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에게 미치는 지도자의 영향력

 

 

               어느 민족, 어느 시대에든지 국가를 책임지는 지도자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그것이 어느 분야이든지 국민들에게 막대한 영향을 끼치는 것이 사실이다.

 

               국가의 지도자가 되면 먼저 국민들을 잘 살 수있게 하기위해 보다 많은 국가 정책들을 내 놓는다.

               경제나 복지, 교육이나 기술등 나라의 안정에도 결코 소홀히 할 수없다.

 

               그러나 국가 지도자가 나라의 평화와 발전보다는 자기 욕망이나 사치와 낭비, 무모한 권력투쟁으로

               시간을 허비하고 만다면 국민들로 부터 신뢰를 받기는 매우 힘들다.

 

               정치와 경제의 필요성은 많은 사람들의 생과 사, 행복과 불행을 결정짓는 중대한 문제이기에

               같은 국민이라면 어서 빨리 나라가 안정되어 잘 되기만을 간절히 바랄 것이다.

               비록 임시적이고 제한적이지만 규제와 사회적연합은 삶의 조화를 위해서도 중요한 상징이 된다.

 

               우리 역사를 볼 때 전쟁과 파괴, 갈등과 분열은 결국 인간의 욕심에서 기인된다는 사실을 알 때

               우리는 새삼스럽게 반성하지 않을 수가 없다.

 

               미래를 생각할 때 이 세상은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는 한 바탕 꿈인데 과욕을 너무 부리지 말고

               정의가 깃들인 먼 곳을 내다보며 천천히 아름답게 나아가야 할 것이다.

 

               인간의 생활에서 가치있는 것은 국가가 아니라 창조적이고 지각있는 사람들의 의식이다.

               이런 사람만이 고귀한 것과 숭고한 것을 창조할 수있다. 이와는 달리 국가는 사상이나 감정에 있어서는 전혀 둔하다.

 

               한국사회를 보더라도 집단은 있어도 개인이 없는 그래서 창조와 자유와 사랑이 결핍된 사회로 나가고 있다.

               특히나 우리 사회의 정치,경제,문화,사회,종교는 "성장 신화"에 가로막혀 아직도 제 갈 길을 찾지 못하고 있다.

               모두가 자기 이익에만 눈 어두워 애국이라는 이름으로 권력과 스스럼없이 타협하고

               불의인줄 알면서도 온갖 나쁜 악습을 서슴없이 저지르고 있다.

 

               사회는 사회대로 대립하고, 언론은 언론대로 눈 어둡고, 종교는 종교대로 갈등이 팽배하다.

               자녀가 가정에서 부모를 바라보듯이 기독교는 예수만 바라보며 그 삶을 추구하는 것이고

               불교는 부처만 바라보고 자기를 살피는 것이며 언론은 정직한 눈빛으로 사회를 밝혀주며

               국가는 국민들에게 힘과 희망이 되어주어야 한다.

 

               성장신화란 막연히 억지로 내가 세운다고 세워지는 것이 아니다.

               자기 본분을 망각하지 않으면서 묵묵히 최선을 다하다보면 그 성장, 그 기적은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것이다.

               더욱이 나라의 평화를 위해 과도한 군비증강은 마치도 사람에게 강도가 불안하여 무기를 소지하라는 것과 같은 것이다.

 

               사회도 마찬가지이다.

               있는 것도 제대로 활용하지도 못하면서 자꾸 교체하고 만들고 자꾸 소비하는 것은 결국은 파멸뿐이다.

               길 가에 자동차가 많아지고 자주 팔린다는 것은 그 만큼 도로를 많이 만들고 사고도 많이 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 결과로 농지가 사라지고 아름다운 경관이 파괴되며 환경은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시대의 환경문제는 이해차원이 아니라 인간이 이 땅에서 사느냐 죽느냐하는 중대한 사활(死活)의 문제이다.

               미래를 내다보는 지도자라면 더 이상 자기 일이나 국가의 이익보다는 당장은 정치적, 경제적 손실이 따른다 할지라도

               먼저 인류와 우리 후손들을 내다보며 행복을 검토해야 할 것이다.

 

               평화란 단순히 힘이 있다고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강대국의 힘은 강대국 스스로가 그 힘을 자제할 때 세계는 자연히 평화가 이루어 질 수있다.

 

               미국의 군비는 세계에서 그 유례를 찾기 힘들만큼 막강하다.

               연방정부가 사용하는 예산중에 43%가 국방비로 쓰여질 정도이다.

 

               미국의 군비는 해마다 증강되어 핵무기가 2만5천기, 병력이 200만명, 거대함선이 500척, 군용기가 1만기

               국내기지 400여개, 군사기업 2만여개 지금도 그 숫자는 계속해서 증강되고 있다.

               또한 미국은 세계경찰을 자임하며 유럽에 10만명, 중동에 2만5천명, 한국에 3만7천명, 일본에 2만명등

               전 세계 600여 기지에 20만의 군대를 주둔시키고 있다.

 

               오늘날 미국의 경제가 과거보다는 많이 침체되고 어렵다는 것은 세계모두가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런데 더욱 충격적인 것은 미국인들은 이같은 군사비를 쓰면서도 거의 신경을 쓰지 않도록 세뇌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미국은 세계 공황당시 루즈벨트가 방대한 군사투자를 통해 불황의 늪에서 미국경제를 복구했던 사실을 잘 기억하고 있다

               그 이후 미국인은 전쟁이 나면 정부가 무기증강을 하여 경기가 회복될 것이라는 신화를 아직도 믿고 있는 것이다.

 

               현대 전을 대비하려는 어떠한 무기라도 그것이 실전에 배치되면 또 다시 새로운 무기를 만들어

               신속하게 무기교체를 하지 않으면 안된다.

 

               세상에서 군사무기보다 낭비가 심하고 가격이 터무니없이 한심스러운 것도 또 있을까...

               근대 무기는 아무리 거액을 투입해도 곧 폐물이 될 숙명을 갖고 태어났기 때문이다.

 

               항상 진리는 정치적인 진리와 상응(相應)하기 마련이다.

               예나 지금이나 세계는 우선권을 놓고 국민이 먼저냐, 정부가 먼저냐하는 싸움을 오랫동안 지속해 왔다.

 

               그리하여 나라에 어떤 지도자가 나오고 어떤 정당이 집권하며 어떤 정책이 채택되느냐에 따라

               국민의 자유와 삶도 차이가 나며 최대 관심이 되고 말았다.

 

               정부가 국민을 위해 존재하는 논리나 국민들은 그저 정부만을 믿고 아무소리 말고 조용히 따라오라는 소리나

               무엇이 옳은 말인지 권력자의 말 한마디에 그 입장이 달라질 수도 있다.

 

               사람들은 자기가 고통과 질병에 직면했을 때에야 비로서 목숨이 천하보다도 귀하다는 사실을 절실히 깨닫게 된다.

               인간이 생명의 소중함을 알고 세상을 살아갈 때 세상의 고통과 질병들은 훨씬 더 줄어들 것이다.

 

               인간은 세상의 어떤 값진 보물보다도 더 가치가 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인간이 가장 소중한 존재라고 말을 할 뿐 가슴속 깊이 진리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인간의 제도들은 인간을 더욱 인간답게 만들고 도와주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국가의 지도자는 국가보다는 국민을 더욱 잘살 수있게 도와주고 이끌어주는 안재자와도 같은 것이다.

 

 

 

               가슴이 따스한 사람 해피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