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을 아름답게

 

 

 

 

 

 

 

                추운 겨울이 지나가고 따스한 봄이 오

                자연은 어디선가 꽃샘추위를 몰고 오고 사람들은 꽃샘추위에 몹시도 당황을 합니다.

 

                고난은 누구나 다 당하기를 싫어하는 것이지만

                그러나 고난에는 우리의 잠자던 영혼을 깨우는 힘이 있습니다.

 

                얼마 전 서울의 한 강연장에서 일어난 리퍼트 美 대사의 피습사건을 보면서

                60년 전 한국 전쟁의 상처가 이렇게도 크게 남아 있을 줄 미쳐 생각지 못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언론에 동조하며

                어떤 이들은 김기종씨를 테러분자라고 비난하고 

                어떤 이들은 美 대사를 향해 춤을 추며 영웅으로 모셨습니다.

 

                그러나 이 보다도 안타까운 사실 하나는 우리 사회에 무슨 일만 터지면

                항상 반복되는 종북 논란과 국가 보안법은 무엇인지

                우리를 더욱 위협하는 무서운 존재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 동안에 우리는 단 한 번도 이 민족이 당한 고난의 의미를 깊이 생각하지 않은 체

                안보만을 높여 왔고 민족 분단을 정권 유지의 유리한 방패막이로 사용하여 왔을 뿐입니다.

 

                우리는 너무나 큰 전쟁을 겪었으면서도 거기서 얻은 교훈이 기껏해서 안보뿐이라면

                우리는 그 전쟁이 주는 많은 교훈을 상실하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래 전에 <25시>의 작가 게오르규 씨가 한국을 방문했을 때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 인생 항로의 괴롭고 어려운 시련을 이겨낸 사람에게는 누구나가 모자를 멋고 인사를 드리게 됩니다.

                지구상에서 한국 민족처럼 괴로움을 당한 민족이 없어 나는 존경하는 마음으로 인사하고 싶습니다 "

 

                그는 그의 작품 <25시>에서 " 빛은 동방에서 온다 "고 말하며 그 동방이 바로 한국이라고 말했습니다.

                그것은 한국인이 무척 괴로운 시련을 겪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정말 그가 말한 대로 괴로운 시련을 겪은 민족임에는 틀림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고난 속에서 그가 말하고 있는 어떤 빛을 찾았는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고난은 당한 것만으로는 값진 것도 아니며 그 고난의 의미를 깨달을 때

                그래서 어떤 빛이 나올 그 고난은 더욱 값진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세계사에서 이스라엘 만큼이나 수난을 많이 겪은 나라가 또 있을까요?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를 보면 강대한 나라들 틈바구니에 끼어 끊임없이 침략을 받고

                이리저리 쫒기는 고난의 역사였습니다.

 

                이러한 고난을 보며 예언자들은 한결같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내산에서 맺은 하나님과의 계약을

                성실하게 지키지 않았기 때문에 오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고난의 일차적인 의미를 죄에 대한 형벌로 이해 하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언자들은 끊임없이 그 민족에게 회개를 촉구하였습니다.

 

                유대인들은 지금도 매일 통곡의 벽앞에 나가 죄를 고백하고

                그들의 성전이 복구되어 경배하는 날이 오기만을 기도하고 있습니다.

 

                통곡의 벽앞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날은 티사 밥(Tishe B`ab)으로 그들이 우는 날로 가장 슬픈 날입니다.

                그 모습이 어찌나 애처로운지 가던 사람도 돌아설 지경입니다.

 

                만약에 인과응보(因果應報)사상이 죄를 지은 사람에게는 응당한 고난이 온다는 것이 맞다면

                고난은 하나의 형벌로 이해 되어져야 할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민족이 당하고 있는 고난도 어쩌면 우리가 저지른 죄에 대한 하늘의 경고는 아닐까요?

                정권욕에 사로 잡혀 국민들을 돌보지 아니한 정치가들의 죄와 이 시대에 의미를 부여하지 못하고

                역사를 해석하여 비젼을 제시하지 못한 창백한 지성인들의 무기력함에 대한 진노인 줄도 모릅니다.

 

                이 민족앞에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선포하지 아니하고

                분열만을 거듭해 온 교회의 잘못에 대한 대가(代價)인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이제까지 자기가 잘못했다고 시인하는 정치가들을 보지 못했으며

                모든 일의 책임을 통감하고 물러나는 지도자들을 보지 못했습니다.

