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위(示威)는 왜 필요하나?

 

 

 


세계 어느 나라, 어느 민족이라도 사람들은 항상 평화로운 세상을 꿈꾼다.

그러나 지금 우리 나라는 모든 분야에서 싸움이 한창이다.

 

정권을 유지하기 위하여 싸움을 하는가 하면 경제적인 대기업들의 싸움은 이 사회를 병들게 만들었고

언론들의 나태함과 횡포는 이 사회를 더욱 어지럽게 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이에 맞서 항거하는 국민들의 시위가 끝없이 반복되고 있다. 우리 사회가 이렇게 싸움이 난무하게 된 것은

남북이 전쟁을 치루면서 군사력을 기르지 않을 수 없었던 데서 비롯된 것이다.


그것은 막강한 권력으로 자라나 마침내 군사 반란을 통해 정권을 장악하기에 이르렀다.

그것이 오늘날의 보수정권을 가져왔고 이것이 그들의 정통성이기도 하다.


그리하여 그들은 오늘날까지도 무력에 의존하지 않고서는 정권을 유지할 수가 없었으며

자신들에게 동조하지 않는 자는 누구라도 가차없이 그 사회에서 추방시켜 버렸다.

 

우리 사회는 지금 온 종일 북한 얘기로 사람들을 자극시키는 시대에 살고있다.

국가기관의 대선개입이 드러난 지도 벌써 1년이 지났건만 아직도 정부나 새누리당은 차단하기에 바쁘고

무능력한 야당과 시민단체들은 항의하기에만 급급하다.

 

경제도 마찬가지이다. 경제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기업들은 철저하게 서민들을 외면하고 돈벌이에만 혈안이 되었으며

이로 인한 노사간의 갈등은 갈수록 증폭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민들은 어쩔 수없는 사실로 받아들이며 거기에 적응하는가 하면 그 합리화에 동조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문제는 그것만이 아니다. 국민들의 의식에도 많은 문제가 있다.

세상이 자꾸 변하면서 계속 터져 나오는 불의들을 보면서 그것이 바로 우리가 해야 할 일임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온 나라가 이렇게도 시끄러운데 사람들은 자신만 건드리지 않는다면 가만히 있는 것이다.

마치 한 집안에서 자식들이 싸우고 있는데 부모들은 관심도 없다는 냥 구경만 하고 있는 것과 같다.

집안에서 누군가 괴로워하면 그 집안에 문제가 있는 것처럼 나라에 국민들이 괴로워하면 그 사회는 병들어 있는 것이다.

 

흔히 우리는 그 사회의 현상을 가장 먼저 알아보고 예민하게 느끼는 사람들을 의식인이라고 부른다.

의식인들이 많은 사회, 불의를 보며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사회, 그런 사회가 건강한 사회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의식인들이 없다거나 있기는 해도 잠만자고 있다면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없다.

의식인들도 잠들고 정의는 날마다 우리 사회를 향해 꾸짖고 있는데 우리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

 

그 사회의 정의는 어디까지나 권력이나 불법,폭로나 비난, 조작같은 여론몰이등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모든 결정권은 오로지 국민들의 허락에 의해서만 이루어진다.

 

누가 국민들 만큼이나 지혜롭고 강한 세력이 또 있을까?

국민들의 심기를 건드리면 건드릴 수록 국민들의 저항만 더욱 거세질 뿐이다.

 

나는 먼저 우리 사회의 이러한 갈등들에 대하여 민주주의와 반대 세력 간에 생겨난 끝없는 갈등이라고 주장한다.

민주주의란 국가의 주권은 국민들이 가지고 국민을 위하여 정치를 하는 제도이다.

            

그 동안에 우리가 적극적으로 외쳤던 민주화는 정치적인 이념의 민주주의 운동이라기 보다는

평화를 위한 아름다운 세상 만들기라고 할 수있다.

민주화란 그 속에 깃들인 독소를 뽑아내고 아름다운 세상을 이루어가자는 말이다.

 

그렇다면 왜 사람들이 시위를 하느냐고 말한다.

역사적으로 보면 시위는 항상 공적인 일에 대한 경고표시였다.


우리 나라만을 놓고 보더라도 4.19학생의거나 민주화운동, 광주시민들의 운동은 불의한 세력들에 맞서서

국민들이 더 이상 악행을 일삼지 말라고 보내는 일종의 항거였다.

 

어떤 의미에서 시위(示威)는 사람들이 기세를 떨쳐내고 자신들의 공동의사를 표출해내는 것을 말한다. 

