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샘추위

 

 

 

                                           이른 봄날

 

                                           싹이 돋고 뿌리가 내리려는 어린 새싹들은

                                           종종 비 바람과 추위몸을 움추려 든다.

 

                                           그러나 그 새싹은 결코 죽지 않는다.

                                           제비꽃은 조그맣게 땅 위로 얼굴을 내밀면서

                                           때를 기다린다.

 

                                           스스로는 자랄 수없던 어린 새싹들도

                                           점차로 불어 주는 고운 남쪽 바람과

                                           위에서 비쳐 주는 따스한 햇빛로 감싸주면

 

                                           마침내 그 새싹은 자라서 꽃을 피우고

                                           이 세상은 온통 아름다운 꽃으로 뒤 덮는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종종 유혹을 받고

                                           선한 의지가 시련을 겪으며

                                           수 많은 시험들에 의해 저지를 당하게 된다.

 

                                           우리는 자신의 목적이 달성되지 못했을 때

                                           엄청난 좌절감도 맛보게 된다.

 

                                           그러나 우리가 삶을 아름답게 만들고자 하는 것은

                                           날씨가 아직 추운 봄날에

                                           새싹이 꽃을 피우려는 노력과 같이

 

                                           우리 마음에 따스한 햇빛이 비쳐오면

                                           우리가 사는 세상에도 희망의 꽃들이 피어나

                                           마침내는 아름다운 세상이 올 것이다.

 

 

 

                                           가슴이 따스한 사람 해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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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난을 아름답게

 

 

 

 

 

 

 

                추운 겨울이 지나가고 따스한 봄이 오

                자연은 어디선가 꽃샘추위를 몰고 오고 사람들은 꽃샘추위에 몹시도 당황을 합니다.

 

                고난은 누구나 다 당하기를 싫어하는 것이지만

                그러나 고난에는 우리의 잠자던 영혼을 깨우는 힘이 있습니다.

 

                얼마 전 서울의 한 강연장에서 일어난 리퍼트 美 대사의 피습사건을 보면서

                60년 전 한국 전쟁의 상처가 이렇게도 크게 남아 있을 줄 미쳐 생각지 못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언론에 동조하며

                어떤 이들은 김기종씨를 테러분자라고 비난하고 

                어떤 이들은 美 대사를 향해 춤을 추며 영웅으로 모셨습니다.

 

                그러나 이 보다도 안타까운 사실 하나는 우리 사회에 무슨 일만 터지면

                항상 반복되는 종북 논란과 국가 보안법은 무엇인지

                우리를 더욱 위협하는 무서운 존재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 동안에 우리는 단 한 번도 이 민족이 당한 고난의 의미를 깊이 생각하지 않은 체

                안보만을 높여 왔고 민족 분단을 정권 유지의 유리한 방패막이로 사용하여 왔을 뿐입니다.

 

                우리는 너무나 큰 전쟁을 겪었으면서도 거기서 얻은 교훈이 기껏해서 안보뿐이라면

                우리는 그 전쟁이 주는 많은 교훈을 상실하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래 전에 <25시>의 작가 게오르규 씨가 한국을 방문했을 때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 인생 항로의 괴롭고 어려운 시련을 이겨낸 사람에게는 누구나가 모자를 멋고 인사를 드리게 됩니다.

                지구상에서 한국 민족처럼 괴로움을 당한 민족이 없어 나는 존경하는 마음으로 인사하고 싶습니다 "

 

                그는 그의 작품 <25시>에서 " 빛은 동방에서 온다 "고 말하며 그 동방이 바로 한국이라고 말했습니다.

                그것은 한국인이 무척 괴로운 시련을 겪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정말 그가 말한 대로 괴로운 시련을 겪은 민족임에는 틀림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고난 속에서 그가 말하고 있는 어떤 빛을 찾았는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고난은 당한 것만으로는 값진 것도 아니며 그 고난의 의미를 깨달을 때

                그래서 어떤 빛이 나올 그 고난은 더욱 값진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세계사에서 이스라엘 만큼이나 수난을 많이 겪은 나라가 또 있을까요?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를 보면 강대한 나라들 틈바구니에 끼어 끊임없이 침략을 받고

                이리저리 쫒기는 고난의 역사였습니다.

