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알바를 경험하며

 

 

 

 

           사람이 어느 분야에서 일을 하고 홀로 선다는 것은 얼마나 힘이 들고 어려운 지 잘 모를 때가 많다.

           학부를 마치고도 10년, 그 전의 10년까지 이것 배우고 저것 채우면서 나는 무척이나 힘들고 어렵게도 홀로 섰다.

 

           배움은 끝이 없고 지식은 한계가 없다는 말이 나는 보이지도 않는 힘에 따라 무언가에 이끌려

           자꾸만 젊음을 불태우며 남들의 일을 도맡아 왔다.

           20년이 지나도록 나는 참 눈물을 많이 흘렸었고 바람도 막아 주었으며 산전 수전을 다겪은 그야말로 꾼이었다.

 

           부모님께서 차례로 세상을 떠나시자 제일먼저 나는 지인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그들을 떠나 감히 홀로서기를 선언했다.

           그 동안 나를 위해 십시일반으로 함께 해준 많은 이들의 눈물과 도움으로 이 자리에까지 올 수가 있었다.

           무엇보다도 내게 약자를 대변하고 서민들을 보호하며 눌린 자들에게 희망을 줄것이라는 저들의 강한 믿음이 있었다.

 

           거리를 지날 때나 사람을 만날 때는 모든 세상이 다 내것처럼 느껴지고 혹시나 저집에는 무슨일이 생겼을까

           밤낮을 구분하지 않았다.

           가끔씩 식사도 대접받고 행사장에도 위촉받으며 어느 사이엔가 나도 모르게 지역인사가 되어 버렸다.

           할 일은 많고 몸은 하난데 1년이 다가도록 집과 떨어져서 냄비에 밥을 끓여먹으며 오직 내일만 고민하고 있었다.

 

           이 따금씩 들려오는 사람들의 싸움소리, 술에 만취되어 찾아온 행인들의 넋두리로 나는 잠시도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거기에다가 날로 늘어만 가고있는 아이들의 교육비는 힘겨운 나의 일상을 더욱 목조르고 있었다.

 

           만일에 부모님께서 살아계시고 나를 보시면 무어라고 하셨을까... 무슨 대책은 없을까...

           아내는 아내대로, 나는 나대로 시간을 만들어서 알바라도 열심히 하는 것이 자식들에게 많은 도움이 되지않을까...

 

           어느날 우연히 보게 된 한 정보지를 통해서 어느 빵공장을 알게 되었다.

           마침 이곳에서도 가깝고 혹시나 하는 기대가 있었기에 나는 20분을 걸어갔다.

 

           그러나 인간 만사의 모든 일이 다 새옹지마(塞翁之馬)인 것처럼 우리의 일은 한치 앞을 예측할 수가 없었다.

           나는 그만 거기에서 보람된 일들과 겪지 말아야할 불행한 많은 일들을 경험할 수가 있었다.

 

           넓은 공장안에는 빵을 굽는 냄새가 온 천지를 진동하며 나를 유혹하였고 

           사람들은 모두가 기계와 한 짝을 이루어서 쉬임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길다란 콤바인위에는 하나 둘씩 하얗고 주먹만한 빵모양이 열을 맞춰 계속 나오고

           저쪽 끝에서는 누군가가 자꾸 빨리 하라며 고함을 지르고 있었다.

 

           한참 후 한 젊은 여자가 내게 다가오더니 "무슨 일로 왔느냐"며 내가 대답해 주자 나를 사무실로 안내해 주었다.

           시간당 4,000원 야간은 5,000원 식사는 모두 각자들이 알아서 해결하라고 했다.

           그러나 대신 회사가 큰 맘먹고 음식을 주문하면 다같이 둘러앉아 나누어 먹는다고 하였다.

 

           아래로 내려와서 직원들의 동태를 한번 살펴보니 모두가 20 명으로 조선족들도 섞여 있었다.

           한명은 여성이고 다섯명은 남성이었다.

           장애인들도 두명있었는데 그들은 모두가 고등학교를 갓졸업한 얼마 지나지않은 청년들이었다.

           사장은 나보다도 훨씬 나이가 어렸었고 장인어른과 나머지는 모두가 주부들이 일을하고 있었다.

 

           먼저 계약서에 싸인을 하고 건강진단서는 다음에 갖다주기로 하면서 바로 근무는 시작되었다.

           이 얼마나 바라던 새로운 경험이며 흥분되는 일인지 가족들은 알고나 있을까...

 

           이렇게도 맛있고 많은 빵들이 다 내 손을 거쳐서 다른 사람에게도 대신 전해질 수있다니 내겐 하나의 보람이었다.

           더욱 더 내가 놀라고 신기했던 것은 TV에서만 보던 소스 주머니짜는 방법을 여기에서 처음 배운 것이다.

           손잡이의 위치를 나에게 맞도록 팔을Ⅹ로 비틀어서 모든 모양을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데에 나는 신기했다.

 

           모든 빵들이 순서에 따라 밀가루 한포대가 뚝딱하며 사라지고 불과 몇분도 채 지나지 않아 정확하게 빵이 되어 나왔다.

           빵이 구워지면 누구랄 것도 없이 먼저 달려나와 빵하나를 먹어보라며 더러는 설탕과 소스를 뿌려주며 출출함을 달랬었다.

 

           이 곳의 빵들이 주로 어느 곳으로 가는지 어느 날은 학교로, 어느 날은 PC방으로 날마다 기사가 찾아왔다.

           모두가 한몸처럼 화이팅하며 누가 누가 잘하나 내기도 하면서 정신없이 일을 하니 금방 하루 해가 저물었다.

                                                                                                                                                                 (계속)

 

 

           가슴이 따스한 사람 해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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