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위(示威)는 왜 필요하나?

 

 

 


세계 어느 나라, 어느 민족이라도 사람들은 항상 평화로운 세상을 꿈꾼다.

그러나 지금 우리 나라는 모든 분야에서 싸움이 한창이다.

 

정권을 유지하기 위하여 싸움을 하는가 하면 경제적인 대기업들의 싸움은 이 사회를 병들게 만들었고

언론들의 나태함과 횡포는 이 사회를 더욱 어지럽게 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이에 맞서 항거하는 국민들의 시위가 끝없이 반복되고 있다. 우리 사회가 이렇게 싸움이 난무하게 된 것은

남북이 전쟁을 치루면서 군사력을 기르지 않을 수 없었던 데서 비롯된 것이다.


그것은 막강한 권력으로 자라나 마침내 군사 반란을 통해 정권을 장악하기에 이르렀다.

그것이 오늘날의 보수정권을 가져왔고 이것이 그들의 정통성이기도 하다.


그리하여 그들은 오늘날까지도 무력에 의존하지 않고서는 정권을 유지할 수가 없었으며

자신들에게 동조하지 않는 자는 누구라도 가차없이 그 사회에서 추방시켜 버렸다.

 

우리 사회는 지금 온 종일 북한 얘기로 사람들을 자극시키는 시대에 살고있다.

국가기관의 대선개입이 드러난 지도 벌써 1년이 지났건만 아직도 정부나 새누리당은 차단하기에 바쁘고

무능력한 야당과 시민단체들은 항의하기에만 급급하다.

 

경제도 마찬가지이다. 경제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기업들은 철저하게 서민들을 외면하고 돈벌이에만 혈안이 되었으며

이로 인한 노사간의 갈등은 갈수록 증폭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민들은 어쩔 수없는 사실로 받아들이며 거기에 적응하는가 하면 그 합리화에 동조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문제는 그것만이 아니다. 국민들의 의식에도 많은 문제가 있다.

세상이 자꾸 변하면서 계속 터져 나오는 불의들을 보면서 그것이 바로 우리가 해야 할 일임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온 나라가 이렇게도 시끄러운데 사람들은 자신만 건드리지 않는다면 가만히 있는 것이다.

마치 한 집안에서 자식들이 싸우고 있는데 부모들은 관심도 없다는 냥 구경만 하고 있는 것과 같다.

집안에서 누군가 괴로워하면 그 집안에 문제가 있는 것처럼 나라에 국민들이 괴로워하면 그 사회는 병들어 있는 것이다.

 

흔히 우리는 그 사회의 현상을 가장 먼저 알아보고 예민하게 느끼는 사람들을 의식인이라고 부른다.

의식인들이 많은 사회, 불의를 보며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사회, 그런 사회가 건강한 사회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의식인들이 없다거나 있기는 해도 잠만자고 있다면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없다.

의식인들도 잠들고 정의는 날마다 우리 사회를 향해 꾸짖고 있는데 우리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

 

그 사회의 정의는 어디까지나 권력이나 불법,폭로나 비난, 조작같은 여론몰이등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모든 결정권은 오로지 국민들의 허락에 의해서만 이루어진다.

 

누가 국민들 만큼이나 지혜롭고 강한 세력이 또 있을까?

국민들의 심기를 건드리면 건드릴 수록 국민들의 저항만 더욱 거세질 뿐이다.

 

나는 먼저 우리 사회의 이러한 갈등들에 대하여 민주주의와 반대 세력 간에 생겨난 끝없는 갈등이라고 주장한다.

민주주의란 국가의 주권은 국민들이 가지고 국민을 위하여 정치를 하는 제도이다.

            

그 동안에 우리가 적극적으로 외쳤던 민주화는 정치적인 이념의 민주주의 운동이라기 보다는

평화를 위한 아름다운 세상 만들기라고 할 수있다.

민주화란 그 속에 깃들인 독소를 뽑아내고 아름다운 세상을 이루어가자는 말이다.

 

그렇다면 왜 사람들이 시위를 하느냐고 말한다.

역사적으로 보면 시위는 항상 공적인 일에 대한 경고표시였다.


우리 나라만을 놓고 보더라도 4.19학생의거나 민주화운동, 광주시민들의 운동은 불의한 세력들에 맞서서

국민들이 더 이상 악행을 일삼지 말라고 보내는 일종의 항거였다.

