헛된 논쟁을 삼가라

 

 

 

 

          우리는 지난 2014년 4월 16일 TV를 통해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떠난 세월호가 침몰하여 수 많은 인명들이 죽어간

          역사적인 사건을 지켜보았다.

 

          수 많은 국민들도 팽목항에 나와서 자꾸만 바닷 밑으로 끌려가는 학생들을 생각하며 망연자실하며 울고 있었다.

          급기야는 유가족들이 거리로 몰려나오고 항의도 해보지만 안타까운 그들의 심정만은 아직도 위로가 되지 못하고 있다.

 

          우리가 저들 보다도 먼저 발 벗고 나서서 자기 일처럼 도와 줄 수는 없었을까?

          도대체 세월호의 특별법이 무엇이길래 국가는  저들에게 그것만은 안된다며 저리도 완고하게 나오는 것일까?

          우리는 언제까지 이렇게 사람의 목숨을 가지고 흥정하며 정치적으로 해결하려고만 하는 것일까?

          진실로 대한민국 안에서 아이들의 미래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생각하면 할수록 이 모든 것들은 자꾸만 우리들의 마음을 슬프게만 한다.

 

          대개 사람들은 논의를 하고자 할 때에 서로 의견이 잘 맞으면 어떤 어려운 일이 있더라도 능히 해낼 수 있다.

          그러나 논의가 길어지고 논쟁이나 정치이야기로 흘러 집안 싸움까지 번지면 그 논의는 아무 의미가 없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자기의 욕구가 충족되지 않고 도를 넘어 지나치게 시간을 오래 끈다면 짜증을 부리는 것이다.

 

          말다툼이란 본질적으로 무익한 것이다. 그리고 논쟁의 주제가 말에 대한 문제일 때는 더욱 무익하다.

          말다툼은 의심스러운 것을 해소시켜 주기 보다는 누가 더 힘이 쎈지 오히려 의심을 더욱 증폭시킨다.

 

          물론 논쟁은 필연적인 것이기는 하지만 반대로 필연적인 악이기도 하다.

          이성과 논리에 근거한 시비는 자주 현인(賢人)들에 의해서 권해지고 실행되어져 온 것이다.

 

          그러나 그 함께하는 무리들이 정당한 이유를 거부하고 격한 감정으로 나아갈 때 다툼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 때에 자기를 변호하기 위해 사용했던 모든 방법은 오히려 분열을 확대시키며 적대감을 부채질하는 격이 되고 만다.

 

          비록 그 다툼의 문제가 많은 사람들의 주목거리는 되지 못할지라도 그것은 공익에 대한 가장 중요한 사실들을

          사람들이 주목하지 못하게 한다.

 

          심지어 사람들은 처음에 다툼이 왜 시작되었는 지도 잊은 채 사소한 충돌에서 시작하여

          급기야는 피 흘리는 일까지 계속되는 것이다.

 

          인간은 쉽게 해결할 수없는 어떤 문제에 부딪혔을 때에 분위기 전환을 위해 때때로 말다툼을 벌이기도 하지만

          그것은 결국 분쟁만 일으키고 시간만 허비하는 유치한 장난에 불과한 것이다.

 

          옳고 그름을 따지는 모든 싸움들은 상대적이어서 우리는 대단히 깊이 관여하거나 상관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인간의 정의를 혼란시키고 빛을 가리며 사회질서를 파괴하는 싸움에는 모두가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하고

          우리의 아름다운 세상을 위해서라도 우리는 당연히 싸워야 한다.

 

          우리들 가운데에 비록 그들에게 용기를 주는 사람이 없더라도 불의 앞에서 참지 않고

          정의의 이름으로 증언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만은 절대로 잊어서는 안된다.

 

          우리가 무엇이 옳고 그른 가를 알고자 할 때에는 어떠한 원칙들이 있다.

          그것은 누구나가 인정할 수있는 합리적인 주장이어야 하고 방법은 언제나 정당해야만 한다.

 

          그러나 말꼬리만 잡고 늘어지는 사람은 마치 줄다리기를 하는 사람처럼 답을 찾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서 무언가 모면하려고 하는 계략이 숨어 있다.

