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의 등록금과 일자리 문제 !!

 

 

 

 

 

 

요즘 우리 사회의 고민이 심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일자리문제와 학생들의 등록금 문제에 이르기까지 퍽이나 다양합니다.

 

교육을 백년지대개라고 말하면서도 우리의 교육은 백년은 커녕 당장 눈 앞의 실리를 위해서 오락가락하고 있습니다.

 

배워야 할 자녀들에게 무상교육은 못 시켜줄 망정 비싼등록금 잔뜩 올려놓고 이제와 선심쓰듯 돈을 빌려주며

이자를 챙겼으며 사회로 나가 속히 갚으라고 말한다면 과연 이것이 옳은 것인지 무감각하기 그지 없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현실은 돈이 없으면 배울 수가 없고 배우지를 못하면 취직할 수가없고

취직을 못하면 돈을 벌 수도 없는 악순환 현상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회적인 모순은 그대로 현실과 맞물리면서 학생들이 좀 더 깊은 학문을 통해 진로를 모색할 것도 같지만

현실은 돈이 되지 않는 학문, 전문교육의 인기는 사라지고 오직 돈이 되는 학문만이 인기가 있어서

대체로 기능인간으로서의 역할로 살아갑니다.

 

학생들의 취업문제는 더욱 더 심각합니다.

과거에는 대학을 나와야만 들어갈 수 있었던 직장이 오늘날은 오히려 학생들에게 걸림돌이 되고 있습니다.

한 해에도 수십만명의 학생들이 졸업하여 일자리가 필요한 지금

결국에는 수 많은 젊은이들을 실업자로 내 몰아야 할 형편입니다.

 

개인마다 차이가 있지만 배워 온 분야가 다르고 적성에 맞지않는 직장에 취업하기란 거의가 불가능합니다.

그것은 저들이 눈이 높아 일부러 취업을 안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적으로도 하고 싶지만 하지 못하는 우리 현실문제가 더 큽니다.

 

이러한 문제에서 저들이 탈피하는 길은 정당한 방법으로는 거의가 불가능하고

돈을 쉽게 벌기 위해서는 아침 일찍부터 집을 나가 알바를 하고

단순노동이나 성(性)을 팔아서라도 돈을 벌어야만 하는 그들의 심정이 안타깝기만 할 뿐입니다.

 

그러면서도 시위를 하지 않을 수없는 저들의 안타까운 현실을 바라보며

결국 우리 사회를 향한 하나의 경고 소리는 무시되고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밤낮 시위만 하느냐"고 무심히 지나쳐 버린다면

그들은 과연 어느 나라 사람이고 올바른 대책은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없습니다.

 

일자리의 문제는 결코 그들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가정의 형편으로 일찍부터 진학을 포기해야 하는 고등학생들...

나라의 부름으로 군에 갈 수밖에 없었던 청년들...   과연 그들의 장래는 누가 책임져 줄 것입니까?

 

그들을 양육해야 할 부모들의 심정 또한 안타깝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가정의 생계를 책임져야 할 가장들이 젊은이들에게 밀려나 직장을 잃고 일자리가 없어 방황해야 할 처지에 놓여있습니다.

임시직이나 막노동판에 머물면서

도박이나 복권을 사서라도 인생역전을 꿈꾸려는 사람들이 늘어만가고 있습니다.

 

결국 사람이 돈이 없으면 배울 수도 없고 배우지를 못하면 취업할 수도 없는 현실에 무엇을 어떻게 해야 옳은 것인지

국가와 경제, 문화,종교계의 범 사회적인 문제로 대처하지 않으면

우리 사회는 끝 없는 일자리 늪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사회가 불안하고 경제가 어려울수록 범죄가 늘어가고 자살이 늘어가는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가진 자들이 좀 더 양보하고 배려하지 않는 이상 이 사회의 일자리는 없습니다.

아무리 수십만개의 일자리가 만들어진다해도 결국 그 자리의 주인은 가진 자들에 의해 채워집니다.

 

서민들의 가장 기본이 되어야 할 일자리 운동 "과 같은 의무대책이 마련되지 않는 이상

이 사회는 살기 힘들고 고통은 해결되지 않습니다.

 

지금은 우리 사회의 가진 자들만이 주장 할 때가 아닙니다.

절제하고 겸손하며 서민들을 먼저 배려해야 할 때입니다.

 

우리 사회에 힘 없는 자들은 언제나 힘 있는 자들을 위해 충성을 다하지만

힘 있는 자들은 힘 없는 자들을 위해 과연 무엇을 하여왔을까요?

 

힘 없는 자들이 언제나 기를 펴고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도록

이제는 모두가 협력하여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아름다운 세상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가슴이 따스한 사람 해피

 

 자살(自殺)! 꼭 해야만 합니까?

 

 

 

 

 

요즘 우리 주변의 자살(自殺)문제가 사회적으로 적쟎은 혼란을 주고 있습니다.

지난 10월 7일 밤 대중들에게 인기강사로 유명한 최윤희씨가

오랜병마로 시달리다 견디지 못하고 남편과 함께 동반자살을 하고 말았습니다.

 

이번 그의 자살이 큰 충격을 주는것은 그가 단지 유명인이라서가 아니라

행복을 전달하는 행복전도사요, 공인이었기 때문입니다.