 

                이러한 고난을 보며 예언자들은 한결같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내산에서 맺은 하나님과의 계약을

                성실하게 지키지 않았기 때문에 오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고난의 일차적인 의미를 죄에 대한 형벌로 이해 하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언자들은 끊임없이 그 민족에게 회개를 촉구하였습니다.

 

                유대인들은 지금도 매일 통곡의 벽앞에 나가 죄를 고백하고

                그들의 성전이 복구되어 경배하는 날이 오기만을 기도하고 있습니다.

 

                통곡의 벽앞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날은 티사 밥(Tishe B`ab)으로 그들이 우는 날로 가장 슬픈 날입니다.

                그 모습이 어찌나 애처로운지 가던 사람도 돌아설 지경입니다.

 

                만약에 인과응보(因果應報)사상이 죄를 지은 사람에게는 응당한 고난이 온다는 것이 맞다면

                고난은 하나의 형벌로 이해 되어져야 할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민족이 당하고 있는 고난도 어쩌면 우리가 저지른 죄에 대한 하늘의 경고는 아닐까요?

                정권욕에 사로 잡혀 국민들을 돌보지 아니한 정치가들의 죄와 이 시대에 의미를 부여하지 못하고

                역사를 해석하여 비젼을 제시하지 못한 창백한 지성인들의 무기력함에 대한 진노인 줄도 모릅니다.

 

                이 민족앞에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선포하지 아니하고

                분열만을 거듭해 온 교회의 잘못에 대한 대가(代價)인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이제까지 자기가 잘못했다고 시인하는 정치가들을 보지 못했으며

                모든 일의 책임을 통감하고 물러나는 지도자들을 보지 못했습니다.

                결국 우리의 양심이 둔화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고난의 일차적인 의미가 죄에 대한 댓가라면

                왜 죄 없는 사람들까지 애매하게 고난을 당해야만 하는가 라는 의문이 생깁니다.

 

                이런 의문은 옛날에만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세계 역사 속에서 끊임없이 반복되어져 온 사실입니다.

 

                히틀러의 나치 정권 밑에서 아무 죄없이 학살당하고 수 많은 유대인들이 부르짖었으며

                미국의 흑인 노예들이 채찍 밑에서 신음하며 울부 짖어 왔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유신시대와 군사정권 밑에서 무고한 사람들이 박해를 받고 자유를 부르짖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이산가족 상봉을 지켜 보면서 느낀 것은 고난 당한 것은 애매한 민중들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어린 학생들은 또 무슨 죄가 있어서 사랑하는 부모님께 마지막 작별인사도 못드린 체

                지옥같은 그 세월호에서 구슬픈 눈물 하염없이 흘리면서 꽃잎처럼 떨어져야만 했을까요?

 

                여기에는 분명히 고난보다는 더 깊은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보다 더 깊은 고난의 의미가 무엇일까를 찾으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러다가 알게 된 것이 모든 육체와 정신이 무너져 버린 곳에서 진정 영혼이 빛을 발한다는 사실을

                깨달아 알게 된 것입니다.

 

                위대한 영혼은 고난을 통해서 빛나는 법입니다.

                고통이 결여된 인생은 천박하고 그 예술은 사람의 심금을 울리는 깊이와 영감을 가질 수 없습니다.

                이것은 개인이나 한 민족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일찌기 인도의 시성 타골도 한국을 가리켜 " 아시아의 황금 시대에 빛나던 등불 "로 보고

                그 등불이 다시 한번 켜지는 날 동방의 밝은 빛이 될 것이라고 소개한 바 있습니다.

 

                중국의 석학 임어당(林語은 한국에 왔을 때 거문고 소리를 들어보며

              " 우는 소리와 절규하는 소리가 같이 난다 "면서

                감각으로는 우는 소리가 들리고 영감으로는 절규하는 소리로 들린다"고 하였습니다.

