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눈은 어떠합니까?

 

 

 

                     모든 사물을 보는데는 두가지 눈이 있습니다.

                     일반적인 사람들의 시각과 분별력의 눈입니다.

                     일반적으로 볼 때 사람이 가난하면 그를 믿을 수가 없고 속이는 자 같으며 아무 것도 없는 무능력자일 뿐입니다.

                     실제로 사람들의 삶이 그러했을 지도 모릅니다.

 

                     너무나 사물을 보이는 대로만 판단하는 단순한 시각입니다.

                     사람들이 달라지기 전까지는 대체로 이런 시각으로만 모든 사물을 판단하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분별력의 눈은 일어난 사건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담겨진 의미를 알고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과 삶 만을 볼 때 우리는 극히 제한적이고 절망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오늘날과 같이 세계가 신자유주의로 가진 자들 위주로 돌아갈 때

                     대다수 갖지 못한 자들은 결국 아무 것도 없는 무능력자일 뿐입니다.

                     이런 불평등한 질서를 깨고 새로운 시대가 오리라는 희망을 갖지 못한 채 체념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장차 새로운 시대가 올 것임을 믿는 사람들은 결코 이런 불평등한 삶 속에서

                     포기하고 절망하는 대신에 희망을 갖고 내일을 기다리며 오늘의 불의와 맞서 나갈 수있는 것입니다.

                     오늘은 비록 고난당하여 가난하게 살아도 그 때문에 울고 웃는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라

                     내일을 더욱 기다리면서 그 고난을 극복하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문제들은 바로 가치관의 문제이며 결단의 문제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치가 있는 것들을 붙잡느냐 아니면 그런 것을 포기하고 결단하느냐하는 문제입니다.

                     현실이 중요하게 생각되면 거기에 필요한 재물과 권력과 명예를 따라가기 마련이고

                     그것보다도 값지고 귀한 것을 알았다면 그것을 얻기위해 자기를 포기하는 결단을 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 인간들은 사실상 아무 것도 소유할 수없는 빈몸같은 존재입니다.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야하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필요 이상으로 너무 가지려 하고 애를 씁니다.

                     그것은 바로 이 땅의 삶이 전부라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보다 넓은 세계에 눈을 돌리면 이 땅의 삶에만 집착하지 않고 좀 더 여유있는 삶을 살지는 않을까요?

 

                     사람들이 모두 최소한의 삶으로 서로 나누며 쓰면 굳이 선을 그어서 네 것 내 것을 구별할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면 나라간의 전쟁도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진정한 평화란 먼저 자기 안에서 싸움이 중단되고 모두가 자유롭게 사는 세상이 아니겠습니까?

                     교회를 다니면서도 아직도 싸움이나 좋아하고 화해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 진정으로 평화를 원하기라도 할까요?

 

                     우리 사회를 한번 돌아보십시요.

                     모든 사람이 다 자기의 것을 빼앗으려는 적으로만 보이기에 항상 경계하며 불안 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신자유주의에 따른 경제 성장은 부익부 빈익빈의 현상을 더욱 가속화시키며

                     갈등의 골만 더욱 깊게 만들고 있습니다.

                     세계의 모든 나라가 잘 살기만을 목적으로 할 때 싸움은 불가피하고 환경은 더욱 오염되고 파괴되고 말 것입니다.

 

                     정부가 나서서 경제 위기를 잘 극복하였다고 말은 하지만 절약보다는 소비하는 심리를 더욱 부추기고 있습니다.

                     경제 성장의 지표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에 만족할 줄 아는 행복 지표수가 더 중요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소유가 생명을 유지시켜주는 요인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소유는 반대로 그 생명을 단축시키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때가 많습니다.

                     과유불급이란 말과 같이 소유가 많아지면 분별력을 잃어버리고 판단력이 흐려지며 급기야는 파멸당하기가 쉽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가치를 알지 못하고 오늘도 소유하기 위하여 미워하고 경계하며 싸우고 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소유보다는 생명과 자유가 더 소중한 지도 모릅니다.

                     생명이 없으면 세상의 모든 소유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아무리 가난하고 약한 사람이라 할 지라도 생명을 존중히 여기고 자유로운 사회야말로

                     우리가 지켜나가야 할 영원한 가치가 아니겠습니까?

 

 

                     가슴이 따스한 사람 해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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