정치적으로는 민주주의에 대한 요구이고 불의에 대한 항의라고 볼 수있다.


그리하여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광장에 모여 어떤 이들은 촛불을 들고 어떤 이들은 머리에 띠를 두르며

때로는 화염병과 돌을 투척하기도 한다.

다른 한편에서는 연신 물대포를 쏘아대고 최루탄을 날리며 군화로 밟고 곤봉으로 때리고 방패로 내려찍기도 한다.

 

과연 이와 같은 시위가 바람직한 시위일까?

시위를 할 때 가장 기억해야 할 것은 어떠한 경우에도 자기 감정에 사로집하지 말고

오로지 공동체를 위한 공적인 유익이나 봉사가 되어야 할 것이다.


어설프고도 어정쩡한 시위는 오히려 상대방을 자극시키는 빌미가 되어

시위를 하는 목적이 무엇인지 사람들을 의심케 만들 뿐이다.

 

시위를 함에 있어서 정치인들의 역할은 언제나 두 가지이다.

직접 개입함으로 국민들의 도움이 없이 홀로 싸우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직접개입하여 국민들과 함께 싸우는 것이다.

 

어차피 모든 이념은 우리가 추구하는 진정한 이념이 아니다.

우리는 이념과는 상관없이 이 땅에 평화와 사랑이 깃들기만을 바랄 뿐이다.


또 우리가 통일이 이루어졌다 하더라도 그것이 우리의 최종 목표는 아니다.

불완전에서 완전으로의 전환이 되어가기까지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오늘날 우리가 이념과 사상에 얽매이다 보면 자칫 냉혹하고도 기계적인 사랑이 없는 사람이 되기 쉽다.

중세국가가 저질러 온 큰 잘못중에 하나가 바로 이 냉혹한 교조적인 판단으로 무고한 사람들을 죽인 일이다.

우리는 더 이상 민주화나 불의가 정치적인 문제로 자신과는 무관한 일이라고 외면할 수는 없다.

 

요즈음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주장들을 관철시키기 위해 분신이나 자살을 하는 것을 보면서

사상과 이념에 포로가 된다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느끼게 한다.


이념에 사로잡힌 자들을 보면 그 얼굴이 얼마나 무섭고도 차가운 지 저들도 인간이며 가정은 가졌을까...

이러한 문제들을 방치한 채 우리가 아무리 경제대국이 되고 돈을 벌어도 우리의 삶을 더욱 안정시킬 수는 없다.


사람들의 얼굴이 모두가 괴물같고 무섭게 보이는데 어떻게 그 사회가 발전하며 나라가 평화로울 수 있을까...

개인의 악행을 보며 공의에 따라 처벌을 해야한다면 공동체에게 피해를 주고 사회에 불의를 일으키는 모든 악행은

한층 더 처벌해야 옳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이러한 문제들에 손 놓고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어서는 안될 것이다.

장수가 대표하여 용감하게 나서는 것처럼 우리 또한 불의한 세력들과는 과감하게 맞서야 할 것이다.


국민들의 이름은 정의요, 정의는 반드시 승리한다.

정의가 살아있는 나라는 희망이 있고 나라에 희망이 있을 때에 아름다운 세상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가슴이 따스한 사람 해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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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치 이념논쟁! 이대로는 안된다.

 




     지난 6월 6일 휴일을 맞아 그동안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한 종북주의가 무엇이기에

     저렇게도 호들갑을 떨며 정치인들을 향해 연일 비난하고 사퇴할 것을 종용하는지

     새누리당 한기호의원에게서 그의 입장을 들어 보았다.

 

     그에 의하면 종북주의자(從北主義者)는 국가가 명시한 북한체제를 적으로 명명하고

     저들을 동조하거나 나라발전을 저해하고 저들을 모으는 세력들을 향해 종북주의자라고 한단다.


     그리하여 정치권을해서는 친북이니 종북이니 하면서 모호한 입장들만 열거하며

     모든 세력들이 나서서 더욱 소리를 높이고 있다.

 


     철학자들은 일찌기 인간을 행복하게 만들 수있는 정치이념을 연구하였다.

     그리하여 희랍의 민주주의를 바탕으로 꾸준히 발전된 민주주의 정치이념이 오늘날 많은 나라들에 의해 받아들여졌다.

 

     그런가 하면 칼 막스와 레닌의 유물론적 변증법에 기초한 공산주의 이념을 받아들인 나라들도 있다.

