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난 몽골인
2002년 그 해 겨울은 정말로 포근했습니다.
월드컵 축구의 감동도 서서히 식어가던 어느 날 저녁
아내와 채 식사도 끝나지 않았는데 서울의 외각 작고 낡은 2층건물로 한 중년의 손님이 찾아왔습니다.
초최한 몰골과 우람한 체형은 금방이라도 그가 외국인임을 한 눈에 알 수 있었습니다.
"어떻게 오셨어요?"
"나~ 배고파요! 나 많이 배고파요"
밖은 추운데 일단 안으로 맞아 들여야만 했지요.
사정이라 할 것도 없이 눈치 빠른 아내가 주방으로 들어가 상을 차려 배고픔을 달래주었고
식사가 끝나자 "커~피!"하며 손짓으로 마실 것을 권유하자
그는 내게 "나 몰라요 땡큐!"하며 웃음으로 화답하기도 했습니다.
함께 차를 나누며 오신 이유에 대해 묻자
그는 몽골인으로 울란바트르에 사는 "제 키"라는 여 교사라고 했습니다.
수 개월 전 가정의 생계문제로 한국에 와 직장에서 일했으나 월급은 받지 못하고 사장에게 쫒겨난
상처많은 외국인이었습니다.
"사모님은 정말 잘 해주셨는데...사장님은 정말 나쁜 사람이었다"며
일할 곳은 없는지 내게 한 번 알아봐 달라면서 사정하고 또 울먹였습니다.
무슨 말로다 위로를 해야하나 망설이다가 혹시라도 지인들을 만나면 말이라도 건네 볼까하는 심정으로
그의 희망사항을 받아 적고 형편상 우리나라도 아직은 외국인들이 느끼는 좋은 일자리의 낙원은 아니라고
설명해 주었습니다.
밤 늦은 시간, 하룻밤 좀 재워 달라기에 차마 그 사정은 거절할 수가없어
동네를 배회하며 자정이 다 되어서야 가까운 여관집을 찾아 비용을 지불하고 주인에게 부탁하고 나왔더니
그제서야 외국인도 안심이 되었던지 "난 몰라요, 난 몰라요" 하면서 우리는 헤어졌습니다.
서재로 돌아와서 잠깐 눈을 붙이는데 전화벨 소리에 그만 놀라 전화를 들어보니 어느 고운 아가씨 목소리 왈
"저~ 이 전화번호 주인되세요?"
"지금 어느 분께서 시내로 나왔다가 길을 잃고 숙소를 못 찾아 헤메고 계시는 데요~"하면서 잠깐 기다리라며
그 외국인을 바꿔주는 것이었습니다.
새벽 2시경, "그럴 수도 있겠지"하며 근처를 수소문해 다급히 뛰어나가 외국인을 다시 숙소에 머물게 하고
좀 더 세밀하지 못했던 내 자신을 반성하며 다시 돌아와야만 했습니다.
다음날 아침 서울 을지로에 일이 있어 급하게 가게를 찾았습니다.
다가오는 행사에 맞춰 기념품과 팜플렛을 교정하는 날이었습니다.
사장님을 만나 우연히 어제에 있었던 그 일을 설명해 드렸더니 선뜻 부탁에 응해 주셨습니다.
"한 번 모시고 와 보라"면서...조그마한 방 한칸도 준비되어 있다면서...
그러나 오늘날까지 그 사람과는 연락은 되질 않고 지금도 내 마음 속 깊이 소중한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이제 좀 안정은 되셨는지...
좋은 사람과, 좋은 직장, 좋은 사장님은 만나셨는지...
본국으로 가셨다면 부디 아픈 상처는 잊어 버리고 좋은 추억들만이 기억나시기를...
추운 겨울이 지나 눈이 녹고 따스한 봄 소식이 돌아와 다시 찾아 주신다면
아마 그 때쯤이면 우리 한국인들도 외국인도 모두 다함께 더불어 사는 아름다운 날이 오게 될 것입니다.
비록 넉넉하지는 못하지만 형편이 나아진다면
이번엔 여관집이 아니라 따스함을 나누어 갖는 행복한 여관집을 준비하고 기다리겠습니다.
세상엔 자기도 알 수없는 따스함과 힘든 여정의 길이 아직 많이 남아 있기에...
가슴이 따스한 사람 해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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