                결국 우리의 양심이 둔화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고난의 일차적인 의미가 죄에 대한 댓가라면

                왜 죄 없는 사람들까지 애매하게 고난을 당해야만 하는가 라는 의문이 생깁니다.

 

                이런 의문은 옛날에만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세계 역사 속에서 끊임없이 반복되어져 온 사실입니다.

 

                히틀러의 나치 정권 밑에서 아무 죄없이 학살당하고 수 많은 유대인들이 부르짖었으며

                미국의 흑인 노예들이 채찍 밑에서 신음하며 울부 짖어 왔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유신시대와 군사정권 밑에서 무고한 사람들이 박해를 받고 자유를 부르짖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이산가족 상봉을 지켜 보면서 느낀 것은 고난 당한 것은 애매한 민중들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어린 학생들은 또 무슨 죄가 있어서 사랑하는 부모님께 마지막 작별인사도 못드린 체

                지옥같은 그 세월호에서 구슬픈 눈물 하염없이 흘리면서 꽃잎처럼 떨어져야만 했을까요?

 

                여기에는 분명히 고난보다는 더 깊은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보다 더 깊은 고난의 의미가 무엇일까를 찾으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러다가 알게 된 것이 모든 육체와 정신이 무너져 버린 곳에서 진정 영혼이 빛을 발한다는 사실을

                깨달아 알게 된 것입니다.

 

                위대한 영혼은 고난을 통해서 빛나는 법입니다.

                고통이 결여된 인생은 천박하고 그 예술은 사람의 심금을 울리는 깊이와 영감을 가질 수 없습니다.

                이것은 개인이나 한 민족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일찌기 인도의 시성 타골도 한국을 가리켜 " 아시아의 황금 시대에 빛나던 등불 "로 보고

                그 등불이 다시 한번 켜지는 날 동방의 밝은 빛이 될 것이라고 소개한 바 있습니다.

 

                중국의 석학 임어당(林語은 한국에 왔을 때 거문고 소리를 들어보며

              " 우는 소리와 절규하는 소리가 같이 난다 "면서

                감각으로는 우는 소리가 들리고 영감으로는 절규하는 소리로 들린다"고 하였습니다.

 

                오랜 고통의 누적에서 우러나는 절규이며

                그것은 앞으로 국제시대에 소중하게 평가될 한국의 희망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이 약소민족인 우리가 겪고 있는 고난은 결코 우리만의 고난일 수가 없습니다.

                우리 민족의 통곡은 전 세계가 당해야 하는 아픔을 대신하고 있는 고난임이 틀림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 고난을 통해서 일어선 우리 민족의 빛이 온 세계를 비추는 희망의 빛이 될 수있습니다.

 

                우리는 폭력으로 이루어진 사회를 정당한 것이라고 받아 들여서는 안됩니다.

                아무리 그럴 듯한 명분이 있다 하더라도 우리 안의 어떠한 폭력이나

                대륙간 탄도 미사일 사드 도입같은 무기는 단호하게 막아야 할 것입니다.

 

                미국이 무기를 개발하는 명분은 세계 평화를 위한다고 하지만 그들이 내다 파는 무기가

                오늘날 세계 도처에서 전쟁을 야기시키고 있다는 사실을 볼 때 평화를 위한 무기란 논리적으로나 가능하지

                실제적으로는 인명을 살상하는 무서운 무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악을 막는다는 명분으로 또 다른 폭력을 사용한다는 것은 우리는 결코 용납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봄이 오는 길목에서 꽃샘추위가 우리에게 들려주는 소식은

                꽁꽁 얼어붙게 하던 겨울은 이제 가고 만물을 소생하게 하는 봄이 왔다는 기쁜 소식입니다.

 

                앙상한 나뭇가지가 영광스러운 부활 승리를 위해 꽃샘추위를 이겨내고

                美 대사의 피습사건으로 인하여 한미동맹이 더욱 더 강화된 것처럼

                우리가 겪고 있는 이 고난을 헛되게 하지 말고 거기서 참된 의미를 찾아내며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가슴이 따스한 사람 해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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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 이렇게 말했어요.