     이런 정치 이념들은 원래가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기 위해 연구된 것들이다.

     그러나 아직 어떤 이념도 완벽하게 누구나가 추구하는 나라를 실현시키지는 못하고 있다.

 

     우리는 흔히 잘 사는 나라와 못 사는 나라를 비교하지만

     저 이프리카인들이 문명 사회보다 결코 불행하다고는 말할 수 없다.


     화려한 저택에서 사치스럽거나 돈과 성공을 위해서라면 어떠한 불법도 서슴치 않는 그들보다는

     차라리 가난하지만 이웃들과 오순도순 사는 삶이야말로 더 행복할 수도 있다.

 

     결국 부자나 가난한 자나 사는 방식이 조금 다를 뿐 자신들이 느끼는 행복은 별 차이가 없다.

     공산주의 국가나 민주주의 국가나 남한이나 북한사회 역시 다를 바가 없다는 말이다.

 

     우리가 자본주의 아래에 산다고 하여 이 체제를 옹호하고 공산주의를 비난하지만

     자본주의 체제도 분명히 유물론적이며 사람들이 이것이냐 저것이냐의 선택이 아니라

     이것도 저것도 아닌 완전히 누구나가 추구할 수있는 이상적인 체제이어야만 한다.

 

     우리가 북한 체제를 반대한다면 똑같은 이유로 자본주의 체제또한 반대하여야 한다.

     모든 정치 이념이 그 근본부터 잘못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분명히 깨달아야만 한다.

 

     그 동안 우리가 적극적으로 외쳤던 민주화가 무엇인가?

     우리가 해방 이후 지금까지 단 한번도 민주주의의 정치 이념을 포기한 적이 없다.


     그것은 정치 이념이라기 보다는 그 속에 깃들여진 독소들을 뽑아내고

     역사가 우리에게 가져다 준 자유와 평등을 되찾자는 운동이었다.

 

     어차피 모든 이념은 우리가 추구하는 정통성과 도덕성을 상실한지 오래이다.


     우리는 이념과 상관없이 이 땅에 우리 민족이 잘 서고 국민들이 주인이 되며

     인권이 보장되는 바람직한 나라이어야 한다.


     이것이 진정한 민주화의 운동이다.

 

     한국전쟁이 멈춘지도 어느덧 반 세기가 지났건만 아직도 우리는 구 시대적 통념을 가지고 정치 논쟁이나 하면서

     선량한 국민들을 부추겨 나라를 혼란에 빠트리게 하는 것이 어느 나라 국민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날마다 정치와 철학이 만들어 놓은 이념이나 제도,

     사회적인 모든 삶의 조건속에서 오히려 짜증과 실망을 체험하고 있다.


     더 이상 이 땅에 정치의 이념이나 철학적인 주장에 현혹되어서는 안된다.


     어떤 이념을 반대하는 교육은 올바른 것이 아니다.

     잘못된 것을 비판함은 올바른 것을 선택하는데에 있다.


     공산주의가 나쁘다는 것이 교육의 주체가 아니라

     민주주의가 얼마나 좋은 것이며 그것을 어떻게 오늘에 바로 실현시킬 수 있을까가 바른 교육일 것이다.

 

     물론 북한사회가 안고있는 환경이 우리로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도 없는 저들의 핵무기와 삼대세습,

     북한 주민들의 탈북하는 것을 보면서 저들을 비판하고 반공의식을 다지는 것은 이해할 수도 있지만

     그것은 저들이 처해진 환경이 주변 강대국들을 의식한 그들만의 살기위한 절박한 방편임을 이해도 해야한다.

 

     자신들과 입장이 다르다고 하여 상대방을 향해 막무가내식 빨갱이니 종북주의자라고 몰아 부치고는

     마치도 자신들만이 제일인냥 밤낮을 자리에 앉아 머리에 띠를 띠고 괴변을 늘어 놓는다면

     이 나라의 삶은 누가 살펴 줄 것인가?

 

     그런데 이보다 더 큰 걱정은 이러한 모습들을 바라보면서 우리 사회에 불고 있는 정치 이념들을

     양산하고 확산시키고 있는 저들의 정치권이나 언론들에게 더 큰 책임이 있다.  

 

     마치도 고삐풀린 망아지 마냥 거침없는 보수언론들의 출현은 더욱 강화되어 든든하게 이념 논쟁을 부추기건만

     진정한 민주 언론들은 찾아보기 어렵고 그나마 가진 힘 조차도 제대로 써보지는 못하면서 

     계속해서 저들의 세력앞에 떠밀리며 제대로 활약조차 못하고 있다.

