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움과 갈등을 뛰어 넘어

 

 

 

 

               오래 전 현대 그룹의 명예회장이었던 고 정주영 회장이 평화로움과 풍요를 상징하는 소떼를 이끌고

               분단과 대립의 상징인 판문점을 통해서 북한을 방문하였습니다.

 

               그의 소떼 방북은 단순한 일회성 행사라기 보다는 남북사이에 드리워져 있던 갈등과 반목,

               긴장을 누그러 뜨리는 상징적 사건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이런 회장의 행동을 보면서 우리가 저들에게 잘못한 것이 없는데 무엇때문에 저들에게

               선물을 주어가면서까지 화해의 물꼬를 트느냐고 항의를 할 것입니다.

 

               논리적으로 말할 때 그것은 북쪽에서 오히려 소떼를 이끌고 남쪽으로 내려와 화해의 진상품으로 바치면서

               전쟁을 일으켜 수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잃게 한 그 사죄를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상황은 그런 것을 기대하기는 어렵고 그렇다고 마냥 이대로 내버려 두면서

               서로 미워할 수만은 없는 일입니다.


               마치도 한 가정의 심정처럼 미움과 갈등은 결국 우리의 삶을 멍들게 하며

               물질과 그 어떤 것으로도 보상할 수 없는 많은 손실을 우리에게 안겨 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속히 이것을 털어 버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지금도 우리의 남북 사이에는 많은 이산가족들이 살고 있습니다.

               해마다 명절이 오면 우리는 이산가족들을 보면서 이들이 서로 상봉을 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우리의 정치인들은 이들을 정치적으로 이용만 할 뿐 이들에게는 아직도 진정성있는 상봉은 오지 않았습니다.

 

               만일에 이산가족 상봉이 그들에게 너무도 중요하고 절실했다면

               이처럼 무관심하고 북한만 비난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속담에 미운 놈 떡 하나 더 주라는 말이 있습니다.

               떡 하나를 더 주어서라도 서로 가진 미움을 털어 버릴 수만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은 없을 것입니다.

 

               사랑은 적극적으로 어떤 행동을 하기 이전에 먼저 우리 속에 있는 시기와 교만과 무례함과

               이기심을 버리는 것부터 시작해야함을 가르쳐 주는 교훈입니다.


               성내지 아니하고 원한을 품지 않는 것이 바로 사랑임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린 아기가 부모의 사랑 안에서 자랄 때는 건강하게 자랄 수 있지만

               아이가 고아가 되어서는 그 인격 형성에 많은 장애가 있음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생명의 본질은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언제부터인지 우리의 마음 깊은 곳에는 미움과 시기와 이기심과 분노가 우리의 마음을 덮어 버렸습니다.

               지금 우리 속에는 그 옛날 일어났던 전쟁때문에 미움이 깊게 자리잡고 있습니다.

 

               이 전쟁은 우리에게 너무도 큰 비극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우리 속에 쌓인 원한은 아무리 시간이 흘러가도 좀처럼 씻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오늘날 한국 교회가 수 없이 분열을 거듭한 것은 바로 이런 용서와 화해의 마음이 결여된 것이 아니겠습니까?

               자기 자신을 희생함 없이는 누구도 다른 사람의 허물을 용서할 수 없고 화해도 불가능할 것입니다.

 

               미움은 계속해서 미움을 낳게 되고 끝 없는 원한과 복수를 낳을 뿐입니다.

               우리 안에 있는 교만과 미움, 분노와 원한을  간직하고 있으면 우리는 또 다른 악을 불러오고 말 것입니다.

 

               오늘날처럼 한국 교회가 급성장하여 큰 교회를 많이 갖고 있지만 그런 것들은 하나도 자랑할 것이 못됩니다.

               오히려 올바른 공동체를 이루지 못한 채 덩치만 큰 교회는 심판의 대상일 뿐입니다.

 

               마찬가지로 이 작은 나라안에서 이러한 용서와 화해의 정신을 가장 잘 아는 사람들이 나라를 이끌어 가고

               이 땅의 불화와 갈등을 치료해 나갈 때 거기에 아름다운 통일이 이루어 지는 것입니다.

 

 

 

               가슴이 따스한 사람 해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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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따스한 부모님의 마음으로

  

 


            6월은 우리에게 얄밉게 아름다운 계절입니다.

            6월이 오면 나라를 위해 쓰러져 간 숭고한 영령들의 피와 민중들의 뜨거운 함성으로

            나라안에는 온통 장미꽃보다도 붉은 정열이 타오릅니다.

 

            이념과 사상을 넘어 남북 정상이 만나 기쁨으로 얼싸 안았던 희망의 계절이요

            2002년에는 월드컵의 축구 열기로 전 세계를 놀라게 한 감동적인 계절입니다.

 

            6월의 하늘 길을 걷고 있노라면 어디선가 그윽한 향기들이 우리 마음의 천국으로 들어와 더욱 설레이게 합니다.


           그런가 하면 요즈음 주변에는 봄날처럼 따스하고 인정있는 모습은 보기 어렵고

           살벌하고 잔인한 일들이 자주 일어나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마음도 점점 각박해져서 자기 일에만 더욱 관심을 갖는 것 같습니다.