 

 

 

 

 

                                지난 (5.29일) 어느 기사 가운데에 

 

 

                                100일만에 대형참사 6건, 대한민국 왜 이러나...
                               "경주 리조트 참사 100일 만에 세월호·열차추돌·요양병원 화재까지" 를 읽고서

 

                                        http://media.daum.net/society/affair/newsview?newsid=20140529042004300  

 

                                난 이렇게 말했어요.

 

                                항상 겉만 바라보는 사람들...

                                그 속은 이미 병들었다는 반증이라고요...   

 

 

 

                                가슴이 따스한 사람 해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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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도자의 잘못과 유감

           

         영화 <포세이돈 어드반쳐>에 보면 커다란 호화 여객선이 바다에 지진이 일어나서 그만 뒤집히고 말았습니다.

         이 절망적인 상황에서 사람들은 그저 막연히 구조되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한 젊은 목사가 용감하게 나서며 탈출을 주장하자 몇 사람이 따라 나섰습니다.

         그들이 막 위층으로 올라갔을 때 밑에 있는 사람들은 물이 갑자기 들어와서 모두가 몰살되고 말았습니다.

 

         목사 일행은 선미를 향해 가는 도중에 여러 가지 난관에 부딪치게 됩니다.

         그 때마다 많은 문제가 발생하지만 그들은 쉬지 않고 계속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마침내 목표했던 선미(船尾)에 도달했습니다.

         그러나 새어 나오는 증기 때문에 마지막 난관을 돌파할 수 없게 되자 목사 자신이 밸브(Valve)에 매달려서

         증기를 차단하고 그는 추락하여 죽고 맙니다.

 

         그의 희생을 바탕으로 일행은 마침내 구조가 되었다는 교훈적인 이야기입니다.

 

         우리도 이 목사처럼 절망적인 상황속에서도 희망을 부르짖으며

         우리에게 필요한 지도자는 어떤 사람이어야 하고 어떻게 해야 하는 지를 깨달아야만 할 것입니다.

 

         사실 한 국가의 도덕 수준은 그 나라의 지도자의 도덕 수준을 넘기 힘듭니다.

         불의는 언제나 높은 지위에서 세인들의 존경을 받고 고상하게 여기는 사람들에 의해 은밀하게 저질러 집니다.

 

         무서운 말라리아 같은 병은 습지에서 시작하여 고지로 퍼져 가지만 도덕적인 불의는 고지로부터 시작하여          

         저지(低地)로, 일반 서민들에게까지 번지는 것입니다. 

 

         그들이 저지르는 죄의 심각성은 그들은 결코 높은 지위에 있을만한 인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만일에 고위 공직자가 부적격자 임에도 불구하고 그 지위만을 탐내어 부정한 방법으로 그 자라에 올랐다면

         그는 자신과 여러 사람에게도 죄를 지은 것입니다.


         공직자가 의학에 대해 모른다는 사실 자체는 전혀 잘못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가 의학의 전문가 인냥 행세한다면 그는 높은 수준의 사기 행각을 벌이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운전을 하지 못하는 것이 평상시에는 아무런 죄가 되지 않지만 거센 풍랑속에서 자기가 배를 몰아야 할 때에는

         귀중한 한 사람 한 사람의 핏값까지도 자기가 책임을 져야 할 것입니다.

         더 나아가 부적격한 지도자가 국가의 대사를 결정하고 민족의 생사권을 좌지 우지한다면

         우리는 그에게 무엇이라고 해야 할까요?

 

         여러 사람의 생명과 국가의 존망이 위태로울 때 지도자가 자기의 의무를 다하지 못한 만큼 슬픈 일도 없습니다.

         지도자들이 존경만 받으려고 하고 희생하기를 꺼려 한다면 누가 지도자라고 할 수 있을까요?

 

         국가 존립의 위기가 몰아 닥쳐 지도자가 떨리는 두 손으로 배의 키를 움켜 쥐고 있을 때

         우리는 그에게서 무슨 기대를 걸어야 할까요?


         진정한 리더쉽은 위기 때일 수록 빛이 나는 법입니다.

         위기 때의 지도력이야 말로 진정한 지도력입니다.

 

         그런데 지금 정부는 또 다시 경제를 들먹거리며 자기들만 빠져 나갈 궁리만 하고 있습니다.

