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가 주는 역사적인 교훈





       요즘 우리는 TV를 통해서 누구나 한 번쯤은 갖게 되는 생각이 있다.

       모든 재난이 다 그러 하듯이 재난은 언제나 우리에게 많은 교훈과 아쉬움과 회환을 갖도록 해준다.


       그 가운데서 우리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재난이 왜 일어났고 재난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으며
       그 재난을 우리는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 지를 조심스럽게 접근해 보고자 한다.


       예로부터 우리는 어른들의 말이라면 무조건 순종하는 것이 어른들에 대한 공경이라고 배웠다. 
       그러나 오늘날 사람들은 누구도 낯선 사람이 아이들을 부르면 아무에게나 가지 말라고 가르칠 정도이다.


       맑고 천진난만한 아이들에게 어른들은 온갖 거짓말로 아이들의 순수성을 빼앗아 놓고 
       아이들이 속아 넘어갈 때마다 그것이 재미있다는 냥 시청자들을 현혹하기도 한다.


       우리는 지금 우리 자신이 저지른 죄가 어떤 결말을 가져올 지는 아무도 모른다. 
       뜨거운 눈물로써 우리 자신의 검은 부분들이 완전히 지울 수만 있다면...


       우리는 매일 죄를 의식하면서 지내야만 한다. 

       그 죄가 크든지 작든지 어떻든지 항상 주의 해야만 한다.

       많은 사람들이 조심성 때문에 죄에 대하여 듣기를 꺼려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조심성이 옳게 적용될 수도 있지만 잘못 적용될 수도 있다.


       죄를 말하지 않고 그냥 지나치게 될 때 그 죄를 묵과하게 되는 잘못이 되고 
       그 죄를 다시 저질러도 된다는 우를 범하고 말 것이다.


       우리 사회는 어느 순간부터 더 이상 죄를 듣기 싫어하는 민족이 되어 버렸다. 
       그것이 군사문화가 만들어 낸 산물이라고 한다면 하루 속히 고쳐야 할 것이다.


       가장 분명해야 할 종교인들 조차도 더 이상 죄를 지적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듣기 싫어하는 설교보다는 듣기 좋은 말들로 채워가며 무조건 믿으면 구원받고 
       믿지 않으면 지옥간다는 말로 확대되었다.

 

       결국 이런 보상 교리는 신자들로 하여금 받을 생각만 하게 했지 
       그 나라를 위하여 무엇을 해야할 지를 약화시켜 놓았다.


       이 세상은 너무 악하고 요란하여 나만이라도 잘 믿고 천당가면 그만이라는 생각이 대부분의 교인들 생각이다. 
       이런 의식이 한국 교회로 하여금 이 사회를 변화시켜야 한다는 의지를 약화시키고 있다.


       세상을 비추어야 할 교회들이 빛으로서의 사명을 망각하고 있다. 
       한국 인구가운데 20%가 넘는 많은 교인을 두고서도 여전히 그 사회가 부도덕과 불의가 만연한 까닭은 
       바로 교회가 현실을 기피하고 사후에 갈 천당만을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도 마찬가지이다.

       우리 사회는 언제 부터인지 부정적인 말보다는 긍정적인 표현으로 바뀐지 오래이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도 모르면서 자기의 입장이 난처해 질 때마다 분위기가 가라앉는다는 이유로

       이내 화제를 돌려 버린다. 
       혹시라도 누군가 바른 충고를 할라치면 사람들은 '넌 매사에 부정적이야"하면서 따돌리기가 일쑤이다. 
       그러나 그것은 그 자신도 이미 솔직하지 못하고 있다는 반증일 것이다.


       역사에 있어서 목적이 없으면 아무 의미가 없다. 
       어떻게 보면 역사는 우연, 필연, 자유와 같은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연(愚然)이란 뜻하지 않은 일이 저절로 된다는 의미이고 
       그러한 우연성도 주관에 상관없이 객관적 차이가 있을 뿐이다. 
       분명한 것은 역사를 움직이는 중요한 요인 중에 개인적인 요인은 결코 배제해서는 안된다.