 

어떤 의미에서 시위(示威)는 사람들이 기세를 떨쳐내고 자신들의 공동의사를 표출해내는 것을 말한다. 

정치적으로는 민주주의에 대한 요구이고 불의에 대한 항의라고 볼 수있다.


그리하여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광장에 모여 어떤 이들은 촛불을 들고 어떤 이들은 머리에 띠를 두르며

때로는 화염병과 돌을 투척하기도 한다.

다른 한편에서는 연신 물대포를 쏘아대고 최루탄을 날리며 군화로 밟고 곤봉으로 때리고 방패로 내려찍기도 한다.

 

과연 이와 같은 시위가 바람직한 시위일까?

시위를 할 때 가장 기억해야 할 것은 어떠한 경우에도 자기 감정에 사로집하지 말고

오로지 공동체를 위한 공적인 유익이나 봉사가 되어야 할 것이다.


어설프고도 어정쩡한 시위는 오히려 상대방을 자극시키는 빌미가 되어

시위를 하는 목적이 무엇인지 사람들을 의심케 만들 뿐이다.

 

시위를 함에 있어서 정치인들의 역할은 언제나 두 가지이다.

직접 개입함으로 국민들의 도움이 없이 홀로 싸우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직접개입하여 국민들과 함께 싸우는 것이다.

 

어차피 모든 이념은 우리가 추구하는 진정한 이념이 아니다.

우리는 이념과는 상관없이 이 땅에 평화와 사랑이 깃들기만을 바랄 뿐이다.


또 우리가 통일이 이루어졌다 하더라도 그것이 우리의 최종 목표는 아니다.

불완전에서 완전으로의 전환이 되어가기까지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오늘날 우리가 이념과 사상에 얽매이다 보면 자칫 냉혹하고도 기계적인 사랑이 없는 사람이 되기 쉽다.

중세국가가 저질러 온 큰 잘못중에 하나가 바로 이 냉혹한 교조적인 판단으로 무고한 사람들을 죽인 일이다.

우리는 더 이상 민주화나 불의가 정치적인 문제로 자신과는 무관한 일이라고 외면할 수는 없다.

 

요즈음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주장들을 관철시키기 위해 분신이나 자살을 하는 것을 보면서

사상과 이념에 포로가 된다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느끼게 한다.


이념에 사로잡힌 자들을 보면 그 얼굴이 얼마나 무섭고도 차가운 지 저들도 인간이며 가정은 가졌을까...

이러한 문제들을 방치한 채 우리가 아무리 경제대국이 되고 돈을 벌어도 우리의 삶을 더욱 안정시킬 수는 없다.


사람들의 얼굴이 모두가 괴물같고 무섭게 보이는데 어떻게 그 사회가 발전하며 나라가 평화로울 수 있을까...

개인의 악행을 보며 공의에 따라 처벌을 해야한다면 공동체에게 피해를 주고 사회에 불의를 일으키는 모든 악행은

한층 더 처벌해야 옳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이러한 문제들에 손 놓고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어서는 안될 것이다.

장수가 대표하여 용감하게 나서는 것처럼 우리 또한 불의한 세력들과는 과감하게 맞서야 할 것이다.


국민들의 이름은 정의요, 정의는 반드시 승리한다.

정의가 살아있는 나라는 희망이 있고 나라에 희망이 있을 때에 아름다운 세상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가슴이 따스한 사람 해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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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기처럼 이슬처럼

                



              사려가 깊은 사람이라면 사람의 내면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잘 안다.

              우리는 내면의 영역보다는 감각적인 영역에 너무 익숙하여 그것이 완전히 다른 것임에도 불구하고

              전자로 부터 생겨난 개념을 계속해서 후자에 전이시키는 것이다.

 

              우리는 물질은 그 크기로 판단하고 기계는 그 장치로 판단해서 그 세계에서 사용하는 이러한 표준들을

              내면의 영역에까지 대입시키는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종종 힘있는 단체들이 움직일 때마다 그 본질은 잊어버리고 난리를 치는 것이다.

 

              우리 대부분은 양심보다 다수의 의견을 신뢰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는 여론을 매우 중시하며 어떤 입장을 결정하기전에 세태가 나아가는 방향을 주의깊게 살펴본다.