         걸핏하면 국민들을 향해서 사회불안을 조장하지 말고 국민분열을 획책하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너무도 무책임하고 자기들의 무능과 국민들의 비난을 딴 곳으로 돌려 보려고 하는 꼼수입니다.

 

         옛 말에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글까? 법 무서워 산에 못 가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 말은 조금은 거치는 것이 있다고 할 지라도 의례히 해야 될 일은 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우리 사회의 잘못된 의식 중의 하나는 이미 일어난 사건마다 무엇이 그리 대단한 일이라고 크게 잔치를 벌려주고

         아무리 중대한 일이라도 별로 대수롭지 않는 일처럼 넘겨버리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거기에서 별로 공감을 얻지 못한 채 혼돈과 무지에서 방황을 하며

         오늘에 까지 이르게 된 것입니다.

 

         고난을 통해 우리는 새롭게 눈을 떠야 할 것입니다.

         고난은 누구나 다 당하기를 싫어하는 것이지만 그러나 고난에는 우리의 잠자던 영혼을 깨우는 힘이 있습니다.

 

         이 민족이 겪는 시련을 강 건너 불보듯 하지 말고 그 속에 우리 무지가, 우리 잘못이 들어 있음을 깨닫고

         우리는 깊이 성찰해야 할 것입니다.

 

         국가의 경쟁력은 단순히 눈에 보이는 것만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은 경제 회복도 중요하지만 더욱 더 중요한 것은 잃어버린 우리 국가의 희망을 찾는 일입니다.

 

         비록 눈에는 잘 보이지는 않지만 승리의 원료중에는 우리 국민들의 땀과 눈물과 피도 섞여 있습니다.

         그것은 모든 것이 우리 국민들의 손에 달려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리하여 정부는 더 이상 우리 국민들이 분열되지 않도록 남북대결을 자제하고 권력쟁탈을 중단하며

         상처난 국민들의 가슴을 치유하여 속히 희망을 불어 넣어주어야 할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뚜렷한 신념이 없는 지도자들은 스스로 물러나야 할 것입니다.

         온갖 뇌물과 청탁이 오고가는 유혹속에서 자신이 서지 않는다면 함부로 나서지도 마십시오.

 

         우리 국민들도 그 동안 얼마나 많은 정치인들과 기업인, 공직자들이 부정으로 신세를 망치고

         우리들에게 실망을 안겨 주었는지

         어떤 사람이 나라를 지도하기에 적합한 지를 정의의 관점에서 심사숙고 해야 할 것입니다.

 

 

         가슴이 따스한 사람 해피







                        세월호가 주는 역사적인 교훈





       요즘 우리는 TV를 통해서 누구나 한 번쯤은 갖게 되는 생각이 있다.

       모든 재난이 다 그러 하듯이 재난은 언제나 우리에게 많은 교훈과 아쉬움과 회환을 갖도록 해준다.


       그 가운데서 우리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재난이 왜 일어났고 재난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으며
       그 재난을 우리는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 지를 조심스럽게 접근해 보고자 한다.


       예로부터 우리는 어른들의 말이라면 무조건 순종하는 것이 어른들에 대한 공경이라고 배웠다. 
       그러나 오늘날 사람들은 누구도 낯선 사람이 아이들을 부르면 아무에게나 가지 말라고 가르칠 정도이다.


       맑고 천진난만한 아이들에게 어른들은 온갖 거짓말로 아이들의 순수성을 빼앗아 놓고 
       아이들이 속아 넘어갈 때마다 그것이 재미있다는 냥 시청자들을 현혹하기도 한다.


       우리는 지금 우리 자신이 저지른 죄가 어떤 결말을 가져올 지는 아무도 모른다. 
       뜨거운 눈물로써 우리 자신의 검은 부분들이 완전히 지울 수만 있다면...


       우리는 매일 죄를 의식하면서 지내야만 한다. 

       그 죄가 크든지 작든지 어떻든지 항상 주의 해야만 한다.

       많은 사람들이 조심성 때문에 죄에 대하여 듣기를 꺼려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조심성이 옳게 적용될 수도 있지만 잘못 적용될 수도 있다.


       죄를 말하지 않고 그냥 지나치게 될 때 그 죄를 묵과하게 되는 잘못이 되고 
       그 죄를 다시 저질러도 된다는 우를 범하고 말 것이다.