 

          여기에서 밀리면 모든 것이 끝장이라는 생각으로 모두가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것이다.

          결국 이러한 논쟁은 아주 해로운 것일뿐만 아니라 논쟁을 하고 있는 당사자들까지도 해롭게 만든다.

 

          이와 같이 우리의 정치인들도 처음에는 서로 만나서 화기 애애하게 논의를 한다.

          그러다가 대화가 중단되고 나면 협상을 하게 되고 협상이 깨어지고 나면 상대를 비난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의 전략일뿐 결론은 오직 한 가지 자기들의 방식대로 해결되는 것이다.

 

          과거 우리 정치인들은 자기들에게 불리한 일이 닥쳐오면 한 쪽에서는 시간을 끌어가며 국민들을 자극시키고

          다른 한 쪽에서는 언론이나 사법부들을 끌어다가 상대를 자극시켜 왔다.

          그런 명분이 주로 경제이야기나 서민이야기이며 정치인에 대한 나쁜 이야기다.

 

          오늘날의 정치인들이 훌륭하다고 평가를 받으려면 이런 전술을 효과적으로 잘 구사해야 한다.

          이런 전술을 잘 해내야 자기 정권을 효과적으로 지킬 수 있고 유지할 수가 있는 것이다.

 

          우매한 국민들은 아무 것도 모르면서 그러려니 하고서 무조건 따라가는 것이 고도의 정치이다.

          정치란 한 마디로 사람들을 묶어 놓고 그들을 통치하는 기술을 말한다.

 

          그리하여 정치인들은 흩어지려는 사람들을 하나로 연대시켜 자기에 대항하는 세력들을 몰아내고

          거기에 자기들의 왕국을 건설하는 것이 정치인들의 속셈이다.

 

          결국 인간의 흩어지려는 마음은 누구에게도 간섭받지 않고 자유를 갈망하는 몸부림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의 개인주의적 성향은 인간이 바라보고 나갈 삶의 중심을 잃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인간이 삶의 중심을 다시 찾을 때 우리는 진정한 하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우리 모두가 바라고 있는 진정한 아름다운 세상이 아니겠는가?

         

          진리의 싸움에는 나쁜 전략으로 인해서 많은 싸움들이 패배해 왔다.

          그러나 진리의 싸움에는 노련한 장수처럼 공격을 지도할 수 있는 지도자가 필요하다.

 

          우리가 만일 우리의 내면이나 주위에 있는 불의한 적을 물리치려 한다면

          우리는 우리의 지적이나 도덕적인 모든 힘을 모아 불의와 싸워야만 한다.

          그러면 우리는 반드시 승리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일어나는 부정부패의 대다수가 정의를 외면한 잘못된 정치에 있기에 우리는 더욱 더 정의를 강조해야만 한다.

          이렇게 정의를 외쳐야 할 사람들에게 엉뚱한 사람들이 나타나 자기들이 정의이며 따라오라고 강요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가 거기에 굴복할 때 마침내 우리는 자유를 상실한 채 그들의 노예가 되어 버리고 말 것이다.

 

          거짓이 진실이 될 수 없는 것처럼 어떤 사람이 힘을 이용하여 양식산을 자연산이라고 우긴다 해서 자연산이 될 수는 없다.

          양식은 양식이고 자연은 자연이다.

          본질을 망각한 채 헛된 논쟁을 삼가라는 말이다.

 

 

 

          가슴이 따스한 사람 해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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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호의 최종책임은 대통령 자신이다.

 

 

 

 

 

          우리는 일생을 살아가는 동안에 놀라는 경험을 자주 갖게 되는데 그 가운데는 너무 갑자기 찾아온 기쁨이나

          갑자기 닥친 슬픔으로 놀라는 경우도 있다.

 

          기쁨이나 즐거움으로 놀라는 경우는 우리의 삶을 활기있고 생동력이 넘치게 하지만 슬픔이나 두려움으로

          놀라는 경우는 우리의 삶을 침울하고 어둡게 만든다.

