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四旬節)의 의미

       

       

       

       

       

                  영국에서 만든 <유다의 얼굴>이라는 유명한 드라마가 있습니다.

                  그 내용은 누가 가룟 유다의 역할을 맡을 것인가 하고 모델을 찾는 전 과정을 표현한 것입니다.

       

                  한 영화 제작자가 적임자를 찾아 열심히 다녔지만 찾지는 못했습니다.

                  그리고는 드라마의 끝 부분에 와서는 모든 배우들이 나와서 청중들을 향해 이렇게 소리쳤습니다.

       

                   "당신도 가룟 유다가 될 수있습니다"

       

                  이 드라마는 비록 각본이지만 누구라도 가룟 유다로 전락할 수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말해주는 내용입니다.

                  

                  겨울철의 나무는 마치 죽은 것처럼 보이지만 봄이 되면 새싹이 돋아나고 죽음의 정적에서 깨어납니다.


                  흔히들 기독교를 가리켜서 부활의 종교라고 말합니다.

                  또한 기독교에서는 부활절을 앞둔 40일을 사순절이라고도 합니다.

                  사순절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준비하기 위해 회개하는 절기인데

                  독일어로 표현하면 "금식 ( Fasten)과 시기 ( zeit )"가 합쳐진 "금욕과 절제의 기간"입니다.


                  교회들은 이 기간이 되면 사순절로 보내면서 "특별 새벽기도회를 갖고 오락을 금하며

                  참회와 경건으로 말씀 묵상을 하고 기도하는 것은 기독교만이 갖고있는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그러나 기독교적 문화 측면에서 볼 때 아직도 갈 길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한 종교에 있어서 예식과 절기 문화는 자기의 자리를 확인하게 하였고

                  흐트러졌던 자세와 잘못들을 반성하게 하며 나아가 신앙 생활에 더욱 정진할 수 있도록 만들어 줍니다.

       

                  유대인들은 지금도 유월절과 같은 절기가 되면 명절처럼 지내면서

                  자기 민족이 애굽에서의 탈출함을 되새기며 누룩없는 빵과 쓴 나물을 먹으며 하나님께 기도를 합니다.

       

                  그들은 해마다 봄이 오면 이 절기를 지키기 위해

                  성지 순례에 모여든 수 많은 인파들로 장엄하기가 그지 없습니다.

       

                  여기에 비하면 한국 교회의 사순절은 너무나도 단순합니다.

                  특별히 교회가 강조하는 것도 없고 삶에서도 예수의 고난에 동참하려는 모습들은 찾을 수 없습니다.

                  다만 한 가지 교계 안에서 벌어지는 갈등과 교권 쟁탈전은 그칠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교회의 권위는 이미 땅에 떨어졌고

                  종교의 높은 도덕성이나 위상은 실추되어 말할 수 없을 만큼 참담한 현실을 목도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타개하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사순절의 의미를 회복해야만 합니다.

       

                  우리 한국 교회는 200년이라는 짧은 역사 속에 너무나도 악마가 할퀴고 간 깊은 상처들이 지금도 남아 있습니다.

       

                  일제 때에는 혹독한 박해 아래서 그 신앙의 정조를 굽혔는가 하면

                  해방후에는 북한의 종교 지도자들이 대거 넘어 오는 까닭에 교계가 분열하는 큰 오점을 남겼고

                  급변하는 시대에 적응하여 변화시키지 못한 무기력하고 나약한 교회들로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 한국교회의 분열원인은 이슈란에서 비공개 )

       

                  진실로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전에는 구원받기 위해서라고 하던 것이 요즘은 모두가 축복을 받기 위해서라고 바뀌어지지는 않았습니까?

       

                  많은 교인들이 지금도 축복을 받기 위해서 교회에 나가며

                  십일조를 내는 까닭도 더 많은 축복을 받기 위한 투자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도박꾼들이 빚을 내서 도박하는 모습처럼 예수믿는 사람들도 빚을 내서라도 교회에 헌금하면

                  하나님이 몇 배로 갚아 주실 것이라고 가르치는 교회들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자기의 본분을 다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과 같은 교회를

                  완전히 돈 놓고 돈 먹는 도박판으로 전락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신앙이 아직도 하나님께 복을 받느냐 못 받느냐 하고 있다면

                  그것은 우리 신앙이 아직도 초보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다고 해도 틀림이 없을 것입니다.