       우리 사회는 어느 순간부터 더 이상 죄를 듣기 싫어하는 민족이 되어 버렸다. 
       그것이 군사문화가 만들어 낸 산물이라고 한다면 하루 속히 고쳐야 할 것이다.


       가장 분명해야 할 종교인들 조차도 더 이상 죄를 지적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듣기 싫어하는 설교보다는 듣기 좋은 말들로 채워가며 무조건 믿으면 구원받고 
       믿지 않으면 지옥간다는 말로 확대되었다.

 

       결국 이런 보상 교리는 신자들로 하여금 받을 생각만 하게 했지 
       그 나라를 위하여 무엇을 해야할 지를 약화시켜 놓았다.


       이 세상은 너무 악하고 요란하여 나만이라도 잘 믿고 천당가면 그만이라는 생각이 대부분의 교인들 생각이다. 
       이런 의식이 한국 교회로 하여금 이 사회를 변화시켜야 한다는 의지를 약화시키고 있다.


       세상을 비추어야 할 교회들이 빛으로서의 사명을 망각하고 있다. 
       한국 인구가운데 20%가 넘는 많은 교인을 두고서도 여전히 그 사회가 부도덕과 불의가 만연한 까닭은 
       바로 교회가 현실을 기피하고 사후에 갈 천당만을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도 마찬가지이다.

       우리 사회는 언제 부터인지 부정적인 말보다는 긍정적인 표현으로 바뀐지 오래이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도 모르면서 자기의 입장이 난처해 질 때마다 분위기가 가라앉는다는 이유로

       이내 화제를 돌려 버린다. 
       혹시라도 누군가 바른 충고를 할라치면 사람들은 '넌 매사에 부정적이야"하면서 따돌리기가 일쑤이다. 
       그러나 그것은 그 자신도 이미 솔직하지 못하고 있다는 반증일 것이다.


       역사에 있어서 목적이 없으면 아무 의미가 없다. 
       어떻게 보면 역사는 우연, 필연, 자유와 같은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연(愚然)이란 뜻하지 않은 일이 저절로 된다는 의미이고 
       그러한 우연성도 주관에 상관없이 객관적 차이가 있을 뿐이다. 
       분명한 것은 역사를 움직이는 중요한 요인 중에 개인적인 요인은 결코 배제해서는 안된다.


       지난 날 우리는 삼풍 백화점의 붕괴로 많은 인명의 사상자를 내고 많은 재산의 손실을 가져왔다. 
       그것은 참으로 서글프고 불행한 사건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주었다.


       삼풍 백화점이 붕괴된 가장 큰 원인은 모든 면에 부실공사 투성이었다. 
       설계도, 시공도, 감리도, 관리도, 인허가도 모두가 주먹구구식이었다.


       서초 구청의 8급 공무원 담당자가 삼풍 백화점의 사용허가를 내주었는데 그가 공무원직을 그만 두고 
       구청옆에다 큰 사무실을 차려 놓고 고급 승용차 3대를 굴렸다고 말한다.


       당시 세계 42개국의 공무원 청렴성을 조사했더니 1위가 스웨덴, 2위가 스위스, 3위가 싱가폴이었고 
       우리나라는 21위 였으며 중국이 41위였다.


       부정한 방법으로 돈을 번 경영주들의 탐욕이 있었는가 하면 그러한 참사 현장 속에서도 끝까지 살아남은 
       최명석 군(20세, 11일) 유지환 양(18세, 13일) 박승현 양(19세, 17일)은 우리에게 많은 감동을 주었다. 
       장장 377시간 만에 기적적으로 살아난 소식들은 너무도 신기하여 
       인간의 생명이란 과연 끈질기구나 하는 것을 새삼 느낄 수가 있었다.


       이번에 일어난 세월호의 침몰 사고 역시 크게 달라진 것이 없었다. 
       돈만 주면 무엇이든지 통과되는 국가의 행정체계나 
       돈만 있으면 불법을 저질러도 된다는 기업측의 과욕이 빚어낸 참극이었다.


       공직자가 퇴직을 하면 남은 여생을 가족들과 함께 편히 지낼 생각은 하지않고 또 다시 신분 세탁을 하며 
       정부 기관에 남아 계속 일을 하고 있는데 과연 정부와 기업과의 유착관계는 끊어질 수 있을까?