 

                오랜 고통의 누적에서 우러나는 절규이며

                그것은 앞으로 국제시대에 소중하게 평가될 한국의 희망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이 약소민족인 우리가 겪고 있는 고난은 결코 우리만의 고난일 수가 없습니다.

                우리 민족의 통곡은 전 세계가 당해야 하는 아픔을 대신하고 있는 고난임이 틀림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 고난을 통해서 일어선 우리 민족의 빛이 온 세계를 비추는 희망의 빛이 될 수있습니다.

 

                우리는 폭력으로 이루어진 사회를 정당한 것이라고 받아 들여서는 안됩니다.

                아무리 그럴 듯한 명분이 있다 하더라도 우리 안의 어떠한 폭력이나

                대륙간 탄도 미사일 사드 도입같은 무기는 단호하게 막아야 할 것입니다.

 

                미국이 무기를 개발하는 명분은 세계 평화를 위한다고 하지만 그들이 내다 파는 무기가

                오늘날 세계 도처에서 전쟁을 야기시키고 있다는 사실을 볼 때 평화를 위한 무기란 논리적으로나 가능하지

                실제적으로는 인명을 살상하는 무서운 무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악을 막는다는 명분으로 또 다른 폭력을 사용한다는 것은 우리는 결코 용납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봄이 오는 길목에서 꽃샘추위가 우리에게 들려주는 소식은

                꽁꽁 얼어붙게 하던 겨울은 이제 가고 만물을 소생하게 하는 봄이 왔다는 기쁜 소식입니다.

 

                앙상한 나뭇가지가 영광스러운 부활 승리를 위해 꽃샘추위를 이겨내고

                美 대사의 피습사건으로 인하여 한미동맹이 더욱 더 강화된 것처럼

                우리가 겪고 있는 이 고난을 헛되게 하지 말고 거기서 참된 의미를 찾아내며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가슴이 따스한 사람 해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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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월이 주는 희망 이야기

 

 

 

 

 

 

                 어느날 아침 한 사람이 교회안으로 들어왔습니다.

                 깊은 슬픔이 그 사람의 가슴 속에 가득 찼습니다.

 

                 묵묵히 의자에 앉아 있을 때에 한 마리의 작은 새가 열려진 창문으로 들어왔습니다.

                 그 새는 사람을 보는 순간 너무도 놀라 천정(天井)을 향해서 날아갔습니다.

 

                 그러나 천정에 나있는 창문들은 모두가 닫혀있었고

                 가련한 이 새는 이 창문에서 저 창문으로 날아다니며 계속 날개를 퍼덕거렸습니다.

 

                 그때에 이 사람은 생각했습니다.

                "저렇게 어리석은 새도 있구나...조금만 더 아래로 내려오면 열려 있는 창문이 보일텐데..."

 

                 마침내 그 작은 새는 너무나 지쳐버려 그만 바닥에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잠시 뒤에 이 새는 열려진 창문을 보게되었고 날개를 다시 펴고 저 멀리 날아갔습니다.

 

                 우리 인간들 또한 자신의 고집대로만 살려고 하는 한 마리의 작은 새와도 같습니다.

                 인간의 삶이 한 번 높아지면 올라갈 줄만 알지 스스로 내려가기란 어려운 것입니다.

 

                 그리하여 스스로 내려갈 수 있도록 하늘은 인간에게 고난이라는 겨울을 보내어

                 겸손의 자리, 낮은 자리에 머물고 섰도록 이끌어가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인간은 비로서 자신의 약함을 알고 높은 사람은 낮아지고

                 낮은 사람은 높아지도록 더욱 더 훈련받아 새로운 변화와 겸손을 깨달아 아는 것입니다.

 

                 우리가 희망을 이야기 할 때 그것은 삶의 의욕을 높여주고 절망의 중병들을 이겨내며

                 접었던 자신의 날개들을 다시 펴고 힘차게 날아오르는 힘입니다.