 

              힘과 승리가 정의의 편인 것은 정의가 다수이기 때문도 아니고 시대의 교묘한 전략이나 권력도 아니다.

              비록 소수이고 부족하지만 정의의 사람들은 거부할 수없는 무언의 정의에 감화를 받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내면의 진정한 힘은 그 크기가 아니라 그것이 표방하고 있는 가치, 확신과 열심에 달려있는 것이다.


              세상에는 양보다 질이 우선하는 예는 얼마든지 있다.

              일,당,백과 같이 훈련되고 용감한 몇사람이 훈련되지 않은 거대한 집단과 싸워서 이기기도 한다.

 

              종교에서도 비록 교회가 적은 숫자로그들이 가진 믿음과 신앙으로

              큰 교회보다 더 많은 일도 할 수있을 것이다.


              세상에서 잘난 체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영향력을 무시하지만 이것은 견고한 진(陣)을 부수는 것과도 같다.

              모두가 지난 국정원의 대선 개입을 비난하고 있는 이 때에

              정부와 보수단체들은 사과는 하지 못하면서 오히려 천주교 사제단의 시국미사를 비난하고 나섰다.

 

              누가 어느 종교, 어느 성경안에서 저들은 종북이니 멀리하고, 복수하라고 말하던가.

              그것이 종교이며 복음이고, 그들이 참 지도자라고 말하던가.


              하나님은 일찌기 그런 사람들에게 교회의 정통성이 되어 달라고 부탁한 예가 없다.

              사람이 착각에 빠지면 점점 더 수렁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한 생명을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는 심정, 과연 주님께서도 기뻐하시는 일일까?


              더욱 더 기가 막힌 것은 문제를 지적할 때마다 저들은 아무렇게나 긍정을 들먹인다.

              긍정(肯定)이란 사람이 수긍(首肯)할 수 있을 때에야 비로서 옳다고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다.

 

              가장 거룩한 척, 종교를 빙자한 그릇 행동이나 교리를 앞세워서 편을 갈라놓는 이러한 그들의 행동은

              우리의 복음을 가로막는 사탄의 무리와도 같은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그렇게 강한 위협이나 저항할 수없는 폭풍이 아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소리없이 내리는 이슬과도 같은 것이다.


              아침 이슬은 하늘과 땅 사이에 확실한 관계가 맺어질 때만이 나타난다.

              마찬가지로 하늘과 땅이 조화를 이루어갈 때 그의 나라와 그의 의가 구하여지는 것이다.

             

              이슬은 비록 그 자체가 연약하지만 모이면 강력한 힘을 나타낸다.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식물에 생기와 활력을 넣어주며 자신의 공로는 이내 사라지고 마는 것이다.


              그렇다.

              진정한 지도자는 무슨일이나 자기를 미워하고 죽이려는 원수들까지라도 사랑하고 관용해 주는 것이다.

              시간과 정력과 사명을 다하고도 당연한 것뿐이라고 자신은 연기처럼 이슬처럼 사라져가는 것이다.


              가슴이 따스한 사람 해피

 

                 늦가을의 희망

 

 

 

 

 

절기상 11월 초순부터 25일 까지를 늦가을로 구분합니다.

11월의 하늘은 구름 한점도 없이 바람이 강하게 불고 땅에는 엷은 안개가 자욱하게 깔립니다.

많은 낙엽들이 바람에 땅 위에 떨어지고 들녁에는 작은 웅덩이들이 군데 군데 드러냅니다.

어둠이 찾아오고 공기가 한기를 느낄 때면 앙상한 나무가지들은 투명한 옷만 걸치고서 바르르 떨고 있습니다.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인생이란 황혼기가 찾아오면 인간의 삶이 점점 더 무덤으로 향하여 가고 늦가을의 단풍들도 점점 더 추위 속으로 사라져 갑니다.

자연은 이렇게 우리에게 항상 무언가를 가르쳐주는 깊은 교훈이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문명의 수확들은 누가 심기운 결과일까요?

그것은 고대로부터 내려온 현인(賢人)들과 시인들, 로마의 법률가와 통치자, 각계 각층의 사람들이 뿌린 고난의 결과입니다.

이들은 법률과 학문과 도덕으로 세상에 뿌린 자들입니다.

한 사람이 뿌리면 다른 이가 거두고 그래서 이 모든 세상은 더 풍성하게 되는 것입니다.