       이미 무너질 대로 무너져 버린 지휘체계의 혼선은 우리 국민들에게 말할 수없는 실망감만 주고 말았다. 
       거기에다가 초기 대응에 미숙하기 짝이없는 국가가 보여준 모습들은 과연 그들이 우리 국가인가 싶을 정도이다.


       국가 기관이란 원래가 그 사회의 최고 전문가로 뭉쳐진 최고 권력 기관이다.
       군인이 총을 무서워 하면 전쟁터에 나갈 수 없는 것처럼 
       아마츄어는 기분나는 대로 하면 그만이고 프로는 자기의 생명을 걸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국가 기관이 죽음을 두려워 해서야 어떻게 전문가라고 할 수가 있을까?

       툭하면 조류타령들이나 하고 극도로 몸을 아끼면서 어떻게 귀한 생명을 구조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배는 이미 기울어져서 사람이 언제 죽을 지도 모르는 판국에 무책임한 선장과 선원들은

       승객들에게 그래도 배 안이 가장 안전하니 기다리라고 했다니 정신있는 사람인가?


       살신성인(殺身成仁)이란 말은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자기가 희생당한 사람이다. 
       만일에 그러한 일만 없었다면 자신은 더욱 잘 살 수 있었는데도 누군가가 국가를 대신하여 사람을 구출하고 
       세상을 먼저 떠났다면 국가는 그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그를 의인처럼 받들고 최대한 보상해 주어야 할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그 고난의 원인들을 따지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지금 당하고 있는 이 고난의 현실을 어떻게 극복하느냐 하는 것이다.


       그 원인이 어디로 왔던지 간에 중요한 것은 비극적인 우리 고난의 현실이다. 
       오늘날 이 사회속에 고난이 있고 저들이 걸어온 것과 같은 비극적인 인생이 있다.


       희망이란 바로 두려웠던 마음은 사라지게 하고 모든 만물을 소생하게 하는 봄같은 소식이다. 
       방안에 문을 꼭꼭 걸어 잠가놓고만 있을 것이 아니라 봄날의 따뜻한 동산에 올라가 답답했던 마음을 내려놓고 
       자기의 마음들을 햇살에 비추이면 희망의 꽃이 그 속에서 피어나게 될 것이다.


       예로부터 "민심(民心)은 천심(天心)"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백성들의 마음을 외면할 수는 없다는 뜻으로 민심이 자꾸 땅에서 매이면 국가는 그마만큼 불행해지고 
       민심이 즐겁고 평안하면 천심은 국가에게 복을 내린다는 의미이다.


       지금 우리가 당한 이 고난은 분명히 이 민족이 더 이상 정쟁을 중단하고 
       남북이 속히 화해하며 민심을 돌아보라고 하는 하늘의 깊은 뜻도 있다.

       그리하여 하늘은 오늘도 우리에게 복과 화를 준비하고

       위정자들의 마음을 깨우쳐서라도 아름다운 세상을 이루어 가는 것이다.



       가슴이 따스한 사람 해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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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진 YTN 참조 >

    

 

 

                  아! 무심하다. 세월호(歲月號)

     

                인생은 마치 바다를 항해하는 세월호란 말인가?

 

                우리는 지금 한 치도 알 수없는 안개와 같은 깊은 바다를 항해하고 있다.

                앞에는 어떤 죽음이 기다리고, 또 아래에는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지 분간할 수 없다.               

               마치 선원들이 긴 항해를 마치고 무사히 항구에만 도착 하기를 학수고대하는 것처럼

 

                우리들도 인생의 항구에 까지 무사히 도달하기만을 간절히 원하고 있다.

 

                인생의 바다에서 물결은 조수의 밀물과 썰물같이

                세월호는 정녕 고달프고 변화무쌍한 우리의 인생인가?

                모든 배에는 각기 그 이름을 갖고 있다.

                또 처음 항해를 시작하는 자기의 항구와 항해하는 목적지를 갖고 있다.

 

                하나의 배가 처음 건조(建造)되면 자세한 검열을 받고 배로써 갖추어야 할 모든 적응력을 확인한다.

                배가 낡아 가면 갈수록 그 가치는 성능이 떨어지고 위험도 그 만큼 높아지게 마련이다.

 

                모든 배에게는 각양 다른 적재량도 갖고 있다.

                100톤 급의 작은 배는 6000톤 급의 배만큼 많이 실을 수는 없다.               