       

                  지난 2003년 3월 30일 당시 이 날은 미국이 이라크를 공격한 날입니다.

                  수 많은 전투기들이 퍼 붓는 폭탄으로 이라크의 밤 하늘은 불바다가 되고 말았습니다.

       

                  견고하던 건물들이 힘 없이 쓰러졌는가 하면 죄 없는 아이들이 처참하게 희생되었고

                  인간의 잔인함은 어디까지인지 상상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이 기간이 기독교에서 말하는 사순절이었다는 사실은 잘 모르고 있습니다.

       

                  미국의 국회 의사당에는 지금도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다”는 글귀가 적혀 있습니다.

                  그들이 사용하는 달러에도  ‘ In God We Trust ’ " 우리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 라는 고백도 있습니다.


                  과연 그들이 믿고 있는 하나님은 누구일까요?

       

                  예수께서는 장차 자기에게 닥쳐 올 죽음을 직감하며 피하지 아니하고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 동산으로 올라가 그들을 위해 기도 했습니다.

       

                  그리고는 자기를 잡으러 오는 사람들과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 검을 도로 집어 넣으라.  검을 쓰는 자는 검으로 망한다 "

       

                  세상에 군사 무기처럼 낭비성이 강하고 한심스러운 물건이 또 있을까요.

       

                  정부와 여당은 지금부터라도 복지예산이 너무 없다고만 하지말고

                  방산 비리들처럼 귀가 얇아 뻥 튀기고 빼돌려도 아무도 모르는 예산부터 점검해야 할 것입니다.

                                                                     
                  어쩌면 신앙의 적은 우리의 내부안에 있는 지도 모릅니다.

                  오죽하면 이제는 사람들도 목사들의 얘기라면 콩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잘 믿어 주지를 않습니다.

       

                  차라리 언론들이나 불신자들은 몰라서 그렇다손 치더라도

                  알만한 교인이나 교회 지도자들의 죄는 복음에 심각한 장애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들은 마치 가룟 유다처럼 예수를 이용하여 교계를 분열시키거나 사회에 큰 물의를 일으켜서

                  복음을 가로막고 불신자나 초신자들에게 시험에 들게 하고 있습니다.

              
                  지도자가 자신은 실천도 못하면서 남에게만 하라고 하면 설득력이 없습니다.

       

                  예수는 먼저 원수들을 사랑하셨습니다. 
                  그리고는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며 너희도 이와 같이 하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는 말하기를 참 목자는 양 아흔 아홉을 들에 두고 길 잃은 한 마리 양을 찾는 것이라고 비유 했습니다.

                  하나의 생명을 위해 전체가 희생되는 그것이 구원이라고 말했습니다.

       

                  작은 하나의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단체, 사회, 국가에게 구원이 임한다는 뜻입니다.

                  네 이웃을 사랑하라,

                  원수들을 사랑하라,

                  누가 네 오른뺨을 때리거든 왼뺨도 돌려대라고 하신 그 말씀은 차라리 예수님의 유언이었습니다.


                  그런데 세상에 어떤 복음이 저들은 종북 좌파이니 멀리하고 정쟁을 한단 말입니까?

                  참된 종교는 선한 일을 하기 전에 악한 일을 하지 말라고 가르칩니다.(마3:8,눅3:8)


       

                  좀 부끄러운 말이지만 지금 한국 교회는 집단은 있어도 개인이 없는 사랑이 결핍된 교회로 가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여!

                 

                  신라 시대에 그렇게도 많이 활약했던 불교들이 지금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고려 시대의 사찰들도 지금은 잘 보이지가 않습니다.

                  조선 시대에는 골짜기마다 서원들로 빼곡했고 고을 마다에는 향교들도 많았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예수의 교훈과 그의 삶을 추구하는 자들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살펴보아도 예수께는 성장신화가 없습니다.

                  오직 십자가만이 예수가 걸어가신 길이고 자기의 목숨까지도 다 바쳐 인류를 구원하신 사랑의 정신이었습니다.

       

       

       

                  가슴이 따스한 사람 해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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