 

     지금 우리 사회의 현실은 민주주의가 많이 상실되어 과거로 회귀하려는 듯한 양상들을 보여주고 있다.


     서민들을 향한 희망의 모습은 보이질 않고 인권이 많이 후퇴되어

     무차별로 민간인들이 사찰되고 언론이 장악되며 은행이 도적질을하는등 민주주의의 흐름을 가로막고 있다. 

 

     그 동안 정권에 기대어 많은 인사들이 호사를 누리며 범죄를 저질렀지만 누구하나 반성하는 자 하나 없고

     국민들을 책임져야 할 정부도 두손을 내려놓은 듯 마지막 임기를 남기면서 정권 연장에만 바쁘고

     온통 북한이야기로 업적 쌓기에 골몰하고 있다.

 

     이러한 분위기는 그대로 우리 사회로 이어져 모든 불법은 가라앉고 무사 태평하며

     정권의 바람따라 순수하게 흘러가는 듯하다.

 

     우리 민족이 가진 나쁜 습관 중 하나가 약자에게는 업쑤히 여기고 강자에게는 한없이 아첨하는 버릇들이 있다.

    

     반공 이념에 사로잡힌 그들은 정작 자신들이 꼴통이나 극우임을 자처하면서도 절제하지 못하고

     마치도 상대만이 그러한 냥 과거에는 빨갱이라고 부르더니 지금은 좌파니 종북주의자라고 외치고 있다.  

 

     정치 이념논쟁 ! 더 이상 이대로는 안된다.

 

    기독교 선교 슬로건에 "가던지 보내던지"라는 용어가 있다.

    기독교인들이 선교가 중요하고 절실하다고 느껴진다면 자신이 할 수 있는대로 형편껏 최선을 다하라는 의미이다.

 

    이따금씩 종교소식이나 선교소식이 들려올 때면 나도 모르게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노래를 부를 때가 있다.

     "우리의 소원은 선교, 꿈에도 소원은 선교, 선교는 우리의 소원" 이라는 노래이다.


    당장의 우리 앞에 말로는 통일, 통일을 외치면서도 어떻게 하든지 통일을 해야겠다는 일념은 보여주지 못하고

    저들을 못잡아 먹어 안달난 짐승처럼 같은 민족끼리 서로 헐뜯고 비난하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저들이 과연 진정한 평화통일을 기대하기라도 하는 것일까?

 

    틈만나면 전쟁을 해서라도 기필코 북한을 차지하고야 말겠다는 얄팍한 사고들을 가지고

    통일 논의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우리 사회의 종북주의자는 아마도 저들을 동조하고 맹목적으로 따라가는 자들을 가리켜 부르는 지칭일 것이다.

    그런 입장에서 본다면 맹목적으로 끌려가는 친미나 친일들은 괜챦고 종북주의자는 결단코 안된다는 말일까?

    어쩌면 종북주의자들보다는 친미나 친일들의 결과가 더 많은 갈등과 비용들을 초래할 수도 있다.

 

    강대국들을 의식한 우리의 선택은 그들을 따른 결과 지금까지 저들이 요구할 때마다 저들을 무작정 따라가야 했으며

    엄청난 토지와 보장뿐만이 아니라  비용에서도 우리는 그들에게 그만큼 천문학적인 무기수입을 받아들이고 있고

 

    저들의 입장따라 국익까지 포기헤가며 FTA라는 구실아래 자유경제시장 원칙을 바꿔야했고

    강대국들을 우호로 하는 한미, 북중나라의 설정은 자연히 상대적인 갈등으로 이어져 훗날의 대립이 염려되고 있다.

   

    평화의 지속을 위해 모든 사람들이 가져야 할 덕목가운데 하나가 화해이다.

    화해란 적대 관계를 청산하고 우정의 관계를 지속하자는 변화를 의미한다.

 

    남을 비난하기에 앞서 먼저 자신의 허물을 살펴보고 단절된 관계를 정립하는 것만이 진정한 평화를 기대할 수있다.

    안보의식만을 가지고 상대방을 비난하고 저주하는데 시간을 보낼 것이 아니라
    어떻게 분열의 역사를 지양하고 화해를 이루어 갈 수 있을까를 연구해야 할 때이다.

    
과거에 가졌던 모든 적개심을 내려놓고 새로운 평화의 시대를 향하여 모두가 힘있게 나서야 할 때이다.

 

 

 

    가슴이 따스한 사람 해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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