           TV의 격투기를 보면서 흥분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사람들이 죽어도 자신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듯 애써 기분을 감추응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불행하게도 우리는 한국전쟁을 통해서 고난을 많이 겪었기에

           매일같이 북한에 대한 이야기나 이념문제로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습니다.

 

           그것은 또 하나의 우리 마음 속에 북한에 대한 무서운 적개심을 불어 넣고 복수를 다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외에도 세계 도처에서 일어나는 문제들은 "이는 이로 갚으라"는 전쟁과 보복뿐입니다.

 

           이러한 세계 속에서 우리들은 거기에 자연히 물들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우리가 사랑을 외쳐봐도 자신이 사랑보다 감정을 앞세우고 있는데

           어떻게 이 세계 속에 평화가 이루어 질 수 있을까요?

 

           이미 굳어질 대로 굳어져 버린 기성 세대에는 기대할 수 없고 다음 세대에나 기대해 볼 수밖에 없는데

           어릴 때부터 철저하게 적개심을 불어 넣고 있는 상황에서 과연 통일이 가능할까요? 어려울 것입니다.

           결국 이 땅에 전쟁과 보복은 그칠 날이 없고 그로 인해 온 인류는 종말을 맞이하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전혀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그것은 자식들을 향한 따스한 부모님의 마음으로 사는 길입니다.

 

           부모님의 마음이란 한마디로 親 (어버이친) 입니다.

           부모란 떠나가는 자식의 뒤를 보다가도 보이지가 않으면 동산위에 올라가서 보고

           그래도 보이지가 않으면 나무 위에 올라 서서 바라보는 것이 부모의 마음입니다.

 

           진정한 부모란 자식이 비록 살인을 저지른 사형수라도 모든 것이 다 내탓이려니 하며

           날마다 눈물짓고 자식을 위해 기도하며 교도소를 제집처럼 드나드는 부모일 것입니다.

 

           여기에서 나는 한국 교회와 우리 사회에게 묻고만 싶습니다.

           과연 우리들은 자식들을 위해서 얼마나 기도했으며 남북통일을 위해서 얼마나 노력해 보았습니까?

           걸핏하면 자식들을 내세워서 자기 맘대로 움직이고 북한을 적으로만 생각하지 않았습니까?

 

           우리 속담에 " 미운 놈 떡 하나 더 주라" 는 말이 있습니다.

           미운 놈에게 떡 하나를 더 준다는 것은 그 떡 하나가 원수를 친구로 만든다는 기적을

           우리 선조들은 생활 속에서 발견했던 것입니다.


           부모님의 마음이 가장 아플 때는 자식들간에 싸우는 모습입니다.

           부모님의 마음처럼 언제나 희생을 하면서도 참아내고 빼앗기고도 더 주려할 때

           거기서 싸움은 끝이 나는 것입니다.

 

           부모님의 마음은 한결같이 날마다 속만 썩이고 눈만 뜨면 싸우고 있는 자식들을 향하여

           조금도 미워할 줄 모르고 자식들을 위해 기도하며 그들이 주릴 때 채워주며

           목마를 때 마시게 하는 것이 부모님의 마음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예수를 믿는다는 사람조차도 사랑의 정신을 따르지 않는데 있습니다.

           더욱이 교회안에 끊임없이 분쟁이 일어나는 것은 교회가 행함에는 너무도 인색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너무 똑똑하고 인색한 사람들이 많으면 세상은 사실상 분쟁이 그칠 날이 없습니다.

           세상이 화평하려면 모두가 따스한 부모같은 마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남부 폴란드의 유명한 아우슈비쯔 수용소에 맥시밀리안 콜베라는 폴란드 신부가 갇혀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수용소 안에서 동물처럼 타락하며 빵 한 조각을 위해서는 도둑질도 서슴치 않는 그 때

           허약한 몸을 가졌으면서도 신부는 언제나 남에게 먹을 것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다른 사람이 쓰러지면 그 사람의 몫까지 대신 일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의 막사안에서 한 사람이 탈출하여 잡히지 않자 열 명을 골라서 굶어 죽게 한다는 것입니다.

 

           연병장에 사람들을 세워놓고 그 중에서 열 명을 골라 냈습니다.

           선택된 사람들은 모두가 원망했습니다.

           그 때에 콜레 신부가 나서서 " 제가 이 열 사람중 한 사람이 되겠습니다 " 하며

           특별히 가족때문에 걱정을 하고 있는 한 사람을 지목했습니다.

 

           결국 신부는 그를 대신해서 굶어 죽게 되었습니다.

           그는 굶어 죽으면서도 마지막까지 남아 한 사람 한 사람씩 죽어갈 때마다 그들을 위해 기도해 주었습니다.

 

           콜베 신부는 15일째 나치들의 석탄산 주사를 맞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는 정말 부모같은 마음을 가진 따스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한 사람에게는 생명을, 많은 사람들에게는 독재에게도 이길 수 있다는 용기를 주었습니다.

           그는 1971년 10월 17일 교황 바오로 6세에 의하여 " 가장 훌륭하고 가장 빛나는 인물 " 로 선정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시간과 정력을 다 바치고도 이제 여한이 없다고 말하는 따스한 부모님이 되십시오.

           이러한 부모들이 많아질 때 이 땅에는 반드시 평화가 올 것입니다.

           불의한 세력들은 물러가고 정의로운 평화가 반드시 이루어 질 것입니다.



           가슴이 따스한 사람 해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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