 

당신은 취객들과 호색가(好色家), 폭력자들을 보았습니까?

이들은 육체의 정욕을 심고 그것에 물을 주고 가꾸며 동물적인 본능으로 제 멋대로 행합니다.

자신의 힘과 건강과 인간성을 해치며 자신의 영혼까지도 파멸시키는 것입니다.

 

우리는 유구한 5천년의 역사를 가진 민족이라고 자부하지만 그 긴 세월은 실상은 고난 가운데서 기다려온 역사입니다.

우리 민족은 참으로 견디기 어려운 역경 속에서도 잘 참고 기다리며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당쟁으로 지샌 조선조 오백년 동안도 많은 고난 속에서 이 민족은 새 날을 기다려왔습니다.

때로는 동학혁명과 같이 몸부림치면서 그 고난에 항거도 하였지만 그래도 묵묵히 그 고난을 견디며 새 날을 기다려왔습니다.

 

오늘날에도 이 사회 속에 고난이 있고 비극이 있으며 추위로 고생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원인을 따져서 누구를 원망하고 비난하는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루 속히 해결의 길을 찾아서 어떻게 극복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마치 늦가을에 별들은 흐느끼고 가야할 길은 아직 먼데 또 외로운 나그네처럼

벌써부터 하얀 눈이 내리기만을 희망하고 있습니다.

봄이 오기를 기다리기에는 너무 멀고 지금은 너무 춥기에 사람들은 차라리 눈이라도 내렸으면 하고 지금 바라는 지도 모릅니다.

사람들이 이렇게 간절하게 희망을 갈망하는 것은 우리가 처한 상황이 몹시 불안하고 위급하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힘써 일하며 열심히 살아가고는 있지만 살 수없도록 가진 자들은 계속 가지며 없는 자들은 가진 자들의 힘에 막혀

그들의 처분만 기다리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지금 우리는 창밖을 바라보며 눈이 내린 줄 알고 뛰쳐 나가보았지만 실상은 눈이 내린 것이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또 다시 실망하면서도 포기하지 못하고 날마다 하늘만 쳐다보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기대하는 것은 TV속에 나오는 춤이나 노래같은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있는 정치적인 변화나 시대적인 변화입니다.

하늘에서 눈이 내려와 온 세상을 하얗게 덮듯이 누군가 이 역사에 나타나 이념을 덮어버리고 갈등을 덮고

남북을 어서 속히 화해시켜 주기만을 바라고 있습니다.

 

냉정 시대가 끝나고 독일이 하나가 된 것처럼 세계에도 많은 변화를 가져온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냉전 시대가 끝난 지금 우리 앞에는 더 많은 문제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의 정치적 상황들이 우리를 더욱 우울하게만 하고 있습니다.

보수 정권이 계속 집권하면서 권력들의 싸움과 불법들이 계속 터져 나오며 북한이나 일본등 세계와의 관계에서도

자꾸만 꼬여가는 현실을 바라보며 우리는 너무도 짜증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대선이 끝난 지가 언제인데 우리 사회는 아직도 NLL대화록이나 국정원의 대선개입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저쪽을 수사하면 가로막고 이쪽을 수사하면 또 나오고

도대체 국정원의 정체는 무엇이길래  온 나라를 이렇게도 쑥대밭으로 만들었을까요...

과연 대통령은 지금이라도 사과할 뜻은 있을까요...

 

이것을 바로 잡아야 할 정부나 여당측도 사과는 하지않고 계속 수사만 지켜보라며 압력을 넣고 있고

오히려 국민들의 시선은 자꾸만 다른 곳으로 유도하고 있습니다.

 

지난 날 대통령이 미국 순방길을 나섰을 때 윤창중 청와대 대변인이 성추행사건으로 물러났는가 하면

이어 등장하는 채동욱 검찰총장은 혼외 자식문제로 한바탕 큰 홍역을 치뤄야만 했습니다.

국정원이 이석기 사건을 계기로 궁지에서 빠져 나오는가 싶더니

이번에는 천주교 사제단의 시국미사가 또 하나의 논쟁거리가 되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또 얼마나 오래 물고 늘어질런지...

 

그런가 하면 아직도 공석중인 정부인사의 임명을 놓고서도 도덕적인 비리가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여당측에서는 그래도 임명을 강행해야 된다고 말을 하고 야당측에서는 절대로 안된다고 반대를 하고있습니다.

