며 이로써 남북 간에는

              전쟁의 공포를 상당 부분 완화시키고 한 민족의 동질성을 전 세계로 각인시키는 기초가 마련되었다.

 

              우리는 누구나가 고난을 만나면 고난을 가져다 준 상대방을 저주하며 미워하게 된다.

              고난을 당할 수록 우리의 증오심은 더욱 더 깊어지게 마련이다.

 

              우리는 아직도 일본에 대하여 뿌리깊은 증오심을 갖고 있다.

              36년 간의 나라를 잃었던 그 아픔에 대한 기억과 더불어 한국 전쟁을 도발한 북한 집단에 대해

              적개심까지 겹쳐서 우리 민족의 가슴에는 증오심으로 퍼렇게 멍이 들어 있다.

 

              거기에다가 군사정권에 의해 저질러진  광주시민의 대량 학살은 아직도 그 증오심이 깊게 남아 있다.

              아직도 그 책임자가 누구였는지 잘못을 인정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국가 개조란 마치 어린이가 장난감을 만들 듯이 적당히 조립하는 놀이가 아니다.

              국가 개조가 무슨 장난인가? 어느 누가 그 것을 개조하고 인정한단 말인가?

 

              무엇이 잘못이고 어디부터 잘못되었는 지를 당사자들은 곰곰히 생각해 보고

              국민들이 읽어주는 설명서를 제대로 들어보아야 할 것이다.

 

              이제 우리는 단일 민족의 동질성을 회복하고 북한에 있는 동포들을 가족처럼 여기며

              그들을 따스한 아량으로 끌어 안아야 할 것이다.

 

              군사적인 힘이나 경제적인 힘만을 자랑하지 말고 오직 뜨거운 형제애를 자랑하며

              서로가 용서하고 화해하며 하나가 되어야 할 것이다.





                 가슴이 따스한 사람 해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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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도자의 잘못과 유감

           

         영화 <포세이돈 어드반쳐>에 보면 커다란 호화 여객선이 바다에 지진이 일어나서 그만 뒤집히고 말았습니다.

         이 절망적인 상황에서 사람들은 그저 막연히 구조되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한 젊은 목사가 용감하게 나서며 탈출을 주장하자 몇 사람이 따라 나섰습니다.

         그들이 막 위층으로 올라갔을 때 밑에 있는 사람들은 물이 갑자기 들어와서 모두가 몰살되고 말았습니다.

 

         목사 일행은 선미를 향해 가는 도중에 여러 가지 난관에 부딪치게 됩니다.

         그 때마다 많은 문제가 발생하지만 그들은 쉬지 않고 계속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마침내 목표했던 선미(船尾)에 도달했습니다.

         그러나 새어 나오는 증기 때문에 마지막 난관을 돌파할 수 없게 되자 목사 자신이 밸브(Valve)에 매달려서

         증기를 차단하고 그는 추락하여 죽고 맙니다.

 

         그의 희생을 바탕으로 일행은 마침내 구조가 되었다는 교훈적인 이야기입니다.

 

         우리도 이 목사처럼 절망적인 상황속에서도 희망을 부르짖으며

         우리에게 필요한 지도자는 어떤 사람이어야 하고 어떻게 해야 하는 지를 깨달아야만 할 것입니다.

 

         사실 한 국가의 도덕 수준은 그 나라의 지도자의 도덕 수준을 넘기 힘듭니다.

         불의는 언제나 높은 지위에서 세인들의 존경을 받고 고상하게 여기는 사람들에 의해 은밀하게 저질러 집니다.

 

         무서운 말라리아 같은 병은 습지에서 시작하여 고지로 퍼져 가지만 도덕적인 불의는 고지로부터 시작하여          

         저지(低地)로, 일반 서민들에게까지 번지는 것입니다. 

 

         그들이 저지르는 죄의 심각성은 그들은 결코 높은 지위에 있을만한 인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만일에 고위 공직자가 부적격자 임에도 불구하고 그 지위만을 탐내어 부정한 방법으로 그 자라에 올랐다면

         그는 자신과 여러 사람에게도 죄를 지은 것입니다.