                그러나 그 작은 배는 큰 배가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할 좁고 험한 항로들을 마음껏 다닐 수 있다.               

                배가 접촉하는 물의 양이 많으면 많을 수록 배가 쓰러질 위험도는 훨씬 더 높아진다.

 

               

                그 배에 무엇이 실렸는 지 우리는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                

                그것은 분명히 세상을 더욱 더 아름답게 해 줄만한 무언가가 있을 것이다.

 

 

                부지런한 사람들에게는 일감을 더욱 안겨주고                

                굶주린 사람들에게는 빵을 더욱 채워주며                

                바다 건너 아프리카에도 희망을 안겨 줄 것이다.


                만일에 배가 어느 정도의 무게를 유지하지 않으면 항해도 할 수없고 조정할 수도 없다.               

                그리하여 배에 화물이 없으면 배의 균형을 잡기위해 모래나 자갈, 물 등으로 평형을 만들어야 한다.

 

                이것을 우리는 바닥짐, 평형수라고도 하는데 배는 그 균형감각이 매우 중요하다.               

                균형감각이 제대로 이루어 지지 않을 때 배는 기울어져서 바로 침몰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균형감각은 사람에게도 너무나 중요하다.

                우리의 욕심이 너무 없게 보여서도 안되지만 너무 비만해서는 더욱 더 위험하다.

 

                배의 항구는 휴식과도 같은 존재이다.

                배가 항해하면서 너무 무리하지 않도록 충분히 휴식하고 보충을 하며 점검하는 곳이 항구다.

 

                어떤 배들은 항해할 준비조차 못하고서 나갔다가 침몰해 버리기도 하며

                어떤 배들은 암초에 부딪쳐서 거친 물살에 흔들리며 산산 조각이 나기도 한다.

 

                그 동안 우리의 인생들도 얼마나 바다에서 부딪치며 파선을 하였던가?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술과 도박, 주식이라는 바다에 빠져서 인생이 파탄나 버렸는가?

 

                지금도 팽목항에서는 고인들의 유품을 고이 간직하며 날마다 슬픔을 달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사랑하는 자식이 평소에 아끼던 물건, 비록 때가 묻고 낡았지만

                가엾은 어머니는 그 물건을 볼 때마다 떠나간 자식생각에 그만 눈물을 글썽이고 만다.

 

                아무리 무뚝뚝한 아버지라도 그것들을 보시고는 끝내 그 위에다 눈물로 대신하며

                아! 사랑하는 내 아들아! 내 딸아! 하면서 울부짖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그런 다고 이미 떠나간 자식들은 돌아올 줄 모른다.

 

                인간의 양심은 마치 배의 키와도 같이 노련한 선장이라면 어떠한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고

                정해진 항로를 따라 무사히 안전하게 항해를 할 것이다.

 

 

                우리는 지금 한 사람의 부주의가 얼마나 많은 생명들을 죽음에 이르게 하였는 지 분명히 목도 하고 있다.

 

                지난 날 우리 역사에서도 군부 독재가 나타나 권력의 세월호를 빼앗고서

                나라안에는 얼마나 많은 시민들이 죽어 나갔는지 모른다. 

 

              

                군사문화가 시작되자 민주주의가 사라지고 유신을 통한 끝없는 인권탄압이 시작되었다

 

                그것은 현재에도 고스란히 남아서 지금도 그 세력들은 정권을 차지하기 위해

                모든 사건들을 은폐하며 온갖 수단과 방법들을 동원하고 있다.
                그리하여 나라의 키를 잡은 사람들은 항상 두려운 마음으로 겸손하게 나라를 이끌어야 할 것이다.

 

                선장은 신뢰있는 사람으로 신뢰는 항상 양심이라는 선원을 데리고 다닌다.

                양심의 선원들은 예리한 그 시각으로 어떠한 망원경도 없이 선장에게 많은 도움이 된다.

 

                그는 다른 어떤 사람보다도 먼저 육지를 발견하고 암초와 같은 장애물들도 먼저 찾아낼 것이다.

 

 

                우리가 더욱 더 신뢰하는 선장과 함께 항해를 할 수만 있다면

                그 배는 우리들의 정해진 행복의 목적지까지 안심하고 무사하게 데려다 줄 것이다.

 

 

 

                가슴이 따스한 사람 해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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