 

이제 FTA의 개방으로 우리 사회가 더 큰 위기 속에 빠졌지만 그럴수록 우리는 끈질기게 힘과 지혜를 모아야 할 것입니다.

강대국이 아무리 위협하고 우리를 힘들게 하더라도 우리는 결코 민주주의에 대한 기대를 포기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지금의 우리 민주주의는 우리가 바라는 진정한 민주주의가 아닙니다.

그것은 국가주의에 가깝지 국민들의 뜻은 아닙니다.

민주주의를 저버린 그 국가는 반드시 파멸하고 말 것입니다.

아무리 거센 힘이 민주주의를 꺾더라도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반드시 지켜내야할 것입니다.

그래야 우리가 후손들에게 부끄러움없이 당당해질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이 추운 계절에 낙담하여 실의에 빠진 사람들에게 용기를 불어넣어야 하겠습니다.

지쳐버린 실업자들과 좌절에 빠져있는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어야 하겠습니다.

정부와 정치인들이 아무리 우리를 외면하고 깨닫지 못하더라도

국민들은 서로가 이해하고 붙들어주면서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가야 할 것입니다.

 

 

 

가슴이 따스한 사람 해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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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나라를 불의에서

 

 

 

 

 

                 불의는 언제나 한 나라를 정상에서 멸망으로 몰아 넣는다.

                 어떤 나라의 국민들도 정의가 사라질 때 결코 그 불의에서 벗어날 수 없다.

                 사람들은 갈수록 힘을 잃고 화평을 잃어버리고 오직 권모술수(權謀術數)와 약육강식의 법칙에 따라

                 서로 물고 뜯고 속이는 사회가 되어버릴 것이다.

                 나라에 불의가 가득하고 민심이 요동칠 때 화합을 이루지 못하고 결국은 멸망의 길로 나아가게 될 것이다.

 

                 우리는 이와 같은 사례를 지난 역사에서 얼마든지 찾아볼 수가 있다.

                 사람들은 이 세상일들이 왜 일어나며 무슨 결과를 가져올 지 전혀 모를 때가 많다.

                 그리하여 멀리 내다보지 못하고 당장 코 앞에 있는 사실만을 가지고 허튼 소리를 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정부와 국가를 떠받치는 힘이 순전히 정책을 수립하는 능력과 그 정책을 실행하는 행정력과

                 국민들의 협조가 곧 정부와 국가를 유지시킨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이러한 정책 수립능력이나 행정력이나 국민의 협조등은 항상 불완전한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의 통찰력으로는 도저히 수많은 사건들을 해결할 수도 없고 아무리 정책을 잘 수립한다 할지라도

                 우발적으로 발생하는 조그만 사건으로 정책을 개편해야만 하는 경우가 수없이 많기 때문이다.

 

                 또한 많은 사람들의 협조로 과감히 행정력을 펼친다 하더라도 정책을 시행하는 과정에서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나가는 것을 이미 우리들은 많은 것을 경험하였다.

 

                 지난 MB정권 당시 거행된 천문학적인 예산이 투입된 4대강 사업이나 세빛 둥둥섬은 한치 앞도 모르고

                 자신의 업적에만 눈 어두워 무작정 밀어부친 국가적 불의이다.

 

                 어느 국가이든지 사람이 불의하고 부족한 상태에서는 나라가 제대로 움직일 수가 없다.

                 불의를 그냥 놓아둔 상태에서는 그 누구라도 더 이상 한 발자국도 나아갈 수가 없다.

                 지금 하늘이 우리를 내려다 보고 있고 국민들이 지켜보고 있으며 역사가 우리들을 바라보고 있다.

 

                 지난 날 우리 나라에서 일어난 많은 국가적 사건들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그것은 우리가 너무 어리석어서 불의를 저지른 나라에 대한 하나의 작은 경고이며 하늘이 우리에게 내리는

                 정의의 심판이다.

 

                 역사에서의 일들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역사의 길목에 서서 이유야 어찌하든 그를 희생해서라도 더 나은 길로 가고야 말겠다는 역사의 깊은 뜻이다.

 

                 그 동안 역사가 가르쳐준 권력자들의 낙마는 더 이상 권력에 대한 탐욕을 버리고 국민들을 섬기라는 경고이었다.