 

                 추운 겨울이 오면 운동 선수가 더욱 더 땀을 흘리는 것처럼 우리의 희망이란 겨울을 무사히

                 보낸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누가 겨울을 어떻게 보냈느냐에 따라서 그 빛도 달라질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 경험도 없는 사람들은 한 번 의지를 잃고 나면 무모하게 살아갈 때가 많이 있습니다.

                 때로는 술과 도박에 빠져서 마음을 달래기도 하고

 

                 어떤 때는 남에게 피해를 주기도 하며

                 어떤 때는 온갖 수단과 방법으로 불법적인 일들을 도모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꽃이 없는 앙상한 나뭇가지가 찬 바람을 맞으며 떨고 서 있는 것처럼
                 겨울 추위는 지금도 우리를 움추리게 하지만
봄은 이미 성큼 우리에게 다가왔습니다.

 

                 봄이 열리는 3월을 영어로는 March 라고 하는데 이 말은 시끄럽다, 움직인다 는 뜻이 있습니다.

 

                 그리하여 3월이 돌아오면 모든 산과 계곡에는 긴 겨울잠에서 힘을 얻은 새로운 생명들이 나와

                 힘차게 활동을 시작합니다.

                 그들 뿐만이 아니라 인생들도 서로의 사랑을 다짐하고 새 출발을 시작합니다.

 

                 3월의 들판에는 벌써부터 재잘거리는 새들의 노랫소리가 정겹고

                어둡고 무거웠던 땅에서는 새순들의 기지개로 움틀거리기 시작합니다.

 

                밀턴(Milten)은 봄이 되면 자신에게 항상 새롭고 젊은 시상(詩想)들이 떠 올랐다고 말합니다.

                그는 대체로 겨울철에는 시를 쓸 수 없었지만 봄만 되면 시상을 포착하고는 하였습니다.

 

                그는 봄의 신선함과 희망을 포착하고 주위를 둘러보고서는

                겨울의 무덤으로부터 힘차게 솟아나는 생명의 약동들을 관찰하였으며

                새로운 생명과 아름다움 속에서 기쁨도 맛보았습니다.

 

                봄이 오면 차갑게 얼어붙었던 땅에서 아주 작고도 연약한 사랑스러운 생명체들이 움터 나옵니다.

                땅에서 솟아나오는 앙증맞은 새싹들을 보십시오

 

                그것들은 꽃과 같이 향기롭고 사랑스러울 만큼 아름답기까지 합니다.

                그것들을 뽑아서 한 번 만져보십시오

 

                세상에서 이 보다 더 부드럽고 신비로운 생명체가 또 있을까요.

                자연의 아름다움은 우리의 눈을 즐겁게 할 뿐만 아니라 우리의 귀도 즐겁게 해줍니다.

 

                새들의 기쁨 속에서 아름다운 화음을 창공에 쏟아 놓습니다.

                만약 새들이 노래하지 않는다면 그 새들은 얼마 못가 죽고 말 것입니다.

 

                새들은 노래하지 않을 수가 없어서 노래를 하며 기쁨을 표출하고 사는데

                어찌하여 사람들은 새들처럼 기쁘게 살지는 못할까요?

 

                세상에서는 이미 창문을 열어 놓고 어서 오라고 손짓하고 있는데

                왜 사람들은 초상집의 표정처럼 눈물만 짓고 살까요?

 

                봄철에 새들을 짝지워주는 봄의 전령사는 우리들에게도 좋은 배우자를 짝지워 주고

                꿩에게 아름다운 깃털로 옷 입혀 주는 그 마음은 우리들에게도 좋은 새 옷으로 입혀 줄 것입니다.

 

                삶의 문제로 고민을 하고 있는 그대여!

 

                손가락으로 영혼의 거문고를 힘차게 뜯어라

                마음 구석 구석에서 아름다운 화음이 울려 퍼지게 하라

 

                어둠 속에서 그만 엎드려 있지 말고 자리를 박차고 나와

                당신의 아름다운 노랫소리를 더욱 드높여라.

 

 

 

                가슴이 따스한 사람 해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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