       지난 날 우리는 삼풍 백화점의 붕괴로 많은 인명의 사상자를 내고 많은 재산의 손실을 가져왔다. 
       그것은 참으로 서글프고 불행한 사건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주었다.


       삼풍 백화점이 붕괴된 가장 큰 원인은 모든 면에 부실공사 투성이었다. 
       설계도, 시공도, 감리도, 관리도, 인허가도 모두가 주먹구구식이었다.


       서초 구청의 8급 공무원 담당자가 삼풍 백화점의 사용허가를 내주었는데 그가 공무원직을 그만 두고 
       구청옆에다 큰 사무실을 차려 놓고 고급 승용차 3대를 굴렸다고 말한다.


       당시 세계 42개국의 공무원 청렴성을 조사했더니 1위가 스웨덴, 2위가 스위스, 3위가 싱가폴이었고 
       우리나라는 21위 였으며 중국이 41위였다.


       부정한 방법으로 돈을 번 경영주들의 탐욕이 있었는가 하면 그러한 참사 현장 속에서도 끝까지 살아남은 
       최명석 군(20세, 11일) 유지환 양(18세, 13일) 박승현 양(19세, 17일)은 우리에게 많은 감동을 주었다. 
       장장 377시간 만에 기적적으로 살아난 소식들은 너무도 신기하여 
       인간의 생명이란 과연 끈질기구나 하는 것을 새삼 느낄 수가 있었다.


       이번에 일어난 세월호의 침몰 사고 역시 크게 달라진 것이 없었다. 
       돈만 주면 무엇이든지 통과되는 국가의 행정체계나 
       돈만 있으면 불법을 저질러도 된다는 기업측의 과욕이 빚어낸 참극이었다.


       공직자가 퇴직을 하면 남은 여생을 가족들과 함께 편히 지낼 생각은 하지않고 또 다시 신분 세탁을 하며 
       정부 기관에 남아 계속 일을 하고 있는데 과연 정부와 기업과의 유착관계는 끊어질 수 있을까?


       이미 무너질 대로 무너져 버린 지휘체계의 혼선은 우리 국민들에게 말할 수없는 실망감만 주고 말았다. 
       거기에다가 초기 대응에 미숙하기 짝이없는 국가가 보여준 모습들은 과연 그들이 우리 국가인가 싶을 정도이다.


       국가 기관이란 원래가 그 사회의 최고 전문가로 뭉쳐진 최고 권력 기관이다.
       군인이 총을 무서워 하면 전쟁터에 나갈 수 없는 것처럼 
       아마츄어는 기분나는 대로 하면 그만이고 프로는 자기의 생명을 걸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국가 기관이 죽음을 두려워 해서야 어떻게 전문가라고 할 수가 있을까?

       툭하면 조류타령들이나 하고 극도로 몸을 아끼면서 어떻게 귀한 생명을 구조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배는 이미 기울어져서 사람이 언제 죽을 지도 모르는 판국에 무책임한 선장과 선원들은

       승객들에게 그래도 배 안이 가장 안전하니 기다리라고 했다니 정신있는 사람인가?


       살신성인(殺身成仁)이란 말은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자기가 희생당한 사람이다. 
       만일에 그러한 일만 없었다면 자신은 더욱 잘 살 수 있었는데도 누군가가 국가를 대신하여 사람을 구출하고 
       세상을 먼저 떠났다면 국가는 그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그를 의인처럼 받들고 최대한 보상해 주어야 할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그 고난의 원인들을 따지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지금 당하고 있는 이 고난의 현실을 어떻게 극복하느냐 하는 것이다.


       그 원인이 어디로 왔던지 간에 중요한 것은 비극적인 우리 고난의 현실이다. 
       오늘날 이 사회속에 고난이 있고 저들이 걸어온 것과 같은 비극적인 인생이 있다.


       희망이란 바로 두려웠던 마음은 사라지게 하고 모든 만물을 소생하게 하는 봄같은 소식이다. 
       방안에 문을 꼭꼭 걸어 잠가놓고만 있을 것이 아니라 봄날의 따뜻한 동산에 올라가 답답했던 마음을 내려놓고 
       자기의 마음들을 햇살에 비추이면 희망의 꽃이 그 속에서 피어나게 될 것이다.