         공직자가 의학에 대해 모른다는 사실 자체는 전혀 잘못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가 의학의 전문가 인냥 행세한다면 그는 높은 수준의 사기 행각을 벌이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운전을 하지 못하는 것이 평상시에는 아무런 죄가 되지 않지만 거센 풍랑속에서 자기가 배를 몰아야 할 때에는

         귀중한 한 사람 한 사람의 핏값까지도 자기가 책임을 져야 할 것입니다.

         더 나아가 부적격한 지도자가 국가의 대사를 결정하고 민족의 생사권을 좌지 우지한다면

         우리는 그에게 무엇이라고 해야 할까요?

 

         여러 사람의 생명과 국가의 존망이 위태로울 때 지도자가 자기의 의무를 다하지 못한 만큼 슬픈 일도 없습니다.

         지도자들이 존경만 받으려고 하고 희생하기를 꺼려 한다면 누가 지도자라고 할 수 있을까요?

 

         국가 존립의 위기가 몰아 닥쳐 지도자가 떨리는 두 손으로 배의 키를 움켜 쥐고 있을 때

         우리는 그에게서 무슨 기대를 걸어야 할까요?


         진정한 리더쉽은 위기 때일 수록 빛이 나는 법입니다.

         위기 때의 지도력이야 말로 진정한 지도력입니다.

 

         그런데 지금 정부는 또 다시 경제를 들먹거리며 자기들만 빠져 나갈 궁리만 하고 있습니다.

         걸핏하면 국민들을 향해서 사회불안을 조장하지 말고 국민분열을 획책하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너무도 무책임하고 자기들의 무능과 국민들의 비난을 딴 곳으로 돌려 보려고 하는 꼼수입니다.

 

         옛 말에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글까? 법 무서워 산에 못 가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 말은 조금은 거치는 것이 있다고 할 지라도 의례히 해야 될 일은 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우리 사회의 잘못된 의식 중의 하나는 이미 일어난 사건마다 무엇이 그리 대단한 일이라고 크게 잔치를 벌려주고

         아무리 중대한 일이라도 별로 대수롭지 않는 일처럼 넘겨버리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거기에서 별로 공감을 얻지 못한 채 혼돈과 무지에서 방황을 하며

         오늘에 까지 이르게 된 것입니다.

 

         고난을 통해 우리는 새롭게 눈을 떠야 할 것입니다.

         고난은 누구나 다 당하기를 싫어하는 것이지만 그러나 고난에는 우리의 잠자던 영혼을 깨우는 힘이 있습니다.

 

         이 민족이 겪는 시련을 강 건너 불보듯 하지 말고 그 속에 우리 무지가, 우리 잘못이 들어 있음을 깨닫고

         우리는 깊이 성찰해야 할 것입니다.

 

         국가의 경쟁력은 단순히 눈에 보이는 것만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은 경제 회복도 중요하지만 더욱 더 중요한 것은 잃어버린 우리 국가의 희망을 찾는 일입니다.

 

         비록 눈에는 잘 보이지는 않지만 승리의 원료중에는 우리 국민들의 땀과 눈물과 피도 섞여 있습니다.

         그것은 모든 것이 우리 국민들의 손에 달려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리하여 정부는 더 이상 우리 국민들이 분열되지 않도록 남북대결을 자제하고 권력쟁탈을 중단하며

         상처난 국민들의 가슴을 치유하여 속히 희망을 불어 넣어주어야 할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뚜렷한 신념이 없는 지도자들은 스스로 물러나야 할 것입니다.

         온갖 뇌물과 청탁이 오고가는 유혹속에서 자신이 서지 않는다면 함부로 나서지도 마십시오.

 

         우리 국민들도 그 동안 얼마나 많은 정치인들과 기업인, 공직자들이 부정으로 신세를 망치고

         우리들에게 실망을 안겨 주었는지

         어떤 사람이 나라를 지도하기에 적합한 지를 정의의 관점에서 심사숙고 해야 할 것입니다.

 

 

         가슴이 따스한 사람 해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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