 

          며칠 전 우리는 TV를 통해서 그 동안에 우리 사회를 큰 충격에 빠트렸던 전 세모 그룹의 회장 유병언의 죽음

          을 보며 또 한번 충격을 받아야만 했다.

 

          22일 경찰청 관계자는 유 전 회장으로 의심되는 사신을 발견하여 국립과학 수사연구원에 의뢰한 결과 DNA

          와 지문등이 유병언의 그것과 일치된다고 밝혔다.

 

          경찰청은  지난 6월 12일 전남 순천시 학구리 송치재 매실밭에서 심하게 부패되어 있던 변사체를 수습하고

          자신들은 그 동안 아무 것도 몰랐다는 듯이 유병언의 구속영장을 재발부하고 철저하게 국민들과 언론들을

          따돌려왔다.

 

          그것이 타살이든 자살이든 아니면 제3의 원인이든지 그의 죽음이 사실이라면 국가와 정부는 국민들앞에

          먼저 대국민 사과를 해야할 것이다.

 

          지난 몇 개월 동안 우리는 세월호의 참사속에서 오로지 진실만을 찾기 위해 한 사람만을 쫒고 있었다.

          그러나 국가와 정부는 세월호의 진범으로 유병언을 지목하였고 그에게 내건 현상금만해도 어마 어마 했다.

 

          박정부를 따르는 뉴라이트에서 조차 거액의 현상금을 내놓았고 자신들의 억울함을 밝히기 위해 구원파측에

          서도 거액의 현상금을 내건 상태였다.

 

          매일같이 종편 방송에서는 유병언을 처음부터 박정부와 함께 물 속에 빠트린 주범으로 기정 사실화하였고

          그를 날마다 도마 위에다 올려놓고 마음껏 난도질을 하였으며

          그와는 적대적인 관계에 놓여있는 사람들을 모셔다가 그의 행적을 추적하기도 했다.

 

          그러나 처음부터 박근혜 정부의 관심은 진실규명보다는 당장에 떨어진 박 대통령의 지지율부터 끌어올려

          놓고 보자는 것이 그들의 목표였다.

 

          그리하여 박 대통령은 세월호의 최종책임은 자신에게 있다고 말하면서도 그의 행동은 유병언에게로 쏠렸고

          그를 더욱 알리며 그를 잡는데에만 주력해 왔다.

 

          전국적인 반상회를 통하여 유병언 알리기에 적극 홍보를 하였는가 하면

          수 천명이 넘는 검경들과 군병력들은 탐지견을 앞세워 대대적인 군사작전을 방불케 했다.

 

          어떻게 그 긴 40일 동안을 국가와 정부는 아무도 모르게 국민들과 언론들을 따돌려 왔을까?

          처음부터 국가와 정부가 국과수로 보낸 시신이 유병언과 매우 흡사하다는 말만을 했더라도

          이렇게 국민들이 난리를 치고 국가에게 농락을 당했다는 허망함은 없었을 것이다.

 

          혹시나 국민들이 아직도 모르고 있는 시나리오같은 것은 없는 것일까?

          과연 세월호의 참사가 유병언 한 사람만의 책임일까?

 

          그는 이제 죽어 버렸고 공소권도 없는 마당에 이제 더 이상 세월호의 진실은 사라져 버린 것일까?

          아니다. 세월호의 책임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한 국가의 책임이 아직 더 남아있다.

 

          박근혜 대통령도 스스로 인정했듯이 어쩌면 세월호의 최종책임은 박근혜 대통령인지도 모른다.

          국가는 얼마든지 살릴 수도 있었던 생명들을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며 대형참사를 키웠는 지도 모른다.

 

          그들의 말대로 세월호의 참사가 교통사고 였다 하더라도 1차 원인은 운전기사의 조종 미숙에 있고

          2차 원인은 쓰러져 있는 사람을 보고서도 아무런 조치도 못한 국가책임은 피할 수가 없다.