       예로부터 "민심(民心)은 천심(天心)"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백성들의 마음을 외면할 수는 없다는 뜻으로 민심이 자꾸 땅에서 매이면 국가는 그마만큼 불행해지고 
       민심이 즐겁고 평안하면 천심은 국가에게 복을 내린다는 의미이다.


       지금 우리가 당한 이 고난은 분명히 이 민족이 더 이상 정쟁을 중단하고 
       남북이 속히 화해하며 민심을 돌아보라고 하는 하늘의 깊은 뜻도 있다.

       그리하여 하늘은 오늘도 우리에게 복과 화를 준비하고

       위정자들의 마음을 깨우쳐서라도 아름다운 세상을 이루어 가는 것이다.



       가슴이 따스한 사람 해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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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래 전에 우리 나라에도 소개된 <로베로 장군>이란 영화를 아십니까?

 

            나치에 저항했던 저항 운동가들이 감옥에서 처형당하게 되었는데

            그 중에는 저항 운동에 참가한 일이 없는데도 잘못 잡혀온 사람도 끼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자신이 너무 억울하게 처형당한다고 생각하여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나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나는 유대인이 아니다. 나는 저항 운동을 한 일이 없다.

            그런데 내가 왜 이렇게 억울하게 죽음을 당해야 한단 말인가?"

 

            이 때에 옆에 서 있는 한 저항 운동가가 말했습니다.

 

          "당신이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는 것_ 그것이 잘못이다.

           당신이 아무 것도 안했다는 것은 그것만으로도 당신은 죽어 마땅하다.

 

           전쟁은 오 년이나 계속 되었고 수 백만명의 사람들이 무참하게 피를 흘렸으며 조국과 민족이 멸망 직전에 놓여 있는데

           도대체 당신은 왜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단 말인가?"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죄_ 자기의 안전과 평안만을 위해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사람은

           그의 나라에 전혀 합당하지 않다는 것이 오늘의 주제입니다.

 

           지난 2014년 4월 16일 8시 48분경 전라남도 진도군 조도면 부근 앞바다에서

           승객 476명을 태우고 제주도로 향하던 세월호가 무슨 일을 만났는지 그만 바다에 침몰하는 대참사가 일어났습니다.

 

           6.800톤 급이나 하는 이 거대한 세월호는 수학 여행을 가던 안산시 단원고 2학년 학생 325명과

          선원 30명 등 총 476명과 함께 승용차 180대 외에도 화물 등이 실어있었습니다.

 

          고귀한 생명 174명만을 간신히 구조한 채로 선장과 선원들은 자신들의 무전기로 미리 빠져 나갔으며

          나머지의 생사들은 어떻게 되었는지 가족들의 가슴만 타버렸습니다.

 

          이러한 와중에도 가짜뉴스나 스팸문자로 돈 벌 궁리만 하는 사람들...

          그런 모습들을 그저 속수무책으로 TV앞에서 바라만 보고 있는 사람들의 심정은 과연 어떨까요?...

          만일에 누군가가 우리에게 책임자가 누구냐가 묻는다면 당신은 누구라고 대답할 수 있습니까?

 

          히틀러는 엄청난 권력의 소유자였습니다.        

          그는 여유롭게 의자에 앉아 차를 마시면서 수 백만 유대인들의 운명을 좌우지 했습니다.

 

          레닌, 모택동, 김일성등은 수 백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의 생사권을 가졌습니다.         

          그들은 무서운 독재자들이었습니다.

 

          그렇다고 그들을 지도자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그렇다면 우리 나라의 박정희 대통령은 어떠했을까요?

 

          지도력이라고 하는 것은 명령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조직은 목적에 대한 수단이며 사람들이 원하는 바 모든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도록 도와 주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지도자란 단순히 권력을 장악하는 자가 아닙니다.

 

          1993년 1월호 "이코노미스트" 지의 사설에서는 흥미로운 질문 하나를 게재하였습니다.

 

         "지금 당신은 당신의 나라에 대통령, 수상, 혹은 국무총리의 리더쉽에 만족하고 있습니까?"                

          그리고는 그 질문에 다음과 같이 답을 했습니다.