 

                 박정희 대통령의 시해는 그가 어떤 자라도 더 이상 두고 볼 수만은 없는 독재에 대한 역사의 준엄한 심판이었고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는 더 이상 강압과 폭언을 일삼지말고 화해를 하라고 당부하는 역사의 간절한 멧세지였다.

 

                 역사가 우리에게 보여준 것은 언제나 국민들의 뜻과 멀어질 때는 화가 미쳤다는 사실이고

                 불의가 만연할 때는 나라에 엄청난 재앙이 뒤따랐다.

 

                 이제 우리는 그 누구도 역사의 일에 무관심한채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는 사람"이 있어서는 안된다.

                 오늘 이 시대를 바라보면서 역사가 어디로 갈 것인지를 바로 알고 이 시대를 향하여 올바른 방향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예로부터 우리가 자주 사용해왔던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 이나 민심은 천심같은 말은 그냥 저절로 우연히 생겨난

                 말이 아니다.

                 거기에는 반드시 깊은 뜻이 숨겨져 있으며 나와 우리 모든 사람들이 하나로 조화를 이루어 나가야 한다.

                 그것이 바로 정의이며 하늘의 뜻인 것이다.

 

                 불의는 언제나 너와 나 사이를 갈라놓고 멀어지게 만든다.

                 국가가 불의한 길을 자청하고 무작정 걷고 있을 때 국민들은 자연히 희망의 길에서 점점 멀어지게 된다.

                 그리하여 국가와 국민들은 이제라도 불의에서 떠나 정의를 사랑하고 바른 길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이 길만이 이 나라가 살 길이며 거기에 아름다운 세상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가슴이 따스한 사람 해피

 


 

 

 

 

       검찰과 법원은 더 이상 시간을 끌지 말라!

 

 

 

 

 

                 많은 사람들이 말하기를 자신이 알지 못하고 일어난 범죄에 대해서는 자신은 무관하며

                 따라서 자신은 무죄라고 생각한다.

                 즉, 양심에 따라서 행동한다면 결코 책임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전과가 있는 사람처럼 양심이 부패하고 썩은 사람의 경우는 어떻게 할 것인가?

                 죄를 단지 아는가 모르는가에 따라서 책임을 추궁하고 만다면

                 사람들은 더 이상 알기를 회피하려고 할 것이다.

 

                 빛보다는 어둠이 사랑받는 이유는 어두움은 고요함을 주는데 반하여

                 빛은 잠든 양심을 깨워 양심의 가책을 느끼게 하기 때문이다.

 

                 당신의 애써 키운 어린 자식을 한번 보라!

                 만일에 당신이 멀리 있을 때나 모르고 있었을 때

                 당신의 어린자식이 범죄에 가담하여 흉찍한 범죄를 저질렀다면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사람들은 흔히 죄라는 것은 고의적으로 저지르는 것인데

                 어떻게 자신도 모르는 일이 죄가 될 수있는냐고 묻는다.

 

                 세상만사의 모든 인과 관계가 다 그러하다.

                 자연계에서 일어나는 어떠한 현상에도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결과가 따라오기 마련이다.

 

                 공기를 막으면 자연은 죽게되고 빛을 차단하면 생명체는 반드시 시드는 것처럼

                 우리가 공기나 빛의 성질이나 유용성을 모른다고 해도 결과는 마찬가지이다.

 

                 범죄도 마찬가지이다.

                 사람이 아무리 알지 못하고 죄를 범해도 거기에는 합당한 책임이 뒤따르게 된다.

                 누군가가 법을 어기게 되면 그 범법자는 반드시 처벌을 받게 된다.

 

                 그 범법자가 비록 법을 잘 몰랐다고 해도 그에게는 마땅한 처벌이 주어지고

                 그의 부모나 그의 지도자들도 그 범죄에 대하여 책임을 피할 수가 없다.

 

                 어떤 사람이 그 집안의 풍습이나 예의를 몰랐다고 해서

                 그가 받는 어떠한 비난이나 손가락질이 다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나랴!

                 검찰과 법원은 더 이상 시간을 끌지말라.

                 오늘도 무심코 저지른 그들의 행동하나가 온 국민들을 질식시키고 있다.

 

                 아직도 반성하는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고

                 남의 집이나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애꿎은 구경꾼들만 괜히 건드리고 있지는 않는가.

                

 

 

                 가슴이 따스한 사람 해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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