 

          저들이 집요하게 국회의원에 출마하는 권은희 죽이기에 사력을 다하고 있는 것만 봐도

          위기에 내 몰린 집권당과 조중동들이 현 사태의 여론을 무마시키고 다가오는 7.30 재보선에 영향력을 주며

          지난 날에 국정원이 저지른 대선 불법 선거까지도 정당화 시키려고 하는 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오늘날과 같이 집권당과 조중동들이 손을 잡고 일하는 한 그들과 싸워 정치를 한다는 것은

          누가 봐도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종종 다른 사람을 비교하며 다른 사람의 행동이 자기 자신보다더 파렴치 하다고 말할 때가 있다.

          그러나 그것은 더 큰 자기기만에 빠지기가 쉽다.

 

          우리는 다른 사람과 같은 환경에 처해 있지도 않고 분명히 그들보다 더 낫지도 않다.

          또한 우리로서는 그들이 처한 환경을 정확히 안다거나 판단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남의 일을 참견하고 간섭하는 사람을 범죄라고 볼 수는 없겠지만 지나치게 남의 일에 참견하는 사람은

          무언가 큰 죄를 짓고 있는 것이다.

 

          종교의 목적은 서로를 분리시키고 개인의 이익에만 관심을 두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이와는 반대로 종교는 만인의 형제애와 사랑을 가르치고 있다.

 

          형제애와 사랑은 이웃의 문제에는 관심을 갖지 않는다는 가정과는 반대된다.

          그런데 모든 경우에 있어서 분명한 일반적인 원칙이 있다.

 

          그것은 우리가 하는 일에 전체의 유익을 증진시켜 하나님께 영광이 될 수만 있다면

          우리는 다른 사람의 일에 적극적으로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불간섭이라는 구실아래 자신의 몸을 사리지 말아야 할 것이며 악을 단절시키려는 노력

          이나 진리를 옹호하고 고통을 위로하며 희망을 선포하는 일에 게을리 해서는 안될 것이다.

 

          관심(關心)이 어떤 것에 끌리는 마음이라면

          간섭(干涉)은 남의 일에 부당하게 개입하여 소동을 일으키는 것을 말한다.

 

          그리하여 남의 일에 간섭하기 좋아하는 사람은 이웃 가정의 비밀을 꼬치 꼬치 캐내길 좋아하며

          정부의 복잡한 문제뿐만아니라 다른 사람에 대해서도 상상하고 단정을 내려 버린다.

 

          그런 사람은 마치 자신이 조사관인 것처럼 행세하며 주위의 일들을 모르는 것이 없다.

          이웃 간의 불화의 씨는 그런 사람이 뿌리고 다니며 사람들은 그로 인해서 화가 나게 마련이다.

 

          거기에다가 남의 일을 호기심으로 알아낸 사실들은 틀림없이 어떤 고자 장이에 의해서 한 가정의 비밀은

          우스운 얘기거리가 되고 만다.

 

          대개 이러한 사람들은 할 일없이 쏘 다니는 사람이요 수다장이 여인들 같고 권력과 결탁한 자들이다.

 

          사실 오늘날 박근혜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국가 개조 운동도 정작 개조되어야 할 사람들이

          오히려 국가 개조를 부르짖고 있는 것이 아닌가?

 

          박근혜 정부가 국가 개조를 한다고 큰 소리치며 2기 내각을 서둘렀지만 그 동안에 비리에 연루되었던

          자신의 사람들이 줄줄이 몸을 털고 일어나는 것을 보면 그의 국가 개조는 한계가 있다고 보아야 한다.

 

          새 출발이란 지난 과거와의 철저한 단절을 전제로 한다.

          부정직하고 책임질 줄 모르는 사람들에게 새 출발을 기대할 수는 없다.

 

          이러한 전제 조건을 충족시키고 나서 곪을 대로 곪아 버린 정경유착을 끊고

          국가 개조를 서둘러 추진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국민의 대다수가 의심하고 있는 각종 사안에 대해서 철저한 진상규명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이 길만이 무너져 버린 박근혜 정부가 신뢰를 다시 회복하고 새롭게 거듭날 수 있는 가장 빠른 길이다.

 

 

 

          가슴이 따스한 사람 해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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