 

         "만일에 당신이 만족하고 있다면 당신은 아마도 소수의 집단에 속할 것입니다." 라면서...

 

          우리에게 있어서 국가란 무엇이며 지도자란 어떤 의미입니까?        

          국가라 함은 모든 국민들이 다 깊은 잠에 들지라도 늘 깨어서 국민들을 보호하고 지켜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리고 지도자란 자신의 백성들이나 자기의 부하들을 위하여 스스로 나서고 희생하는 자입니다.

 

          그러한 국가, 그러한 지도자라면 사람들은 아낌없이 자신의 목숨까지 내놓고 충성을 바치는 것입니다.

 

          성경 속에 등장한 자기의 스승 예수가 붙잡히게 되자 공포와 불안에 질려 도망을 갔던 그의 제자들이나         

          세월호가 바다에 침몰하게 되자 자기들만 살겠다고 먼저 빠져 나오는 선장과 선원들이나         

          마땅히 구조해야 할 사람들이 혹시나 자신들도 물에 빠져 죽지는 않을까 전전 긍긍을 하고 있는사람들이나         

          과연 무엇이 다르다 말할까요?

 

          희망은 어떤 과학적인 근거에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정치적인 차원에서 오는 것도 아닙니다.         

          정부의 성명처럼 경제적인 번영과 군사적인 우세나 과학적인 장비가 희망을 주는 것도 아닙니다.              

          이미 그런 것들은 이 상황에서 어떠한 희망을 줄 수없는 것들로 판명되었습니다.        

 

          오직 국민들이 어려울 때마다 나타나 오징어 배를 동원하고 잠수부로 투입하는가 하면

          세월호 유가족들에게는 따뜻한 위로가  되고 그들을 위해 기도해 주면서        

        

          밤낮 실종자들을 구조하며 그들을 위해 숨어 봉사하는 손길 속에 희망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장차 유가족들이나 우리의 미래를 위해서도 큰 힘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당신은 이 나라에 왜 정부가 존재하고 지도자가 필요하며 종교계들이 존재하다고 보십니까?        

          그것은 절망에 빠진 사람들에 대하여 책임을 감당하기 위해서 입니다.

 

          누구나 말하기는 쉬워도 실천으로 옮기기란 어려운 것이 삶입니다.         

          그리하여 국민들은 스스로 할 수 없기에 국가에게 도움을 요청하며 선봉장으로 지도자를 택한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의 상황 속에서 우리의 지도자들은 과연 어디에서 무엇을 하였습니까?         

          어느 누가 유가족들과 함께 했으며 그들을 위하여 기도해 주었습니까?

 

          오로지 반짝 나타났다가 사라져서는 지키지도 못할 약속이나 늘어놓고

          어떤 지도자는 자신의 기념거리를 삼기 위해 사진이나 찍고 

          어떤 지도자는 유가족들에게 필요한 장소에서 식사를 하면서 과연 지도자라고 할 수 있을까요?

 

          하나 하나를 놓고 생각하면 할수록 그것은 정말 화가 나고 무책임하고 비겁하기 짝이 없는 수치였습니다.         

          한 생각을 내 쫓는 유일한 길은 더 강력한 생각으로 바꾸어 놓는데 있습니다.

 

          그런데 언론들은 이러한 상황속에도 아직 정신을 못 차리고 북한의 상황들을 연신 알리기에 열을 올리며

          또 다시 국민들을 자극시키려 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선거가 중요하고 한미 공조가 중요해도 분명치도 않는 내용들을 우리국민들은 왜 알아야 하고

          그것이 지금의 구조상황보다도 그렇게 중요하다는 말입니까?

                  

          지금 당장이라도 전쟁이 일어날 것만 같습니까? 당신들은 감정도 없습니까?         

          신뢰는 공포를 정복하고 사랑은 증오를 정복하며 적극적인 행동은 과거의 실패를 극복해 나갈 수 있습니다.

 

          지금은 모든 것이 엉망이 된 이 부조리한 사회 속에서 우리는 분명한 역사인식을 가지고

          정신을 바싹 차리고 이 절망을 뚫고 나가며 불안에 떨고 있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안겨 주어야 할 것입니다.            

 

 

       가슴이 따스한 사람 해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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