 

유명인은 곧 공인(公人)이라 할 수있습니다.

 

공인이란 넓은 의미에서 사회의 구성원은 누구라도 그 재능과 영향력을 인정하여

국가나 사회가 그들에게 공적인 일을 부여하여 동경과 가치를 추구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번 자살을 두고 과거와 마찬가지로 자기신변의 두려움이나 고통에 따른 괴로움의 표출이라고 할 수있습니다.

그렇다면 죽음만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줄 수있을까요?

 

죽음은 단지 자신과의 마침이지 자신을 둘러싼 기대열망에 자살만이 능사인가라는 가치판단이 따릅니다.

사람은 태어나면서 자신을 사랑하고 보호하려는 본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인간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목숨을 끊는다는 것은 자기자신만이 아니라 사회전체에 해를 끼치는 것과도 같습니다

 

벨기에의 극작가 메테를링크가 지은 "파랑새"라는 동화가 있습니다.

가난한 치르치르와 미치르의 오누이는 파랑새를 찾아 기억의 나라로 행복의 나라로 미래의 나라로 떠났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끝내 찾지 못하고 기진맥진하여 돌아와보니 그들이 찾던 파랑새는 집안에 있었다는 내용입니다.

 

이 이야기는 행복이란

무지개너머 높은 산과 깊은 물을 지나서 찾을 수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가까이에 있다는 뜻입니다.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스스로 비하하며 공연히 자신의 처지를 한탄해서는 안된다는 교훈입니다.

 

강 가옆에 사는 사람이 어찌 물의 귀중함을 알겠습니까?

그러나 사막을 여행하는 사람들에게 물이란 사막의 오하시스요, 한 줄기 생명수입니다.

 

인간은 항상 소유하고 있지 못한 것들에 대한 헛된 욕망과

소유하고 있는 것들에 대한 싫증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실제로 인간은 어려울때보다도 부요할 때가 더욱 생활하기가 어렵습니다.

인간은 아무리 좋은 환경에 있다 할지라도 만족을 느끼지 못하는 존재입니다.

하나를 얻고 나면 좀 더 가지고 싶고, 좀 더 먹고 싶고, 좀 더 누리고 싶은 것이 인간의 욕망입니다.

 

차라리 어렵고 궁핍할 때에는 그러려니하며 모든 것을 체념할 수 있지만

자기가 여유로울 때에는 언제나 유혹에 넘어가기가 쉬운 법입니다.

 

마음이 여유로울 때에는 교만해지거나 유지하려고 하는 고민이 따르고

자기가 어려울 때에는 자신의 신념마져 흔들릴 수있는 못된 유혹이 생길 수가 있습니다.

 

인간은 언제나 보람된 일에는 기뻐하지만 고통과 어려움앞에서는 괴로워하기 마련입니다.

자신의 행복도 모르면서 어찌 타인의 처지를 알겠습니까?

 

우리 사회에서 남에게 인정받는 길이란 일상생활에서 더욱 더 義를 드러내야 합니다.

 

무엇을 하든지 그것이 과연 義의 것인지 아닌지를 분별해야 합니다.

그것이 義의 것이 아니라면 그것은 인간의 고상한 능력을 신봉하여 스스로 만족을 얻으려는

타인을 향한 진정한 義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결국 義의 뜻이 아닌 선행이란 자기만의 영달이지 그의 고통또한 남들로부터 인정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공인이란 한마디로 義의 뜻을 전하려하는 자들입니다.

국가나 사회가 그들의 업적을 인정하고 격려하여 그들에게 붙여주는 호칭이 그것입니다.

행복을 더 많이 알리라는 의미에서 행복전도사요, 기부를 더 많이 알리라는 의미에서 기부전도사로 붙여줍니다.

 

얼마나 견디기 힘들었으면...하며 동정을 보내기도 하고 그래도 자살만은 안된다고 타일러 보지만

과거 자신이 사람들로부터 받아온 사랑에 견주어 보면 그같은 고통과 비천함 따위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행복이란 고통을 초월할 때 그 진가는 더욱 빛나는 것입니다.

남에게 인정받으려하거든 먼저 어떠한 형편에든지 스스로 자족하는 법을 터득해야 합니다.

 

이 세상가운데에는 그보다 더 많은 고통가운데 사는 사람들이 존재하며

그 동안 당신의 말에 귀기울여주고 당신을 기대하는 많은 열망에 더 이상 의지를 꺾어서는 안됩니다.

 

왜 자살이 어리석은 것일까요?

열심히 살지못한 순간의 어리석음 때문입니다. 열심히 사십시요. 그것도 인간의 사명(使命)입니다.

자살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없는 대신에 살아야 할 공포가 존재합니다

 

죽음에 맞서 그 죽음을 선택하는 것은 어쩌면 용기있는 행동일 것같지만

그러나 죽음보다 살아갈 일이 더욱 더 무섭고 두려워질 때

어떻게든지 살아서 대처해 가는 것이 더욱 더 용기있는 행동일지도 모릅니다.

 

(生命)은 생물이 기본적으로 가지는 속성이지만

인간의 생명은 살아가라는 하늘의 명령이고 자살의 반대는 살자입니다.

 

 

 

 

 

가슴이 따스한 사람 해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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